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4일 화요일

풍수지탄ㅣ風樹之歎

풍수지탄ㅣ風樹之歎

풍수지탄ㅣ風樹之歎

○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려면 지금 하라

○ 風(바람 풍) 樹(나무 수) 之(갈 지) 歎(탄식할 탄)

부모(父母)에게 효도(孝道)를 다하려고 생각할 때에는 이미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이르는 말

풍수(風樹)는 『시경(詩經)』의 해설서인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봉양(奉養)하려 하나 어버이가 기다려 주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고 하여 돌아가신 어버이를 생각하는 마음을 나타낸 부분에서 유래(由來)한 말

孔子(공자)가 뜻을 펴기 위해 이 나라 저 나라 周遊天下(주유천하) 하던 중 하루는 난데없이 곡성이 들려왔다. 너무나 슬픔에 잠긴 울음소리라 지나치지 못하고 따라가 보니 皐魚(고어)라는 사람이었다. 공자가 수레에서 내려 연유를 물어 보자 이렇게 답한다.

‘저는 세 가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첫째는 젊었을 때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다가 고향에 와 보니 부모님이 이미 세상을 떠나신 것이요, 둘째는 섬기고 있던 군주가 사치를 좋아했는데 충언을 듣지 않아 그에게서 도망쳐 온 것이요, 셋째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교제를 하던 친구와의 사이가 멀어진 것입니다. 나무는 조용하고자 하지만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봉양을 하려고 하지만 부모님은 계시지 않는 것입니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 수욕정이풍부지 자욕양이친부대).

떠나가면 다시는 볼 수 없는 것이 어버이인 것입니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이 말을 명심시키자 따르던 제자가 13명이나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를 봉양했다고 한다. 漢(한)나라 사람 韓嬰(한영)이 쓴 ‘韓詩外傳(한시외전)’에 실려 있다. ‘孔子家語(공자가어)’ 44편 중 致思(치사)편에는 같은 내용에 丘吾子(구오자)란 사람으로 되어 있다.

팔두지재ㅣ八斗之才

팔두지재ㅣ八斗之才

팔두지재ㅣ八斗之才

○ 여덟 말을 차지한 재주, 뛰어난 조식의 글재주

○ 八(여덟 팔) 斗(말 두) 之(갈지) 才(재주 재)

‘재주는 장에 가도 못 산다’는 속담대로 남보다 뛰어난 재주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배우고 익혀야 한다. 모든 일을 잘 하기는 어렵다. 맑은 날에는 신발로, 궂은 날에는 나막신으로 쓸 수 있는 온갖 재주를 가진 사람을 履屐俱當(이극구당, 屐은 나막신 극)이라 한다. 이같이 여러 방면에 능통한 사람 八方美人(팔방미인)이란 말이 또한 온갖 일에 조금씩 아는 얼치기라는 뜻도 있다.

중국 南北朝(남북조)시대의 이름난 산수시인 謝靈運(사령운, 385~433)이 曹操(조조)의 아들인 曹植(조식)을 극찬하면서 한 말이다. 唐(당)나라 李延壽(이연수)가 남조 네 왕조를 기술한 ‘南史(남사)’에 기록돼 있다. 부분을 보자.

‘천하의 글재주를 모두 한 섬이라 한다면, 조식 혼자서 여덟 말을 차지한다(天下才共一石 曹子建獨得八斗/ 천하재공일석 조자건독득팔두).’ 자가 子建(자건)인 조식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조조의 각별한 보살핌을 받았으나 아버지 사후 즉위한 형 曹丕(조비)가 사사건건 트집하여 큰 고통을 겪었다. 콩대를 태워서 콩을 삶아 고통을 안기는 煮豆燃萁(자두연기, 萁는 콩대 기)는 형제끼리의 다툼을 말한다. 이 말이 조비가 일곱 발자국을 옮기는 동안 시를 지으라고 하여 탄생한 조식의 七步詩(칠보시)에서 유래한 구절인 것은 유명하다.

조식을 높이 평가한 사령운도 자부심이 대단했다. 남은 두 말의 재주 중 자신이 한 말을 차지하고, 예부터 그 때까지의 사람들이 남은 한 말을 쓰고 있다고 했다. 자신의 재주를 믿는 자부심은 좋으나 너무 아무 데나 앞세우면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 먼저 다치거나 타인의 질시를 받아 일찍 쇠퇴한다는 甘井先竭(감정선갈)이란 말도 있으니 마음을 먼저 닦아야 한다.

당구풍월ㅣ堂狗風月

당구풍월ㅣ堂狗風月

당구풍월ㅣ堂狗風月

○ 서당개 삼 년에 풍월한다

○ 堂(집 당) 狗(개 구) 風(바람 풍) 月(달 월)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뜻으로 지식이나 경험이 없던 분야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져서 웬만한 능력을 갖추게 된다는 말이다.

당구삼년음풍월(堂狗三年吟風月), 당구풍월(堂狗風月)이라고도 한다. 풍월(風月)은 얻어 들은 짧은 지식을 뜻한다. 아무리 무지한 사람도 박학다식한 사람이 많은 환경에 있으면 유식하게 된다는 말로, 어떤 분야에 전혀 경험이나 지식이 없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익숙해지고 잘 알게 된다는 뜻이다. 그만큼 어떤 환경에 있느냐에 따라 그에서 받는 영향이 중요하다는 말로, 근주자적(近朱者赤)·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는 성어와도 같은 뜻이다.

다기망양ㅣ多岐亡羊

다기망양ㅣ多岐亡羊

다기망양ㅣ多岐亡羊

○ 여러 갈래로 갈린 길에서 양을 잃는다

○ 多(많을 다) 岐(가닥나뉠 기) 亡(잃을 망) 羊(양 양)

여러 갈래로 갈린 길에서 양을 잃는다는 뜻으로, 학문의 길이 많아 진리를 찾기 어렵다는 것을 이르는 말.

열자(列子) 설부편(說符篇)에 보이는 이야기이다.

양자의 이웃집에서 양 한 마리가 도망을 했다. 양의 주인이 동네 사람들을 이끌고 양자에게 노복(奴僕) 청하여 양을 쫓아가려 하자, 양자가 물었다. "단 한 마리의 양을 잃었는데 어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뒤쫓아가는고." 이웃집 사람이 대답하였다. "도망간 쪽에는 갈림길이 많기 때문이오." 얼마 뒤에, 그들이 피곤한 몸으로 돌아와서 양을 잃었다고 하였다. 양자가 양을 잃은 까닭을 묻자, "갈림길을 가면 또 갈림길이 있어서, 양이 어디 갔는지 모르게 되어 버렸소(多岐亡羊)."

양자는 그 말을 듣고는 묵묵히 앉아 입을 떼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하루종일 웃는 얼굴 한번 보이지 않았다. 제자들이 기껏해야 양 한 마리를 잃은 일이요, 더구나 자기의 양도 아닌데, 그렇게 침울해 있는 것은 이상하다 생각하고, 까닭을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뒷날, 한 제자가 그 일에 대해서 묻자, 양자는 "단 한 마리의 양이라 할지라도, 갈림길에서 또 갈림길로 헤매어 들어가서 찾다가는 결국 양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하물며 학문의 길은 어떻겠느냐? 목표를 잃고 무수한 학설들에 빠져 헤맨다면 아무리 노력한들 그 또한 무의미한 것 아니겠느냐." 하였다.

장자(莊子) 변무편(騈拇篇)에도 양을 잃은 이야기가 있다. 남녀 종이 책을 읽고 주사위놀음을 하다가 양을 잃었다는 이야기로, 이 곳에서도 주위의 사물이나 현상에 휩쓸리다 보면 자기의 본분을 잊게 된다는 비유로 사용되고 있다. 망양지탄(亡羊之歎)이라고도 한다.

학문에는 지식의 집적과 이론의 분석이 필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부질없이 지엽말절을 꼬치꼬치 캐고 살피는 일에 빠져서 근본 목표를 잃어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란 것을 풍자한 이야기이다.

노새의 죄

노새의 죄

노새의 죄

어느 숲에 흑사병이 유행해 동물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동물의 왕인 사자가 비상회의를 소집했다

"하늘이 흑사병을 내린 것은 우리의 죄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들 중 가장 죄 많은 자를 희생 제물로 바쳐야 한다

자, 모두 자기의 죄를 고백하라"

"나는 며칠 전 염소를 잡아먹었다.

어린 새끼까지 물어 죽였다."

그러자 약삭빠른 여우가 거들었다. "그것은 죄가 아닙니다

염소가 너무 많으면 초원이 줄어듭니다 잘 하신 일입니다."

표범과 늑대와 곰이 차례로 죄를 고백했다 그러나 동물들은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이번에는 가장 힘이 없고 순진한 노새의 차례였다

"너무 배가 고파 남의 밭에서 자란 풀을 몰래 뜯어먹은 적이 있어요"

그러자 동물들이 일제히 손가락으로 노새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유죄!"

라 폰테느의 우화다. 정의보다 힘, 약자보다 강자가 판을 치는 사회는 부패한다 좋은 지도자는 약자의 신음을 가슴으로 듣는다.

-한태환 예화포커스 중에서-

군자삼락ㅣ君子三樂

군자삼락ㅣ君子三樂

군자삼락ㅣ君子三樂

○ 군자(君子)의 세 가지 즐거움

○ 君(임금 군) 子(아들 자) 三(석 삼) 樂(즐길 락)

군자(君子)의 세 가지 즐거움이라는 뜻으로, 첫째는 부모(父母)가 다 살아 계시고 형제(兄弟)가 무고(無故)한 것,둘째는 하늘과 사람에게 부끄러워할 것이 없는 것,셋째는 천하(天下)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敎育)하는 것

부모구존 형제무고 일락야(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앙불괴어천 부부작어인 이락야(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 득천하영재 이교육지 삼락야(得天下英才 而敎育之 三樂也)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있어 먼 곳에서 찾아오면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군자가 아니겠는가?”

이것이 공자가 말한 ‘군자삼락(君子三樂)1)’, 즉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이다. 배움의 즐거움과 멀리서 벗이 찾아오는 즐거움 그리고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의연한 태도를 지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구절을 오늘날의 눈으로 해석하면 다소 오해가 생기므로 그 당시 사람들 관점으로 봐야 올바른 해석이 나온다.

여기에서 배움은 흔한 ‘학문’이 아니다. 예법(禮) · 음악(樂) · 활쏘기(射) · 전차몰기(御) · 글 읽기(書) · 수학(數) 이 여섯 가지가 배우는 내용이다. 이를 ‘육예’라고 하는데 모두 무사 계급이 훈련하는 과목이다. 벗도 그저 같이 어울려 노는 친구가 아니다. 뜻을 같이한 동지이다.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사람일지라도 공자의 사상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 소문을 듣고 찾아오면 기뻐했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음은 자기 삶에 대한 고백이다. 공자는 천하를 떠돌았지만 아무도 그를 알아주지 않았고 오히려 목숨 위협만 여러 번 받았다. 그럼에도 올바른 도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누군가 자기를 알아주지 않을 때 화내지 않는 사람은 흔치 않다. 대부분 섭섭해하거나 분통을 터뜨리기 마련이다. 분명한 사실은 남이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자기 할 일에 열중하는 사람일수록 남들이 더욱 우러러본다는 것이다.

당시 공자는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으나 지금은 동양 문화권에서 가장 우러러보는 성인이다. 남이 알아주든 말든 자기 생각이나 뜻을 조금도 굽히지 않은 결과이다. 공자가 살아온 삶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살아야 할지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누란지위ㅣ累卵之危

누란지위ㅣ累卵之危

누란지위ㅣ累卵之危

○ 포개 놓은 알처럼 몹시 위태로운 형세

○ 累(여러 포갤 루) 卵(알 란) 之(갈 지) 危(위태할 위)

포개놓은 알처럼 무너지기 쉽고 위태로운 상태라는 뜻. 줄여서 누란(累卵)이라고도 한다.

중국 전국시대에, 위나라 사람 범저范雎:범수(范睡)라고도 한다가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중대부(中大夫) 수가(須賈)의 부하로 수행했다. 제나라에서 범저는 책사(策士)로서의 수완을 발휘하여 활동하였으므로, 수가보다 인기가 좋았다. 이를 시샘한 수가는 귀국하자 재상에 고하여 범저가 딴 마음이 있어 제나라와 내통하고 있다고 모함했다.

모진 고문을 당하고 옥에 갇힌 범저는 책사답게 옥졸을 설득하여 탈옥하였으며, 후원자의 집에 은거하면서 장록(張祿)이라 개명하여 지내다가 진(秦)나라에서 온 사신 왕계(王稽)의 도움으로 진나라로 망명했다. 왕계의 천거로 진의 소왕(昭王)을 섬기게 되었으며,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을 도모하는 등 외교정책에 큰 공을 세웠다.

중국의 역사책 사기(史記)의 범수채택열전에, 왕계가 진왕에게 범저를 천거하면서 말하기를 "범저가 진왕국을 평하여 위여누란(危如累卵)이라, 알을 포개놓은 것보다 위태롭다고 했으며 그를 기용하면 능히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얻을 것이다"고 한 일화가 실려 있다.

육대함이ㅣ六代含飴

육대함이ㅣ六代含飴

육대함이ㅣ六代含飴

○ 육대의 가족이 함께 엿을 먹다,

○ 六(여섯 육) 代(대신할 대) 含(머금을 함) 飴(엿 이)

육대의 가족이 함께 엿을 먹다, 대가족이 한 집안서 사이좋게 살다.

六代(육대)의 가족들이 함께 엿을 먹는다(含飴)는 이 말은 孔子(공자)의 집안을 가리켰다. 6대의 가족이 한 집안에서 사이좋게 살아간다니 1세대 30년을 당시 공자의 어머니가 결혼했다는 19세로 치더라도 114세의 할아버지 아래 손자가 태어난 것이 된다. 공자의 고향 山東(산동)성의 曲阜(곡부)에는 淸(청)나라 乾隆帝(건륭제)가 보낸 ‘六代含飴(육대함이)’의 편액이 남아 있다고 한다.

중국 최강의 국력을 자랑했던 건륭제가 공자 집안에서 육대가 함께 사는 것에 감동하여 한족인 대학사의 딸을 입양시켜 공주로 삼은 뒤 혼사를 맺기도 했다.

당돌서시ㅣ唐突西施

당돌서시ㅣ唐突西施

당돌서시ㅣ唐突西施

○ 꺼리거나 어려워함이 없이 올차고 다부진 서시

○ 唐(당나라 당) 突(부딪칠 돌) 西(서녘 서) 施(베풀 시)

추녀 무염을 미인 서시와 비교한다는 뜻으로 견주기 힘든 상대와의 비교를 빗대는 겸양의 말. 꺼리거나 어려워함이 없이 올차고 다부진 서시라는 의미이다.

진서(晉書) 악광전(樂廣傳)에 유래하는 말이다. 동진(東晉)에 상서복야(尙書僕射) 주의(周顗)라는 인물은 겸허한 인품으로 명망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와 똑같이 명망이 있었던 상서령(尙書令) 악광(樂廣)을 늘 함께 거론하여 두 사람의 뛰어난 학식과 높은 덕행을 칭찬하였다. 그럴 때면 주의는 겸허하게 말했다. "저를 그와 비교하는 것은 그를 모독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화장한 추녀 무염(無鹽)을 당돌하게 서시(西施)에게 비교하는 것입니다刻畫無鹽 唐突西施."

주의가 자신을 빗댄 무염(無鹽)은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종리춘(鍾離春)이라는 여자로, 그녀가 무염읍(無鹽邑) 출신이었기에 사람들은 무염이라 불렀다. 그녀는 외모가 몹시 추해 마흔이 넘도록 시집을 가지 못했는데 이후 무염은 외모가 아름답지 못한 여인을 가리키는 말로 흔히 쓰였다. 추녀의 대명사인 무염을 절세미인 서시와 비교하는 것은 누가 봐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기에, 주의는 그만큼 칭찬이 과분하다는 의미로 말한 것이다. 이처럼 가당치 않은 사람과 비교되는 것을 겸허하게 돌려 말하는 것을 당돌서시라고 한다.

슬행마시ㅣ膝行馬矢

슬행마시ㅣ膝行馬矢

슬행마시ㅣ膝行馬矢

○ 무릎걸음으로 말똥 위를 기다. 누구에게나 아첨하다.

○ 膝(무릎 슬) 行(다닐 행) 馬(말 마) 矢(화살 시)

여기저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왔다 갔다 하면서 살살 듣기 좋은 소리로 비위 잘 맞추는 사람은 ‘오래 해 먹은 面主人(면주인)’이라는 속담으로 남았다. 비슷한 성어는 많은데 이중에 몇 개만 보면 奴顔婢膝(노안비슬), 五方猪尾(오방저미), 搖民乞憐(요민걸련), 長立待令(장립대령) 등이다. 仰人鼻息(앙인비식)이나 嘗糞之徒(상분지도)는 아첨의 최고봉이다.

변까지 핥는 냄새나는 嘗糞(상분)보다는 나을지 몰라도 말똥(膝行) 위에서 무릎으로 긴다(膝行)는 이 성어도 못지않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지조와 체면을 내던지고 여기저기 누구에게나 아첨하는 것을 가리켰다.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徐居正(서거정, 1420~1488)은 여러 중요저작 외에 설화문학의 중요한 자료가 되는 ‘太平閑話滑稽傳(태평한화골계전)’도 남겼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 각계서 떠돌던 해학적인 기문과 일화를 엮은 책이다. 여기에 나오는 이야기를 옮겨보자.

한 內侍別監(내시별감)이 날이 더워 냇가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는데 그 사이 타고 왔던 말이 남의 콩밭에 들어가 마구 뜯어 먹었다. 화가 난 밭주인이 그의 종을 잡아서 매질을 했다. 이를 본 내시가 황급히 물에서 나와 물에 젖은 머리카락 위에 紗帽(사모)를 쓰고 벌거벗은 몸 위에 冠帶(관대)를 찬 채 양반에게 무례하다고 호통 쳤다. 꼴에 양반 행세한다고 아니꼽게 여긴 밭주인이 흘겨보면서 비웃었다. ‘나도 정승댁 종 출신인데 다른 내시들이 우리 대감을 뵈러 올 때에는 말똥 위에서 무릎으로 기다시피 쩔쩔 매었소’ 행색을 보니 그들과 다름이 없다는 소리에 별감은 무안만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