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1일 화요일

당신과 함께라면

당신과 함께라면

당신과 함께라면

날마다 떠오르는 태양이

오늘 떠오르지 않는 다해도

당신과 함께라면

나는 괜찮습니다.

종일 맑은 날씨 중에

비바람이 불어온다 할지라도

당신과 함께라면

나는 괜찮습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감당 못할 아픔이 온다 해도

당신과 함께라면

나는 괜찮습니다.

살아가다가 힘에 겨워

쓰러져 일어서기 어려울지라도

당신과 함께라면

나는 괜찮습니다.

혹이 숱한 사람들이

내 곁을 떠나간다고 할지라도

당신과 함께라면

나는 괜찮습니다.

사는 날까지 살다가

하늘이 부르는 그날이 올지라도

당신과 함께라면

나는 괜찮습니다.

- 架痕 김철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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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오흑흑ㅣ天下五黑黑

천하오흑흑ㅣ天下五黑黑

천하오흑흑ㅣ天下五黑黑

○ 다섯 가지 어두운 나쁜 것, 지도자가 알아야 할 것

○ 天(하늘 천) 下(아래 하) 五(다섯 오) 黑(검을 흑) 黑(검을 흑)

세상에는(天下) 다섯 가지의 어둡고 어두운 나쁜 것이 있다(五黑黑)는 뜻이다다. 사물을 살펴 앞을 내다보는 마음의 눈 心眼(심안)을 가진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의 악사 師曠(사광, 기원전572~532)이 통치를 하는 임금이 보지 못하는 다섯 가지를 지적한 데서 나온 얘기다. 중국의 樂聖(악성)이라 칭송받는 사광은 눈이 보이지 않고, 서양의 악성 베토벤(Beethoven)은 귀가 들리지 않았으니 마음으로 음을 다스린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晉(진)나라 平公(평공) 때의 유명한 궁정악사 사광은 가장 귀가 밝고 시력이 좋은 사람이었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지만 솜씨가 정밀하지 못한 것은 마음을 집중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한 그는 쑥 잎을 태운 연기로 눈에 씌어 멀게 했다. 이후로는 음악에 전념하여 마침내 소리만 듣고도 기후의 변화를 살피고 미래의 길흉까지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師曠之聰(사광지총)이란 말이 귀가 밝음의 대명사가 될 정도였다. 앞이 안 보이면서도 최고 관직 太師(태사)가 되어 왕을 수행하고 전장 터마다 수행했다. 그가 새소리만 듣고 예측한대로 주둔하고 적군이 물러갔으니 더욱 신임을 받았다.

사광이 평공과 대좌했을 때 나눈 대화에 성어가 등장한다. 前漢(전한)시대의 학자 劉向(유향)이 쓴 ‘新序(신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보자. 앞을 못 보는 사광에게 답답하고 고통이 심하겠다고 말하자 사광이 대답한다. ‘세상의 어둡고 어두운 다섯 가지를 보지 못하는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天下有五墨墨 而臣不得與一焉/ 천하유오묵묵 이신부득여일언).’ 임금이 보지 못하는 것을 五墨墨(오묵묵)으로 표현했다. 관리가 뇌물을 받고 백성을 수탈해도 모르고, 사람을 바로 기용할 줄 모르며, 현인을 쫓아내고 간신이 부정축재해도 모른다고 했다. 또 전쟁을 자주 일으켜 백성을 힘들게 하고, 그러면서 그들의 어려운 삶에 관심이 없는 것이라 직언한 것이다.

녹음방초ㅣ綠陰芳草

녹음방초ㅣ綠陰芳草

녹음방초ㅣ綠陰芳草

○ 푸른 나무 그늘과 꽃다운 풀, 아름다운 자연 경치

○ 綠(푸를 녹) )陰(그늘 음) 芳(꽃다울 방) 草(풀 초)

나무가 푸르게 우거진 그늘과 꽃다운 풀이라는 뜻으로,여름의 아름다운 경치(景致), 나무그늘 우거지고 풀에서 향기가 나는 계절은 여름이죠. 그래서 녹음방초는 여름을 가리킵니다.

방(芳)은 ‘꽃답다, 향기’라는 뜻을 갖습니다. 그래서 꽃다운 나이를 방년(芳年)이라고 하지요. 몇 살? 스무 살 안팎. 묘령(妙齡)이라고도 합니다. “제 나이 방년 19세입니다.” “네, 묘령의 여인이시군요.” 녹(綠)은 ‘초록색’을 뜻하는데, 자연과 관련된 표현에는 이 글자가 자주 쓰입니다.

윤물무성ㅣ潤物無聲

윤물무성ㅣ潤物無聲

윤물무성ㅣ潤物無聲

○ 소리 없이 만물을 기르는 봄비

○ 潤(불을 윤) 物(물건 물) 無(없을 무) 聲(소리 성)

‘好雨知時節 當春乃發生 隨風潛入夜 潤物細無聲 野徑雲俱黑 江船火燭明 曉看紅濕處 花重錦官城’. 두보의 오언율시 ‘춘야희우(春夜喜雨)’의 전문이다. 소리 없이 만물을 촉촉이 적셔 윤택하게 하는 봄밤의 비를 생동하는 시어로 그린 명시로 꼽힌다.

‘좋은 비 시절 알아/봄을 맞아 내리누나/바람 따라 밤에 들어/소리 없이 적시네/들길 구름 어둡고/강 배 불빛 홀로 밝다./새벽 젖은 곳을 보니/금관성에 꽃이 가득’(정민 교수 역). 봄밤에 내리는 기쁜 비는 즐거운 비, 반가운 비다.

이 시는 두보가 50세 무렵 지금의 쓰촨성四川省 청두成都에 완화초당(浣花草堂)을 짓고 살 때 지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완화는 이 지역의 맑은 시내 완화계(浣花溪)의 약칭이다. 남들은 완화초당을 두보초당(杜甫草堂)이라고 불렀다. 시를 지을 무렵 농사를 지으며 모처럼 여유로운 전원생활을 해서 그런지 봄비를 반기는 두보의 마음이 아주 밝고 핍진(逼眞)하다. 게다가 당시 청두는 겨우내 가뭄이 심해 사람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시의 핵심은 윤물무성(潤物無聲) 아닐까. 윤물무성은 드러내거나 생색내지 않고 인재를 돕고 기르는 멘토를 형용하는 말로 쓸 수도 있다. 시의 무대 금관성(錦官城)은 청두의 옛 이름. 제갈량을 애도하는 두보의 시 ‘촉상(蜀相)’에도 나온다. ‘승상의 사당을 어디 가 찾으리오. 금관잿 밖에 잣나무 삼열(森列)한 데로다…’

한유(韓愈·768~824)의 ‘初春小雨(초춘소우)’도 좋다. 수도 장안의 큰길이 보슬비로 우유처럼 윤기가 난다고 한 그는 ‘지금이 바로 1년 중 봄이 가장 좋은 때/버들이 가득 찬 때보다 훨씬 뛰어나다’最是一年春好處 絶勝煙柳滿皇都고 읊었다.

동병상련ㅣ同病相憐

동병상련ㅣ同病相憐

동병상련ㅣ同病相憐

○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 서로 가엾게 여기다

○ 同(한가지 동) 病(병 병) 相(서로 상) 憐(불쌍히 여길 련)

같은 병자(病者)끼리 가엾게 여긴다는 뜻으로,어려운 처지(處地)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불쌍히 여겨 동정(同情)하고 서로 도움

중국 춘추시대에 오나라의 태자 광(光)은 오자서(伍子胥)가 천거한 자객을 보내어 오왕(吳王) 요(僚)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으니(BC 515), 그가 합려(闔閭)이다. 오자서는 이때의 공으로 대부(大夫)로 임명되었다.

오자서는 초나라 사람으로, 초나라 평왕(平王)의 태자부(太子府) 태부(太傅)인 오사(伍奢)의 아들인데, 태자부의 소부(小傅) 비무기(費無忌)의 모함으로 아버지와 형인 상(尙)이 죽음을 당하자 복수할 뜻을 품고 오나라로 망명하였다. 그가 태자 광을 도운 것은 태자의 힘을 빌려 초나라에 복수하기 위한 것이었다. 오왕 합려가 즉위한 해에 초나라로부터 또 한 사람의 망명객이 찾아왔다. 초나라에서 벼슬을 하던 백주려(伯州黎)가 비무기의 모함으로 죽임을 당하자 그의 아들 백비가 오자서를 의지하여 오나라로 망명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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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비는 오자서의 천거로 벼슬길에 올라 대부에 임명되었으며 오자서와 함께 정치를 하게 되었다. 후한의 조엽(趙曄)이 엮은 《오월춘추》 의 합려내전(闔閭內傳)에 두 사람의 관계를 나타내는 가사가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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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병상련 동우상구(同病相憐同憂相救;같은 병에 서로 가엾게 여기며 근심을 같이하고 서로 구하네.) 경상지조 상수상비(驚翔之鳥相隨相飛;놀라서 날아오르는 새 서로 따르며 날고) 뇌하지수 인복구류(瀨下之水因復俱流;여울에 떨어진 물 서로 어울려 다시 함께 흐르네.)

같은 대부인 피리(被離)가 오자서에게 백비를 평하여 응시호보(鷹視虎步), 즉 눈길은 매와 같고 걸음걸이는 호랑이와 같아 그는 살인을 할 관상이니 결코 마음을 허락해서는 안 될 것이라 하였다. 오자서는 설마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나겠는가 하고 피리의 충고를 듣지 않았다. 후일에 월나라에 매수된 백비가 모함하여 오자서를 분사하게 하였다.

도천지수ㅣ盜泉之水

도천지수ㅣ盜泉之水

도천지수ㅣ盜泉之水

○ 도둑샘의 물, 처지가 어려워도 부정한 짓은 않는다.

○ 盜(도둑 도) 泉(샘 천) 之(갈 지) 水(물 수)

孔子(공자)가 아름답지 않은 이름을 가진 것에는 다가가지도 않았다는 대표적인 것에 도둑의 샘(盜泉)이 있다. 우물의 이름에 도둑이 들어 있으니 아무리 목말라도 마시지 않는다는 뜻의 渴不飮 盜泉水(갈불음 도천수)란 말을 줄인 것이 이 성어다. 제아무리 괴롭고 어려운 처지에 놓여도 부정과 불의에 더럽혀지지 않도록 처신에 조심하라는 가르침을 주고 있다.

먼저 중국 西晉(서진)의 문인 陸機(육기, 260~303)가 지은 시 ‘猛虎行(맹호행)’을 보자. 秦漢(진한)이후 중국의 대표적인 시문을 모은 ‘文選(문선)’에 실려 있다. ‘아무리 목말라도 도천의 물은 마시지 않고, 아무리 더워도 악목의 그늘에서 쉬지 않노라. 나쁜 나무인들 어찌 그늘이 없겠나마는, 뜻있는 선비에게는 고심이 많구나(渴不飮盜泉水 熱不息惡木陰 惡木豈無枝 志士多古心/ 갈불음도천수 열불식악목음 악목개무지 지사다고심).’

이보다 앞서 前漢(전한)의 劉向(유향)이 편찬한 설화집 ‘說苑(설원)’에는 공자와 효자인 曾子(증자)가 관련고사에 등장한다. ‘증자는 날이 저물어도 승모라는 마을에 들지 않았고, 공자는 목이 말라도 도천의 물을 마시지 않았다.’ 모두 그 이름을 추하게 여겼기 때문이라 했다.

삼복백규ㅣ三復白圭

삼복백규ㅣ三復白圭

삼복백규ㅣ三復白圭

○ 백규를 세 번 반복한다

○ 三(석 삼) 復(반복할 복) 白(흰 백) 圭(홀 규)

백규를 세 번 반복한다는 뜻으로 말을 신중하게 한다는 뜻이다.

남용이 백규란 내용의 시를 하루에 세 번 반복하여 외우니 공자께서 형님의 딸을 남용의 아내로 삼게 했다. 남용은 춘추시대 공자의 제자이며, 그가 외운 시는 시경(詩經) 대아(大雅) 억(抑)에 나오는 다음 구절이다.

흰 구슬의 흠집은 그래도 갈면 되지만

말의 흠은 어떻게 할 수도 없다네

이 시는 본래 위(衛)나라 무공(武公)이 여왕(廬王)을 풍자하고 또한 스스로를 경계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남용은 이 구절을 하루에 세 번씩 반복하여 외웠으므로 말에 신중 하려고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공자는 조카딸을 그의 아내로 준 것이다. 세상의 모든 화근이 세 치 혀끝에서 비롯된다는 말이 있다. 한번 내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기에, 말을 함에 있어 신중하게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찬수개화ㅣ鑽燧改火

찬수개화ㅣ鑽燧改火

찬수개화ㅣ鑽燧改火

○ 철이 달라질 때마다 불을 바꿈

○ 鑽(뚫을 찬) 燧(부싯돌 수) 改(고칠 개) 火(불 화)

고대에는 나무를 마찰시켜 불을 얻었다. 논어 양화(陽貨) 편에 “부시나무를 마찰시켜 불을 바꾼다”고 나오는데, 이게 찬수개화(鑽燧改火)다. 줄여서 개수(改燧)라고 쓴다. ‘부시로 사용하는 나무’木燧는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원리에 맞춰 계절에 따라 바꾸었다. 봄의 빛깔은 청색이므로 푸른빛을 띠는 버드나무 판에 구멍을 내고 느릅나무 막대기로 비벼 불씨를 일으켰다. 여름은 적색이므로 붉은 살구나무 판에 대추나무, 가을은 백색이므로 하얀 참나무 판에 산유자나무, 겨울은 흑색이므로 검은 박달나무 판에 느티나무를 사용했다.

부엌의 불씨를 꺼뜨리면 절대로 안 되는데도 절기마다 불을 바꾼 이유는 오래 그대로 쓰면 불꽃에 양기(陽氣)가 지나쳐 돌림병의 원인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불은 소중한 것이어서 나라가 직접 관리했다. 태종 6년(1406)에 시행된 개화령(改火令)은 성종 2년(1471)에 더 강화돼 궁궐의 병조(兵曹)에서 국화(國火)를 만들어 한성부로 내려 보내고, 고을마다 같은 방식으로 집마다 나누어주되 어기는 자는 벌을 주게 했다.

고종실록 1년(1864)에 “3월 30일(그때는 이날이 입하였나 보다) 경오일 신시 3각에 입하에 대한 개화를 올릴 때 종묘서 사직서 영희전 영녕전 효문전 경모궁 육상궁 선희전 경호궁 경수궁에는 전례대로 개화하고, 규장각 의정부 승정원 한성부에는 똑같이 불을 나누어 주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왕이 알았다고 전교했다는 기록이 있다.

삼마태수ㅣ三馬太守

삼마태수ㅣ三馬太守

삼마태수ㅣ三馬太守

○ 재물에 욕심이 없는 깨끗한 관리

○ 三(석 삼) 馬(말 마) 太(클 태) 守(지킬 수)

세 마리의 말을 타고 오는 수령(守令)이라는 뜻으로,재물(財物)에 욕심이 없는 깨끗한 관리(官吏), 청백리(淸白吏)를 이르는 말

한 고을의 수령이 부임지로 나갈 때나 또는 임기가 끝날 때 감사의 표시로 보통 그 고을에서 가장 좋은 말 여덟 마리를 바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었다.그런데 조선 중종 때 송흠(宋欽)이라는 분은 세로 부임해 갈 때 세 마리의 말만 받았으니, 한 필은 본인이 탈 말, 어머니와 아내가 탈 말이 각각 한 필 그래서 총3필을 받아 그 당시 사람들이 송흠을 삼마태수라 불렀으니 청백리를 가리킨다.

참고로 고려 충렬왕 때는 임기가 끝나는 부사에게 7필의 말을 바치는 법이 있었는데 최석이라는 승평(지금의 순천)부사는 그 7마리의 말을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애초 받치려던 말이 망아지를 낳아 8마리의 말을 승평고을 백성들에게 돌려주었다.

이에 부민들이 최석의 뜻을 기려 비를 세웠는데 바로 팔마비(八馬碑)다. 지금도 순천을 팔마의 고장이라고 하여 청백리의 고장으로 자부심이 대단하다. 조선조에 와서는 세종 때 맹사성은 공무를 수행할 때도 말을 따고 다니지 않고 소를 타고 다니는 청백리로 유명하다

고복격양ㅣ鼓腹擊壤

고복격양ㅣ鼓腹擊壤

고복격양ㅣ鼓腹擊壤

○ 배를 두드리고 발을 구르며 흥겨워한다

○ 鼓(칠 고) 腹(배 복) 擊(칠 격) 壤(땅 양)

배를 두드리고 발을 구르며 흥겨워한다는 뜻으로 태평 성대를 형용하여 이르는 말.

먼 옛날 중국에 성천자(聖天子)로 이름난 요(堯) 임금이 선정을 베풀어 온 지도 어느덧 50년이 지났다. 하루하루를 태평하게 지내던 어느 날, 요 임금은 정말로 세상이 잘 다스려지고 있는지 궁금하여 미복(微服)을 하고 민정(民情)을 살펴보러 나갔다. 어느 네거리에 이르자 아이들이 손을 맞잡고 요 임금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우리가 이처럼 잘 살아가는 것은立我烝民(입아증민)모두가 임금님의 지극한 덕이네莫匪爾極(막비이극)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지만不識不知(불식부지)임금님이 정하신 대로 살아가네順帝之則(순제지칙)마음이 흐뭇해진 요 임금은 어느새 마을 끝까지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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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에는 하얀 한 노인이 손으로 배를 두드리고鼓腹 발로 땅을 구르며擊壤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네日出而作 日入而息(일출이작 일입이식)밭을 갈아 먹고 우물을 파서 마시니耕田而食 鑿井而飮(경전이식 착정이음)임금님의 힘이 나에게 무슨 소용인가? 帝力何有于我哉(제력하유우아제)요 임금은 정말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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