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일 일요일

녹엽성음ㅣ綠葉成陰

녹엽성음ㅣ綠葉成陰

녹엽성음ㅣ綠葉成陰

○ 초록빛 잎이 그늘을 만든다

○ 綠(푸를 녹) 葉(잎 엽) 成(이룰 성) 陰(그늘 음)

여자가 결혼하여 자녀가 많음을 뜻하며, 당(唐)나라 시인 두목(杜牧)의 시에서 나온 말이다. 두목은 명문가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문학적 재주가 뛰어나 훗날 호방(豪放)하면서도 서정적인 시를 지어 대두(大杜) 두보(杜甫)와 견주어 소두(小杜)라고 일컬어지게 되었다. 그는 성품이 강직하고도 신중하였으며 사리에 밝았다. 외모도 준수하였으며 관직에 나아가 중서사인(中書舍人)을 지냈다. 당대(唐代)에는 문사(文士)에게 있어 중서사인은 명예로운 지위였다. 또한 그는 가무(歌舞)를 즐겼으며, 만년의 불우한 시절에는 기루(妓樓)에 빠져 지냈다.

어느 날 두목은 호주(湖州)를 유람하다가 한 노파와 마주치게 되었다. 그 노파는 당시 10세 안팎의 어린 계집아이를 데리고 가고 있었는데, 두목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아름다운 외모를 갖고 있었다. 두목은 자신도 모르게 그 소녀에게 마음이 끌려 노파에게 말하였다. “이 아이를 10년 후에 제 아내로 맞이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만일 10년이 지나도 제가 나타나지 않으면 다른 데로 시집을 보내십시오.” 노파 역시 두목에게 적지 않은 호감을 갖고 있었으므로 흔쾌히 승낙하였다. 그 후 두목이 다시 호주를 찾은 것은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뒤였다. 그녀의 행방을 수소문(搜所聞)한 결과 이미 3년 전에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가서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되어 있었다. 두목은 실망과 안타까움으로 호주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시 한 수를 지어 자신의 마음을 나타냈다.

봄은 가고 이제사 늦게 찾았으니

꽃을 보지 못함을 원망할 수도 없다

거센 바람이 짙붉은 꽃을 다 떨구고

푸른 잎그늘 만들어 열매만 가득하다

이 칠언절구(七言絶句)에서 ‘꽃’은 두목이 아내로 맞이하려고 했던 그 소녀이다.

노이무공ㅣ勞而無功

노이무공ㅣ勞而無功

노이무공ㅣ勞而無功

○ 애는 썼으나 애를 쓴 보람이 없음

○ 勞(일할 노) 而(말이을 이) 無(없을 무) 功(공 공)

공자(孔子)가 노(魯)나라에서 서쪽에 있는 위(衛)나라로 떠나기에 앞서 수제자 안연(顔淵)이 사금(師金)이란 벼슬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물었다.

"우리 선생님의 이번 여행길은 어떻겠습니까?" 사금은 이랬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당신 선생은 아마 이번에 욕을 보실 겁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다그쳐 묻는 안연에게 사금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 선생은 전에도 여러 나라에서 곤욕을 치렀지요. 송(宋)나라에서는 나무 그늘 밑에서 강론을 하다가 베어진 나무에 깔릴 뻔했고 위나라에서는 쫓겨나기도 했으며, 진(陳)나라와 채(蔡)나라 사이의 들에서는 이레 동안이나 끼니를 굶어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사금은 잠깐 뜸을 들였다가 본론으로 들어갔다. "물길을 가기 위해서는 배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적당하고, 육지를 가기 위해서는 수레를 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물길을 가야 할 배를 육지에서 밀고 가려고 한다면 한평생이 걸려도 얼마 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옛날과 이제의 차이는 물과 육지의 차이와 다름이 없고 주(周)나라와 노나라의 차이는 배와 수레의 차이가 아닙니까.

이제 주나라의 옛날 道를 오늘의 노나라에서 행하려고 하는 것은 마치 배를 육지에서 미는 것과 같아서 \애는 쓰나 공은 없고(勞而無功)\ 또 그 몸에도 반드시 화가 미칠 것입니다. 당신 선생은 아직도 저 무한한 변전(變轉), 곧 끝없이 변동하는 道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안타깝지만 당신 선생은 곤란을 당할 것입니다."

자강불식ㅣ自强不息

자강불식ㅣ自强不息

자강불식ㅣ自强不息

○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

○ 自(스스로 자) 强(강할 강) 不(아닐 불) 息(쉴 식)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는다는 뜻으로 자신의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역경(易經) 건괘(乾卦)·상전(象傳)에 나오는 다음 구절에서 유래하는 말이다.

하늘의 운행이 굳세니, 군자가 이것을 응용하여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는다.天行健,君子以自强不息.

"

유교의 경전 중 하나인 《역경》은 자연현상의 원리를 통해 우주철학을 논하는 동시에, 그것을 인간사에 적용하여 구체적인 유교적 규범 원리를 제시하는 책이다. 위 글은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해가 지면 달이 뜨는 것처럼 천체우주의 운행과 대자연의 순환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함없이 굳건한데, 학식(學識)과 덕행(德行)이 훌륭한 군자와 같은 사람은 이것을 본받아 자신의 몸을 단련하고 정신을 수양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자강불식은 스스로를 단련하여 어떤 시련이나 위기가 닥쳐도 굴복하거나 흔들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굳은 의지를 비유하는 말이다.

",

유의어로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 노력한다는 의미의 절치부심(切齒腐心), 발분망식(發憤忘食), 와신상담(臥薪嘗膽) 등이 있다. 반의어로는 자신의 몸을 스스로 해치고 돌보지 않는다는 의미의 자포자기(自暴自棄), 제갈량(諸葛亮)의 출사표(出師表)에 전하는 말로 함부로 자신을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여긴다는 의미의 망자비박(妄自菲薄)이라는 성어가 있다.

노생상담ㅣ老生常譚

노생상담ㅣ老生常譚

노생상담ㅣ老生常譚

○ 늙은 서생이 하는 이야기

○ 老(늙을 로) 生(날 생) 常(항상 상) 譚(이야기할 담)

늙은 서생이 하는 이야기, 새롭고 독특한 의견을 제시하지 않고 언제나 똑같은 상투적인 이야기를 할 때 사용함

조조가 통치하는 위(魏)나라에 관로(管輅)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보통 평범한 아이들과는 달리 천문학에 남다른 관심과 지식을 보였다. 친구들과 놀 때도 일월성신(日月星辰)을 그리는 데 열중하였다. 그는 자라서 사람들의 운명을 점치는 데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였다.

어느 날 당시 이부상서(吏部尙書)로 있던 하안(何晏)이 관로에게 점을 치러 왔다. "내가 장차 삼공이 될 수 있는지 좀 봐주시오. 요즘 파란 파리 열 마리가 내 코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꿈을 꾸었는데 그 꿈도 좀 해몽해 주구려.""단도직입적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옛날 주(周)의 성왕(成王)을 보필하던 주공(周公)은 직무 때문에 밤을 세우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그로 인해 성왕이 나라를 일으킬 수 있었고 다른 제후들도 그를 추앙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늘의 도리를 따르고 지켰기 때문이지, 점을 치거나 액막이를 해서가 아닙니다. 당신은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덕행이 부족하여 위세를 부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좋은 것이 아닙니다. 상서를 보면 코는 하늘 가운데 있습니다. 그런데 파란파리가 얼굴에 달라붙는 것은 위험한 징조입니다. 당신이 이로는 문왕(文王)을 쫓고 아래로는 공자를 생각하면 청파리도 쫓을 수 있습니다."그러자 옆에서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등양(鄧暘)이 비웃으며 말했다.

"그런 마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얘기요. 나는 노생(老生)의 말을 너무 많이 들어 신물이 났소. 뭐 특별한 게 있소?" 관로는 아무 말도 못했다. 날만 새면 어제의 지식은 낡은 것이 되어 버리는 오늘날, 새롭고 독창적인 것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老生常譚\만 하면 더 이상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퇴보하기 쉽다.

나쁜 의도 좋은 의도

나쁜 의도 좋은 의도

나쁜 의도 좋은 의도

왕이 한죄수에게 사형을 언도하자

신하 두사람이 죄인을 감옥으로 호송했습니다. 절망감에 사로잡힌 죄수는 감옥으로 끌려가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못된 왕아! 지옥 불구덩이에 빠져 평생 허우적 거려라"

이때 한신하가 그를 가로막았습니다.

"이보시게 말이 너무 심하지 않은가"?

하지만 죄수는 더욱 목소리를 높혔습니다. "어차피 죽을목슴인데 무슨말인들 못하겟소"

신하들이 돌아오자 왕이 물었습니다.

"그래 죄인이 잘못을 뉘우치던가"?

그때 죄수의 말을 가로막던 착한 심성의 신하가 대답했습니다. "예 자신에게 사형을 내린 폐하를 용서해달라고 신께 기도했습니다".

신하의 말에 왕은 매우 기뻐하며 그 죄수를 살려주라고 명하려 했습니다. 그때

다른 신하가 말했습니다. "폐하 아닙니다. 그 죄수는 뉘우치기는 커녕 오히려 폐하를 저주했습니다".

그런데 왕은 그신하를 나무랐다. 네가 하는 말이 진실에 가깝다는걸 안다. 그러나 나는 저 사람의 말이 더 마음에 드는구나 "폐하 어째서 진실을 마다하고 거짓말이 마음에 드신다고 하십니까"?

왕이 말했습니다. "저사람은 비록 거짓일지라도 좋은 의도에서 그렇게 말했지만 네 말에는 악의가 있구나 때로는 선의의 거짓말이 분란을 일으키는 진실보다 나은 법이니라 왕은 결국 죄수의 목슴을 살려주었다.

"

-좋은생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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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속담에 거짓말에도 새 빨간 거짓말과 하얀 거짓말이 있다고 합니다. 새 빨간 거짓말은 나쁜 마음을 가지고 사람을 속일려는 나쁜 의도가 숨어있고 하얀 거짓말은 사람을 살리고 희망과 위안을 주기 위해 좋은 의도가 숨어있는 사람을 살리는 거짓말입니다.

둘다 분명히 거짓말은 거짓말이지만 마음은 선과 악이 분명히 갈리는 극과 극의 거짓말입니다.

-스토리 메이커 박성목-

수불석권ㅣ手不釋卷

수불석권ㅣ手不釋卷

수불석권ㅣ手不釋卷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 학문을 열심히 함

手(손 수) 不(아닐 불) 釋(풀 석) 卷(책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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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손에 책을 들고 글을 읽으면서 부지런히 공부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항상 책을 가까이 두고 독서하는 것을 가리킨다. 《삼국지(三國志)》 〈오지(吳志)〉 여몽전(呂蒙傳)에 나오는 말이다.

",

중국에서 후한(後漢)이 멸망한 뒤 위(魏)·오(吳)·촉한(蜀漢) 세 나라가 정립한 삼국시대에 오나라의 초대 황제인 손권(孫權)의 장수 여몽(呂蒙)은 전쟁에서 세운 공로로 장군이 되었다. 손권은 학식이 부족한 여몽에게 공부를 하라고 권하였다.

독서할 겨를이 없다는 여몽에게 손권은 자신이 젊었을 때 글을 읽었던 경험과 역사와 병법에 관한 책을 계속 읽고 있다고 하면서 "후한의 황제 광무제(光武帝)는 변방일로 바쁜 가운데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으며手不釋卷, 위나라의 조조(曹操)는 늙어서도 배우기를 좋아하였다"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래서 여몽은 싸움터에서도 학문에 정진하였다.

그뒤 손권의 부하 노숙(魯肅)이 옛친구인 여몽을 찾아가 대화를 나누다가 박식해진 여몽을 보고 놀랐다. 노숙이 여몽에게 언제 그만큼 많은 공부를 했는지 묻자, 여몽은 "선비가 만나서 헤어졌다가 사흘이 지난 뒤 다시 만날 때는 눈을 비비고 다시 볼 정도로 달라져야만 한다刮目相對"라고 말하였다.

"

삼국지에 나오는 여몽의 고사로, 손권이 여몽에게 부지런히 공부하라고 권유하면서 말한 수불석권은 손에서 책을 놓을 틈 없이 열심히 글을 읽어 학문을 닦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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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조지공ㅣ內助之功

내조지공ㅣ內助之功

내조지공ㅣ內助之功

○ 아내가 가정에서 남편을 돕는 공

○ 內(안 내) 助(도울 조) 之(어조사 지) 力(힘 력)

아내가 가정에서 남편이 바깥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요즘은 남편이 밖에서 충분한 활동을 하고 성공할 수 있도록 아내가 집밖에서 뒷받침해 준다는 뜻으로 쓰인다.

曹操(조조)가 魏(위)나라 武帝(무제)가 되자 후계 문제로 한동안 고민했다. 맏아들인 曹丕(조비)로 할 것인가, 아니면 그 아우인 똑똑하고 문장이 뛰어난 曹植(조식)으로 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였다. 결국 조비가 황태자로 정해졌는데 조비가 황태자가 된 데에는 뒤에 황후가 된 郭(곽)씨의 도움이 컸다. 조식이 형인 조비보다 똑똑한데다 조조가 조식을 偏愛(편애)했기 때문에 곽씨가 여러 가지 방책을 썼다는 것이다.

조조가 무제로 등극했을 때 東宮(동궁)으로 들어온 곽씨는 君(군)의 長官(장관)인 郭永(곽영)의 딸이었다. 곽씨는 남달리 영특해서 곽영이 "내 딸은 여자중의 왕이다"고 말해 일찍부터 여왕으로 불렸다고 한다.文帝(문제)가 조비가 甄后(견후)를 폐하고 곽씨를 황후로 삼으려고 하자 中郞(중랑)인 棧潛(잔잠)이 상소를 올려 말렸다. "옛날의 제왕이 세상을 잘 다스린 것은 재상과 같이 정사를 공식적으로 보좌한 사람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안에서 아내의 도움(內助之功)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잔잠은 이어 곽씨를 황후로 세우는 것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누르는 것이어서 질서를 어지럽히게 되어 나라가 어려워지는 원인이 될 것이라고 간했지만 문제는 듣지 않았다. 황후가 된 곽씨는 뒤에 明帝(명제)가 된 曹叡(조예)를 낳은 견후를 모함하여 죽였다.

당동벌이ㅣ黨同伐異

당동벌이ㅣ黨同伐異

당동벌이ㅣ黨同伐異

○ 같은 파의 사람은 편들고, 다른 파의 사람을 배격함

○ 黨(무리 당) 同(한가지 동) 伐(칠 벌) 異(다를 이)

옳고 그름의 여하간에 한 무리에 속한 사람들이 다른 무리의 사람을 무조건 배격하는 것을 이르는 말.

후한서(後漢書) 당동전(黨同傳)에서 비롯된 말이다. 진시황(秦始皇)이 중국을 통일하고 강력한 중앙 집권화를 이룩한 이래 중국의 권력은 오직 황제 한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자연히 황제를 둘러싼 친위 집단이 권력을 농단하게 되었는데, 그 중심을 이룬 것이 환관과 외척 세력이었다. 또 한(漢)나라 때에는 유교를 국교로 하여 유학을 공부한 선비 집단이 성장하였다. 그런데 왕망(王莽)이 제위를 찬탈하자 선비들은 초야로 피해 청의(淸議)를 일삼고, 자연스럽게 명망 있는 인물을 중심으로 뜻을 같이하는 무리들이 모였다. 이를 당인(黨人)이라 한다.

후한 때에는 화제(和帝) 이후 역대 황제가 모두 어린 나이에 즉위하였다. 그래서 황태후가 섭정이 되고, 이 과정에서 황태후의 친인척인 외척들이 실권을 잡게 되었다. 그러나 후일 장성한 황제는 이들의 전횡을 탐탁치 않게 여겨 자신의 친위 세력을 키우고 이들을 제거해 나가는데, 그 중심이 된 세력이 바로 환관이었다.

환관들은 신분 상승의 욕구 때문에 스스로 거세한 사람들이었으므로 집단의 결속력이 유달리 강하고, 사회적 책임이나 정치적 경륜보다는 자신들의 이해에 민감하였다. 따라서 이들이 권력을 쥐면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게 마련이었다. 유교적 교양을 쌓은 예비 관료 집단인 선비들이 환관의 농단으로 국정이 문란하고 풍속이 타락해 가는 것을 방관만 하고 있을 리 없었다.

이들도 명망 있는 인물을 중심으로 모여 전국적으로 방대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선비 집단과 외척, 환관 세력이 서로 물고 물리는 정권 다툼을 벌이는 과정에서, 옳고 그름을 떠나 다른 집단을 무조건 배격하는 것은 예상되는 일이었다. 이를 가리키는 말이 당동벌이이다.

좁게는 당고(黨錮)의 옥(獄) 이후 이응(李膺)을 중심으로 한 당인들이 유교적 지식 계급 이외의 세력을 적대시하던 사실을 가리키기도 한다. 전한은 외척이 망쳤고, 후한은 환관이 망쳤다고 한다. 후한 말에 이르러 환관들은 외척과 선비 집단을 철저히 탄압하고, 그 결과로 지식인 관료 집단인 선비 집단이 황실을 버림으로써 후한이 자멸하게 되었다.

두점방맹ㅣ杜漸防萌

두점방맹ㅣ杜漸防萌

두점방맹ㅣ杜漸防萌

○ 퍼지기 전에 막아 싹이 못나오게 하다

○ 杜(막을 두) 漸(점점 점) 防(막을 방) 萌(움 맹)

애시당초 싹이 나오지 못하도록 막는다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 하려면 철저히 하라는 말이다. 나쁜 일을 없애려면 그 근본까지 없애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성어 斬草除根(참초제근)과 똑 같은 뜻이다. 마찬가지로 범죄를 끝까지 추적하여 소탕할 때 악의 뿌리까지 뽑는다고 으스스하게 拔本塞源(발본색원)이란 말을 많이 쓴다. 이보다 더하게 나쁜 일의 조짐이 보일 때 젖어들기 전에 처음부터 막아(杜漸) 싹이 나오지 못하게 한다(防萌)는 이 말 역시 화를 초기에 제거해야 나중 큰 해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後漢(후한)의 초기에는 외척과 환관들의 세력다툼으로 혼란스러웠다. 3대 章帝(장제, 재위 75~88) 때는 선대 때와 달리 이들에 관대했기 때문에 서로 배척하거나 손잡거나 하며 권력을 장악했다. 4대 和帝(화제, 88~106)가 즉위할 때는 겨우 10세였기 때문에 장제의 황후인 竇太后(두태후)가 섭정을 하게 됐다. 자연히 그의 오빠인 竇憲(두헌)이 시중이 되어 국정을 좌우했고 동생들도 요직을 맡았다. 두헌은 지방의 호족들을 장악하고 사당을 조직하여 백성들의 재물을 빼앗는 등 횡포를 자행했다.

당시 삼공의 하나인 司徒(사도)로 백성들의 신망을 받고 있던 丁鴻(정홍)이 나섰다. 두헌 형제가 사당 세력을 규합하여 반란을 꾀한다는 사실을 알고 화제에게 초기에 제거하여 후환을 없애야 한다고 상주했다. ‘폐하께서 만약 직접 정무를 장악하고 초반에 손을 써서 싹을 자르면 저들의 흉포한 일은 없어질 것이고 화는 사라져 평안할 것입니다(若敕政責躬 杜漸防萌 則凶妖銷滅 害除福湊矣/ 약칙정책궁 두점방맹 즉흉요소멸 해제복주의).’ 화제가 정홍에 전권을 주고 두헌의 인수를 거둬들인 뒤 두씨 일족을 소탕했다. ‘後漢書(후한서)’ 정홍전에 실려 있다. 함께 공을 세운 환관 鄭衆(정중)을 제후에 봉했다. 이후 번갈아가며 환관과 외척이 피비린내 나는 정권다툼으로 나라가 기울었다.

수미이취ㅣ數米而炊

수미이취ㅣ數米而炊

수미이취ㅣ數米而炊

○ 쌀 낟알을 세어 밥을 짓다, 몹시 인색하다.

○ 數(셈 수) 米(쌀 미) 而(말 이을 이) 炊(불 땔 취)

쌀알을 세어서 밥을 지음. 곧 하는 짓이 번거롭고 잗달아서 보람이 적음.

낟알을 세어 밥을 짓는다는 성어는 곳곳에 나온다. 다른 비유와 함께 알기 쉽게 설명한 것에는 먼저 ‘淮南子(회남자)’를 들 수 있다. 이 책은 중국 前漢(전한)의 淮南王(회남왕) 劉安(유안)이 전국의 빈객과 방술가들을 모아 편찬한 일종의 백과사전이다. 泰族訓(태족훈)에 나오는 구절을 보자. ‘땔나무를 재어가면서 부엌의 불을 지핀다든가, 쌀알을 헤아리면서 밥을 짓는다고 한다면, 그것으로 작은 것은 다스릴 수는 있어도, 큰 것은 다스릴 수가 없다.

詮言訓(전언훈)에도 등장한다. ‘좁쌀을 헤아려 방아를 찧고, 쌀을 되어 밥을 짓는 것은, 집안을 다스리는 데에는 좋지만,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는 쓸모가 없다.’ 舂은 찧을 용. 결국 쩨쩨한 도량으로 큰일을 이룰 수 없다는 가르침이다. 여기에서 稱薪而爨(칭신이찬)이나 量粟而舂(양속이용) 등 같은 뜻의 성어를 함께 썼다.

‘莊子(장자)’에는 老子(노자)의 제자 庚桑楚(경상초)라는 사람이 열변을 토하는 데에서 이 말이 나온다. 유능한 사람에게 관직을 주고, 선량한 사람을 높이고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堯舜(요순) 때부터 해온 것이라면서 크게 칭송할 것은 못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말한다.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씩 빗질하거나, 쌀알을 한 알 한 알 세어서 밥을 짓는, 그런 쪼잔한 방식으로 어떻게 세상을 다스릴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