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6일 일요일

하족괘치ㅣ何足掛齒

하족괘치ㅣ何足掛齒

하족괘치ㅣ何足掛齒

○ 말할 가치가 없는 사소한 일

○ 何(어찌 하) 足(발 족) 掛(걸 괘) 齒(이 치)

말을 할 자리가 아닌데 끼어들었다가 본전도 못 찾는 경우가 있다. 역시 이럴 때는 침묵이 제일인데 꼭 말해야 한다면 어찌 족히(何足) 말을 할 필요(掛齒)가 있겠는가 하며 물러서는 것도 방법이다. 말을 꺼낼 가치가 없는 사소한 일이라는 뜻도 된다. 이 성어가 처음 유래한 것은 중국 秦(진)나라의 始皇帝(시황제)를 이어 받은 2세 황제 胡亥(호해)의 어전회의에서다. 아무리 어리석고 통일왕국을 망하게 했더라도 막강 권력의 황제 앞이니 바른 말이 나오기 어렵다. 언변과 문학에 뛰어난 박사 叔孫通(숙손통)이라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호해가 왕위에 오르고부터 나라가 어지러워져 각지에서 군웅들이 궐기했다. 농민들을 이끌던 陳勝(진승)이 반란을 일으켜 張楚(장초)를 세웠다. 학정에 시달리던 여러 지역에서 호응하여 조정을 위협할 정도로 세력을 떨쳤다. 다급해진 호해가 박사들과 여러 유생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이구동성 반역이라며 토벌해야 한다고 했다. 황제가 크게 노한 얼굴이 되자 숙손통이 나섰다. 나라가 통일되고 법령이 갖춰져 있으니 모반이 아니라며 말한다. ‘이들은 쥐나 개와 같은 좀도둑일 뿐 그것을 입에 담아 거론할 가치도 없습니다.’ 치아 사이에 넣을 것이 못 된다는 것은 의논할 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숙손통은 위기를 넘겼지만 황제의 심기만 살피고 바른 간언을 못해 진나라는 망했다. ‘말이란 탁 해 다르고 툭 해 다르다’는 말이 있다. 같은 내용이라도 표현하는데 따라 아주 다르게 들린다. 잘못을 보고도 바로잡지 않고 침묵을 지키면 그 때는 금이 아니다.

갯버들

갯버들

갯버들

이름 : 갯버들

학명 : Salix gracilistyla

과명 : 버드나무목

분포 : 한국·일본·중국·우수리강(江) 연안

크기 : 높이 1∼2m

개화 : 4월

꽃말 : 포근한 사랑, 노력

포류(蒲柳)·수양(水楊)·세주류(細柱柳)라고도 한다. 강가에서 많이 자란다. 높이 1∼2m이고 뿌리 근처에서 가지가 많이 나오며 어린 가지는 노란 빛이 도는 녹색으로 털이 있으나 곧 없어진다.

잎은 거꾸로 세운 바소꼴 또는 넓은 바소꼴로 양 끝이 뾰족하고 톱니가 있으며 잎자루의 길이는 3∼10mm이다. 잎 표면은 털이 덮여 있다가 없어지고, 뒷면은 털이 빽빽이 나서 흰 빛이 돌거나 털이 없는 것도 있다.

꽃은 단성화로 4월에 잎겨드랑이에서 어두운 자주색 꽃이 핀다. 수꽃이삭은 넓은 타원형으로 수술이 2개이고, 암꽃이삭은 긴 타원형으로 꿀샘이 1개이며 붉은색이다. 포는 긴 타원형으로 털이 있고 암술머리는 4개이다.

열매는 삭과로서 긴 타원형이며 길이가 3mm 정도이고 털이 있다. 4∼5월에 덜 익은 열매를 그대로 식용한다. 제방의 방수림으로 적당하며 1∼2년생 가지는 꽃꽂이 소재로 사용된다. 내한성과 맹아력이 크며 오리나무·키버들 등과 함께 섞여 자란다. 한국·일본·중국·우수리강 연안 등지에 분포한다.

-사진 : 임규동의 사진세상-

의이명주ㅣ薏苡明珠

의이명주ㅣ薏苡明珠

의이명주ㅣ薏苡明珠

○ 율무를 빛나는 구슬로 보다, 억울한 수뢰 혐의

○ 薏(율무 의) 苡(질경이 이) 明(밝을 명) 珠(구슬 주)

수레에 싣고 온 율무를 뇌물로 받은 明珠(명주)라고 옭아매는 바람에 억울한 누명을 썼다. 터무니없는 수뢰의 참소를 받거나, 반대로 근거 없이 남을 비방할 때 사용되는 말이다. 薏(의)는 ‘억’으로도 읽혀 薏苡明珠(억이명주)라고도 쓴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그 동안 쌓은 명예가 땅에 떨어진 사람은 後漢(후한)의 명장이었던 馬援(마원, 기원전14~기원후49)이다. 光武帝(광무제)를 도와 북방 이민족을 평정하고, 남쪽의 베트남 북부 交趾(교지)의 난을 진압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흉노를 정벌할 때 말가죽으로 자기의 시체를 싼다는 馬革裹屍(마혁과시, 裹는 쌀 과)의 결의를 보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마원이 교지를 정벌하러 갔을 때 땅은 비록 황폐했지만 율무라는 식물이 생산되고 있었다. 그 열매를 먹으면 몸이 건강해지고 풍토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했다.

마원은 교지에 있을 때 부하와 함께 자주 복용했고, 임무를 마치고 철군할 때 종자로 삼기 위해 한 수레 가득 싣고 돌아왔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 리 없는 사람들은 싣고 온 것이 남방의 진주나 코뿔소 뿔일 것(以爲前所載還 皆明珠文犀/ 이위전소재환 개명주문서)이라며 매우 부러워했다. 犀는 무소 서. 조정에서도 뒷말이 있었으나 공을 세우고 돌아온 마원에게 더 이상 캐물을 수 없었다. 몇 년 후 마원이 변방 정벌 중 전장에서 숨지자 황제의 사위인 梁松(양송)이 옛날 수레 한 가득 보물을 싣고 온 적이 있다고 상소하는 바람에 작위가 모두 몰수되었다. 마원의 부인이 눈물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바람에 진상을 알게 된 황제는 명예를 회복시켜 주고 장례를 후하게 치르게 했다. ‘後漢書(후한서)’ 마원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복수불반분ㅣ覆水不返盆

복수불반분ㅣ覆水不返盆

복수불반분ㅣ覆水不返盆

○ 한번 쏟은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다

○ 覆(다시 복) 水(물 수) 不(아닐 불) 返(돌이킬 반) 盆(동이 분)

한번 쏟은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다는 뜻으로, ①한번 헤어진 부부(夫婦)가 다시 결합(結合)할 수 없음을 비유(比喩ㆍ譬喩)한 말 ②한번 끝난 일은 되풀이 못함

주(周)의 무왕(武王)을 도와 은(殷)의 주왕을 몰아 내는데 큰 공을 세워 후에 제(齊)나라의 왕이 된 강태공(姜太公)이 벼슬하지 아니했을 때 그의 아내 마씨(馬氏)는 남편이 학문(學問)에만 열중(熱中)하고 가정을 돌보지 않는다는 이유(理由)로 집을 나가 버렸다. 그 뒤 문왕에게 등용(登用ㆍ登庸)되어 공을 세우고 제(齊)나라 왕이 되자 마씨가 강태공(姜太公)의 앞에 나타나 거두어 줄 것을 원했다. 그러자 물 한 동이를 길어오게 한 다음 그 물을 땅에 쏟아 담아 보라고 했으나 담지 못했다. 강태공(姜太公)이 말하기를 「그대는 이별(離別)했다가 다시 결합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미 엎지르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는 것이다.」 약능이경합(若能離更合)이나 복수정난수(覆水定難水)라 하고 마씨를 아내로 맞아 들이지 않았다

단도직입ㅣ單刀直入

단도직입ㅣ單刀直入

단도직입ㅣ單刀直入

○ 혼자서 칼을 휘두르고 거침없이 적진으로 쳐들어가다.

○ 單(홑 단) 刀(칼 도) 直(곧을 직) 入(들 입)

혼자서 칼을 휘두르고 거침없이 적진(敵陣)으로 쳐들어간다는 뜻으로, ①문장(文章)이나 언론(言論)의 너절한 허두(虛頭)를 빼고 바로 그 요점(要點)으로 풀이하여 들어감 ②생각과 분별(分別)과 말에 거리끼지 아니하고 진경계(眞境界)로 바로 들어감

군말이나 인사말 따위 없이 곧장 요지를 말함. 에둘러 표현하는 대신 직접 문제점을 지적함. 홀로 칼을 들고 곧장 들어가다. 홀로 적진을 향해 한 자루의 칼을 휘두르며 곧장 쳐들어가는 것.

붕정만리ㅣ鵬程萬里

붕정만리ㅣ鵬程萬里

붕정만리ㅣ鵬程萬里

○ 붕새가 날아갈 길이 만리라는 뜻

○ 鵬(붕새 붕) 程(길 정) 萬(일만 만) 里(거리 리)

붕새가 날아갈 길이 만리라는 뜻으로,머나먼 노정(路程), 또는 사람의 앞날이 매우 요원하다라는 뜻

북쪽바다에 큰 고기가 있으니, 그 이름을 곤이라 한다. 곤의 큰 것은 그 몇 천리나 되는지 알지 못한다. 화하여 새가 되니, 그 이름을 붕새라 한다. 붕새의 등은 그 몇 천리인지 알지 못한다. 성내어 날면 그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다. 이 새는 바다의 기운으로 장차 남쪽바다로 옮기는데, 남쪽 바다는 하늘의 연못이다. 재해라는 사람이 있어 다음과 같이 괴이한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 있다.

붕새가 남쪽 바다로 옮김에, 물을 치기를 삼천리나 하고, 거기서 일어나는 선풍을 타고 위로 올라가기를 구만리나 하며, 6개월이나 걸려서 남쪽 바다에 가선 쉰다. 아지랑이와 티끌과 먼지와, 생물들이 뿜어내건만, 하늘은 푸르고 푸르니,

그 올바른 색깔인가? 그 멀어서 끝간 데가 없는 까닭인가? 그 내려다봄에 또한 이와 같을 뿐이다.

또한 대저 물의 쌓임에 두텁지 않으면, 큰 배를 띄움에 힘이 없고, 술잔의 물을 뜰의 파인 곳에 부으면, 지푸라기는 배가 되어 뜨지만, 잔을 놓으면 엎어진다. 물은 얕은데 배는 크기 때문이다. 바람의 쌓임이 두텁지 못하면, 그 큰 날개를 띄움에 힘이 없다. 그러므로 9만리면 바람이 그 아래에 있다.

그리하여 뒤에 곧 바람을 타고 푸른 하늘을 등지고서, 아무것도 걸리는 것이 없다. 이리하여 지금 비로소 붕새는 남쪽으로 날아가려는 것이다.

비견계종ㅣ比肩繼踵

비견계종ㅣ比肩繼踵

비견계종ㅣ比肩繼踵

○ 많은 사람으로 북적거리고 있는 모양

○ 比(가지런할 비) 肩(어깨 견) 繼(이을 계) 踵(발꿈치 종)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발 뒤꿈치를 잇는다」는 뜻으로, ①계속(繼續)해서 끊이지 않고 잇달아 속출함을 말함 ②또 여러 사람을 줄지어 세우는 것을 의미(意味)하기도 함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대부(大夫) 안영은 몸집이 작고 미남자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뼈가 가루가 될 정도로 국가를 위해 충성을 다했다.

안영이 초(楚)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의 일이다. 당시의 초나라 영왕(靈王)은 자국의 강대함을 교만하게 뻐겼다. 그는 대신들과 상의해 안영에게 모욕을 주려고 계략을 세웠다.

안영이 탄 수레가 초나라 도성의 동문에 접근하자, 성문이 철컥 닫혀 버렸다. 그는 성루에 있는 문지기더러 문을 열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성문 옆의 조그만 문이 열렸다. 안영이 말했다. "이건 개나 드나드는 문이 아닌가. 나는 군자의 나라에서 온 사람인데, 그러고 보니 이 나라는 개의 나라인가 보군."

보고를 받은 영왕이 몹시 놀라며 말했다. "그를 우롱해 주려고 생각했었는데 거꾸로 우롱을 당했군." 그리고 사람을 보내어 성문을 열게 했다. 이튿날 오전에 안영은 왕궁으로 갔다. 궁전에는 문무 고관들이 쭉 늘어 앉아 있었다. 그 중에는 안영에게 도발적이고 모욕적인 발언을 하는 자도 있었으나, 그는 그것들을 가볍게 받아 넘겼다. 이윽고 많은 시녀들을 거느리고 나타난 영왕은 안영을 보고 놀란 듯이 말했다.

"제나라에는 어지간히 인물이 없는가 보군. 그대와 같은 자를 보내다니." "거 무슨 말씀이오. 제나라 도성은 3만호. 소매를 뻗치면 하늘을 가리고, 땀을 뿌리면 비를 이루오. 어깨가 맞닿고 다리가 서로 부딪칠 정도로 사람이 많소. 그런데 어째 사람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영왕은 말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그대 같은 소인물(小人物)을 보낸 거요?" 안영은 미소 지었다. "제나라에는 사자를 보내는 기준이 있소이다. 대인물은 현군이 있는 나라로, 소인물은 암군(暗君)이 있는 나라로 보내기로 되어 있소. 나는 무능한 소인물이므로 그에 알맞은 나라에 보내진 것이요." 영왕은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리고 안영을 새삼스레 재인식하고 예우를 갖춰 대접했다.

호모부가ㅣ毫毛斧柯

호모부가ㅣ毫毛斧柯

호모부가ㅣ毫毛斧柯

○ 화근은 처음부터 잘라야 한다

○ 毫(터럭 호) 毛(터럭 모) 斧(도끼 부) 柯(가지 가)

수목(樹木)을 어릴 때 베지 않으면 마침내 도끼를 사용(使用)하는 노력(努力)이 필요(必要)하게 된다는 뜻으로,화(禍)는 미세(微細)할 때에 예방(豫防)해야 함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로 쓰임.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막지 못한다’는 속담이 있다. 사람에게도 해당된다. 나쁜 버릇은 어릴 때 고쳐야 한다는 ‘세 살 버릇 여든 까지 간다’이다. 범죄를 소탕할 때 자주 등장하는 拔本塞源(발본색원)이나 잡초를 벨 때 뿌리까지 없애라는 斬草除根(참초제근)도 화근은 크기 전에 없애야 함을 가르친다.

중국 周(주)나라부터 秦(진)의 통일에 이르기까지 전략가들의 변론과 책모를 엮은 ‘戰國策(전국책)’에 이 비유가 사용됐다. 이 책은 前漢(전한)의 학자 劉向(유향)의 저작으로, 공자의 春秋(춘추)가 춘추시대란 말을 낳은 것과 같이 전국시대란 말을 처음 비롯되게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책 魏策(위책)에는 合從連衡(합종연횡, 衡은 저울대 형, 또는 가로 횡)으로 유명한 종횡가 蘇秦(소진)이 魏(위)나라 襄王(양왕)을 찾아가 유세하는 가운데 인용한 말이다. 위나라의 국력이 결코 작지 않은데 당시의 강국 秦(진)과 연합하면 속국밖에 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진에 대항하려면 주변 6국이 힘을 합치는 合從策(합종책)을 써야 한다며 위왕을 설득한다. ‘처음 싹을 자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터럭같이 작을 때 치지 않으면 결국 도끼를 써야 합니다(綿綿不絕 縵縵奈何 毫毛不拔 將成斧柯/ 면면부절 만만내하 호모불발 장성부가).’. 縵은 비단, 에워쌀 만. 소진의 변설에 위왕은 합종책을 쓰기로 하고 재상을 맡겼다.

아버지의 크리스마스 선물 / 박동규

아버지의 크리스마스 선물 / 박동규

아버지의 크리스마스 선물 / 박동규

부모님은 무엇을 사달라고 하면 “크리스마스에 보자”고 하셨다.

가난했기에 다섯 형제들이 무엇을 사달라고 하면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해 고등학교 입학식에 가보니 반 아이들이 대부분 구두를 신고 있었다.

나는 속이 상했다.

그래서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구두를’ 하고 마음에 품었다.

12월 20일 저녁 아버지는 우리 다섯 형제를 안방에 불러 앉혔다.

노트와 연필을 들고 아버지는 막내부터 “무엇을 사줄까?” 하고 물으셨다.

막내는 썰매를 사달라고 했다.

여동생 차례가 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던 여동생은 다른 형제와는 달리 벌떡 일어서더니

“아버지 털오버 사주세요” 하는 것이었다.

순간 우리 모두가 놀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난한 시인이던 아버지는 주머니에 얼마를 넣고 아이들 앞에 앉아 있었겠는가.

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변했고 손에 든 연필과 노트가 떨렸다.

고개 숙인 아버지는 한참 후 약속을 한 것이라 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들면서

“그래, 사줄게. 그런데 아버지가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준비가 되지 않았어.

겨울이 가기 전에 꼭 입혀줄게”하였다.

그 다음 아버지는 나를 보면서 ‘무엇을 사줄까?"물었다.

나는 눈앞에 연필과 노트를 들고 떨고 있던 아버지 모습만 보였지 구두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털장갑이요”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이상했는지 다시 한 번 물었다.

“털장갑?”

“네”

이것으로 끝났다.

밤이 되어 내 방 전등을 끄고 이불 속에 들어갔다.

누구를 원망할 수 없었고 불쌍한 아버지 얼굴을 생각하면 어찌 할 수 없었지만

거품처럼 사라진 구두는 쓸데없이 눈물을 나오게 했다.

그때 방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왔다.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내 눈물을 닦아주며 “이게 철이 들어서, 철이 들어서...”하면서 우셨다.

불쌍한 아버지의 얼굴을 한 번 본 것이 내 성장의 매듭이 되었다.

-글 쓰신분은 박동규 교수이고 그 아버지는 박목월 시인이다.-

삼령오신ㅣ三令五申

삼령오신ㅣ三令五申

삼령오신ㅣ三令五申

○ 세 번 호령하고 다섯 번 거듭 말하다

○ 三(석 삼) 令(하여금 령) 五(다섯 오) 申(거듭 신)

세 번 호령(號令)하고 다섯 번 거듭 일러준다는 뜻으로,옛 군대(軍隊)에서 여러 차례(次例) 되풀이하여 자세(仔細)히 명령(命令)함을 이르는 말

귀에 못이 박이도록 거듭 말하고 또 말하는 내용이라면 아주 중요한 일이겠다. 그런데 말을 못 알아들을 리 없는 엘리트들이 馬耳東風(마이동풍)이다. 육군 장성을 비롯한 고급 지휘관들이 뇌물수수와 성범죄에 연루된 사건이 있었다. 윤 일병 폭행 사망사건 이후 대대적 병영 혁신을 다짐했다지만 ‘도로아미타불’이 됐다.

세 번을 명령하고(三令) 다섯 번을 거듭(五申) 당부하는 것은 군령이다. 그것도 훈련을 받지 않은 여자들에게 내리는 것이다. 처음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一絲不亂(일사불란)하게 이행된다. 사고투성이 군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고사성어가 수두룩한 司馬遷(사마천)의 ‘史記(사기)’에 三令五申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春秋時代(춘추시대) 吳王(오왕) 闔閭(합려)는 ‘孫子兵法(손자병법)’을 모두 읽고 그 책을 쓴 지략가 孫武(손무)를 무척 존경하여 초빙해 왔다. 어느 날 오왕이 손무에게 병법을 이용하여 궁녀들을 훈련시켜 보라고 했다. 손무는 오왕이 골라 온 미녀 180명을 두 편으로 나누고 애첩 두 사람에게 대장을 맡긴 뒤 조련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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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는 앞으로!, 왼쪽!, 뒤로! 하고 외치면 그 쪽으로 보도록 군령을 정하고 훈련에 들어갔으나 모두 키득거리기만 한다. 처음 잘못은 장수가 제대로 설명을 못했기 때문이라며 다시 가르친 후 훈련했지만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웃기만 했다. 이번은 군령이 잘 전달되었는데도 이행이 안 되는 것은 대장 책임이라며 군법에 의해 처단하려 했다. 오왕이 깜짝 놀라 죽이지 말라고 간청했으나 ‘실전에서는 왕의 명령이라도 거역할 수 있습니다’ 하며 두 대장을 참수했다. 다시 대장을 임명한 뒤 훈련에 들어가니 그야말로 제식훈련을 받은 듯 잘 움직였다. 오왕 합려는 손무의 용병술을 받아들여 장수를 맡기고 춘추 강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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