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2일 일요일

백주지조ㅣ栢舟之操

백주지조ㅣ栢舟之操

백주지조ㅣ栢舟之操

○ 남편을 일찍 잃은 아내가 굳은 절개를 지키는 것

○ 栢(잣나무 백) 舟(배 주) 之(어조사 지) 操(잡을 조)

남편을 일찍 잃은 아내가 굳은 절개를 지키는 것,

위(衛)나라의 제후의 공자 공백이 일찍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내 공강은 굳은 절개를 지키고 부모의 재가 권유를 끝까지 뿌리쳤다. 그러면서 그녀는 백주라는 시를 지어 자신의 굳은 지조를 나타내었다.

두둥실 저 잣나무 배가 가운데 떠 있네. 두 갈래 다발머리 진실로 내 배필이었으니죽어도 딴 마음 갖지 않으리. 어머니는 곧 하늘이신데어찌 내 마음 몰라주십니까

백주(栢舟)라는 시를 지어 맹세(盟誓)하고 절개(節槪ㆍ節介)를 지킨다는 뜻으로,남편(男便)이 일찍 죽은 아내가 절개(節槪ㆍ節介)를 지키는 것을 의미(意味), 공백(共伯)의 아내가 공강(共姜)이 백주(栢舟)라는 시를 지어 맹세(盟誓)하고 절개(節槪ㆍ節介)를 지킨 고사(古事)에서 유래(由來)

부중지어ㅣ釜中之魚

부중지어ㅣ釜中之魚

부중지어ㅣ釜中之魚

○ 눈앞에 닥칠 위험도 모른 채 쾌락에 빠져 있는 사람

○ 釜(솥 부) 中(가운데 중) 之(어조사 지) 魚(물고기 어)

솥 안의 물고기, 곧 삶아지는 것도 모르고 솥 안에서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 눈앞에 닥칠 위험도 모른 채 쾌락에 빠져 있는 사람을 말한다.

後漢(후한)말께 20여 년간 황제의 외척인 梁翼(양익)형제는 권력을 멋대로 휘둘렀다. 양익이 대장군이 되고 그의 아우 不疑(불의)가 하남 태수가 되었을 때 그들 은 여덟 명의 使者(사자)를 각 고을에 파견, 순찰하도록 했다. 그 여덟 명의 사자 중에는 張綱(장강)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烙陽(낙양) 숙소에다 수레바퀴를 묻어버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산개와 이리 같은 양익 형제가 요직을 차지하고 설쳐대는데 여우나 살쾡이 같은 지방 관리들을 조사하며 돌아다닌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면서 장강은 도처에 양익 형제를 탄핵하는 15개 조항의 상소문을 올렸다. 이 때문에 장강은 양익 형제의 미움을 사서 광릉군의 태수로 쫓겨났다. 더구나 광릉군은 양주와 서주 지방을 10여 년간 휩쓸고 다니는 장영이 이끄는 도적떼의 근거지다.

광릉군에 부임한 장강은 곧바로 혼자서 도적떼의 소굴을 찾아가 장영에게 간곡히 귀순을 권했다. 장영은 장강의 설득에 깊은 감명을 받고 울면서 말했다.

"벼슬아치들의 가혹한 처사에 배기다 못해 모두가 모여서 도적이 되었습니다. 지금 이렇게 목숨이 붙어있지만 마치 솥 안에서 물고기(釜中之魚)가 헤엄치는 것과 같아 결코 오래 갈 수는 없겠지요."

이리하여 만여 명의 도적들은 모두 항복했고 장강은 그들에게 큰 잔치를 베푼 뒤 모두 풀어주었다.

가인박명ㅣ佳人薄命

가인박명ㅣ佳人薄命

가인박명ㅣ佳人薄命

○ 여자의 용모가 너무 아름다우면 운명이 기박함

○ 佳(아름다울 가) 人(사람 인) 薄(얇을 박) 命(목숨 명)

"

중국 송대의 시인 동파(東坡) 소식(蘇軾)의 시제(詩題)로 예부터 미인은 운명이 박함이 많다는 내용이다. 소식(1036-1101)은 북송 후기의 대문장가요, 학자이기도 했다. 이 시는 1086년부터 1088년 사이에 지은 것이다. 가인박명은 어린 승려를 노래한 칠언율시로 되어 있다.

",

두 볼은 엉긴 우유와 같고 머리는 옻칠을 한 것처럼 새까맣고, 눈빛이 발에 들어오니 주옥과 같이 빛난다. 본디 흰 비단으로써 선녀의 옷을 지으니, 입술 연지는 천연의 바탕을 더럽힌다 하여 바르지 않았네.

오 나라 사투리의 애교 있는 소리는 어린 아이를 띠었는데, 무한한 사이의 근심 다 알 수 없네, 예로부터 아름다운 여인 운명 박함이 많으니 문을 닫고 봄이 다하니 버들 꽃 떨어지네 병약하여 일찍 요절하는 일이 많다 라 하는 선인들의 말씀이 많은 것 같다.

각화무염ㅣ刻畵無鹽

각화무염ㅣ刻畵無鹽

각화무염ㅣ刻畵無鹽

○ 무염 얼굴에 치장을 하다

○ 刻(새길 각) 畵(그림 화) 無(없을 무) 鹽(소금 염)

無鹽(무염)은 중국의 지역 이름이다. 그곳 출신의 한 여인이 무척 박색이었다. 아무리 얼굴을 꾸며보아도 성형을 하지 않는 이상 그 얼굴이 어디 가겠는가? 밑바탕이 천한데 고급스러운 물건을 사용해본들 격에 어울리지 않음을 나타내는 우리 속담 ‘짚신에 국화 그리기’나 ‘석새짚신에 구슬감기’와 같은 말이다. 석새는 성글고 굵은 삼베를 뜻한다. 흔히 하는 속된 표현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이 되나’라고 하면 뜻이 더 분명하다. 여기에서 도저히 비유가 되지 않는데 억지로 갖다 붙이거나 너무 차이가 나는 물건을 비교할 때 쓰이게 됐다.

戰國時代(전국시대) 齊(제)나라의 무염이란 읍에 鐘離春(종리춘)이라는 여자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얼마나 못 생겼던지 나이가 마흔이 되도록 시집도 못가고 늙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혜가 뛰어난 종리춘이 宣王(선왕)을 찾아가 당시 나라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조목조목 제시하며 해결책을 올렸다. 왕이 재능에 감복하여 종리춘을 왕후로 삼고 無鹽君(무염군)에 봉했다. 미녀의 대표를 西施(서시)라 칭하듯이 아무리 왕후가 되었어도 못생긴 얼굴은 어디 가지 않아 사람들은 무염을 추녀의 대명사로 불렀다.

唐太宗(당태종)때 房玄齡(방현령) 등이 편찬한 ‘晉書(진서)’에 명확한 쓰임이 보인다. 진나라 元帝(원제)때 周顗(주의, 顗는 즐길 의)라는 곧은 선비가 있었다. 신하들 중 일부가 주의에게 당신을 고결하기가 樂廣(악광)과 같이 여긴다고 말했다. 악광은 그의 말을 들으면 마치 구름과 안개를 헤치고 푸른 하늘을 보는 것과 같다는 칭송을 들을 정도로 사물의 이치를 통달한 진나라의 현인이었다. 이런 사람과 비교하자 주의는 펄쩍 뛰며 말했다. ‘어찌 무염에게 화장을 한다고 하여 갑자기 서시가 되겠는가.’

남가일몽ㅣ南柯一夢

남가일몽ㅣ南柯一夢

남가일몽ㅣ南柯一夢

○ 한갓 허망한 꿈, 또 꿈과 같이 헛된 한때의 부귀와 영화.

○ 南(남녘 남) 柯(가지 가) 一(한 일) 夢(꿈 몽)

남쪽 가지에서의 꿈이란 뜻으로,덧없는 꿈이나 한때의 헛된 부귀영화(富貴榮華)를 이르는 말

당(唐)나라 9대 황제(皇帝)인 덕종(德宗)때 광릉 땅에 순우분(淳于棼)이란 사람이 있었다. 어느날 순우분(淳于棼)이 술에 취해 집 앞의 큰 홰나무 밑에서 잠이 들었다. 그러자 어디서 남색 관복을 입은 두 사나이가 나타나더니 이렇게 말했다. 「저희는 괴안국왕(國王)의 명을 받고 대인을 모시러 온 사신(使臣)이옵니다.」 순우분(淳于棼)이 사신(使臣)을 따라 홰나무 구멍 속으로 들어가자 국왕(國王)이 성문 앞에서 반가이 맞이했다.

순우분(淳于棼)은 부마가 되어 궁궐(宮闕)에서 영화(榮華)를 누리다가 남가태수를 제수받고 부임했다. 남가군(南柯郡)을 다스린지 20년, 그는 그간의 치적을 인정(認定)받아 재상(宰相)이 되었다. 그러나 때마침 침공(侵攻)해 온 단라국군에게 참패(慘敗)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아내까지 병으로 죽자 관직(官職)을 버리고 상경했다. 얼마 후 국왕(國王)은 「천도해야 할 조짐이 보인다.」 며 순우분(淳于棼)을 고향(故鄕)으로 돌려보냈다. 잠에서 깨어난 순우분(淳于棼)은 꿈이 하도 이상해서 홰나무 뿌리부분을 살펴 보니, 과연 구멍이 있었다. 그 구멍을 더듬어 나가자 넓은 공간에 수 많은 개미의 무리가 두 마리의 왕개미를 둘러싸고 있었다. 여기가 괴안국이었고, 왕개미는 국왕(國王) 내외였던 것이다.

또 거기서 「남쪽으로 뻗은 가지」에 나 있는 구멍에도 개미떼가 있었는데 그 곳이 바로 남가군(南柯郡)이었다. 순우분(淳于棼)은 개미 구멍을 원상태로 고쳐 놓았지만 그 날 밤에 큰 비가 내렸다. 이튿날 아침 그 구멍을 살펴보니 개미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천도해야 할 조짐」이란 바로 이 일이었던 것이다.

불비불명ㅣ不蜚不鳴

불비불명ㅣ不蜚不鳴

불비불명ㅣ不蜚不鳴

○ 큰 일을 하기 위해 조용히 때를 기다린다는 뜻

○ 不(아닐 불) 蜚(날 비) 不(아닐 불) 鳴(울 명)

제위왕(薺威王) 때의 일이다. 왕은 수수께끼와, 음탕하게 놀면서 밤새워 술 마시기를 즐겨 정사(政事)는 경(卿)이나 대부(大夫)에게 맡겼다. 그렇게 되자 백관들 간에는 위계 질서가 서지 않게 되었고, 제후들의 침입으로 나라의 운명을 예측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측근의 신하들은 왕에게 충성스런 간언을 감히 못하였다. 이때 순우곤(淳于곤)이 왕에게 이런 수수께끼를 냈다. 나라 안의 큰 새가 대궐 뜰에 멈추어 있습니다. 3년이 지나도록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습니다. 왕께서는 이것이 무슨 새인 줄 아십니까?” 왕이 대답했다. “이 새는 날지 않으면 그뿐이나 한 번 날면 하늘에 오르며, 울지 않으면 그뿐이나 한 번 울면 사람을 놀라게 할 것이다.”

그 후 왕은 여러 현(懸)의 영장(令長) 72명을 조정으로 불러 그 중 한 사람은 상을 주고, 한 사람은 벌을 주었다. 그리고는 군사를 일으켜 출정하였다. 제후들이 크게 놀라서 그 동안 침략하여 차지한 제나라 땅을 모두 돌려주었으며, 이로써 제나라의 위엄이 36년간에 걸쳐 떨쳐졌다.

또한 여씨춘추(呂氏春秋) “중언(重言)”편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초(楚)나라 목왕(穆王)이 죽고 아들 장왕(莊王)이 즉위하였다. 장왕은 황하 남쪽까지 세력권을 확장한 목왕과는 달리, 밤낮으로 주색에 파묻혀 있으면서 간언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고 했다. 왕의 이런 생활은 어느덧 3년 세월이 흘렀다. 충신 오거(五擧)가 연회석 자리에 나와 이렇게 말하였다.

“언덕 위에 새 한 마리가 있는데, 3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습니다. 이는 어떤 새입니까?” 장왕은 매서운 눈초리로 오거를 보더니 말했다.

“3년 동안 날지 않았으니 한 번 날면 하늘까지 이를 것이고, 3년 동안 울지 않았으니 한 번 울면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것이오. 알았으면 물러가시오.” 장왕은 오거의 질문의 의미를 모르는 듯 여전히 음탕한 생활을 했다.

그러자 대부(大夫) 소종(蘇從)이 다시 간언을 했다. 장왕은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있는가?” 소종은 머리를 조아린 채 말했다. “죽음을 무릅쓰고 눈을 뜨시기를 간언하는 것입니다.” 그 후 장왕은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조정으로 나와 정사를 돌보았다. 장왕은 수많은 인물을 다시 등용하는가 하면, 부패와 부정을 일삼는 관리들을 벌 주었다.

불한이율ㅣ不寒而慄

불한이율ㅣ不寒而慄

불한이율ㅣ不寒而慄

○ 춥지 않아도 벌벌 떨 정도로 몹시 두려운 상황

○ 不(아닐 불) 寒(찰 한) 而(이을 이) 慄(떨 률)

사기(史記) 혹리(酷吏)열전에는 혹독한 관리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한(漢)나라 무제(武帝)는 중앙 집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지방호족 세력을 억압하는 정책을 채용하였다. 당시, 의종(義縱)이라는 사람은 왕태후의 총애를 받은 누님의 덕택으로 현령과 도위를 지내다가, 남양 태수를 거쳐 다시 정양 태수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그는 남양태수로 재임하면서, 도위(都尉)였던 영성(成)의 일가를 죽인 바 있어, 이미 법 집행이 엄격하기로 유명하였다. 그는 정양 태수로 부임하자, 정양군내의 호족세력을 평정한 후, 2백여 명의 범죄자들을 체포하였다. 동시에 그는 사적(私的)으로 감옥에 드나들며 죄인들을 면회한 사람들을 죄수 탈옥 기도죄로 구속하였다. 의종은 이 자들은 사형수들을 탈옥시키려 하였다라고 판결하고, 그 날 중으로 4백여 명을 전원 죽였다.

이후 군내의 호족들과 백성들은 춥지 않아도 벌벌 떨었으며(其後郡中寒而), 교활한 자들은 알아서 관리에게 협력하여 공무를 도왔다. 寒而은 몹시 두려운 상황을 형용한 말이다.

적우침주ㅣ積羽沈舟

적우침주ㅣ積羽沈舟

적우침주ㅣ積羽沈舟

○ 새털처럼 가벼운 것도 많이 실으면 배가 가라앉는다

○ 積(쌓을 적) 羽(깃 우) 沈(잠길 침) 舟(배 주)

새털처럼 가벼운 것도 많이 실으면 배가 가라앉는다는 뜻으로, ①작은 일도 쌓이고 쌓이면 큰 일이 됨 ②또 작은 것, 힘없는 것도 많이 모이면 큰 힘이 됨

작은 물건이라도 꾸준히 모으면 나중에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 대표적인 속담이 ‘티끌모아 태산’이고 들어맞는 성어가 塵合泰山(진합태산)이다. 90세 되는 노인이 마을 앞뒤의 산을 대를 이어 옮긴다는 愚公移山(우공이산)이나 도끼를 갈아 바늘 만들기란 磨斧作針(마부작침). 또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 水滴穿石(수적천석), 이슬이 바다를 이루는 露積成海(노적성해) 등이 있다. 여기에 더하여 새의 깃이라도 쌓이고 쌓이면(積羽) 배를 가라앉힐 수 있다(沈舟)는 이 성어도 작은 힘을 합치면 큰일을 이룰 수 있다는 가르침을 준다.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403년~221년) 패권을 놓고 다투었던 7개 강국을 오가며 외교전을 펼쳤던 張儀(장의)에 의해 이 말이 유래했다. 七雄(칠웅)으로 일컬어졌던 秦楚燕齊韓魏趙(진초연제한위조) 사이에 세력을 넓히려고 쓴 전술이 合從連衡(합종연횡, 衡은 저울대 형, 또는 가로 횡)이다. 장의와 함께 鬼谷(귀곡) 선생에 사사한 蘇秦(소진)은 최강국인 진나라에 맞서려면 6국이 힘을 합쳐야 된다며 合縱策(합종책)을 주장했다. 여기에 맞서 장의는 합종이 일시적 허식이며 진을 섬겨야 안전하다고 설득하여 동맹을 맺는데 성공했는데 이것이 연횡책이다.

진나라의 재상이었던 장의는 위나라의 哀王(애왕)을 찾아가 변설을 늘어놓으며 설득한다. 前漢(전한)시대의 학자 劉向(유향)의 ‘戰國策(전국책)’ 중에서 魏策(위책)에 실린 내용을 보자. 합종론자들은 군주를 설득하면 侯(후)에 봉해지므로 벼슬에 눈이 어두워 유세하기 때문에 현혹되면 나라가 기울어진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제가 듣기에 가벼운 깃털도 쌓이고 쌓이면 배를 가라앉히고, 가벼운 짐도 모이면 수레의 굴대를 부러뜨리며, 민중이 입을 모아 외치면 쇠도 녹인다고 했습니다(臣聞 積羽沈舟 群輕折軸 衆口鑠金/ 신문 적우침주 군경절축 중구삭금).’ 합종론자들의 감언이설에 놀아나지 말라는 이야기다. 애왕은 합종에서 탈퇴하고 진나라와 연횡했다.

반문농부ㅣ班門弄斧

반문농부ㅣ班門弄斧

반문농부ㅣ班門弄斧

○ 노반의 문 앞에서 도끼를 자랑한다

○ 班(나눌 반) 門(문 문) 弄(희롱할 농) 斧(도끼 부)

노반의 문 앞에서 도끼를 자랑한다. 실력도 없으면서 잘난 척 함을 비유한다.

춘추시대 노나라에 한 목수가 있었는데 성은 공수고 이름은 바이며 기술이 뛰어나 인기가 대단했다. 노국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노반이라 불렀다. 그는 대들보나 기둥을 만드는데도 꽃을 새기고 문자를 파는 등 못하는 재주가 없었다. 따라서 도끼 씀이 귀신 같고 기교가 신이 민망할 정도로 뛰어났다. 한 자루의 보통 도끼라도 그 손에서 움직이면 나무가 정교하고 곱게 하나의 기구로 다듬어져 누구도 그를 따를 자가 없어 일대 교장으로 명성을 떨쳤다. 그 당시 젊은 목수가 하나 있었는데 조그만 솜씨를 갓 배웠음에도 안하무인 격으로 항상 도끼와 수예 작품을 들고 다니며 허풍을 쳤다. 어느 날 그는 노반집 앞에 나타나서 큰 소리를 치며 자랑했다.

그의 수공예 작품을 꺼내 들고 지나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재주를 자랑했다. 그의 기술이 정교함이 여차여차 하고 이런 작품들은 공저의 걸작이라고 자화자찬하면서 도끼를 꺼내어 현장에서 솜씨를 보이기도 했다. 이를 구경하던 그 지방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한 번 훑어보고는 다시 머리를 들어 그의 등뒤에 있는 노반집 대문을 쳐다보고는 모두들 미소를 지었다. 그 중 한 사람이 더 참을 길이 없었던지 그 젊은 목수에게 말을 꺼냈다.

젊은 친구! 등뒤에 있는 주택이 위 집인지 아오? 내가 어떻게 압니까? 그는 까닭도 모른 채 대답을 했다. 그 집이 바로 당대에 명성이 쟁쟁한 목수 노반의 주택이오, 그의 수예품이야말로 천하의 걸작이오, 젊은 친구 한 번 들어가서 참관을 해 보구려.청년 목수는 그 집 안으로 들어가 구경을 한 뒤 노반의 기교에 대해 탄복한 나머지 머리를 떨구었다. 자기보다 더 훌륭한 솜씨에 의하여 만들어진 작품인지라 그는 지기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비범한 걸작에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자기의 기구를 챙겨 가지고는 말없이 자리를 뜨고 말았다.

미생지신ㅣ尾生之信

미생지신ㅣ尾生之信

미생지신ㅣ尾生之信

○ 미생의 믿음, 약속을 굳게 지킴

○ 尾(꼬리 미) 生(날 생) 之(갈 지) 信(믿을 신)

미생의 믿음, ① 약속을 굳게 지킴의 비유. ② 고지식하여 융통성이 없음의 비유.

춘추 시대, 노(魯)나라에 미생(尾生:尾生高)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약속을 어기는 법이 없는 사나이였다. 어느 날 미생은 애인과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는 정시에 약속 장소에 나갔으나 웬일인지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미생이 계속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져 개울물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생은 약속 장소를 떠나지 않고 기다리다가 결국 교각(橋脚)을 끌어안은 채 익사하고 말았다. 전국 시대, 종횡가로 유명한 소진(蘇秦)은 연(燕)나라 소왕(昭王)을 설파할 때 신의 있는 사나이의 본보기로 미생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같은 전국 시대를 살다간 장자(莊子)의 견해는 그와 반대로 부정적이었다.

장자는 그의 우언(寓言)이 실려 있는《장자》〈도척편(盜 篇)〉에서 근엄 그 자체인 공자와 대화를 나누는 유명한 도둑 도척(盜 )의 입을 통해 미생을 이렇게 비평하고 있다. "이런 인간은 책형( 刑:죄인을 기둥에 묶고 창으로 찔러 죽이던 형벌)당한 개나 물에 떠내려간 돼지 아니면 쪽박을 들고 빌어먹는 거지와 마찬가지다. 쓸데없는 명목에 구애되어 소중한 목숨을 소홀히 하는 인간은 진정한 삶의 길을 모르는 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