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7일 금요일

10월 2일 오늘의 꽃

10월 2일 오늘의 꽃

10월 2일 오늘의 꽃

이 름 : 살구(Apricot)

학 명 : Prunus armeniaca

과 명 : 장미과

분 포 : 한국·일본·중국·몽골·미국·유럽 등지

서 식 : 과일용 재배

크 기 : 높이 5m

개 화 : 4월

꽃 말 : 아가씨의 수줍음(shyness of young lady)

중국이 원산지이고 과일 나무로 널리 심는다. 기원전에 아르메니아 지방에 전파되었고 미국이 세계 최대 생산국이다. 높이는 5m에 달하고, 나무 껍질은 붉은빛이 돌며 어린 가지는 갈색을 띤 자주색이다. 잎은 어긋나고 길이 6∼8cm의 넓은 타원 모양 또는 넓은 달걀 모양이며 털이 없고 가장자리에 불규칙한 톱니가 있다.

꽃은 4월에 잎보다 먼저 피고 연한 붉은 색이며 지난해 가지에 달리고 꽃자루가 거의 없으며 지름이 25∼35mm이다. 꽃받침조각은 5개이고 뒤로 젖혀지며, 꽃잎은 5개이고 둥근 모양이다. 수술은 많으며 암술은 1개이다.

열매는 핵과이고 둥글며 털이 많고 지름이 3cm이며 7월에 황색 또는 황색을 띤 붉은 색으로 익는다. 열매에는 비타민A와 천연당류가 풍부하다. 또한 말린 열매에서는 철분을 섭취할 수 있다. 날 것으로 먹거나 통조림·잼·건살구·넥타 등으로 가공하기도 한다.

한방에서는 종자를 행인(杏仁)이라는 약재로 쓰는데, 해열·진해·거담·소종 등의 효능이 있어 기침·천식·기관지염·인후염·급성폐렴·변비에 사용한다. 민간에서는 개고기를 먹고 체했을 때 종자를 달여 마신다. 또한 종자는 여성의 피부 미용에도 사용한다. 한국·일본·중국·몽골·미국·유럽 등지에 분포한다.

10월 1일 오늘의 꽃

10월 1일 오늘의 꽃

10월 1일 오늘의 꽃

이 름 : 빨강 국화(Chrysanthemum)

학 명 : Chrysanthemum morifolium

과 명 : 국화과

분 포 : 세계 각국

서 식 : 산, 들

크 기 : 높이 1m

개 화 : 품종에 따라 다양

꽃 말 : 사랑(love)

국(菊)·구화라고도 한다. 국화는 관상용으로 널리 재배하며, 많은 원예 품종이 있다. 높이 1m 정도로 줄기 밑부분이 목질화하며, 잎은 어긋나고 깃꼴로 갈라진다. 꽃은 두상화로 줄기 끝에 피는데 가운데는 관상화, 주변부는 설상화이다. 설상화는 암술만 가진 단성화이고 관상화는 암·수술을 모두 가진 양성화이다.

꽃은 노란색·흰색·빨간색·보라색 등 품종에 따라 다양하고 크기나 모양도 품종에 따라 다르다. 꽃의 지름에 따라 18cm 이상인 것을 대륜, 9cm 이상인 것을 중륜, 그 이하인 것을 소륜이라 하며 꽃잎의 형태에 따라 품종을 분류하기도 한다.

국화는 동양에서 재배하는 관상식물 중 가장 역사가 오랜 꽃이며, 사군자의 하나로 귀히 여겨왔다. 중국 원산이라고 하나, 그 조상은 현재 한국에서도 자생하는 감국이라는 설, 산국과 뇌향국화와의 교잡설, 감국과 산구절초와의 교잡설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재배를 시작한 시기는 당대(唐代) 이전으로 추정된다.

9월 30일 오늘의 꽃

9월 30일 오늘의 꽃

9월 30일 오늘의 꽃

이 름 : 삼나무(Cedar)

학 명 : Cryptomeria japonica

과 명 : 낙우송과

분 포 : 한국(남부 지방)·일본

서 식 : 연평균기온 12∼14℃, 계곡

크 기 : 높이 40m, 지름 1∼2m

개 화 : 3~4월

꽃 말 : 웅대(magnificence)

연평균기온 12∼14℃, 강우량 3,000mm 이상 되는 계곡에서 잘 자란다. 일본 특산종이다. 높이 40m, 지름 1∼2m에 달한다. 수피는 붉은빛을 띤 갈색이고 세로로 갈라지며 가지와 잎이 빽빽이 나서 원뿔 모양의 수형이 된다. 잎은 굽어진 바늘 모양이고 나선 모양으로 배열하며 말라도 떨어지지 않는다.

남부지방의 산기슭이나 들에 심어 기르는 상록 침엽 큰키나무이다. 줄기는 가지가 많이 나와 위로 또는 수평으로 퍼지고, 높이 30-40m, 지름 2m에 달한다. 수피는 적갈색 또는 암적갈색으로 세로로 가늘고 길게 갈라져 벗겨진다. 잎은 바늘 모양이며 길이 12-25mm, 끝이 뾰족하다. 단면은 삼각형 또는 사각형이고 사면에 기공선이 있다.

꽃은 3월에 암수한그루로 피며, 수꽃은 가지 끝에 이삭꽃차례로 달리고, 암꽃차례는 가지 끝에 1개씩 달린다. 열매는 구과, 둥글며 지름 16-30mm, 적갈색이다. 실편은 20개 이상이다. 일본과 중국에 분포하며, 관상용, 조림용으로 심으며, 목재는 견고하여 다양한 용도로 사용한다.

9월 29일 오늘의 꽃

9월 29일 오늘의 꽃

9월 29일 오늘의 꽃

이 름 : 사과(Apple)

학 명 : Malus pumila var. dulcissima

과 명 : 장미과

분 포 : 세계 각지

서 식 : 식용 재배

크 기 : 높이 1m~

개 화 : 4∼5월

꽃 말 : 명성(fame)

임과(林果)·평과·시과라고도 한다. 주요 과수의 하나로 널리 재배하고 있다. 작은가지는 자주빛이다. 잎은 어긋나고 타원형 또는 달걀 모양으로 톱니가 있으며 맥 위에 털이 있다. 꽃은 4∼5월에 피고 흰색 꽃이 잎과 함께 가지 끝 잎겨드랑이에서 나와 산형(傘形)으로 달린다. 열매는 8∼9월에 익으며 많은 재배종이 있다.

사과속(屬) 식물은 유럽·아시아·북아메리카 대륙에 약 25종이 분포되어 있는데 재배의 기본종은 유럽 중·서부지방에 분포되어 있는 원생종 Malus sylvestris가 개량된 것이다.

사과는 고대 그리스나 로마 사람들에 의하여 애용되었고 재배종은 유럽 전역에 전해졌다. 유럽에서 개량된 사과나무는 17세기에 미국에 전파되어 더욱 개량되어 사과나무재배는 미국의 주요산업으로 발전되었다. 동양에서는 중국에서 1세기경에 재배한 기록이 있으며 그 당시의 것은 능금林檎이라 불러 한국과 일본에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날 재배되고 있는 사과나무를 한국에서 최초로 심었던 사실이 기록으로 남은 것은 1884년부터이고 그 후 1901년 윤병수가 선교사를 통해 사과나무 묘목을 얻어 원산 부근에 과수원을 조성하여 좋은 성과를 얻은 것이 경제적 사과나무재배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1906년 서울 뚝섬에 원예모범장을 개설하고 각종 개량 과수묘목을 들여올 때 사과나무를 많이 심었다. 그후 재배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8·15광복 후 한때 사과원의 황폐기가 있었으나 1960년대부터 농어민소득작물로 사과나무재배가 권장되었으며 1970년대에는 왜성사과 재배와 우량품종의 도입, 재배기술의 향상에 힘입어 사과재배는 한국 과수의 주종을 이루었다.

9월 28일 오늘의 꽃

9월 28일 오늘의 꽃

9월 28일 오늘의 꽃

이 름 : 색비름(Love-Lies a Bleeding)

학 명 : Amaranthus tricolor

과 명 : 비름과

분 포 : 인도와 동남아시아 원산

서 식 : 관상용

크 기 : 높이 80∼150cm

개 화 : 8∼10월

꽃 말 : 애정(affection)

안래홍(雁來紅)이라고도 한다. 인도와 동남아시아가 원산지이고 관상용으로 심는다. 줄기는 곧게 서고 높이가 80∼150cm이며 엷은 녹색이고 털이 없다. 잎은 어긋나고 마름모꼴의 달걀 모양·바소꼴·줄 모양이며 길이가 7∼20cm이고 양끝이 좁으며 노란 색 또는 붉은 색의 무늬가 있어 아름답다.

꽃은 8∼10월에 연한 녹색 또는 연한 붉은 색으로 피고 잎겨드랑이에 둥근 모양으로 모여 달린다. 포는 막질(膜質:얇은 종이처럼 반투명한 것)이고 좁은 달걀 모양이다. 꽃받침조각은 3개이고 달걀 모양의 바소꼴이며 끝이 뾰족하다. 수술은 3개이고 암술은 1개이다.

열매는 포과이고 달걀 모양의 타원형이며 끝에 2∼3개의 돌기가 있고 1개의 종자가 들어 있다. 열매 가운데 부분이 수평으로 갈라지면서 윗부분이 떨어져 나간다. 많은 원예 품종이 있다.

너와 함께 가고 싶은 곳

너와 함께 가고 싶은 곳

너와 함께 가고 싶은 곳

만약 어딘가에

갈매기 발자국도 찍히지 않은

작은 섬이 있다면

너와 함께 가고 싶다.

짙푸른 나무와

한번 피면 절대 지지 않는

선명한 색의 꽃들

그리고 일 년 열두 달

맑고 하얀 구름을 볼 수 있는 곳

그런 섬이라면 더욱 좋겠지

만약 이 세상 한 귀퉁이에

신도 알지 못하는

부드러운 언덕이 있다면너와 같이 집 짓고 살고 싶다.

세월이 흘러도 나이를 먹지 않아

젊고 아름다운 너를

억만 년이고 볼 수 있는 곳

한번 사랑은

그 한번 사랑으로

절대 바뀌지 않는 곳

너의 맑은 눈을 보며

언제까지나 함께 살고 싶다.

-백홍준-

삶이 버거울때

삶이 버거울때

삶이 버거울때

삶이 버거울때

뒤를

돌아보는

지혜를 가지세요

두려움이

앞서 망설였던

시간을 생각해 보세요.\xa0

자신을

믿었잖아요.

그래서

여기까지 왔고...

앞이

보이지 않을때

한걸음 나아가 보는 거예요.\xa0

힘들때는..

하늘을 보세요

같은 하늘아래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세요.

어떤

오해속에도

따뜻하게 믿으며

바라보아 줄거예요.

오해가

사실이라도

그럴수 밖에는

없었을 상황을 이해해 줄거예요.

너무

무겁게

느껴질 때에는

그 짐을 하늘에 날려 보세요.\xa0

분명히 받아 줄거예요.

항상

그래왔듯이

말없이 지켜봐 줄거예요.

우리 서로 믿을수 있잖아요.

슬플때에는..

비를

맞으며

걸어보세요.

어깨위에

내리는 비 처럼

모두 씻어 버리세요.

하늘도

울어 주잖아요

함께 잊어 버리는 거예요.\xa0

젖은

몸을 말리며

다시 웃을수 있을거예요

외롭다

느껴질때

저녁 노을을 바라보아요

아쉬움을 남기며

화려하게 지는 저 태양처럼

아쉽지만 모두 버리는 거예요.

우리

그럴수

있잖아요

내일이란 시간이

또 다시 찾아오니까요.

기쁠때는..

사람들의

행복을 조금씩

나누어 가져도 된다는

생각이 되면 그냥 웃어주세요.

나를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맑은

웃음으로

모두에게 웃음이

묻어날수 있도록 그냥 웃는 거예요.

세상의 중심은 자신이 잖아요.

소중한

자신을 위해

누구보다 기쁜 마음으로

행복한 표정으로 웃어버려요.

그리고

자신을 사랑해 보세요.

그대 사랑하는\xa0사람들과 함께 있잖아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옮긴 글-

지금 당장 하라!

지금 당장 하라!

지금 당장 하라!

겨울방학을 앞둔 어느 날, 심리학 교수가 칠판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당신이 3일 후에 죽는다면… 만일 사흘 후에 죽게 된다면 당장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생각해보자는 것이었다.

"세 가지만 순서대로 말해보세요, 자, 누가 먼저?"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평소 말 많은 한 학생이 입을 열었다.

"음… 일단 부모님께 전화하고, 애인이랑 여행 가고, 아, 작년에 싸워서 연락이 끊어진 친구에게 편지 쓰고…, 그럼 사흘이 다 가겠죠?"

학생들은 저마다 웅성웅성 하고 싶은 일을 떠들어댔다. 또 다른 학생이 입을 열었다.

"글쎄, 저라면 음… 우선 부모님과 마지막 여행을 간다. 그 다음엔…, 그 다음엔…

꼭 한 번 들어가 보고 싶었던 고급 식당에서 비싼 음식을 먹는다. 그리고는 그동안의 삶을 정리하는 마지막 일기를 쓴다."

그런데 죽음을 맞이한 사람의 세 가지 소망은 뜻밖에도 다들 평범했다. 여행을 가겠다,

기막히게 맛있는 걸 먹겠다, 싸우고 토라진 친구와 화해하겠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전화하겠다...

바로 그때 교수가 칠판으로 다가가 단 한 마디를 썼다.

"

Do It Now!

",

들뜨고 어수선했던 강의실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까? 지금 당장 그 일을 하십시오. 지금 하지 않으면 영원히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밴드에서 옮긴 글-

나를 철들게 한 나의 할머니

나를 철들게 한 나의 할머니

나를 철들게 한 나의 할머니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마저 아버지가 남기신 빚을 갚기 위해 서울로 떠나신 후, 다섯 살이던 저와 세 살이던 남동생은 시골에 계시던 할머니 손에 맡겨 졌습니다.

제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린시절은 할머니 손에 맡겨지고 1년이 지난 여섯 살의 봄입니다. 불행히도 제가 기억하고 있는 가장 어린시절은

지금까지도 제 가슴속에 아픈 추억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날... 도시생활을 하고 있던 친척들이 저와 제 동생 문제로 할머니 댁을 찾았습니다. 너무 어렸기때문에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할머니와 친척들간에 언성을 높이는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큰아버지는 저와 제 동생에게

새 옷을 입혀주고, 새 신을 신겨주며, 좋은 곳에 가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울먹이시던 할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큰 아버지는 저희 남매 손을 이끌고 문밖을 나섰습니다.

친척들 누구하나 따라나오는 사람이 없었지만, 할머니는 다르셨습니다.

버선발로 뛰쳐나와 저희 남매를 끌어안고 우셨습니다.

“안 된다. 절대 못 보낸다. 고아원에도, 아들없는 집에도, 나는 못 보낸다. 죽은 내 아들 불쌍해서 이것들 못 보낸다. 니들 헌티 10원 한푼 도와달라구 안 헐라니까 보내지 마라. 그냥 내가 키우게 놔둬라.” 할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시며 목 놓아 우셨습니다.

그날 할머니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저도, 제 남동생도 없었겠지요. 고아원에 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아들 없는 집에 보내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저희 남매는 할머니께 평생 갚아도 다 갚지 못할 은혜를 입은 것인데

그게 얼마나 큰 은혜였는지 그때는 몰랐습니다. 철이 들 무렵이 되어서야 그것을 알았습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남의 집으로 일을 다니시며 받아오신 품삯으로 생활을 꾸려가셨습니다.

할머니가 저희 남매를 키우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하셔야 했는지, 스스로 얼마나 억척스러워 지셔야 했는지,

그때는 너무 어려서 몰랐습니다.

그저 배부르게 먹지 못하는 것이 불만이었고, 새 옷 한 벌없이 남의 옷만 얻어 입는 것이

불만이었고, 다른 아이들처럼 학용품을 넉넉하게 쓰지 못하는 것이 불만이었고, 마음 놓고 과자 한번 사 먹을 수 없는 것이 불만이었고, 소풍에 돈 한푼 가져갈 수 없는 것이 불만이 었고, 운동회 때 할머니랑 함께 달리는 것이 불만이었고, 할머니 밑에서 자란다는 이유만으로 동네에서나 학교에서나 불쌍한 아이 취급받는 것이

불만이었습니다.

비록 가난해서 봄이면 나물을 뜯어 다 장에 내다 팔고, 여름이면 고기를 잡아다 어죽집에 팔고, 가을이면 도토리를 따다 묵집에 팔고, 겨울에는 손에 마늘 독이 베이도록 마늘을 까서 돈을 벌어야 했지만,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할머니와 함께 했던 유년의 시간들이 스물 아홉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습니다.

그때는 그게 행복이라는 걸 몰라서 할머니 가슴을 많이도 아프게 했지요. 저는 가난이 싫었습니다. 억척스러운 할머니가 싫었습니다.

할머니가 부끄럽다는 생각은 했으면서도, 고생하시는 할머니가 불쌍하거나 안쓰럽다고 생각해 본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할머니를 생각하며 몰래 눈물을 훔쳐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몰랐습니다.

한번은 자취하는 제게 김치와 쌀을 갖다 주시겠다고 올라오신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터미널에 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한참을 두리번거린 후에 찾아낸

할머니는 반갑게 제 손을 잡으시며

“아침 7시 차 타구 나왔더만, 10시두 안돼 도착허더라. 한 3시간은 이러구 서 있은 모양이여. 기다리다 배고파서 나 먼저 짜장면 한그릇 먹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게 내가 아침 드시고 천천히 출발하시라고 안 했어! 할머니 때문에 속상해 죽겄네.”

할머니는 화가 난 손녀딸의 눈치를 살피시며 들고 오신 가방 지퍼를 여셨습니다. 할머니가 들고 오신 큰 가방 속에는 김치통 두 개가 들어 있었고, 가방안은 김치통에서 흘러나온 빨간 김치국물로 한가득이었습니다.

“내가 할머니 때문에 미치겠네.

김치만 비닐봉지에 꼭 싸서 가져오셔야지, 가방에다 김치통을 통째로 넣어오면 국물이 안 넘친데?”

할머니는 금세 얼굴이 붉어지셨습니다.

“이를 워쩌까. 국물이 다 새서 못 들고 가겄다. 내가 언능 수퍼가서 봉다리 얻어 올팅께 지달려라?”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할머니는 김치 전해줬으니 그만 가 봐야겠다시며 들고 오신 가방 안쪽 작은 지퍼를 열고 꼬깃 꼬깃 접은 1만 원 짜리 두 장을 제 손에 쥐어 주셨습니다. 할머니께서 건네주신 1만원짜리는 빨갛게 물들어서 김치 국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자취방으로 돌아오는 시내버스안에서 얼마나 소리내어 울었는지 모릅니다. 할머니가 젖은 가방에서 꺼내 주셨던, 빨간 김치 국물이 뚝뚝 떨어지던

1만원짜리 두 장을 손에 꼭 쥐고,

사람들이 가득한 버스 안에서

그렇게 한참을 울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무역회사에 취직한 저는 돈을 벌게 되었고, 이제 할머니를 호강시켜 드릴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습니다.

할머니가 아프시다고 하면

약재시장에 가서 좋다는 약재를 사다 보내 드리고, 할머니 생신이 다가오면 동네 할머니들과 식사라도 하시라고 용돈도 보내 드리고,

주말에 시골에 내려가면 할머니와 장으로 구경도 나가고,

명절에는 할머니를 모시고

레스토랑에 가서 돈가스도 사드렸습니다.

처음 할머니를 모시고 레스토랑에 가서 돈가스를 먹던 날, 할머니는 돈가스 한 접시에 음료로 나온 사이다 한잔까지 쭉 비우신 뒤 말씀하셨습니다.

“양두 얼마 안 되는 것이 참말로 맛나다? 이런 것이먼 몇 접시라두 먹겄다.”

저는 할머니의 그 말에 또 다시 눈물이 났습니다. 그까짓 돈가스가 얼마나 한다고 이제서야 사드리게 됐을까. 가슴이 아파서 고개도 들지 못하고 제가 먹던 접시를 할머니 앞에 내어 드렸습니다.

그날 하얗게 서리 내린 할머니 머리를 내려다보면서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앞으로는 맛있는 것은 무엇이든 사 드리리라.

남들 먹는 거, 맛있다고 하는 거,

한번씩은 다 맛보여 드리리라.

좋은 옷도 입혀 드리고 멋진 구경도 맘껏 시켜 드리리라.

언젠가 할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손녀딸 좋은 사람 만나 시집가고, 이쁜 새끼 낳아 사는 거 보고 죽으먼 내가 소원이 없을 것인디.”

저는 할머니의 소원대로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고, 다음달이면 돌을 맞는 예쁜 딸아이도 낳았습니다.

할머니는 올해로 팔순이 되셨습니다. 그렇게 억척스럽게 우리 남매를 길러 내셨던 할머니는 이제 정말 할머니가 되셨습니다.

허리도 구부러지셨고, 검은 머리가 한가닥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너무 늙으셔서 예전처럼 맛있는 문주를 부쳐 주시지도 못하고,

개떡을 쪄 주지도 못하고, 누룽지에 설탕을 뿌려 주시지도 못합니다.

뜨거운 밥에 올려 먹던 할머니의 얼짠지가 그렇게 맛있었는데, 이제는 그때 그 맛을 내시지도 못합니다.

같이 봄나물을 뜯으러 다닐 수도,

도토리를 따러 다닐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가슴이 아프고 할머니를 생각하면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할머니 하면, 낡고 닳아 헤진 고무신 한 짝이 떠오릅니다. 헌 고무신처럼 평생을 마음껏 가지지 못하고 지지리 고생만 하시며 살아오신 할머니, 이제 할머니가 제 곁에 함께하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낍니다.

언제일지 모를 그날까지 제가 할머니의 은혜를 다 갚을 수 있을까요?

꽃으로 태어났으나 들풀로 사셔야 했던 그분의 인생, 이제부터라도 화사한 꽃으로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조금 불편한 것일 뿐이라는 걸

가르쳐 주신 할머니! 이제 저는 할머니의 사랑과 고생을 모두 이해할 수 있을만큼 철이 들었습니다.

눈부시게 화창한 봄날, 우리 할머니 손을 잡고 꽃길을 걸어 보고 싶습니다. 오래 전 눈물나게 아름다웠던 유년의 풍경들을 떠올리며 웃어 보고 싶습니다. ^~^

할머니 사랑해요 ♡♡♡

- mbc 라디오 여성시대 사연의 글 -

삶의 방정식

삶의 방정식

삶의 방정식

어느 대기업 회장이 귀한 손님을 접대하고자 고깃집에 갔다.

" 아줌마, 여기 이 집에서 제일 맛있는 고기로 주시오."

고기가 도착하자 회장은 얼굴이 찡그러져 종업원을 불렀다.

"아줌마, 고기에 기름이 왜 이리 많아요?"

이때 찬공기가 순식간에 돌기 시작했지만, 주인 아줌마가 다가오며 던진 말이 회장의 마음을 변화시켰다.

"아이고 회장님. 이놈의 소가 운동을 안했나 보네요."

어이가 없는 대답에 회장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초대 받은 손님은 한술 더 떳다.

"아줌마! 괜찮습니다. 우리가 먹고 운동 할께요."

살아가는 삶의 방정식은 누구나 다르고 차이가 있다.

그 모든 것을 인정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인간이기에 마음에 담았던 내용을 대화로써 풀 수 있는 사람은 현명하고, 마음이 여린 사람은 한잔 술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자 노력을 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