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20일 목요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누구인가?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누구인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인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누구에게나 배우는 사람이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다.

"

-위로의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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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람

내 사람

내 사람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현재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내가 지금 만나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중요한 일은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소중히 대하는 일이다.

"

-사랑시 100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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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였던, 나의 사랑하는 엄마에게

위안부였던, 나의 사랑하는 엄마에게

위안부였던, 나의 사랑하는 엄마에게

엄마가 일본군 위안부로 있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저는 너무나 어린 나이였습니다. 그래서 그게 뭔지 무슨 일을 겪으신 건지 저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1942년. 그러니까 엄마 나이 열일곱. 전쟁 때 다친 사람들을 간호하러 가신 게 아니구나, 누군가에게 강제로 끌려가 모진 고생을 하신 거구나,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었습니다.

뼈가 튀어나올 정도로 다친 어깨와 허리 때문에 팔을 들어 올리지도 못하시는 엄마를 보면서도, 무엇을 하다 그렇게 심한 상처를 입으신 건지 엄마한테는 차마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겁이 났습니다. 그런 일들이 있었다는 것이 무섭기만 했고,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필이면 우리 엄마가 겪은 일이라는 게 더 무섭고 싫기만 했습니다. 혹시라도 내 주변 친구들이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어쩌나 그저 두렵기만 했습니다.

엄마는 일본말도 잘하시고 가끔은 영어를 쓰시기도 하셨지만, 밖에 나가서 이야기를 하실 때는 전혀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디 가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엄마 얘기를 절대 해서는 안 된다며 제게도 항상 신신당부하시곤 했었죠. 그렇게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아니, 어쩌면 저는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애써 외면했습니다. 제가 알게 된 엄마의 이야기를 모른 체하고 싶었습니다. 철없는 저는 엄마가 부끄러웠습니다.

가엾은 우리 엄마.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그 깊은 슬픔과 고통을 안고 얼마나 힘드셨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 옵니다.

엄마, 엄마가 처음으로 수요 집회에 나갔던 때가 떠오릅니다. 처음에는 어디 가시는지조차 몰랐던 제가 그 뒤 아픈 몸을 이끌고 미국과 일본까지 오가시는 것을 보면서 엄마가 겪은 참혹하고 처절했던 시간들에 대해 하나씩 하나씩 자세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생전에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끝까지 싸워다오. 사죄를 받아다오. 그래야 죽어서도 원한 없이 땅속에 묻혀 있을 것 같구나. 이 세상에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해. 다시는 나 같은 아픔이 없어야 해.

엄마는 강한 분이셨어요. 그러나 엄마는 그렇게 바라던 진정한 사죄도, 어린 시절도 보상받지 못하시고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 고통과의 싸움이었을 엄마를 생각하며 저는 울고 또 울었습니다.

엄마. 끝내 가슴에 커다란 응어리를 품고 가신 우리 엄마. 모진 시간 잘 버티셨습니다. 이런 아픔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저희가 이어가겠습니다. 반드시 엄마의 못 다한 소망을 이루어내겠습니다. 이제 모든 거 내려놓으시고 편안해지시길 소망합니다.

나의 어머니. 우리 모두의 어머니. 사랑합니다.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식 편지‘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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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내외에 알리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기 위하여 제정된 국가기념일로, 매년 8월 14일이다. 2017년 12월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이전까지 민간에서 진행돼 오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 국가 기념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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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사람의 향기입니다

말은 사람의 향기입니다

말은 사람의 향기입니다

프랑스의 휴양도시 니스의 한 카페에는 이런 가격표가 붙어 있다고 합니다.

ᆞCoffee! 7 Euro.

ᆞCoffee Please! 4.25 Euro.

ᆞHello Coffee Please! 1.4 Euro.

우리 말로 바꾸면.

ᆞ커피ㅡ 라고 반말하는 사람에게는 1만원을. ᆞ커피주세요ㅡ 라고 주문하는 사람에게는 6천원을. ᆞ안녕하세요, 커피한잔 주세요ㅡ 라고 예의바르고 상냥한 손님에게는 2천원을 받겠다는 얘기입니다.

기발한 가격표를 만든 카페주인은 손님들이 종업원에게 함부로 말하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그 카페에서는 말 한마디를 예쁘게 하는 것으로 똑같은 커피를 5분의 1 가격으로 마실 수 있는 셈입니다.

말은 사람의 향기라고 합니다. 아무리 꽃이 예뻐도 냄새가 독하면 곁에 가까이 두기 어렵고, 반대로 화려하지 않아도 향기가 좋으면 그 꽃을 방안에 들여 놓게 됩니다.

같은 말도 독하게 내뱉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예쁘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구를

내 안에 들여 놓겠습니까.

-Facebook 글 편집-

주저앉고 싶을 때 용기를 주는 스티브 잡스 어록

주저앉고 싶을 때 용기를 주는 스티브 잡스 어록

주저앉고 싶을 때 용기를 주는 스티브 잡스 어록

1. 지난 33년 동안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물었다. "오늘이 인생 마지막 날이라면, 오늘 할 일을 하고 싶나?" 이에 대한 답이 "아니오"이고 그런 날이 연달아 계속되면, 변화의 시점이 찾아왔다는 걸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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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일은 우리 인생의 많은 시간을 차지한다. 당신이 삶에 만족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당신이 하는 일이 위대하다고 믿는 것이다. 위대한 일을 하는 유일한 방법은 당신 일을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일을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아라. 타협하지 마라. 마음에 관한 문제가 그렇듯, 그걸 발견하는 순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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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묘지에서 가장 부자가 되는 건 내게 중요치 않다. 내게 중요한 건, 밤마다 잠자리에 들면서 "오늘 굉장한 일을 했어"라고 말할 수 있냐는 점이다.

4. 혁신을 시도하다보면 실수를 할 때가 있다. 빨리 실수를 인정하고, 당신의 다른 혁신들을 서둘러 개선해나가야 한다.

5. 예술가처럼 창조적인 삶을 살고 싶다면, 뒤를 너무 돌아보면 안된다. 당신이 지금까지 무얼 했든지, 당신이 누구였든지 간에 그 모든 걸 내던질 자세가 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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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집중과 단순함. 이게 내 원칙 중 하나다. 단순함은 복잡함보다 어렵다. 생각을 명쾌하게 해 단순하게 만드려면 굉장히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결국 그럴 가치가 있다. 일단 단순함에 도달하면, 산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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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고객들에게 어떤 걸 원하는지 물어보고 그걸 주려고 하면 안된다. 고객들 요구에 맞게 무언가를 만들어내면, 그들은 이미 다른 새로운 걸 원하고 있다.

8. 미친 사람들, 부적응자, 골칫 덩어리,사물을 다르게 보는 사람들.., 그들은 규칙을 좋아하지 않는다. 당신은 그들 말을 인용할 수도 있고, 동의하지 않을 수 있고, 높이거나 혹은 욕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이 할 수 없는 하나는 그들을 무시하는 것이다. 왜냐면 그들은 세상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류를 앞으로 전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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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성공한 사업가와 실패한 사업가의 차이는 인내심이 있느냐 없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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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ebook 펌글-

조형용 닭도리탕

조형용 닭도리탕

조형용 닭도리탕

어느 퇴근길. 아까부터 서너 걸음 뒤로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내 앞엔 어디선가 본듯한 얼굴, 낯 익은 모습의 초라한 행색의 한 중년 여인이 있었다. 누구지?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서 잃어버린 시간 한 토막이 문득 스쳐 지나간다. 바로 친구 형용이의 부인이다.

그래, 20여년 전 결혼하고 서울 근처에 신접 살림 냈다며 경기 부천역 부근의 방 둘 짜리 300만원 전세집에서 친구들 불러 집들이했던 중학 동창 조형용의 부인이다. 차린 건 많지 않았지만 정성이 묻어났고 우리는 그날 맥주와 소주를 벗삼아 옛 얘기하며 밤을 지새웠지. 그리고 그게 전부였나보다. 그 친구는 리비아의 아랍대수로 건설 공사 현장으로 떠났고 무심한 우리들은 그 뒷 소식조차 챙겨보지 않은 채 여기까지 달려왔다.

운좋게 아직 대기업 계열사에 부장으로 있는 난 그래도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부천 집들이에 갔던 벗들도 하나 둘 명퇴다 정리해고다 구조조정이다 하는 두어 차례의 칼바람을 벗어날 수 없었고 요즘은 아예 모임 자체가 흐지부지된 셈이다. 가끔씩 생각 나 홀로 포장마차에서 비우는 소주와 벗하는 추억으로만 곱씹곤 했다.

그런데 그녀가 왜? 이름을 기억 못하는 내 머리에 너무 화가 났지만 "저...혹시 형용이 부인... 아니시던가요?"란 말로 그녀에게 첫 말을 건넸다. 그녀는 어색하고 또 부끄러운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인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지금 남편이 병원 중환자실에 있다고 답한다. 반갑기도 했지만 무슨 급한 상황이 생겼다는 느낌에 함께 그곳에 가자고 했더니 갈 수가 없다고 한다. 남편은 중동에서 돌아와 그럭저럭 거기서 번 돈으로 지내왔는데 3년 전 폐암 진단을 받고 수술과 항암치료를 반복하던 끝에 결국 다음주면 생을 마감할 거라는 병원의 통보를 받았다는 거다. 그

러면 이승을 떠나기 전에 얼굴이라도 봐야겠다고 하니 그제서야 그녀는 내게 용건을 말한다. 아무도 없어 나를 찾아왔노라고. 중환자실 입원 이전까지 나온 병원비는 부천에 있는 아파트를 처분하고 어렵게 사는 친정 아버지로부터 도움을 받아 지불했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는 거였다. 병원측은 당장 이삼일 내로 밀린 병원비 3천만원을 내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내보내겠다는 거였다. 평생을 가족 위해 살아온 남편에게 하늘나라로 가는 길이라도 편하게 해드리고 싶다는 눈물섞인 형용의 부인의 말에 억장이 무너지는 걸 느꼈다.

그런데 어떻게 하지? 나라고 월급쟁이인데 뭔 대수가 있을까? 순간, 카톡을 통해 온라인상으로 자주 대화가 되는 벗들이 떠올랐다. 일단 형용의 아내를 집으로 데리고 함께 들어갔다. 거실에서 집사람과 옛 얘기 잠깐 시키고는 동창생의 마당발인 이시무라는 이름의 총무에게 전화를 했다. 사정이 이런데 내가 좀 여유가 있으니 1천만원 마련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그러자 시무는 자기도 은행 빚이 없는 건 아니지만 거의 정리되었고 보험 겸 저축상품 장기가입한 거 해지하면 5백만원은 모을 수 있다는 거였다. 그리고 자기가 아는 친구들에게 사정을 전하겠다고 했다. 많은 동창들이 적게는 몇만원에서부터 많게는 수백만원에 이르는 돈을 앞서거니 뒷서거니 시무 계좌로 보냈다.

형용은 3천만원 조금 넘게 돈이 모아지던 날 새벽 눈을 감았다. 마지막 힘을 다해 친구들에게 하늘에 가서라도 그 은혜 갚겠다는 말을 아내와 두 남매 앞에서 남기고.... 우린 모두 벽제 장례식장에서 그를 한 줌 재로 보냈다. 돌아오는 길 진관사길 하늘은 잿빛이었다. 아니, 우리 모두의 가슴은 먹빛이었다. 차창도 울고 가로수도 울었다. 우리 모두가 울었다. 10여년 전의 일은 그렇게 우리들 기억에서 서서히 지워져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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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렀다. 형용의 부인은 서울 변두리에서 테이블 두 개짜리 조그마한 닭도리탕 집을 냈다. 처음엔 모든 게 서툴렀다. 설익은 감자를 내동댕이치며 육두문자로 시비거는 주정꾼들은 그래도 나은 손님이었다. 인근에 먼저 영업 하던 큰 식당 주인 부부가 와서 괜시리 욕하며 여자 혼자 남자 꼬시려고 하느냐며 비아냥거릴 땐 세상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녀는 그 모든 걸 딛고 섰다. 먼저 가장 신선한 채소와 가장 맛있는 고춧가루를 확보했다. 그리고 김치며 밥을 손수 정성껏 만들었다. 육수를 만들기 위해 별도로 닭 두 마리를 따로 투자했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거쳐 그녀는 다른 곳에선 도저히 맛볼 수 없는 최고의 닭도리탕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인근에 금세 소문이 퍼졌다. 그 맛과 정성이 명성을 만들었다. 식객을 쓴 허영만 선생이 찾아와서는 최고의 찬사와 함께 조선반도 최고 닭도리탕 이라 쓴 사인을 남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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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조형용 닭도리탕>은 지금 월 매출만 1천만원이 넘을 정도로 단골이 늘었고 상표등록까지 마친 서울 최고의 맛집이 되었다.

밴드를 통해 늘 만남을 실천해온 번개파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조형용 닭도리탕>에 모여들었다. 동창 6백명 가운데 그 집 모르는 친구는 없었다. 멀리 천안에서, 강릉에서조차 가족들 서울 행사를 그 집에서 했다. 괴산에서 프리 랜지로 들판에 풀어놓고 키우는 토종 자연 청정 양계업을 하는 또 다른 동창이 그 소식을 접하고는 영원히 최고의 닭을 생산원가에 납품하기 시작하면서 식사 때마다 대기하는 손님 줄이 2백미터 넘게 길게 늘어설 정도였다.

형용의 아들은 가난에도 흔들리지 않고 반듯하게 자랐다. 바르게 자식 교육에 힘써온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지금은 한국의 국가대표 기업인 현기자동차의 전략기획실에 입사, 글로벌 마케팅 아이디어로 국가의 부를 창출하는 초석으로 활동하고 있다.

오늘은 정말 기분 좋은 날이다. 형용의 아내가 내게 문자를 보냈다. "혹시 저도 형용씨 친구분들 밴드에 정식 멤버로 가입할 수 있도록 해주실 수는 없는가요?" 물론 예쓰다. 누구에게 물을 것도 없이 예쓰다. 그리고 이 기쁜 소식을 시무에게도 전했다. 시무는 고지할 것도 없이 우리 모두를 이렇게 결속시켜준 형용이 가입하는 것보다 100배 더 반가운 일이라며 그녀를 밴드로 불렀다.

그녀는 밴드가입 인사를 이렇게 했다.

"세상에~ 저는 수어지교니 문경지교니 하는 말들은 그냥 책에서나 있는 말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형용씨가 친구들한테 잘 한 것도 없는데 어쩌면 친구들의 사랑이 이렇게 클 수 있는지 참으로 고마웠어요. 전 정말 기대하지도 못했어요. 제가 그 은혜 평생 갚아나가며 살게요. 그리고 형용씨와 제가 만들어 키운 저희 큰 녀석이 지난달 좋은 아이디어로 마케팅 실적 높였다는 공로로 회사로부터 특별 인센티브 5천만원을 받았습니다. 그 돈 전액을 저도 회원이 된 이 밴드, 바로 우리 남편의 동창생 모임의 기금으로 기부하고자 합니다."

그녀는 바로 우리 모두의 우정이었고, 우리 모두의 사랑이었다. 우리 모두는 뜨거운 물줄기가 눈가에서 흘러내리는 걸 그 밴드 글 읽으며 억제할 수 없었다. 친구의 이름으로 살아있는 그 닭도리탕집은 전 세계 어떤 식당보다도 가장 눈물깊은 사연을 안고 출발했다. 하지만 어떤 식당도 해내지 못한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편안한 벗들의 안방이 되었다.

오늘 봄볕이 무척 따사롭다. 이 저녁, 퇴근길이 무척이나 가볍다. 아니 기대가 가득하다. 분명, 굳이 밴드에 고지하지 않아도 늘 600명 가운데 10여 명은 그곳에서 감자와 닭다리를 뜯으며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웃고 떠들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말이다.

사랑과 우정의 크기는 어느 게 더 클까? 그 부등호의 결말을 혼자 셈해보며 회사를 나선다. 오늘은 형용의 아내를 위해 그녀가 좋아하는 오메기떡 한 봉지를 사가야겠다.

-‘어느 고등학교 동창밴드’에서 옮김-

50대 아저씨가 하지 말아야 할 것들

50대 아저씨가 하지 말아야 할 것들

50대 아저씨가 하지 말아야 할 것들

● 노래방에 가지마라~

- 50대는 1세대 노래방 세대다. 20년째 다녔으면 다닐만큼 다녔다. 딴데서 놀아라.

● 소녀시대도 제발 잊어라~

- 아저씨 소원은 안들어준다.

● 오빠 소리에 흔들리지 마라~

- 아빠 소리에 흔들려야 하는 나이다.

● 카톡이나 문자 보낼 때 맞춤법 틀리지 마라~

- 애들이냐?

● 데이트 할 때 맛집앱 보지마라~

- 나이 마흔 넘어 단골 식당 하나 없으면 인생 헛산 거다. 삼시 세끼 먹고 뭐했냐?

● 이제 와서 외국어학원 다니지 마라~

- 이제 외국어 하는 사람 부려야 하는 나이다. 사람들이 당신에게 귀 기울이게 하라.

● 요가하지 마라~

- 당신은 50대 남성이지 40대 여성이 아니다.

● 멘토놀이 하지 마라~

- 네 할일이나 잘해라.

● 세상이 정해준 목표에 연연하지 마라~

- 세상이 정해준 길을 따라서 50년 이상을 살았다. 나머지 50년은 당신이 원하는대로 살 수 있다.

● 친구를 잊지마라~

- 50대에 곁에 있는 친구가 죽을 때까지 함께 할 친구다. 어디가면 원칙을 논하지 마라. 너보다 다 똑똑하다.

● 호텔 투숙하는 걸 아까워 하지 마라~

- 대접 받을 데가 거기 뿐이다.

● 아이들의 미래를 책임지려고 하지마라~

- 어차피 못한다. 어릴 때 많이 사랑해줘라.

● 결혼했으면 이혼하지 말고 이혼했으면 재혼하지 마라.

● 산으로 도망가지 마라~

- 아직은 도시와 들판에서 적과 맞설 나이다.

● 여자한테 빠지지 마라~

- 50대는 여자가 구원의 여신이 아니란 것쯤은 알아야 할 나이다.

● 고독을 두려워 하지 마라

- 고독이란 어쩌면 내일을 위한 충전일지도 모른다.

-Facebook 글 옮김-

병약한 남자와 집앞의 바위

병약한 남자와 집앞의 바위

병약한 남자와 집앞의 바위

시골에 병약한 남자가 살았습니다. 그 집 앞에는 큰 바위가 있었는데 그 바위 때문에 집 출입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 말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집 앞의 바위를 매일 밀어라!"

그 때부터 그는 희망을 가지고 매일 바위를 밀었습니다. 8개월이 지났습니다. 점차 자신의 꿈에 회의가 생겼습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바위의 위치를 자세히 측량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바위가 1인치도 옮겨지지 않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현관에 앉아 지난 8개월 이상의 헛수고가 원통해서 엉엉 울었습니다.

바로 그 때 하나님이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왜 그렇게 슬퍼하지?"

그가 말했습니다.

"하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지난 8개월 동안 희망을 품고 바위를 밀었는데 바위가 전혀 옮겨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나는 네게 바위를 옮기라고 말 한적이 없단다. 그냥 바위를 밀라고 했을 뿐이야. 이제 거울로 가서 너 자신을 보렴."

그는 거울 앞으로 갔습니다. 곧 그는 자신의 변화된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거울에 비춰진 남자는 병약한 남자가 아니라, 근육질의 남자였습니다. 동시에 어떤 깨달음이 스쳐지나 갔습니다.

"지난 8개월 동안 밤마다 하던 기침이 없었구나! 매일 기분이 상쾌했었고, 잠도 잘 잤었지.."

-BAND 글 옮김-

백정과 박서방

백정과 박서방

백정과 박서방

옛날 시골 장터에서 박씨 성을 가진 나이 지긋한 백정이 고기를 팔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젊은 양반 두 사람이 고기를 사러 왔습니다. 한 양반이 말하기를 “어이 백정 고기 한 근만 다오” 하니 백정이 “예 그러지요” 하면서 솜씨 좋게 고기를 칼로 썩 베어 내어 주었습니다.

또 다른 한 양반은 상대가 비록 천한 백정이긴 했으나 나이 지긋한 사람에게 함부로 말하기가 민망하여서 “박서방 고기 한근 주시게” 하고 말하자 백정이 “예 고맙습니다” 하면서 역시 솜씨좋게 고기를 잘라 주는데 먼저 양반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그때 먼저 양반이 소리쳐 따졌습니다. “이놈아 같은 한근인데 어째서 이 양반 것은 나 보다 배나 많으냐?”

그러자 그 나이 지긋한 백정은 “예 그야 손님 고기는 백정이 자른 것이고 이 어른 고기는 박서방이 자른 것이니까 그렇지요” 하고 대답 했습니다.

옛 말에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고 했습니다. 말 잘해서 손해 보는 법이 없다는 말이지요

-Facebook 글 옮김-

다 놓아 버려

다 놓아 버려

다 놓아 버려

옳다 그르다

길다 짧다

깨끗하다

더럽다

많다 적다를 분별하면 차별이 생기고

차별이 생기면 집착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옳은 것도 놓아 버리고

그른 것도 놓아 버려라

긴 것도 놓아 버리고

짧은 것도 놓아 버려라

하얀 것도 놓아 버리고

검은 것도 놓아 버려라

바다는 천개의 강

만개의 하천을 다 받아 들이고도

푸른 빛 그대로요

짠 맛 또한 그대로다

-원효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