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1일 화요일

그래도 사람이 좋습니다.

그래도 사람이 좋습니다.

그래도 사람이 좋습니다.

그래도 사람이 좋습니다.

사람으로 인하여,슬프고,

아프고,속상하고,괴로워도

그래도 사람이 좋습니다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데

그런 일들이 없을 순 없으니까요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사람으로 인하여 슬프고,괴로웠듯이

사람으로 인하여

또한 기쁘고 행복하잖아요

사람이 산다는것은 결국 함께 일때

모든것에 의미가 있고

행복이 있는 거랍니다

사람이 아닌 다른 모든것들은

중심이 아닌 조건들에 불과하답니다.

지금 이 순간

누구 때문에 슬프고,아프고,힘든가요?

그러나 기억하세요

당신을 힘들게 하는

그 사람 때문에 당신은 지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마음을 돌이켜 그 사람을 축복해 보세요

먼저 당신의 마음속에

놀라운 평안이 깃들 거에요

함께 더불어 살아갈때

더욱 빛이 나는

우리들의 삶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고통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특권입니다.

죽은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 입니다.

그래도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그래도 사람을 사랑합니다.

"

-박선희의 아름다운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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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피는 국화는 첫봄의 개나리를 시샘하지 않는다.

가을에 피는 국화는 첫봄의 개나리를 시샘하지 않는다.

가을에 피는 국화는 첫봄의 개나리를 시샘하지 않는다.

한여름 붉은 장미가 필 때 나는 왜 이렇게 다른 꽃보다 늦게 피나 한탄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준비하여 내공을 쌓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매미소리 그치고 하늘이 높아지는 가을 국화는 오랫동안 준비해온 그 은은한 향기와 자태를 마음껏 뽐내는 것이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늦깎이라는 말은 없다. 아무도 국화를 보고 늦깎이 꽃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 비해 뒤쳐졌다고 생각되는 것은 우리의 속도와 시간표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이고, 내공의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직 우리 차례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종종 사람을 꽃에 비유한다. 꽃처럼 사람들도 피어나는 시기가 따로 있다고 믿는다.

어떤 이는 초봄의 개나리처럼 십대에, 어떤 이는 한여름 해바라기처럼 이삼십대에,

어떤 이는 가을의 국화처럼 사오십대에, 또 어떤 이는 한겨울 매화처럼 육십대 이후에 화려하게 피어나는 거라고

계절은 다르지만 꽃마다 각각의 한창 때가 반드시 오듯이, 사람도 활짝 피어 나는 때가 반드시 온다. 그런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도록 준비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제철에 피는 꽃을 보라!

개나리는 봄에 피고, 국화는 가을에 피지 않는가.

"

-한비야/ 그건 사랑이었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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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일등ㅣ貧者一燈

빈자일등ㅣ貧者一燈

빈자일등ㅣ貧者一燈

○ 가난한 사람이 밝힌 등불 하나

○ 貧(가난할 빈) 者(놈 자) 一(한 일) 燈(등불 등)

가난한 사람이 밝힌 등불 하나라는 뜻으로,가난 속에서도 보인 작은 성의가, 부귀(富貴)한 사람들의 많은 보시(布施)보다도 가치(價値)가 큼을 이르는 말

석가모니가 사위국(舍衛國)의 어느 정사(精舍)에 머무르고 있을 때의 일이다. 이 나라에 난타(難陀)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너무나 가난해서 구걸을 하며 살았다. 각기 자기 분수에 맞게 석가모니에게 공양하는 것을 보고 스스로 한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전생에 저지른 죄 때문에 가난하고 천한 몸으로 태어나 아무 공양을 할 수가 없구나"

난타는 어떻게 해서든 공양하는 시늉이라도 하겠다면서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구걸을 한 끝에 겨우 돈 한 푼을 손에 넣게 되었다. 모처럼 밝은 표정이 되어 기름집으로 가는 난타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기름을 사서 등불을 만들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름집 주인은"겨우 한 푼어치 기름을 사다가 어디에 쓴단 말이지. 한 푼어치는 팔지도 않거니와 판다고 해도 조금 밖에 쓰지 못하는 눈곱만한 양이야" 하면서 기름 팔기를 거절했다.

난타는 자기의 간절한 심정을 주인에게 털어놓고 다시 한번 사정했다. 주인은 난타의 정성에 감동하여 돈 한 푼을 받고 꽤 많은 기름을 주었다. 난타는 크게 기뻐하며 등 하나에 불을 붙여 정사로 가서 석가에게 바치고 불단 앞에 많은 등불 속에 놓아두었다.

난타의 등불은 한밤중 내내 밝게 빛났고 먼동이 틀 때까지 홀로 타고 있었다. 손을 휘저어도, 옷을 흔들어 바람을 보내도 그 등불은 꺼지지 않았다. 뒤에 석가가 난타의 정성을 알고 그녀를 비구니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보우지탄ㅣ鴇羽之嘆

보우지탄ㅣ鴇羽之嘆

보우지탄ㅣ鴇羽之嘆

○ 부모님을 보살피지 못하는 것을 탄식하는 것

○ 鴇(능에 보) 羽(깃 우) 之(어조사 지) 嘆(탄식할 탄)

너새 깃의 탄식, 신하나 백성이 전역(전역)에 종사하여 부모님을 보살피지 못하는 것을 탄식하는 것을 비유한다. 너새는 날개가 60센티, 꽁지가 23센티 가량이나 되는데, 기러기와 비슷하지만 부리는 닭과 유사하고 뒷발톱은 없는 새이다.

푸드득 너새 깃 날리며 상수리나무 떨기에 내려앉네 나라 일로 쉴 새 없어 차기장 메기장 못 심었으니 부모님은 무얼 믿고 사시나 아득한 푸른 하늘이여 언제면 한 곳에 안착할 것인가! 푸드득 너새 날개 치며 대추나무 떨기에 내려앉네 나라 일로 쉴 새 없어 메기장 차기장 못 심었으니 부모님은 무엇 잡숫고 사시나? 아득한 푸른 하늘이여 언제면 끝장이 날 건가!

푸드득 너새 줄지어 날아 뽕나무 떨기에 내려앉네 나라 일로 쉴 새 없어 벼 수수 못 심었으니 부모님은 무얼 잡숫고 지내시나? 아득한 푸른 하늘이여 언제면 옛날로 되돌아갈 건가?

진(晉)나라는 소공(昭公) 뒤로 오세(五世) 동안 더욱 정사가 어지러워졌다. 그리하여 전쟁터로 출정가는 일이 잦았는데, 이때 병사들이 부모님을 생각하며 부른 노래가 이 시이다.

공자천주ㅣ孔子穿珠

공자천주ㅣ孔子穿珠

공자천주ㅣ孔子穿珠

○ 공자가 구슬을 꿴다

○ 孔(구멍 공) 子(아들 자) 穿(뚫을 천) 珠(구슬 주)

공자(孔子)가 구슬을 꿴다는 뜻으로,어진 사람도 남에게 배울 점(點)이 있다는 말.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모르는 것을 묻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님을 가르쳐 주는 말이다.

중국이 세계에 내세우는 유교의 시조, 학문의 전능인 孔子(공자)는 못하는 일이 없을까. 무례한 질문이지만 모든 방면에서 잘 하지는 못했을 테니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것에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不恥下問(불치하문)의 가르침을 남겼을 것이다.

이 가르침의 실제적인 예가 되는 것이 바로 이 성어다. 구슬을 뚫었다(穿珠)는 말은 구슬에 나 있는 여러 구멍을 잘 찾아 실을 꿴다는 뜻. ‘뚫을 천‘인 穿은 어려운 글자이지만 穿孔(천공), 穿鑿(천착) 등으로 제법 많이 쓰인다.

孔子는 모르는 것이 있으면 배우는 일이 중요하지 다른 조건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이나 신분, 귀천과 부귀는 더군다나 문제가 아니었다. 孔子가 이전에 아는 사람에게 진귀한 구슬을 얻은 적이 있는데 여기에는 아홉 구비나 되는 구멍이 꼬불꼬불 나 있었다.

이 구슬에 실을 꿰어야 갖고 다니기 편할 텐데 아무리 좋은 머리로 생각을 짜내어도 꿰지 못했다. 陳(진) 나라를 지나갈 때 일어난 일이다. 뽕밭에서 한 여인이 뽕잎을 따고 있었는데 이 여인은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민망함을 무릅쓰고 구슬 꿰는 방법을 물었다. 구슬을 살펴보던 아낙이 찬찬히 꿀을 가지고 생각해 보라고 하자 그제서야 孔子가 깨달았다. 구슬의 구멍 한쪽에 꿀을 바르고 개미를 잡아 허리에 실을 묶고선 반대쪽 구멍으로 넣었다. 꿀 냄새를 맡은 개미가 그곳으로 기어 들어가더니 저쪽 구멍으로 나왔다. 실이 꿰진 것은 물론이다. 이 이야기는 宋(송) 나라 睦庵善卿(목암선경)이 엮은 ‘祖庭事苑(조정사원)’에 나온다.

수오지심ㅣ羞惡之心

수오지심ㅣ羞惡之心

수오지심ㅣ羞惡之心

○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착하지 못함을 미워함

○ 羞(부끄러울 수) 惡(미워할 오) 之(갈 지) 心(마음 심)

사단(四端)의 하나. 자기(自己)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의 사상가 孟子(맹자, 기원전 372~289)는 孔子(공자)의 유교사상을 계승 발전시켜 亞聖(아성)으로 불린다. 공자의 손자인 子思(자사)의 문하생에게서 가르침을 받았고 도덕정치인 王道(왕도)를 실현하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맹자라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아들의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한 孟母三遷之敎(맹모삼천지교)의 고사와 함께 인간의 본성은 본래 선하게 태어났다는 性善說(성선설)일 것이다. 그리고 이 성선설을 설명하며 내세운 四端(사단)이다.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羞惡(수오)의 마음도 그 중의 하나다. 맹자의 제자인 公孫丑(공손추)와의 문답으로 이루어진 ‘공손추 上(상)’에는 왕도와 覇道(패도)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浩然之氣(호연지기)가 충만한 인간상을 주창한다. 끝부분에 성선설의 근거가 되는 不忍人之心(불인인지심), 사람들은 누구나 남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면서 유명한 비유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는(孺子入井/ 유자입정) 이야기가 따른다. 누구라도 그 아이의 위험을 보고 측은히 여겨 구하려 할 것인데, 이는 아이의 부모와 교분을 맺기 위해서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기 위해서도 아니며, 아이의 울부짖는 소리가 싫어서는 더욱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거나,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고, 사양하는 마음이 없거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라고 강조한다(無惻隱之心 非人也 無羞惡之心 非人也 無辭讓之心 非人也 無是非之心 非人也/ 무측은지심 비인야 무수오지심 비인야 무사양지심 비인야 무시비지심 비인야). 惻隱(측은) 羞惡(수오) 辭讓(사양) 是非(시비)의 마음이 四端說(사단설)이고, 그것이 각각 仁(인) 義(의) 禮(예) 智(지)의 근원을 이루는 단서라고 했다.

번간걸여ㅣ墦間乞餘

번간걸여ㅣ墦間乞餘

번간걸여ㅣ墦間乞餘

○ 무덤가에서 남은 음식을 빌어먹다.

○ 墦(무덤 번) 間(사이 간) 乞(빌 걸) 餘(남을 여)

공동묘지 무덤 주변(墦間)을 돌아다니며 제를 지내고 남은 음식을 구걸해 먹는다(乞餘)는 이 말은 구차하게 살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허세를 부리는 것을 비유한다. 체면도 잊고 부귀영화만 찾는 비천한 사람들이나 그 행위를 풍자하기도 한다.

孔子(공자) 이후 孟子(맹자)의 사상뿐만 아니라 戰國時代(전국시대) 당시 제후와 재상을 만나 문답을 나눈 행적을 그대로 담은 책 ‘孟子(맹자)’에 등장한다. 齊(제)나라에서 한 사나이가 살고 있었다. 집안은 그다지 부유하지 못했지만 아내와 첩을 한 집에 두고 지냈다.

이 사나이는 거의 매일같이 외출을 하여 술과 고기를 거나하게 먹은 뒤 집으로 돌아왔다. 그의 아내가 어디로 가서 술을 마시느냐고 물으면 항상 부귀한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대접받는다고 떵떵거렸다. 왠지 의심이 갔던 그의 아내는 첩에게 높은 사람들이 자기 집은 전혀 찾아오지 않으니 뒤를 밟아봐야겠다고 말했다. 다음날도 거드름을 피우며 나가는 남편 뒤를 아내가 살금살금 따라가 보니 아는 체 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보지 못했다.

마침내 사나이는 성문 밖 무덤 사이에서 제사 지내는 사람에게 다가가 남은 음식들을 구걸하고 모자라면 사방을 살펴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 아닌가. 이것을 보고 돌아와 첩에게 자초지종을 알려주고는 남편의 행위가 부끄러워 부둥켜안고 대성통곡을 했다.

골육상쟁ㅣ骨肉相爭

골육상쟁ㅣ骨肉相爭

골육상쟁ㅣ骨肉相爭

○ 뼈와 살이 서로 다툼의 뜻, 형제 민족끼리 서로 다툼

○ 骨(뼈 골) 肉(고기 육) 相(서로 상) 爭(다툴 쟁)

뼈와 살이 서로 다툼의 뜻으로,형제(兄弟)나 같은 민족(民族)끼리 서로 다툼을 뜻함. 뼈와 살이 서로 싸운다는 말로 동족끼리 서로 싸움을 비유함, 뼈와 살이 서로 다투다. 뼈와 살은 한 몸으로 이루어졌다. 곧, 형제처럼 같은 혈족끼리 다투고 싸우는 것이다.

비슷한 뜻으로 骨肉相殘(골육상잔), 同族相殘(동족상잔), 同族相爭(동족상쟁), 民族相殘(민족상잔), 兄弟鬩墻(형제혁장) 등이 있다.

종옥ㅣ種玉

종옥ㅣ種玉

종옥ㅣ種玉

○ 구슬을 심다, 미인을 아내로 맞이하다.

○ 種(씨 종) 玉(구슬 옥)

구슬을 심는다는 뜻으로,아름다운 여인(女人)을 아내로 맞이하는 것을 말한다. 種玉之緣(종옥지연)이라 해도 같다. 의도했든 않았든 남에게 좋은 일을 많이 한 결과였다. 중국 漢(한)나라 때의 楊雍伯(양옹백)이란 사람의 이야기에서 나왔다. 東晋(동진) 때의 역사가 干寶(간보)가 지은 ‘搜神記(수신기)’에 실려 전한다. 이 책은 六朝(육조)시대에 유행했던 志怪(지괴)소설의 대표로 불리는데 괴이한 귀신 이야기나 신선들의 설화에 관한 것을 모았다

성어가 유래한 양옹백의 이야기 내용을 보자. 장사가 본업이었던 양옹백은 성품이 독실하고 효성이 지극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無終山(무종산)이란 곳에 장사를 지내고 정착해 살았다. 제법 높았던 그 산에는 물이 없었다. 양옹백은 항상 물을 길어 고갯마루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마실 수 있도록 했다. 3년이 지난 어느 날 한 나그네가 물을 마신 후 돌 한 되를 주면서 말했다. ‘높고 평평한 돌에 심으면 옥이 나올 것인데 이것으로 좋은 아내를 얻게 될 것이오(使至高平好地有石處種之 云玉當生其中 汝後當得好婦/ 사지고평호지유석처종지 운옥당생기중 여후당득호부).’ 정말 돌 위에 옥이 자라나 양옹백은 이것을 들고 대족인 徐氏(서씨) 집안의 현숙한 규수에게 장가들 수 있었다.

교취호탈ㅣ巧取豪奪

교취호탈ㅣ巧取豪奪

교취호탈ㅣ巧取豪奪

○ 교묘한 수단으로 빼앗아 취한다

○ 巧(교묘할 교) 取(취할 취) 豪(호걸 호) 奪(빼앗을 탈)

정당하지 않은 방법에 의해 남의 귀중한 물건을 가로채는 것을 비유한다. 교묘한 수단으로 빼앗아 취한다.

송나라에 유명한 화가 미불이 있었다. 그에게는 미우인 (米友仁)은 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아버지 만큼이나 그림에 뛰어나 소미라는 칭호가 덧붙여졌다. 그는 옛 선배 화가들의 작품을 좋아하여 닥치는 대로 모았다.

어느 날 그가 배를 타고 가는데, 어떤 사람이 왕희지의 진품 서첩을 갖고 있는 것을 보고, 내심 쾌재를 불렀다.

그는 본래 남의 작품을 그대로 묘사할 수 있는 재주가 있었으므로 잠깐 동안이면 거의 진품이나 모사품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쉽게 그릴 수 있었다. 어떤 경우는 서첩의 주인이 가지고 갈 때는 눈치를 채지 못하다가 얼마 후에 다시 찾아와 진품을 돌려 달라고 항의하는 경우도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