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8일 화요일

중구난방ㅣ衆口難防

중구난방ㅣ衆口難防

중구난방ㅣ衆口難防

○ 여러 사람의 입은 막기가 어렵다

○ 衆(무리 중) 口(입 구) 難(어려울 난) 防(막을 방)

여러 사람의 입을 막기 어렵다는 뜻으로,막기 어려울 정도(程度)로 여럿이 마구 지껄임을 이르는 말

어떤 사안에 대해 의견이 일치되긴 어렵다. 더군다나 이해가 갈린 경우라면 사람마다 각각의 처방을 낸다. 조금씩 양보를 하고 합리적인 차선책을 찾는 것이 민주적이라고 교육은 받아왔지만 막상 자신이 관련되면 싹 무시한다. 여러 사람이 입을 모아 주장하면(衆口) 막기 어렵다(難防)는 성어는 처음엔 이같이 支離滅裂(지리멸렬)을 뜻하지 않았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앞의 周(주, 기원전 1046년∼771년)나라 때 있었던 이야기가 ‘十八史略(십팔사략)’에 실려 전해오는 이야기는 이렇다. 이 책은 元(원)나라의 曾先之(증선지)가 편찬한 중국의 역사서로 초학자들의 교과서 구실을 했다.

주의 厲王(여왕)은 국정을 비방하는 사람이 있으면 가차 없이 벌을 줬다. 백성들은 불만이 있어도 밀고가 두려워 입을 닫았다. 여왕은 반대하는 백성들이 사라지자 정치를 잘 하는 줄 알고 기고만장했다. 이 때 召公(소공)이 탄압정책에 반대하며 이렇게 간했다.

‘나라가 조용한 것은 비방을 억지로 막은 것에 불과합니다. 백성들의 입을 막는 것은 개천을 막는 것보다 어렵습니다(防民之口 甚於防川/ 방민지구 심어방천)’라며 개천이 막혔다가 터지면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백성들 또한 이와 같으니 다스리는 사람은 그들이 생각하는 말길을 틔워줘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러나 여왕은 이런 충언을 무시했다가 백성들이 난을 일으키자 달아나 평생 숨어 살게 되었다고 한다.

호사토비ㅣ狐死兎悲

호사토비ㅣ狐死兎悲

호사토비ㅣ狐死兎悲

○ 여우의 죽음에 토끼가 슬피 울다.

○ 狐(여우 호) 死(죽을 사) 兔(토끼 토) 悲(슬플 비)

여우가 죽으면 토끼가 슬퍼한다는 뜻으로,동류(同類)의 불행(不幸)을 슬퍼함. 여우가 죽었을 때(狐死) 토끼가 슬피 운다(兎悲)는 이 성어는 같은 처지의 동류끼리 불행을 위로한다는 뜻도 있고, 마음속으로는 좋아하면서 겉으로는 슬픈 척 하는 것을 비유하기도 한다.

중국 元(원)나라 때 완성된 ‘宋史(송사)’의 李全(이전)전에서 이 말이 유래했다. 송나라 말기, 1127년 女眞(여진)이 세운 金(금)나라가 쳐들어와 왕을 포로로 잡아갔기 때문에 강남으로 쫓겨 가 南宋(남송)이 건립되었다. 졸지에 나라를 빼앗긴 강북 지역의 한인들은 곳곳에 자위를 위한 집단을 이루었고, 옛 땅을 찾기 위한 의병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楊妙眞(양묘진)이란 여걸이 오라버니 楊安兒(양안아)가 의병을 이끌다 전투 중 죽음을 당해 무리를 이끌게 됐고 이전이란 사람도 합류했다.

이전과 양묘진은 부부가 되어 남송과 금 사이에서 교묘히 줄타기를 했다. 楚州(초주) 지역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을 때 남송에선 夏全(하전)이 이끄는 군대가 쳐들어왔다. 하전이 남송에 귀순한 의병 출신인 것을 알고 양묘진이 사람을 보내 말을 전했다. ‘여우가 죽으면 토끼가 슬퍼서 우는 법인데 이 쪽이 죽으면 그쪽도 어찌 홀로 살 수 있겠습니까(狐死兎泣 李氏滅 夏氏寧獨存/ 호사토읍 이씨멸 하씨녕독존)?’ 이 쪽은 물론 이전, 상대는 하전이다. 이 말을 들은 하전은 옳다고 여겨 공격을 멈췄으나 배반을 당해 나중 금나라에 투항했다. 여우 죽음을 슬퍼해 주려다 속아 넘어간 것이다.

수구초심ㅣ首丘初心

수구초심ㅣ首丘初心

수구초심ㅣ首丘初心

○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

○ 首(머리 수) 丘(언덕 구) 初(처음 초) 心(마음 심)

여우는 죽을 때 구릉을 향(向)해 머리를 두고 초심으로 돌아간다라는 뜻으로, ①근본(根本)을 잊지 않음 ②또는 죽어서라도 고향(故鄕) 땅에 묻히고 싶어하는 마음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을 도와서 은(殷)나라를 멸하고 주(周)나라를 일으킨 여상(呂尙) 태공망(太公望)은 제(齊)나라에 있는 영구(營丘)에 봉해졌는데, 계속해서 다섯 대(代)에 이르기까지 주(周)의 호경(鎬京)에 반장(反葬)했다. 군자께서 이르시기를 음악은 그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바를 즐기며 예(禮)란 그 근본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옛사람의 말에 이르되, 여우가 죽을 때에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바르게 향하는 것은 인(仁)이라고 하였다.

맹모삼천ㅣ孟母三遷

맹모삼천ㅣ孟母三遷

맹모삼천ㅣ孟母三遷

○ 교육에는 주위 환경이 중요하다는 가르침

○ 孟(맏 맹) 母(어머니 모) 三(석 삼) 遷(옮길 천)

맹자(孟子)의 어머니가 맹자(孟子)를 제대로 교육(敎育)하기 위(爲)하여 집을 세 번이나 옮겼다는 뜻으로,교육(敎育)에는 주위(周圍) 환경(環境)이 중요(重要)하다는 가르침

동양 사상의 정점을 차지하는 공자의 수제자요, 왕도정치(王道政治)와 성선설(性善說)의 주창자로 이름 높은 맹자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아들 교육에 지극한 정성을 쏟았다. 아버지가 죽고 나서 맹자가 어머니를 따라 처음으로 이사한 곳은 공동묘지 근처였다. 그러자, 맹자는 묘지 구덩이를 파고 곡을 하며 장례를 치르는 흉내만 내며 놀았다.

‘여기는 결코 내 아들을 키울 곳이 못 되는구나.’

맹자의 어머니는 이렇게 생각하고 당장 이사를 서둘렀다. 그리하여 이사를 간 곳은 시장 근처였다. 그런데, 맹자가 이번에는 물건을 쌓아 놓고 손님을 꾀어 들여 흥정을 하며 물건을 팔고 사는 장사꾼의 흉내만 내는 것이었다.

‘여기도 안 되겠다.’

이렇게 판단한 맹자 어머니가 아들을 데리고 다시 이사를 간 곳은 서당 옆이었다. 그러자, 맹자가 이번에는 글 읽는 시늉을 하거나 제기(祭器)를 늘어놓고 제사를 지내는 흉내를 내며 놀았다.

‘옳지! 이곳이야말로 내 아들을 키울 수 있는 곳이구나.’

맹자의 어머니는 그제서야 기뻐하며 마음을 놓았다. 서당은 글뿐 아니라 유교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예절도 가르치므로 아들을 선비로 키울 수 있는 조건이 된다고 생각했다.

살다보면 별일이 다 있어요

살다보면 별일이 다 있어요

살다보면 별일이 다 있어요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참 좋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가장 좋은 말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어떤 말보다도 이 말은

가장 어른스럽게 세상을 포용하고자 하는

태도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

살다보면 별일이 까지는

",

그것 참 내 기준에서는 도무지 용납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며

고개를 가로젓는 듯하지만,

"

이내 다 있어요라며 어찌됐든

",

앞의 말을 껴안아 어루만지며

화해하려 애쓰는 것 말이다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다

그렇다고 내가 경험해보지 않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곧 비정상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살다보면

별일이 다 있기 때문이다

"

-허지웅 나의 친애하는 적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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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선여경ㅣ積善餘慶

적선여경ㅣ積善餘慶

적선여경ㅣ積善餘慶

○ 착한 일을 많이 행하면 경사가 따른다

○ 積(쌓을 적) 善(착할 선) 餘(남을 여) 慶(경사 경)

가훈으로도 적격인 이 성어는 積善之家 必有餘慶(적선지가 필유여경)의 준말이다. ‘易經(역경)’의 文言傳(문언전)에 실려 있다. 周(주)나라 때부터 내려왔다고 周易(주역)이라고도 하는 이 책은 三經(삼경)의 하나로 占卜(점복)을 위한 원전이라 일컫는다. 八卦(팔괘) 중에서 乾卦(건괘)와 坤卦(곤괘)의 해설을 담은 문언전의 부분을 옮겨보자. ‘선을 쌓는 집안은 반드시 남는 경사가 있고, 착하지 못한 일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남는 재앙이 있다. 신하가 그 임금을 죽이고 자식이 그 아비를 해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그 유래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積善之家 必有餘慶 積不善之家 必有餘殃 臣弑其君 子弑其父 非一朝一夕之故 其所由來者 漸矣/ 적선지가 필유여경 적불선지가 필유여앙 신시기군 자시기부 비일조일석지고 기소유내자 점의).’ 殃은 재앙 앙, 弑는 윗사람죽일 시.

금언과 명구를 모아 놓은 책 ‘明心寶鑑(명심보감)’에도 좋은 말이 빠질 수 없다. 姜太公(강태공)이 한 것으로 나오는 見善如渴(견선여갈), 莊子(장자)의 말이라며 一日不念善 諸惡皆自起(일일불념선 제악개자기/ 하루라도 착한 일을 생각하지 않으면 여러 악한 것이 모두 저절로 일어난다) 등이다. 洪自誠(홍자성)의 菜根譚(채근담)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선행이 더욱 값지다면서 ‘善之顯者功小 而隱者功大(선지현자공소 이은자공대)’라는 말도 남겼다.

망자재배ㅣ芒刺在背

망자재배ㅣ芒刺在背

망자재배ㅣ芒刺在背

○ 가시를 등에 지고 있다

○ 芒(가끄라기 망) 刺(가시 자) 在(있을 재) 背(등질 배)

가시를 등에 지고 있다는 뜻으로,마음이 조마조마하고 편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 등 뒤에 자기가 꺼리고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어서 마음이 편안하지 않은 것을 뜻한다

한나라 선제가 보위에 올랐을 때의 일이다. 선제가 고조의 묘를 알현하기 위해 출발할 때, 그의 호위를 담당한 자는 대장군 곽 광이었다. 곡 광은 일찍이 무제의 유조를 받들어 대사마대장군으로서 소제를 도왔으며, 그 다음 창읍왕이 음란한 행실을 계속하자 그를 폐위시켜 중기의 정치실력자 선제를 임금의 자리에 세웠던 인물이다.

곽 광의 권력이 하늘을 뚫을 정도였으므로 선제는 내심 그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곽 광과 함께 가는 것이 마치 가시를 등에 진 것과 같이 불편하였다. 이 당시 그의 표정은 마치 무엇엔가 위협을 받는 듯 불안해 하며 굳어 있었다. 그 후 거기장군 장안세가 곽 광을 대신하여 선제를 모신 적이 있었는데, 이때는 편안하고도 조용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불효유삼ㅣ不孝有三

불효유삼ㅣ不孝有三

불효유삼ㅣ不孝有三

○ 부모에게 불효하는 일 세 가지

○ 不(아닐 불) 孝(효도 효) 有(있을 유) 三(석 삼)

부모(父母)에게 불효(不孝)하는 일에 세 가지가 있다는 뜻

첫째 부모(父母)에게 영합하여 불의(不義)에 빠지게 하는 일, 둘째 집이 가난하고 부모(父母)가 늙어도 벼슬하지 않는 일, 셋째 장가가지 않고 자식(子息)이 없어 선조(先祖)의 제사(祭祀)를 끊는 일의 세 가지라 하였다.

곤수유투ㅣ困獸猶鬪

곤수유투ㅣ困獸猶鬪

곤수유투ㅣ困獸猶鬪

○ 위급할 때는 약한 짐승이라도 싸우려고 덤빔

○ 困(곤할 곤) 獸(짐승 수) 猶(오히려 유) 鬪(싸울 투)

위급(危急)한 경우(境遇)에는 짐승일지라도 적을 향(向)해 싸우려 덤빈다는 뜻으로,곧 궁지(窮地)에 빠지면 약한 자가 도리어 강(强)한 자(者)를 해칠 수 있다는 뜻

위험한 상황에 부딪치면 잽싸게 달아나는 쥐는 ‘고양이 앞에 쥐’란 말대로 고양이 앞에선 더욱 약하다. 이런 약점을 잡고 고양이가 막다른 곳까지 쥐를 몰아넣으면 어떻게 될까. ‘궁지에 빠진 쥐가 고양이를 문다’는 속담처럼 최후의 발악을 할 것이다. 窮鼠齧猫(궁서설묘, 齧은 깨물 설)란 성어대로 고양이가 당황하는 처지가 된다. 새도 막다른 곳까지 쫓기면 덤빈다는 鳥窮則啄(조궁즉탁)이나 심하게 괴롭히면 사로잡힌 새도 수레를 엎는다는 禽困覆車(금곤복거) 등 유사한 성어도 여럿이다.

아무리 약한 짐승이라도 곤경에 빠지면(困獸) 오히려 덤벼든다(猶鬪)는 이 말도 마찬가지 뜻이다.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에 나온다. 무지렁이 순박한 사람일수록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이판사판 저항하게 되는 것을 비유했다. 사지에 몰린 적을 벼랑까지 쫓으면 결사적인 반격을 받게 되므로 피해야 한다는 孫子兵法(손자병법)의 窮寇勿迫(궁구물박)도 같은 의미의 경계다.

宣公(선공) 12년조에 실린 내용을 간추려보자. 晉(진)나라 景公(경공, 재위 기원전 600~581)때 楚(초)와 큰 싸움이 벌어졌는데 진의 장수 荀林父(순림보)가 크게 패했다. 경공이 대로하여 순림보를 참형에 처하려 하자 대부 士貞子(사정자)가 나섰다. 이전 文公(문공)이 초나라에 대승을 거두고도 근심에 싸여 있었는데 그 이유를 묻자 적의 장수가 살아 있었기 때문이라며 말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곤경에 빠진 짐승일수록 더욱 힘껏 싸우는 법인데 하물며 재상이 살아 있으니 말할 나위 있겠는가(困獸猶鬪 況國相乎/ 곤수유투 황국상호)?’라고 문공이 말했다며 장수를 죽이는 것은 두 번 패하는 일이라고 간했다. 경공은 옳게 받아들이고 순림보의 관직을 회복시켰다.

반부논어ㅣ半部論語

반부논어ㅣ半部論語

반부논어ㅣ半部論語

○ 반 권의 논어, 학습의 중요함

○ 半(반 반) 部(떼 부) 論(논할 논) 語(말씀 어)

반 권의 논어(論語)라는 뜻으로, 자신의 지식을 겸손하게 이르거나 학습의 중요함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송(宋)나라 나대경(羅大經)이 쓴 《학림옥로(鶴林玉露)》에 나온다.

송(宋)나라의 태조 조광윤(趙光胤)을 도와 천하를 통일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사람 가운데 조보(趙普)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어릴 때부터 전쟁터에 나가느라 글공부를 할 틈이 없어 학문에 어두웠으므로, 늘 이 점을 염려하여 퇴근한 뒤에는 두문불출(杜門不出)하며 글을 읽어 마침내 많은 학식을 갖추게 되었다.

태조가 죽고 태종이 즉위한 뒤에도 승상으로 임용되어 국정을 잘 살폈는데, 시기하는 사람들이 그를 몰아내기 위해 "그는 겨우 《논어》밖에 읽지 못해서 중책을 맡기기 어렵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태종이 조보를 불러 묻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신(臣)이 평생에 아는 바는 진실로 《논어》를 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반 권의 지식으로 태조께서 천하를 평정하시는 것을 보필하였고, 지금은 그 나머지 반으로써 폐하께서 태평성대를 이룩하시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臣平生所知 誠不出此 昔以其半輔太祖定天下 今欲以其半輔陛下治太平)."

"

나중에 조보가 죽은 뒤 가족이 유품을 정리하다가 그의 책 상자를 열어 보니, 정말 《논어》밖에 들어 있지 않았다고 한다. 반부논어는 위의 글에서 유래한 말로, 반부논어치천하(半部論語治天下)라고도 쓴다. 모름지기 학문을 하는 사람은 이렇듯 자신의 지식을 겸손해할 줄도 알아야 함을 이른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