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1일 화요일

도천지수ㅣ盜泉之水

도천지수ㅣ盜泉之水

도천지수ㅣ盜泉之水

○ 도둑샘의 물, 처지가 어려워도 부정한 짓은 않는다.

○ 盜(도둑 도) 泉(샘 천) 之(갈 지) 水(물 수)

孔子(공자)가 아름답지 않은 이름을 가진 것에는 다가가지도 않았다는 대표적인 것에 도둑의 샘(盜泉)이 있다. 우물의 이름에 도둑이 들어 있으니 아무리 목말라도 마시지 않는다는 뜻의 渴不飮 盜泉水(갈불음 도천수)란 말을 줄인 것이 이 성어다. 제아무리 괴롭고 어려운 처지에 놓여도 부정과 불의에 더럽혀지지 않도록 처신에 조심하라는 가르침을 주고 있다.

먼저 중국 西晉(서진)의 문인 陸機(육기, 260~303)가 지은 시 ‘猛虎行(맹호행)’을 보자. 秦漢(진한)이후 중국의 대표적인 시문을 모은 ‘文選(문선)’에 실려 있다. ‘아무리 목말라도 도천의 물은 마시지 않고, 아무리 더워도 악목의 그늘에서 쉬지 않노라. 나쁜 나무인들 어찌 그늘이 없겠나마는, 뜻있는 선비에게는 고심이 많구나(渴不飮盜泉水 熱不息惡木陰 惡木豈無枝 志士多古心/ 갈불음도천수 열불식악목음 악목개무지 지사다고심).’

이보다 앞서 前漢(전한)의 劉向(유향)이 편찬한 설화집 ‘說苑(설원)’에는 공자와 효자인 曾子(증자)가 관련고사에 등장한다. ‘증자는 날이 저물어도 승모라는 마을에 들지 않았고, 공자는 목이 말라도 도천의 물을 마시지 않았다.’ 모두 그 이름을 추하게 여겼기 때문이라 했다.

삼복백규ㅣ三復白圭

삼복백규ㅣ三復白圭

삼복백규ㅣ三復白圭

○ 백규를 세 번 반복한다

○ 三(석 삼) 復(반복할 복) 白(흰 백) 圭(홀 규)

백규를 세 번 반복한다는 뜻으로 말을 신중하게 한다는 뜻이다.

남용이 백규란 내용의 시를 하루에 세 번 반복하여 외우니 공자께서 형님의 딸을 남용의 아내로 삼게 했다. 남용은 춘추시대 공자의 제자이며, 그가 외운 시는 시경(詩經) 대아(大雅) 억(抑)에 나오는 다음 구절이다.

흰 구슬의 흠집은 그래도 갈면 되지만

말의 흠은 어떻게 할 수도 없다네

이 시는 본래 위(衛)나라 무공(武公)이 여왕(廬王)을 풍자하고 또한 스스로를 경계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남용은 이 구절을 하루에 세 번씩 반복하여 외웠으므로 말에 신중 하려고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공자는 조카딸을 그의 아내로 준 것이다. 세상의 모든 화근이 세 치 혀끝에서 비롯된다는 말이 있다. 한번 내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기에, 말을 함에 있어 신중하게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찬수개화ㅣ鑽燧改火

찬수개화ㅣ鑽燧改火

찬수개화ㅣ鑽燧改火

○ 철이 달라질 때마다 불을 바꿈

○ 鑽(뚫을 찬) 燧(부싯돌 수) 改(고칠 개) 火(불 화)

고대에는 나무를 마찰시켜 불을 얻었다. 논어 양화(陽貨) 편에 “부시나무를 마찰시켜 불을 바꾼다”고 나오는데, 이게 찬수개화(鑽燧改火)다. 줄여서 개수(改燧)라고 쓴다. ‘부시로 사용하는 나무’木燧는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원리에 맞춰 계절에 따라 바꾸었다. 봄의 빛깔은 청색이므로 푸른빛을 띠는 버드나무 판에 구멍을 내고 느릅나무 막대기로 비벼 불씨를 일으켰다. 여름은 적색이므로 붉은 살구나무 판에 대추나무, 가을은 백색이므로 하얀 참나무 판에 산유자나무, 겨울은 흑색이므로 검은 박달나무 판에 느티나무를 사용했다.

부엌의 불씨를 꺼뜨리면 절대로 안 되는데도 절기마다 불을 바꾼 이유는 오래 그대로 쓰면 불꽃에 양기(陽氣)가 지나쳐 돌림병의 원인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불은 소중한 것이어서 나라가 직접 관리했다. 태종 6년(1406)에 시행된 개화령(改火令)은 성종 2년(1471)에 더 강화돼 궁궐의 병조(兵曹)에서 국화(國火)를 만들어 한성부로 내려 보내고, 고을마다 같은 방식으로 집마다 나누어주되 어기는 자는 벌을 주게 했다.

고종실록 1년(1864)에 “3월 30일(그때는 이날이 입하였나 보다) 경오일 신시 3각에 입하에 대한 개화를 올릴 때 종묘서 사직서 영희전 영녕전 효문전 경모궁 육상궁 선희전 경호궁 경수궁에는 전례대로 개화하고, 규장각 의정부 승정원 한성부에는 똑같이 불을 나누어 주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왕이 알았다고 전교했다는 기록이 있다.

삼마태수ㅣ三馬太守

삼마태수ㅣ三馬太守

삼마태수ㅣ三馬太守

○ 재물에 욕심이 없는 깨끗한 관리

○ 三(석 삼) 馬(말 마) 太(클 태) 守(지킬 수)

세 마리의 말을 타고 오는 수령(守令)이라는 뜻으로,재물(財物)에 욕심이 없는 깨끗한 관리(官吏), 청백리(淸白吏)를 이르는 말

한 고을의 수령이 부임지로 나갈 때나 또는 임기가 끝날 때 감사의 표시로 보통 그 고을에서 가장 좋은 말 여덟 마리를 바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었다.그런데 조선 중종 때 송흠(宋欽)이라는 분은 세로 부임해 갈 때 세 마리의 말만 받았으니, 한 필은 본인이 탈 말, 어머니와 아내가 탈 말이 각각 한 필 그래서 총3필을 받아 그 당시 사람들이 송흠을 삼마태수라 불렀으니 청백리를 가리킨다.

참고로 고려 충렬왕 때는 임기가 끝나는 부사에게 7필의 말을 바치는 법이 있었는데 최석이라는 승평(지금의 순천)부사는 그 7마리의 말을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애초 받치려던 말이 망아지를 낳아 8마리의 말을 승평고을 백성들에게 돌려주었다.

이에 부민들이 최석의 뜻을 기려 비를 세웠는데 바로 팔마비(八馬碑)다. 지금도 순천을 팔마의 고장이라고 하여 청백리의 고장으로 자부심이 대단하다. 조선조에 와서는 세종 때 맹사성은 공무를 수행할 때도 말을 따고 다니지 않고 소를 타고 다니는 청백리로 유명하다

고복격양ㅣ鼓腹擊壤

고복격양ㅣ鼓腹擊壤

고복격양ㅣ鼓腹擊壤

○ 배를 두드리고 발을 구르며 흥겨워한다

○ 鼓(칠 고) 腹(배 복) 擊(칠 격) 壤(땅 양)

배를 두드리고 발을 구르며 흥겨워한다는 뜻으로 태평 성대를 형용하여 이르는 말.

먼 옛날 중국에 성천자(聖天子)로 이름난 요(堯) 임금이 선정을 베풀어 온 지도 어느덧 50년이 지났다. 하루하루를 태평하게 지내던 어느 날, 요 임금은 정말로 세상이 잘 다스려지고 있는지 궁금하여 미복(微服)을 하고 민정(民情)을 살펴보러 나갔다. 어느 네거리에 이르자 아이들이 손을 맞잡고 요 임금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우리가 이처럼 잘 살아가는 것은立我烝民(입아증민)모두가 임금님의 지극한 덕이네莫匪爾極(막비이극)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지만不識不知(불식부지)임금님이 정하신 대로 살아가네順帝之則(순제지칙)마음이 흐뭇해진 요 임금은 어느새 마을 끝까지 걸어갔다.

"

그 곳에는 하얀 한 노인이 손으로 배를 두드리고鼓腹 발로 땅을 구르며擊壤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네日出而作 日入而息(일출이작 일입이식)밭을 갈아 먹고 우물을 파서 마시니耕田而食 鑿井而飮(경전이식 착정이음)임금님의 힘이 나에게 무슨 소용인가? 帝力何有于我哉(제력하유우아제)요 임금은 정말 기뻤다.

"

그래도 사람이 좋습니다.

그래도 사람이 좋습니다.

그래도 사람이 좋습니다.

그래도 사람이 좋습니다.

사람으로 인하여,슬프고,

아프고,속상하고,괴로워도

그래도 사람이 좋습니다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데

그런 일들이 없을 순 없으니까요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사람으로 인하여 슬프고,괴로웠듯이

사람으로 인하여

또한 기쁘고 행복하잖아요

사람이 산다는것은 결국 함께 일때

모든것에 의미가 있고

행복이 있는 거랍니다

사람이 아닌 다른 모든것들은

중심이 아닌 조건들에 불과하답니다.

지금 이 순간

누구 때문에 슬프고,아프고,힘든가요?

그러나 기억하세요

당신을 힘들게 하는

그 사람 때문에 당신은 지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마음을 돌이켜 그 사람을 축복해 보세요

먼저 당신의 마음속에

놀라운 평안이 깃들 거에요

함께 더불어 살아갈때

더욱 빛이 나는

우리들의 삶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고통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특권입니다.

죽은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 입니다.

그래도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그래도 사람을 사랑합니다.

"

-박선희의 아름다운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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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피는 국화는 첫봄의 개나리를 시샘하지 않는다.

가을에 피는 국화는 첫봄의 개나리를 시샘하지 않는다.

가을에 피는 국화는 첫봄의 개나리를 시샘하지 않는다.

한여름 붉은 장미가 필 때 나는 왜 이렇게 다른 꽃보다 늦게 피나 한탄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준비하여 내공을 쌓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매미소리 그치고 하늘이 높아지는 가을 국화는 오랫동안 준비해온 그 은은한 향기와 자태를 마음껏 뽐내는 것이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늦깎이라는 말은 없다. 아무도 국화를 보고 늦깎이 꽃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 비해 뒤쳐졌다고 생각되는 것은 우리의 속도와 시간표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이고, 내공의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직 우리 차례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종종 사람을 꽃에 비유한다. 꽃처럼 사람들도 피어나는 시기가 따로 있다고 믿는다.

어떤 이는 초봄의 개나리처럼 십대에, 어떤 이는 한여름 해바라기처럼 이삼십대에,

어떤 이는 가을의 국화처럼 사오십대에, 또 어떤 이는 한겨울 매화처럼 육십대 이후에 화려하게 피어나는 거라고

계절은 다르지만 꽃마다 각각의 한창 때가 반드시 오듯이, 사람도 활짝 피어 나는 때가 반드시 온다. 그런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도록 준비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제철에 피는 꽃을 보라!

개나리는 봄에 피고, 국화는 가을에 피지 않는가.

"

-한비야/ 그건 사랑이었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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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일등ㅣ貧者一燈

빈자일등ㅣ貧者一燈

빈자일등ㅣ貧者一燈

○ 가난한 사람이 밝힌 등불 하나

○ 貧(가난할 빈) 者(놈 자) 一(한 일) 燈(등불 등)

가난한 사람이 밝힌 등불 하나라는 뜻으로,가난 속에서도 보인 작은 성의가, 부귀(富貴)한 사람들의 많은 보시(布施)보다도 가치(價値)가 큼을 이르는 말

석가모니가 사위국(舍衛國)의 어느 정사(精舍)에 머무르고 있을 때의 일이다. 이 나라에 난타(難陀)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너무나 가난해서 구걸을 하며 살았다. 각기 자기 분수에 맞게 석가모니에게 공양하는 것을 보고 스스로 한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전생에 저지른 죄 때문에 가난하고 천한 몸으로 태어나 아무 공양을 할 수가 없구나"

난타는 어떻게 해서든 공양하는 시늉이라도 하겠다면서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구걸을 한 끝에 겨우 돈 한 푼을 손에 넣게 되었다. 모처럼 밝은 표정이 되어 기름집으로 가는 난타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기름을 사서 등불을 만들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름집 주인은"겨우 한 푼어치 기름을 사다가 어디에 쓴단 말이지. 한 푼어치는 팔지도 않거니와 판다고 해도 조금 밖에 쓰지 못하는 눈곱만한 양이야" 하면서 기름 팔기를 거절했다.

난타는 자기의 간절한 심정을 주인에게 털어놓고 다시 한번 사정했다. 주인은 난타의 정성에 감동하여 돈 한 푼을 받고 꽤 많은 기름을 주었다. 난타는 크게 기뻐하며 등 하나에 불을 붙여 정사로 가서 석가에게 바치고 불단 앞에 많은 등불 속에 놓아두었다.

난타의 등불은 한밤중 내내 밝게 빛났고 먼동이 틀 때까지 홀로 타고 있었다. 손을 휘저어도, 옷을 흔들어 바람을 보내도 그 등불은 꺼지지 않았다. 뒤에 석가가 난타의 정성을 알고 그녀를 비구니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보우지탄ㅣ鴇羽之嘆

보우지탄ㅣ鴇羽之嘆

보우지탄ㅣ鴇羽之嘆

○ 부모님을 보살피지 못하는 것을 탄식하는 것

○ 鴇(능에 보) 羽(깃 우) 之(어조사 지) 嘆(탄식할 탄)

너새 깃의 탄식, 신하나 백성이 전역(전역)에 종사하여 부모님을 보살피지 못하는 것을 탄식하는 것을 비유한다. 너새는 날개가 60센티, 꽁지가 23센티 가량이나 되는데, 기러기와 비슷하지만 부리는 닭과 유사하고 뒷발톱은 없는 새이다.

푸드득 너새 깃 날리며 상수리나무 떨기에 내려앉네 나라 일로 쉴 새 없어 차기장 메기장 못 심었으니 부모님은 무얼 믿고 사시나 아득한 푸른 하늘이여 언제면 한 곳에 안착할 것인가! 푸드득 너새 날개 치며 대추나무 떨기에 내려앉네 나라 일로 쉴 새 없어 메기장 차기장 못 심었으니 부모님은 무엇 잡숫고 사시나? 아득한 푸른 하늘이여 언제면 끝장이 날 건가!

푸드득 너새 줄지어 날아 뽕나무 떨기에 내려앉네 나라 일로 쉴 새 없어 벼 수수 못 심었으니 부모님은 무얼 잡숫고 지내시나? 아득한 푸른 하늘이여 언제면 옛날로 되돌아갈 건가?

진(晉)나라는 소공(昭公) 뒤로 오세(五世) 동안 더욱 정사가 어지러워졌다. 그리하여 전쟁터로 출정가는 일이 잦았는데, 이때 병사들이 부모님을 생각하며 부른 노래가 이 시이다.

공자천주ㅣ孔子穿珠

공자천주ㅣ孔子穿珠

공자천주ㅣ孔子穿珠

○ 공자가 구슬을 꿴다

○ 孔(구멍 공) 子(아들 자) 穿(뚫을 천) 珠(구슬 주)

공자(孔子)가 구슬을 꿴다는 뜻으로,어진 사람도 남에게 배울 점(點)이 있다는 말.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모르는 것을 묻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님을 가르쳐 주는 말이다.

중국이 세계에 내세우는 유교의 시조, 학문의 전능인 孔子(공자)는 못하는 일이 없을까. 무례한 질문이지만 모든 방면에서 잘 하지는 못했을 테니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것에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不恥下問(불치하문)의 가르침을 남겼을 것이다.

이 가르침의 실제적인 예가 되는 것이 바로 이 성어다. 구슬을 뚫었다(穿珠)는 말은 구슬에 나 있는 여러 구멍을 잘 찾아 실을 꿴다는 뜻. ‘뚫을 천‘인 穿은 어려운 글자이지만 穿孔(천공), 穿鑿(천착) 등으로 제법 많이 쓰인다.

孔子는 모르는 것이 있으면 배우는 일이 중요하지 다른 조건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이나 신분, 귀천과 부귀는 더군다나 문제가 아니었다. 孔子가 이전에 아는 사람에게 진귀한 구슬을 얻은 적이 있는데 여기에는 아홉 구비나 되는 구멍이 꼬불꼬불 나 있었다.

이 구슬에 실을 꿰어야 갖고 다니기 편할 텐데 아무리 좋은 머리로 생각을 짜내어도 꿰지 못했다. 陳(진) 나라를 지나갈 때 일어난 일이다. 뽕밭에서 한 여인이 뽕잎을 따고 있었는데 이 여인은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민망함을 무릅쓰고 구슬 꿰는 방법을 물었다. 구슬을 살펴보던 아낙이 찬찬히 꿀을 가지고 생각해 보라고 하자 그제서야 孔子가 깨달았다. 구슬의 구멍 한쪽에 꿀을 바르고 개미를 잡아 허리에 실을 묶고선 반대쪽 구멍으로 넣었다. 꿀 냄새를 맡은 개미가 그곳으로 기어 들어가더니 저쪽 구멍으로 나왔다. 실이 꿰진 것은 물론이다. 이 이야기는 宋(송) 나라 睦庵善卿(목암선경)이 엮은 ‘祖庭事苑(조정사원)’에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