2025년 11월 6일 목요일

광대나물

광대나물

광대나물

이 름 : 광대나물

학 명 : Lamium amplexicaule L.

과 명 : 꿀풀과

분 포 :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동남아시아, 서아시아, 유럽, 북아메리카

자생지 : 숲의 가장자리, 길가, 밭

크 기 : 높이 10~25cm

개 화 : 3-5월

꽃 말 : 그리운 봄

광대나물은 우리나라 각처의 밭이나 길가에서 자라는 2년생 초본이다. 생육환경은 비교적 햇살이 많이 드는 양지쪽에서 잘 자란다. 키는 10~30㎝가량 되며, 줄기는 네모지고, 자줏빛이 돈다. 잎은 둥근 모양을 하고 있으며, 지름은 1~2㎝ 정도이다. 꽃은 붉은색이며, 잎겨드랑이에 여러 송이의 꽃이 붙어 돌려난 것처럼 보인다. 꽃 지름은 약 0.7~1.2㎝ 정도이고 길이는 2~3㎝ 정도된다. 열매는 7~8월경에 달걀 모양으로 달린다. 이른 봄 집주변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종이다. 연한 어린잎은 식용, 전초는 약용으로 쓰인다.

-사진 : 임규동의 꽃사진세상-

♨ 좋은글 더보기 : iusan.com

구두 한 켤레

구두 한 켤레

구두 한 켤레

살아간다는 것은 내 짝을 찾아 헤메는 구두 한 켤레. 구두가 낡을수록 사람이 되는 것을 세상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쉽게 구두를 갈아 신는 것은 먼저 인간이 되고 나서 산다는 아픔을 모르는 까닭이고 어떠한 길이라도 한 켤레 구두가 닳을 때 까지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걸어가라고 세상살이가 알려 주는 것임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가도 가도 세상길은 질퍽하게 험하기만 하고 세상으로 부터 자유롭고 싶은 이 자유가 삶의 비지땀 같은 부담이 될줄 몰랐습니다.

밖을 나설 때 마다 남들 보기에 창피하고 부끄럽지 않게 구두를 닦고 살아가는 것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까마귀가 울고 있는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마음의 행로는 한 켤레 구두로 부터 나를 구속하고 있었습니다. 살아가면서 겉치레가 오히려 삶의 방해꾼이 되는 온전한 자유 속 한 사람의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시인의 낡은 구둣발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

-이재호/ 구두 한 켤레 중에서-

"

국사무쌍ㅣ國士無雙

국사무쌍ㅣ國士無雙

국사무쌍ㅣ國士無雙

○ 나라 안에 견줄 만한 자가 없는 인재

○ 國(나라 국) 士(선비 사) 無(없을 무) 雙(쌍 쌍)

나라의 인물은 둘이 있을 수 없다. 즉 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인물을 가리키는 표현.

유방이 항우와 주도권을 다툴 때의 일입니다. 항우의 힘이 워낙 강해 유방 진영이 점차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유방 진영에서는 장수와 병사를 막론하고 이탈자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방의 고향 친구이자 오른팔인 소하마저 사라졌습니다.

유방이 “이제 나는 끝이로구나!” 하며 낙담하고 있는데, 소하가 돌아왔습니다. 유방은 반가운 기색을 감추며 “너마저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하고 화를 냈습니다. 그러자 소하는 “전 세상에 둘도 없는 소중한 인물을 찾아 나갔다 왔습니다. 다른 모든 인물을 잃는다 해도 이 사람만 있으면 천하를 손에 쥘 수 있습니다.” 하는 것이었지요. 궁금해진 유방이 “그게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고 묻자 소하는 “한신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한신은 말단 지휘관에 불과했으므로 유방은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소하는 뜻을 굽히지 않고 간언하였죠. “한신을 등용하십시오. 그야말로 천하에 둘도 없는 인재입니다.” 결국 유방은 소하의 말대로 한신을 대장군에 등용하였고, 그때부터 한신은 유방이 천하통일로 가도록 길을 닦았습니다. 물론 마지막에는 한신의 능력에 불안감을 느낀 유방에 의해 버림을 받았지만 말입니다.

대우탄금ㅣ對牛彈琴

대우탄금ㅣ對牛彈琴

대우탄금ㅣ對牛彈琴

○ 소에게 거문고 소리를 들려 주는 것

○ 對대할 대 牛소 우 彈풍길 탄 琴거문고 금

소에게 거문고를 들려준다는 말로,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참된 도리를 말해 주어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

중국 양(梁)나라 때의 승려 우(祐)가 편찬한 《홍명집(弘明集)》 이혹론(理惑論)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후한 말 모융(牟融)이라는 학자가 있었다. 그는 불경에 밝아 많은 사람이 불경을 공부하러 그를 찾아왔다. 그런데 찾아온 사람이 유학자일 경우에는 불경을 설명하면서 늘 유학의 경서를 인용했다. 이에 대하여 유학자들이 이유를 묻자, 모융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당신들은 불경을 읽은 일이 없을 것이오. 그래서 나는 당신들이 잘 알고 있는 유교 경전을 인용하는 것이라오.” 그러고는 송(宋)나라 때 목암(睦庵)이 지은 선집 《조정사원(祖庭事苑)》에 보이는 공명의(公明儀)의 일화를 이야기하였다. “옛날 노(魯)나라에 공명의라고 하는 어진 사람이 있었소. 하루는 소를 보고 그 하는 일에 고마움을 느껴 거문고를 켜 주었다오.

그런데 소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풀만 뜯고 있었다는구료. 가만히 생각하니 이건 소가 듣지 못한 것이 아니라 청각(淸角)이라는 고상한 곡조가 소 귀에는 맞지 않기 때문이구나 싶더랍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모기와 등애의 울음소리, 젖을 먹고 있는 송아지 울음소리를 흉내냈답니다. 그러자 소는 발굽소리를 내며 꼬리를 흔들기도 하고, 귀를 세운 채 거문고 소리를 다소곳이 들었답니다. 그 소리가 소의 마음에 맞았기 때문이지요. 이 이야기는 바로 내가 당신들에게 유교 경전을 인용하여 불경을 설명하는 것과 같은 이치 아니겠소?”

대우탄금은 이와 같이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알아 듣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소용이 없다는 말로, 오늘날에는 우이독경(牛耳讀經)과 같은 의미로도 사용된다.

대공무사ㅣ大公無私

대공무사ㅣ大公無私

대공무사ㅣ大公無私

○ 매우 공평하여 사사로움이 없다

○ 大(큰 대) 公(귀 공) 無(없을 무) 私(사사로울 사)

매우 공평하여 사사로움이 없다는 말로, 공적인 일의 처리에 있어서 개인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는다는 뜻.

"

공(公)이란 글자는 본래 사(私)를 나눈다는 뜻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사(私)를 나눈다는 말은 바로 가난을 같이 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개인적인 욕심을 버리고 여러 사람과 어려움을 같이하는 것이 바로 공적인 행동이라는 풀이가 나왔다. 《십팔사략(十八史略)》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보인다.

",

춘추시대 진(晉)나라 평공(平公)이 하루는 기황양(祁黃羊)에게 물었다. "남양(南陽)에 현령(縣令) 자리가 비었는데 누구를 보내는 것이 가장 좋겠는가?" 기황양은 주저하는 기색 없이 즉시 대답하였다. "해호(解狐)를 보내면 반드시 임무를 훌륭히 수행할 것입니다." 평공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해호와 기황양은 서로가 극히 미워하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해호는 그대와 원수지간이 아닌가? 어찌하여 해호를 추천하는 것인가?" 기황양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왕께서는 현령 자리에 누가 적임자인지를 물으셨지 누가 신과 원수지간이냐를 물으신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후 어느 날 평공이 다시 "조정에 법을 집행할 사람이 한 명이 필요한데 누구를 임명하는 것이 좋겠소?" 하고 묻자, 기황양은 서슴없이 자기 아들을 추천하였다. 평공이 "그는 그대 아들이 아닌가?" 하고 묻자, 기황양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누가 그 일에 적임자냐고 물으셨지, 그가 내 아들인지 아닌지를 물으신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신은 비록 제 아들이라도 그 자리에 적격이기에 추천한 것이지 사사로운 정으로 추천한 것이 아닙니다." 그의 말대로 평공은 그의 아들 기오(祁午)를 그 자리에 앉혔고, 기오는 공명정대하게 일을 처리하여 칭송을 들었다.

대공무사란 이와 같이 사사로운 정에 얽매이지 않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공평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을 가리킨다.

동주공제ㅣ同舟共濟

동주공제ㅣ同舟共濟

동주공제ㅣ同舟共濟

○ 같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

○ 同(한가지 동) 舟(배 주) 共(한가지 공) 濟(건널 제)

같은 배를 타고 천(川)을 건넌다는 뜻으로 이해(利害)와 환란(患亂)을 같이 했다는 것을 뜻하는 성어로 吳越同舟(오월동주)라는 말이 있다. 원수 사이인 吳(오)나라 사람과 越(월)나라 사람이라도 같은 배에서 풍랑을 만나면 서로 돕기를 좌우의 손이 함께 협력하듯이 한다고 병법서인 孫子(손자)서 가르친다.

같은 배(同舟)를 타고 함께 강을 건넌다(共濟)는 이 성어도 출처가 같은 손자라고 한 곳이 많지만 실제 뜻은 같아도 유래는 다르다. 중국 南北朝時代(남북조시대) 宋(송)의 역사가 范曄(범엽)이 편찬한 ‘後漢書(후한서)’에 朱穆(주목)이 한 말로 나온다. 자가 公叔(공숙)인 後漢(후한) 말기 학자 주목은 학문을 좋아하고 성품이 강직해 바른 말을 잘해 忠諫者(충간자)의 비유가 되었다.

당시 척신 梁冀(양기)는 여동생인 태후와 함께 황제를 마음대로 폐하고 세우며 안하무인의 횡포를 부려 모두 꺼렸다. 주목은 양기와 함께 환관들의 횡포를 보다 못해 상소를 올려 처벌하기를 권했다. ‘무릇 장군과 재상, 대신은 모두 군주와 한 몸이므로 수레를 함께 타고 달려야 하고 배도 함께 타고 물을 건너야 하니 수레가 기울고 배가 뒤집히는 환난에도 함께 해야 합니다. 주목은 상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울분 끝에 종기가 나 죽었다.

1912년 7월 중국 상하이에서 申圭植(신규식) 등이 국권회복운동을 위해 조직한 독립운동단체 同濟社(동제사)도 ‘한마음 한뜻으로 같은 배를 타고 피안에 도달하자’는 이 성어에서 따 온 것으로 알려졌다.

도주지부ㅣ陶朱之富

도주지부ㅣ陶朱之富

도주지부ㅣ陶朱之富

○ 도주공의 부, 큰 부를 일컫는 말이다.

○ 陶(질그릇 도) 朱(붉을 주) 之(어조사 지) 富(부자 부)

월(越)나라 때 범려(范\u3000)라는 명신이 있었는데 그의 늙었을 적의 이름은 도주(陶朱)였다. 월왕(越王)구천은 범려의 말을 듣지 않고 오(吳)나라와 싸워 크게 패하였다. 구천은 범려의 조언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후일을 기약하면서 오나라와 굴욕적인 화해를 하게 되었다. 범려의 조언에 힘입어 구천은 부국강병에 힘써 20년 뒤에는 드디어 오를 멸망시키고 패자(覇者)가 되었으며 범려는 상장군이 되었다.

그러나 범려는 "나는 새가 없어지면 활이 더 이상 필요치 않으며 민첩한 토끼가 죽으면 좋은 개도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어 잡아먹히게 된다." 고 말하면서 제(齊)나라로 건너갔다.

제나라에서 범려는 이름을 치이자피(\u3000夷子皮)로 바꾸고 장사를 시작하여 엄청난 부를 얻었다. 제나라에서는 그의 재능을 높이 사 그를 재상으로 삼고자 했다. "천금의 부를 누리면서 재상이 된다는 것은 영화의 극치이다.

오래도록 높은 명성을 유지하는 것은 좋지 않다." 고 말하면서 자신의 재산을 아낌없이 나누어주고 도(陶)로 옮겨갔다. 거기서도 그는 장사를 시작해 큰 부를 얻게 되어 도주공(陶朱公)이라 불리게 되었는데 이것도 역시 아낌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리하여 그는 17년 동안 세 차례나 큰 부를 얻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 칭송을 받았는데 가업을 물려받은 후손들도 더욱 큰 부를 얻게 되었다.

안여순화ㅣ顔如舜華

안여순화ㅣ顔如舜華

안여순화ㅣ顔如舜華

○ 얼굴이 무궁화와 같다, 매우 아름다운 여인

○ 顔(낯 안) 如(같을 여) 舜(순임금 순) 華(빛날 화)

無窮花(무궁화)가 우리나라의 국화가 된 것은 정부에서 결의했거나 법령으로 공포한 것이 아니고 옛날부터 자연발생적으로 된 것이라 한다. 한반도에서 많이 자랐다는 것은 한민족의 역사를 다룬 桓檀古記(환단고기)에 桓花(환화)로 나와 알 수 있고, 중국 문헌에는 山海經(산해경)에 薰花草(훈화초)라 하여 군자의 나라에 많다고 했다. 이외에도 무궁화를 나타내는 말은 많다. 槿花(근화) 木槿(목근) 藩籬草(번리초) 朝開暮落花(조개모락화) 花奴玉蒸(화노옥증) 등이다.

순임금의 이름인 舜(순)에도 무궁화란 뜻이 있어 舜英(순영) 舜花(순화)로 부르고, 본 글자를 써서 蕣花(순화)도 같은 의미다. 여기에 얼굴이 무궁화 꽃처럼 아름답다며 미인을 가리키는 비유로도 사용됐다. 나라를 기울게 한다는 미색 傾國之色(경국지색)의 여인은 주로 입술이나 눈동자, 하얀 이 등에 비교했어도 꽃으로는 연꽃과 무궁화 외에는 많지 않다. 미인에 무궁화를 비유한 것이 다른 어느 것보다 역사가 오랜 것은 중국 최고의 시집으로 약 3000년 전부터 전해지는 시를 모은 ‘詩經(시경)’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15개국의 민요 國風(국풍) 중에서 鄭風(정풍)에 실려 있다.

‘여자와 함께 수레를 타니 아름다운 얼굴이 무궁화 꽃 같네(有女同車 顔如舜華/ 유녀동거 안여순화), 날듯이 수레를 몰고 갈 때 허리엔 온갖 구슬을 찼네(將翺將翔 佩玉瓊琚/ 장고장상 패옥경거), 맹씨 댁 어여쁜 맏딸은 참으로 아름답고 우아하구나(彼美孟姜 洵美且都/ 피미맹강 순미차도).’ 글자가 몇 자만 다르게 이어지는 뒤편에는 顔如舜英(안여순영)으로 나온다. 혼인하는 신랑이 자기의 신부가 꽃처럼 아름답다고 노래했다.

아름다움은 얼굴보다 마음에 있다 하고 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이라며 미인도 곧 싫증난다고 말한다. 그렇더라도 우선 보이는 얼굴을 가꾸기 위해 여자뿐 아니라 남자들도 성형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예도 보자. 천하의 추녀 孟光(맹광)은 남편 梁鴻(양홍)과의 금실이 좋아 梁孟(양맹)이라 불렸고, 박색에다 얼굴도 검고 두꺼웠던 鐘離春(종리춘)은 齊王(제왕)의 왕후가 됐다. 얼굴보다 앞선 지혜를 높이 샀기 때문이다.

도방고리ㅣ道傍苦李

도방고리ㅣ道傍苦李

도방고리ㅣ道傍苦李

○ 길가의 쓰디 쓴 자두라는 말

○ 道(길 도) 傍(곁 방) 苦(쓸 고) 李(오얏 리)

길가의 쓰디 쓴 자두라는 말, 아무도 따는 사람이 없이 버림 받음.

진(晉)나라의 왕융(王戎)이 일곱 살 때의 일이다. 그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놀고 있었다. 그때 길가의 오얏나무에 가지가 휘어지게 많은 열매가 맺혀 있는 것을 보았다. 아이들은 그것을 따려고 앞을 다투어 달려갔다. 그런데 왕융 혼자만은 움직이려 들지 않았다.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이 물었다.

"왜 너는 따러 가지 않느냐?" "길가에 있는데, 저렇게 열매가 많이 매달려 있는 것은 틀림없이 써서 먹지 못할 자두임이 분명합니다." 아이들이 따보니 과연 왕융이 말한 대로 먹을 수 없는 자두였다.

왕융(234~305년)은 진(晉)의 정치가.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으로 노장 사상을 선호하고 유유자적 하며 정치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경이원지ㅣ敬而遠之

경이원지ㅣ敬而遠之

경이원지ㅣ敬而遠之

○ 겉으로는 공경하는 체 하면서 속으로는 멀리함,

○ 敬(공경 경) 而(말 이을 이) 遠(멀 원) 之(갈 지)

①공경(恭敬)하되 가까이하지는 아니함 ②겉으로는 공경(恭敬)하는 체하면서 속으로는 꺼리어 멀리함

존경하는 사이일수록 너무 가까이 하지 않는 게 서로에게 도움이 됩니다. 바로 그런 사이를 가리키는 표현인데, 너무 가까워지면 존경하던 마음마저 사라지는 일이 벌어지기 쉽죠. 그래서 서양 속담에 ‘시종 앞에 영웅 없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 사람에 대해 시시콜콜 알고 나면 도저히 존경할 수 없다는 것이죠.

이 표현은 경원(敬遠)이라고 줄여서 쓰기도 하는데, 이때는 ‘꺼린다’는 뜻으로 쓰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네, 투수가 이 선수와의 대결을 두려워하여 경원사구로 걸리는군요.” 야구에서 투수가 고의사구로 타자를 내보낼 때 쓰는 표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