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일 토요일

만전지책ㅣ萬全之策

만전지책ㅣ萬全之策

만전지책ㅣ萬全之策

○ 조금의 허술함도 없는 완전한 대책

○ 萬(일만 만) 全(온전할 전) 之(어조사 지) 策(꾀 책)

만전을 기하는 계책이란 말로, 조금도 허술함이 없는 아주 완전한 계책이라는 뜻.

만전(萬全)이란 가장 안전함을 가리키는 말로 사기(史記) 한비자(韓非子) 등 중국 고전 여러 곳에서 두루 쓰이고 있다. 후한서(後漢書) 유표전(劉表傳)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위(魏)의 조조(曺操)가 북방의 원소(袁紹)와 싸운 관도(官渡)의 싸움은 조조가 기반을 확고하게 다진 한판 승부로 평가된다. 당시 조조의 군대는 3만 명이었으나 원소의 군대는 10만 명이나 되었다. 조조는 한때 원소의 명장 안량(顔良)과 문추(文醜)를 죽이는 등 원소군에게 일격을 가했으나 수적 열세로 수세에 몰려 도읍인 허창으로 후퇴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군을 거느린 원소도 초기에 예봉이 꺾여 섣불리 공격하지 못하고 싸움은 소강 상태로 들어갔다. 이를 타개할 목적으로 원소는 유표에게 원조를 구하였다. 유표(劉表)는 당시 형주(荊州)에서 대군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는 원소를 돕겠다고 하였지만 성격이 우유부단하여 어느 한쪽을 도우려 하지 않고 싸움을 관망만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보다못한 한숭(韓嵩)과 유선(劉先)이 다음과 같이 유표를 설득하였다. “조조는 반드시 원소군을 격파하고, 그 다음엔 우리를 공격해 올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관망만 하고 있으면 양쪽의 원한을 사게 됩니다. 그러므로 강력한 조조를 따르는 것이 현명한 만전지책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의심이 많은 유표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뒤에 큰 화를 당하게 되었다.

여기서 만전지책이란 적절한 선택, 적절한 시간, 적절한 방법 등이 함께 갖추어진, 조금의 실수도 없는 가장 안전한 계책을 가리킨다.

한우충동ㅣ汗牛充棟

한우충동ㅣ汗牛充棟

한우충동ㅣ汗牛充棟

○ 장서(藏書)가 많음을 이르는 말

○ 汗(땀 한) 牛(소 우) 充(채울 충) 棟(마룻대 동)

수레에 실어 운반(運搬)하면 소가 땀을 흘리게 되고, 쌓아올리면 들보에 닿을 정도(程度)의 양이라는 뜻으로,장서(藏書)가 많음을 이르는 말

당(唐)나라의 명문가로 알려진 유종원(柳宗元)이 같은 시대(時代)의 역사학자 육문통을 위해 쓴 묘표(墓表)에 있는 말이다. 묘표란 죽은 사람의 사적과 덕행(德行)을 기리는 문장으로 돌에 새겨 무덤 앞에 세우는 것이다.

「공자(孔子)<춘추(春秋)>의 해석을 둘러싸고 1000명의 학자(學者)가 온갖 주석을 하고 있지만, 비뚤어진 해석이나 다른 학파에 대한 비난(非難), 공격(功擊)만이 눈에 띈다. 더욱이 그런 패거리들의 저작만이 세상(世上)에 횡행하고. (其爲書 處則充棟宇 出則汗牛馬 그 저서(著書)나 장서의 엄청남이란, 소장하면 건물을 꽉 메우고, 꺼내어 운반하게 되면 수레를 끄는 마소도 그 무게에 땀을 흘릴 정도다.)라는 상태다.

마이동풍ㅣ馬耳東風

마이동풍ㅣ馬耳東風

마이동풍ㅣ馬耳東風

○ 말의 귀에 동풍이 지나가다, 말을 흘려듣다.

○ 馬(말 마) 耳(귀 이) 東(동녘 동) 風(바람 풍)

말의 귀에 동풍이라는 뜻으로, 남의 비평(批評)이나 의견(意見)을 조금도 귀담아 듣지 아니하고 흘려 버림을 이르는 말

알아듣지도 못할 뿐 아니라 알려고 하지도 않는 사람을 말할 때 관련 속담이나 성어가 많다. ‘쇠귀에 경 읽기’, ‘말귀에 염불’, ‘담벼락하고 말하는 셈이다’ 등을 번역이나 한 듯이 들어맞는 말이 牛耳讀經(우이독경), 對牛彈琴(대우탄금)이다. 가을바람이 귀를 스쳐갔는데도 무엇이 지나갔는지 시치미를 떼고 모르쇠로 일관한다는 秋風過耳(추풍과이)도 같은 뜻으로 쓰인다.

비슷한 뜻의 많은 성어 중에서도 말 귀로 동풍이 스쳐간다는 이 말이 가장 유명한데 출처가 唐(당)나라 李白(이백, 701~762)의 시구에서 나와 가치를 높인다. 詩仙(시선)이라 불리는 이백은 그러나 혼돈의 시기에 태어나 이상을 펴보지도 못하고 술과 시로 보낸 불운의 시인이었다. 이백은 王去一(왕거일)이란 지인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한탄하며 불우한 처지를 적어 보낸 시 ‘寒夜獨酌有懷(한야독작유회)’에 공감했다. 겨울 밤 밝은 달 아래 독작을 하고 있을 그를 생각하며 지금 세상은 당시 왕족들 사이에서 인기 있던 鬪鷄(투계)의 기술도 없고, 변경의 싸움에서 작은 공을 세워 충신이나 된 듯이 날뛰는 세상에서 흉내도 낼 수 없는 처지를 한탄했다. 그러면서 이백은 답한다. ‘북창에 기대 앉아 시를 읊고 부를 짓는다지만(吟詩作賦北窓裏/ 음시작부북창리), 수많은 말이라도 술 한 잔 가치도 없네(萬言不直一杯水/ 만언부직일배수), 세상사람 이를 듣고 머리를 흔드는 것이(世人聞此皆掉頭/ 세인문차개도두), 마치 동풍이 말귀를 스치고 지나는 듯하구나(有如東風射馬耳/ 유여동풍사마이).’ 자신들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한탄하며 훗날 올바른 평가를 기다리자는 당부도 곁들였다.

득어망전ㅣ得魚忘筌

득어망전ㅣ得魚忘筌

득어망전ㅣ得魚忘筌

○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을 잊어버린다

○ 得(얻을 득) 魚(고기 어) 忘(잊을 망) 筌(가리(고기 잡는 기구) 전)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을 잊어버린다. 목적을 이루면 그 때까지 수단으로 삼았던 사물은 무용지물이 됨을 이르는 말.

"

장자(莊子) 외물편(外物篇)에 나오는 말이다. 통발은 물고기를 잡는 도구인데,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은 잊어버리고 만다. 올가미는 토끼를 잡는 도구인데, 토끼를 잡고 나면 올가미는 잊어버리고 만다. 이처럼 말이란 마음속에 가진 뜻을 상대편에게 전달하는 수단이므로 뜻을 얻으면 말은 잊어버리고 만다. 뜻을 얻고 말을 잊어버린 사람과 말하고 싶구나(筌者所以在魚 得魚而忘筌 蹄者所以在兎 得兎而忘蹄 言者所以在意 得意而忘言 吾安得夫忘言之人 而與之言哉).

",

위의 글에서 망전(忘筌)이나 망제(忘蹄), 망언(忘言)은 모두 시비(是非), 선악(善惡)을 초월한 절대 경지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득어망전이란, 진리에 도달하면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사용한 모든 수단을 버린다는 의미이다. 불경의 하나인 《사유경(蛇喩經)》에 보면 다음과 같은 비유가 나온다.

"비구들이여, 나는 너희들에게 집착을 버리도록 하기 위해 뗏목의 비유를 들겠다. 어떤 나그네가 긴 여행 끝에 바닷가에 이르렀다. 그는 생각하기를 바다 저쪽은 평화로운 땅이니 그리 가야겠다 하고 뗏목을 만들어 무사히 바다를 건넜다. 바다를 무사히 건넌 이 나그네는 그 뗏목을 어떻게 하겠느냐? 그것이 아니었으면 바다를 건너지 못했을 것이므로 은혜를 생각해 메고 가야겠느냐? 아니면, \이 뗏목 때문에 나는 바다를 무사히 건넜다. 다른 사람들도 이것을 이용하도록 여기에 두고 나는 내 갈길을 가자\ 하겠느냐. 이 나그네는 뗏목을 두고 가도 그의 할 일을 다한 것이 된다. 너희들도 이 나그네가 뗏목을 잊은 것처럼 궁극에는 교법마저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장자》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절대 경지에 들어서면 수단은 물론이거니와 절대 경지에 들어섰다는 것마저 잊으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득어망전이란, 자기의 뜻한 바를 이룬 후에는 그 수단이나 과정에 대하여는 애착을 갖지 말라는 것인데, 오늘날에는 토사구팽(兎死狗烹)처럼 배은망덕한다는 뜻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거어지탄ㅣ車魚之歎

거어지탄ㅣ車魚之歎

거어지탄ㅣ車魚之歎

○ 수레와 고기가 없음을 탄식함

○ 車(수레 거) 魚(고기 어) 之(어조사 지) 歎(탄식할 탄)

수레와 고기가 없음을 탄식한다는 뜻으로 사람의 욕심에는 한이 없음을 말합니다.

중국 전국시대 제 나라 맹상군의 식객 중에 풍환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별 하는 일도 없이 늘 대접 잘 안 해 준다고 투덜거렸답니다.

처음엔 상에 고기가 없다고 노래하고, 행사(幸舍)로 옮겨 생선이 밥상에 나오게 된 뒤에는, 또 출입할 때 타고 다닐 수레가 없다고 탄식한 고사입니다. 맹상군이 그 청을 다 들어 주었는데, 결국 풍환이 맹상군을 위해 큰 공을 세웠다고 합니다.

무신불립ㅣ無信不立

무신불립ㅣ無信不立

무신불립ㅣ無信不立

○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

○ 無(없을 무) 信(믿을 신) 不(아닐 불) 立(설 립)

믿음이 없으면 일어설 수 없다는 뜻으로,정치(政治)나 개인(個人)의 관계(關係)에서 믿음과 의리(義理)의 중요성(中要性)을 강조(强調)하는 말

"

믿음이 없으면 살아나갈 수 없다라는 뜻으로 논어(論語) ‘안연편(顔淵篇)’에 실린 공자(孔子)의 말에서 비롯되었다. 자공(子貢)이 정치(政治)에 관해 묻자, 공자는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足食), 군대를 충분히 하고(足兵), 백성의 믿음을 얻는 일이다(民信)”라고 대답하였다. 자공이 “어쩔 수 없이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공자는 군대를 포기해야 한다고 답했다. 자공이 다시 나머지 두 가지 가운데 또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묻자 공자는 식량을 포기해야 한다며, “예로부터 사람은 다 죽음을 피할 수 없지만, 백성의 믿음이 없이는 (나라가) 서지 못한다(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고 대답했다.

",

여기에서 정치나 개인의 관계에서 믿음과 의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로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는 표현이 쓰이기 시작하였다.

삼국지(三國志)에도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중국 후한(後漢) 말기의 학자로 북해(北海) 태수를 지낸 공융(孔融:153∼208)은 조조(曹操:155∼220)의 공격을 받은 서주(徐州) 자사 도겸(陶謙)을 구하기 위해 유비(劉備:161∼223)에게 공손찬(公孫瓚:?∼199)의 군사를 빌려서 도겸을 도와주게 하였다. 공융은 군사를 가지면 유비의 마음이 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유비에게 신의를 잃지 말도록 당부하였다. 그러자 유비는 《논어(論語)》 〈안연편(顔淵篇)〉에 실린 공자(孔子:BC 552∼BC 479)의 말에 따라 "성인은 \예부터 내려오면서 누구든지 죽지만 사람은 믿음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고 하였습니다. 저는 군대를 빌릴지라도 이곳으로 꼭 돌아올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처럼 ‘무신불립(無信不立)’은 믿음과 의리가 없으면 개인이나 국가가 존립하기 어려우므로 신의를 지켜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을 나타낸다.

군계일학ㅣ群鷄一鶴

군계일학ㅣ群鷄一鶴

군계일학ㅣ群鷄一鶴

○ 닭의 무리 속에 한 마리의 학

○ 鷄(닭 계) 群(무리 군) 一(한 일) 鶴(학 학)

닭의 무리 속에 한 마리의 학이란 뜻으로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 뛰어난 한 사람이 섞여 있음

위진(魏晉)시대, 완적(阮籍) 완함(阮咸) 혜강(瑞康) 산도(山濤) 왕융(王戎) 유령(劉伶) 상수(尙秀) 곧 죽림 칠현(竹林七賢)으로 불리는 일곱 명의 선비가 있었다. 이들은 종종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북동부에 있는 죽림에 모여 노장(老莊)의 허무 사상을 바탕으로 한 청담(淸談)을 즐겨 담론했다.

그런데 죽림 칠현 중 위나라 때 중산대부(中散大夫)로 있던 혜강이 억울한 죄를 뒤집어 쓰고 처형 당했다.

그 때 혜강에게는 나이 열 살 밖에 안 되는 아들 혜소( 紹:?∼304)가 있었다. 혜소가 성장하자 중신(重臣) 산도가 그를 무제武帝:256∼290, 위나라를 멸하고 진나라를 세운 사마염(司馬炎)에게 천거했다."폐하,《서경(書經)》의 〈강고편(康誥篇)〉에는 부자간의 죄는 서로 연좌(連坐)하지 않는다고 적혀 있나이다.

혜소가 비록 혜강의 자식이긴 하오나 총명함이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대부 극결( 缺)에게 결코 뒤지지 않사오니 그를 비서랑(비書郞)으로 기용하시오소서." "경(卿)이 천거(薦擧)하는 사람이라면 승(丞)이라도 능히 감당할 것이오."이리하여 혜소는 비서랑 보다 한 계급 위인 비서승에 임명되었다.

혜소가 입궐하던 그 이튿날, 어떤 사람이 자못 감격하여 와융에게 말했다."어제 구름처럼 많이 모인 사람들 틈에 끼어서 입궐하는 혜소를 보았습니다만, 그 늠름한 모습은 마치 \닭의 무리 속에 우뚝 선 한 마리의 학鷄群一鶴\같았습니다."그러자 왕융은 미소를 띠고 이렇게 말했다."그대는 혜소의 아버지를 본 적이 없지만 그는 혜소보다 훨씬 더 늠름했다네."

막고야산ㅣ莫姑野山

막고야산ㅣ莫姑野山

막고야산ㅣ莫姑野山

○ 신선들이 사는 곳

○ 莫말 막 姑시어머니 고 野들 야 山뫼 산

일설로는 "莫"이 "邈"과 같은 자로서 \멀다\는 뜻이 있다고 하여, \먼 고야산\이라고도 한다. 고야산은 늙지도 죽지도 않는 신선들이 사는 선경으로 전해오고 있다. 또 \막고야산\이라고 하여 북해 속에 신선이 사는 산을 뜻하기도 한다.

도를 터득한 현인 견오가 연숙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접여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네만, 글쎄 그게 너무 터무니없고 앞으로 나아갈 줄만 알았지 돌아올 줄을 모르더군. 나는 그 이야기가 은하수처럼 한없이 계속되는 것 같아 그만 오싹해졌네. 너무도 차이가 있어 상식에 어긋나네."

연숙이 물었다. "그 이야기란 어떤 건가?" 견오가 대답했다. "막고야산에 신인이 살고 있지. 그 피부는 얼음이나 눈처럼 희고, 몸매는 처녀같이 부드러우며 곡식은 먹지 않고 바람과 이슬을 마시며 구름을 타고 용을 몰아 천지 밖에서 노닌다네. 그가 정신을 한데로 집둥하면 그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병들지 않고 곡식도 잘 익는다는 거야. 이야기가 하도 허황돼서 믿어지지가 않네."

연숙이 말했다. "그렇군. 장님에게는 색깔의 아름다움이 안 보이고 귀머거리에겐 음악의 황홀한 가락이 안 들리지만, 장님이나 귀머거리는 육체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닐세. 지식에도 장님과 귀머거리가 있네. 그게 바로 지금의 자네를 말하네. 신인의 덕은 만물을 섞어 하나로 만들려는 거지. 세상 사람들은 그를 위해 애써 수고하여 하겠나.

이러한 신인은 외계의 사물에 의해 피해를 입는 일이 없고 홍수가 나서 하늘에 닿을 지경이 돼도 빠지는 일이 없으며, 큰 가뭄으로 금속과 암석이 녹아 흘러 대지나 산자락이 타도 뜨거운 줄 모르네. 신인은 그 몸의 먼지나 때, 쭉정이와 겨로도 세상 사람들이 성인이라는 요나 순을 만들 수가 없는데 무엇 때문에 천하 따위를 위해 수고하려 하겠는가."

망운지정ㅣ望雲之情

망운지정ㅣ望雲之情

망운지정ㅣ望雲之情

○ 자식이 객지에서 부모를 그리는 정

○ 望(바라볼 망) 雲(구름 운) 之(어조사 지) 情(뜻 정)

구름을 바라보며 그리워한다는 뜻으로, ①타향(他鄕)에서 고향(故鄕)에 계신 부모(父母)를 생각함 ②멀리 떠나온 자식(子息)이 어버이를 사모(思慕)하여 그리는 정

당서(唐書)에 보이는 내용이다. 당(唐)나라 때 적인걸(狄仁傑)은 고종(高宗) 때 대리승(大理丞)이 되어 1년 동안 1만 7000명을 올바르게 재판하였다. 그뒤 강남순무사(江南巡撫使)가 되어서는 음란하거나 민심을 미혹하는 사당 1,700개소를 없애고 예주자사(豫州刺使)로 있을 때에는 무고한 죄로 사형을 선고받은 사람 2,000명을 구제해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들었다. 그러나 후일 내준신(來俊臣)의 모함으로 측천무후(則天武后)에 의해 투옥되었다가 지방으로 좌천되었다. 그가 병주(幷州)의 법조참군(法曹參軍)으로 임명되어 부임하였을 때의 일이다. 그때 그의 부모는 하양(河陽)의 별장에 머물고 있었다. 어느 날 적인걸이 타이항산太行山에 올라 주위를 돌아보니 한 조각 흰구름이 두둥실 떠 있었다. 그것을 본 그는 옆에 있는 사람을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 부모님은 저 구름 아래 살고 계시겠지." 그리고는 흰구름을 쳐다보면서 부모님을 생각하고(望雲之情) 비탄에 잠겼다.

망운지정이란 이렇게 타향에서 자신도 신고를 겪지만 고향의 부모를 그리는 자식의 정을 가리키는 것이다. 후일 그의 평판이 높다는 말을 들은 측천무후는 다시 그를 재상으로 등용하였고, 재상이 된 후 그는 장간지(張柬之)·요승(姚乘) 등을 추천하여 부패한 정치를 바로잡아 측천무후의 신임을 얻었다. 어느 날 측천무후가 상서랑(尙書郞)으로 합당한 인물을 추천하라고 하자, 서슴없이 아들 광사(光嗣)를 추천하는 등 일 처리에 사사로움이 없었다 한다.

망운지회(望雲之懷)라고도 한다.

깽깽이풀

깽깽이풀

깽깽이풀

이 름 : 깽깽이풀

학 명 : Jeffersonia dubia

과 명 : 미나리아재비목

분 포 : 한국(경기·강원·평북·함남·함북)·중국

자생지 : 산중턱 아래의 골짜기

크 기 : 높이 약 25cm

개 화 : 4∼5월

꽃 말 : 안심하세요

깽이풀이라고도 부르며, 뿌리가 노란색이어서 황련·조선황련이라고도 한다. 산중턱 아래의 골짜기에서 자란다. 높이 약 25cm이다. 원줄기가 없고 뿌리줄기는 짧고 옆으로 자라며 잔뿌리가 달린다. 잎은 둥근 홑잎이고 연꽃잎을 축소하여 놓은 모양으로 여러 개가 밑동에서 모여나며 잎자루의 길이는 20cm 정도이다. 잎의 끝은 오목하게 들어가고 가장자리가 물결 모양이며 지름과 길이 모두 9cm 정도이다.

4∼5월에 밑동에서 잎보다 먼저 1∼2개의 꽃줄기가 나오고 그 끝에 자줏빛을 띤 붉은 꽃이 1송이씩 핀다. 화관은 지름 2cm 정도이고 꽃받침잎은 4개이며 바소꼴이다. 꽃잎은 6∼8개이고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이며 수술은 8개, 암술은 1개이다. 열매는 골돌과이고 8월에 익는다. 넓은 타원형이며 끝이 부리처럼 생겼다. 종자는 타원형이고 검은빛이며 광택이 난다.

관상용으로 심는다. 한방에서는 9∼10월에 뿌리줄기를 캐서 말린 것을 모황련(毛黃蓮)이라 하여 소화불량·식욕부진·오심(惡心)·장염·설사· 구내염·안질 등에 처방한다. 한국(경기도·강원도·평안북도·함경남도· 함경북도)·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사진 : 임규동의 꽃사진세상-

♨ 좋은글 더보기 : i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