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4일 화요일

피형참극ㅣ披荊斬棘

피형참극ㅣ披荊斬棘

피형참극ㅣ披荊斬棘

○ 가시나무를 헤치고 쪼개다, 어려움을 이기고 나아가다.

○ 披(헤칠 피) 荊(가시나무 형) 斬(벨 참) 棘(가시 극)

나무의 온갖 가시가 荊棘(형극)이다. 가시처럼 생긴 풀(艹)이 형벌에 쓰인 가시나무를 나타낸다고 한다. 앞으로 나아가는데 가시덤불이 우거져 있으면 힘들어 고생길이란 의미가 담겼다.

가시나무를 헤쳐내고(披荊) 쪼개어 베어낸다(斬棘)는 이 성어는 앞길에 걸림돌이 되는 것을 없애고 나아간다는 뜻이다. 앞서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장애를 제거하는 것을 이른다. 중국 宋(송)나라 范曄(범엽)이 쓴 ’後漢書(후한서)‘의 馮異傳(풍이전)에서 유래했다. 前漢(전한)을 멸망시키고 新(신)나라를 세운 王莽(왕망, 莽은 풀 망)의 군대는 다시 後漢(후한)의 光武帝(광무제) 劉秀(유수)에게 격파 당한다. 유수도 군사를 일으켰던 초기에는 세력이 미약하여 생활에 큰 고통이 따랐다. 대원들의 이탈이 잦았지만 主簿(주부)라는 벼슬을 맡고 있던 풍이는 흔들리지 않고 전투에 임했다.

유수가 군사를 이끌고 한 지역을 지나갈 때 추위와 배고픔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었다. 풍이는 그런 상황에서도 콩죽을 구해와 바쳤다. 다시 길을 가다 폭우를 만나 옷이 다 젖어버렸다. 풍이는 땔감을 구해 불을 피운 뒤 유수 일행의 옷을 말려주었다. 크게 고마움을 느낀 유수는 황제에 오른 뒤 풍이에게 關中(관중)을 평정하는 임무를 맡겼다. 가는 곳마다 민심을 얻자 풍이가 모반하려 한다는 글이 유수에게 올라왔다. 황제는 문무백관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풍이가 나의 대업을 위해 많은 어려움을 헤치고 장애를 극복했기에 관중 땅을 평정할 수 있었소.’ 황제는 더 큰 신임과 함께 풍이에게 많은 금은보화를 내렸다.

정인매리ㅣ鄭人買履

정인매리ㅣ鄭人買履

정인매리ㅣ鄭人買履

○ 정나라 사람이 신발을 사다, 어리석은 사람

○ 鄭(정나라 정) 人(사람 인) 買(살 매) 履(밟을 리)

‘어리석은 자가 마지막에 하는 것을 현자는 최초에 한다.’ 서양 속담이다. 중국 淸代(청대)의 문인 鄭板橋(정판교)는 어리석은 사람이 된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요, 똑똑한 사람이 된다는 것도 어려운 것이라 했다. 끊임없이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말이 나왔으면서도 어리석은 중생이 많은 탓인지 깨우치는 말은 이어진다. 제 때 일을 처리하지 못하고 뒤늦게 부산떠는 刻舟求劍(각주구검), 亡羊補牢(망양보뢰), 死後藥方文(사후약방문)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 한 술 더 뜨는 어리석음이 있으니 鄭(정)나라 사람이(鄭人) 짚신을 살 때(買履) 보인 행동이다.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403년~221년) 말기 정치사상가 韓非(한비)는 법치주의를 주창하여 秦始皇(진시황)에 큰 영향을 끼쳤다. 법가 일파의 논저를 모은 ‘韓非子(한비자)’의 外儲說(외저설) 좌상편에 실려 있는 정나라 사람의 이야기를 보자. 儲(저)는 쌓는다는 뜻으로 사례가 되는 이야기를 모아둔다는 의미를 가졌다. 내저설은 군주와 신하의 통치이론, 외저설은 한비 자신의 사상을 중점적으로 실었다고 한다.

정나라의 어떤 사람이 신발을 사려고 우선 자신의 발을 재어 본을 만들었다(鄭人有欲買履者 先自度其足/ 정인유욕매리자 선자도기족). 그런데 시장에 갈 때 발의 치수를 잰 것을 깜빡 잊고 갔다. 신발 상점에 도착해서야 그 본을 두고 왔음을 알고 장수에게 집에 가서 가지고 오겠다고 말했다. 부랴부랴 발 치수 잰 것을 갖고 왔을 땐 시장이 끝나서 신발을 살 수가 없었다. 한 사람이 신발점에서 왜 직접 신어보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대답했다. ‘차라리 발 치수 잰 것은 믿어도 내 자신의 발은 믿지 못하기 때문이오(寧信度 無自信也/ 영신도 무자신야).’ 바른 길을 가르쳐줘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은 학문이나 이론의 비현실성과 공론성에 대한 일침이기도 하다.

전전긍긍ㅣ戰戰兢兢

전전긍긍ㅣ戰戰兢兢

전전긍긍ㅣ戰戰兢兢

○ 두려워서 벌벌 떨다.

○ 戰(싸움 전) 戰(싸움 전) 兢(떨릴 긍) 兢(떨릴 긍)

전전(戰戰)은 겁을 먹고 벌벌 떠는 것. 긍긍(兢兢)은 조심해 몸을 움츠리는 것으로 어떤 위기감에 떠는 심정(心情)을 비유(比喩ㆍ譬喩)한 말

매사가 두렵고 걱정스러워 겁을 먹고((戰戰)) 벌벌 떨며 몸을 삼가고 조심한다(兢兢)는 이 성어다. 일상에 자주 쓰이는 이 말이 까마득히 春秋時代(춘추시대)의 민요를 묶은 시집 ‘詩經(시경)’에 처음 출전하니 3000년도 넘은 셈이다. 싸움 戰(전)은 戰慄(전율)에서처럼 두려워한다는 뜻도 가졌다.

孔子(공자)가 정리한 시경 小雅(소아)편의 小旻(소민)에 글자대로 나온다. 바르다는 의미의 雅(아)는 주로 왕정의 흥망성쇠를 노래한 것으로 이 성어도 周(주) 말기의 악정을 한탄하고 있다. 폭군 幽王(유왕)을 풍자한 것이라 하는데 뚜렷한 근거는 대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 6연의 내용을 보자. ‘감히 맨손으로 범을 잡지 못하고, 감히 걸어서 황하도 못 건너네, 사람들은 그 중 하나는 알지만, 나머지 것들은 전혀 모른다네(不敢暴虎 不敢憑河 人知其一 莫知其他/ 불감포호 불감빙하 인지기일 막지기타). 두려워 벌벌 떨며 삼가는데, 마치 깊은 연못을 건너는 듯하네, 마치 엷은 얼음 위를 걷는 듯하네(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전전긍긍 여림심연 여리박빙).’

왕정이 쇠락하여 국법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자 조심성 있는 일부 사람들이 그 악정 속에서 깊은 연못가에 있는 것처럼, 살얼음을 밟는 것처럼 불안에 떨며 조심한다는 이야기다. 매사에 신중을 기한다는 성어 如臨深淵(여림심연)과 如履薄氷(여리박빙)은 곳곳에서 인용된다. ‘左氏傳(좌씨전)’의 僖公(희공)조에 충분한 방비 없이 적을 막으려는 왕에게 간하는 말로, ‘論語(논어)’ 泰伯(태백)편에는 曾子(증자)가 불효를 하지 않기 위해 항상 조심했다는 말로 사용됐다.

독음이 같아 자주 헷갈리는 輾轉反側(전전반측)은 돌아눕고 구른다는 輾轉(전전)이다.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월관지화ㅣ越官之禍

월관지화ㅣ越官之禍

월관지화ㅣ越官之禍

○ 남의 업무를 한 사람이 화를 당하다.

○ 越(넘을 월) 官(벼슬 관) 之(갈 지) 禍(재앙 화)

관리가 자신의 직무를 넘어(越官) 다른 사람의 일을 했다고 하여 처벌의 재앙까지 당한다(之禍)는 말이다. 다른 사람이 부재중일 때 선의로 그 업무를 대신했더라도 다른 사람의 직무를 넘보는 것이라고 엄격하게 적용했다. 오늘날 말하는 越權(월권)이다.

이렇게 삭막한 말이 韓非(한비)의 ‘韓非子(한비자)’에 나오는 이야기라니 납득이 된다. 한비는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403년~221년)의 정치사상가로 원칙에 의해서 통솔하는 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지름길이라 생각한 法家(법가)의 확립자다. 秦(진)의 시황제는 한비자에 나오는 孤憤(고분), 五蠹(오두) 등의 주장을 읽고 “이 사람과 교유할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 감탄하기도 했다 한다. 이 한비자의 二柄(이병)편에 越官之禍가 유래된 이야기가 있다. 二柄은 두 개의 칼자루 즉 신하를 다스리는 刑(형)과 德(덕), 상벌을 의미한다.

옛날 韓(한)나라의 昭侯(소후)가 술에 취해 잠이 들었는데 典冠(전관, 군주의 관을 관리하는 벼슬아치)이 군주가 추워하는 것을 보고 옷을 덮어 주었다. 잠에서 깨어난 왕이 누가 옷을 덮었는지 물었다. 신하들은 전관이 했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전관과 典衣(전의, 임금의 옷을 담당하는 관리) 모두 불러오게 했다. 그리고는 전관에 상을 주기는커녕 전의와 함께 문책했다. 모두들 의아해하자 이렇게 말했다. ‘전의는 자신의 임무를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전관은 자신의 직분을 넘어서 越官(월관)했기 때문’이라고. 임금은 자신이 추위에 감기 드는 것보다 다른 일에 간섭하는 피해가 더 크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경물타아ㅣ輕勿打兒

경물타아ㅣ輕勿打兒

경물타아ㅣ輕勿打兒

○ 경솔하게 어린이를 때리지 말라.

○ 輕(가벼울 경) 勿(말 물) 打(칠 타) 兒(아이 아)

천도교 2대 교주인 海月(해월) 崔時亨(최시형) 법설에, 사람과 만물을 대함에 있어 주의할 점을 깨우치는 ‘待人接物(대인접물)’에 나오는 내용이다. 선생은 사람이 곧 하늘이니 하늘처럼 섬기고(人是天 事人如天/ 인시천 사인여천), 집에 사람이 오거든 사람이 왔다고 하지 말고 하느님이 강림하셨다고 말하라(道家人來 勿人來言 天主降臨爲言/ 도가인래 물인래언 천주강림위언)고 가르친다. 특히 말미에 ‘아이를 때리는 것은 하늘을 때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죄악에 물들지 아니하고 순수하고 거짓이 없는 마음은 어린 아이 때의 마음이다. 그래서 孟子(맹자)도 말했다. ‘대인이란 어린 아이 때의 마음을 잃지 않은 사람이다.’

사위별칭ㅣ死謂別稱

사위별칭ㅣ死謂別稱

사위별칭ㅣ死謂別稱

○ 사람의 죽음을 지위에 따라 달리 부르다.

○ 死(죽을 사) 謂(이를 위) 別(나눌 별) 稱(일컬을 칭)

사람의 죽음을 생전의 지위에 따라 달리 부르는 것이 유가의 경전 중 하나인 ‘禮記(예기)’에 더욱 뚜렷이 나타나 흥미롭다. 曲禮(곡례) 下篇(하편)에 실린 내용을 보자. ‘천자가 죽으면 崩(붕)이라 하고, 제후가 죽으면 薨(훙)이라 하고, 대부가 죽으면 卒(졸)이라 한다. 선비가 죽으면 不祿(불록)이라 하고, 일반 서인이 죽으면 死(사)라고 한다(天子死曰崩 諸侯曰薨 大夫曰卒 士曰不祿 庶人曰死/ 천자사왈붕 제후왈훙 대부왈졸 사왈불록 서인왈사).’

薨은 죽을 훙, 不祿은 녹을 타지 아니하고 죽는다는 뜻이다. 이어서 설명을 덧붙인다. ‘죽은 이의 시신이 침상에 있을 때 尸(시)라 하고, 관에 들어가 있을 때는 柩(구)가 된다. 새의 죽음은 降(강)이 되고, 짐승이 죽는 것은 漬(지)라고 하며 난리에 죽는 것은 兵(병)이라고 한다(在床曰尸 在棺曰柩 羽鳥曰降 四足曰漬 死寇曰兵/ 재상왈시 재관왈구 우조왈강 사족왈지 사구왈병).’ 漬는 적실 지. 죽음에도 계급은 따라간 셈이다.

우리나라에선 임금의 죽음을 태산이 무너졌다고 崩御(붕어), 먼 곳으로 올라갔다고 昇遐(승하)라고 했고 登遐(등하), 禮陟(예척), 陟方(척방)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왕의 죽음을 말하던 天崩(천붕)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아픔을 말하고 地崩(지붕)은 어머니의 죽음을 뜻했다.

종교에 따라서도 나타내는 말이 다르다. 불교에서는 수도승이나 승려의 죽음을 평온한 경지에 들어섰다고 入寂(입적)이라 하고 涅槃(열반)이라고도 부른다. 歸寂(귀적), 入滅(입멸), 滅度(멸도), 寂滅(적멸), 圓寂(원적)도 같은 말이다. 가톨릭에선 착하게 살다가 복된 죽음을 맞는 善生福終(선생복종)의 준말 善終(선종)을 쓰고,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는 召天(소천)은 개신교에서 죽음을 말한다. 또 천도교에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고 還元(환원)이라 쓴다.

풍수지탄ㅣ風樹之歎

풍수지탄ㅣ風樹之歎

풍수지탄ㅣ風樹之歎

○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려면 지금 하라

○ 風(바람 풍) 樹(나무 수) 之(갈 지) 歎(탄식할 탄)

부모(父母)에게 효도(孝道)를 다하려고 생각할 때에는 이미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이르는 말

풍수(風樹)는 『시경(詩經)』의 해설서인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봉양(奉養)하려 하나 어버이가 기다려 주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고 하여 돌아가신 어버이를 생각하는 마음을 나타낸 부분에서 유래(由來)한 말

孔子(공자)가 뜻을 펴기 위해 이 나라 저 나라 周遊天下(주유천하) 하던 중 하루는 난데없이 곡성이 들려왔다. 너무나 슬픔에 잠긴 울음소리라 지나치지 못하고 따라가 보니 皐魚(고어)라는 사람이었다. 공자가 수레에서 내려 연유를 물어 보자 이렇게 답한다.

‘저는 세 가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첫째는 젊었을 때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다가 고향에 와 보니 부모님이 이미 세상을 떠나신 것이요, 둘째는 섬기고 있던 군주가 사치를 좋아했는데 충언을 듣지 않아 그에게서 도망쳐 온 것이요, 셋째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교제를 하던 친구와의 사이가 멀어진 것입니다. 나무는 조용하고자 하지만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봉양을 하려고 하지만 부모님은 계시지 않는 것입니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 수욕정이풍부지 자욕양이친부대).

떠나가면 다시는 볼 수 없는 것이 어버이인 것입니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이 말을 명심시키자 따르던 제자가 13명이나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를 봉양했다고 한다. 漢(한)나라 사람 韓嬰(한영)이 쓴 ‘韓詩外傳(한시외전)’에 실려 있다. ‘孔子家語(공자가어)’ 44편 중 致思(치사)편에는 같은 내용에 丘吾子(구오자)란 사람으로 되어 있다.

팔두지재ㅣ八斗之才

팔두지재ㅣ八斗之才

팔두지재ㅣ八斗之才

○ 여덟 말을 차지한 재주, 뛰어난 조식의 글재주

○ 八(여덟 팔) 斗(말 두) 之(갈지) 才(재주 재)

‘재주는 장에 가도 못 산다’는 속담대로 남보다 뛰어난 재주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배우고 익혀야 한다. 모든 일을 잘 하기는 어렵다. 맑은 날에는 신발로, 궂은 날에는 나막신으로 쓸 수 있는 온갖 재주를 가진 사람을 履屐俱當(이극구당, 屐은 나막신 극)이라 한다. 이같이 여러 방면에 능통한 사람 八方美人(팔방미인)이란 말이 또한 온갖 일에 조금씩 아는 얼치기라는 뜻도 있다.

중국 南北朝(남북조)시대의 이름난 산수시인 謝靈運(사령운, 385~433)이 曹操(조조)의 아들인 曹植(조식)을 극찬하면서 한 말이다. 唐(당)나라 李延壽(이연수)가 남조 네 왕조를 기술한 ‘南史(남사)’에 기록돼 있다. 부분을 보자.

‘천하의 글재주를 모두 한 섬이라 한다면, 조식 혼자서 여덟 말을 차지한다(天下才共一石 曹子建獨得八斗/ 천하재공일석 조자건독득팔두).’ 자가 子建(자건)인 조식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조조의 각별한 보살핌을 받았으나 아버지 사후 즉위한 형 曹丕(조비)가 사사건건 트집하여 큰 고통을 겪었다. 콩대를 태워서 콩을 삶아 고통을 안기는 煮豆燃萁(자두연기, 萁는 콩대 기)는 형제끼리의 다툼을 말한다. 이 말이 조비가 일곱 발자국을 옮기는 동안 시를 지으라고 하여 탄생한 조식의 七步詩(칠보시)에서 유래한 구절인 것은 유명하다.

조식을 높이 평가한 사령운도 자부심이 대단했다. 남은 두 말의 재주 중 자신이 한 말을 차지하고, 예부터 그 때까지의 사람들이 남은 한 말을 쓰고 있다고 했다. 자신의 재주를 믿는 자부심은 좋으나 너무 아무 데나 앞세우면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 먼저 다치거나 타인의 질시를 받아 일찍 쇠퇴한다는 甘井先竭(감정선갈)이란 말도 있으니 마음을 먼저 닦아야 한다.

당구풍월ㅣ堂狗風月

당구풍월ㅣ堂狗風月

당구풍월ㅣ堂狗風月

○ 서당개 삼 년에 풍월한다

○ 堂(집 당) 狗(개 구) 風(바람 풍) 月(달 월)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뜻으로 지식이나 경험이 없던 분야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져서 웬만한 능력을 갖추게 된다는 말이다.

당구삼년음풍월(堂狗三年吟風月), 당구풍월(堂狗風月)이라고도 한다. 풍월(風月)은 얻어 들은 짧은 지식을 뜻한다. 아무리 무지한 사람도 박학다식한 사람이 많은 환경에 있으면 유식하게 된다는 말로, 어떤 분야에 전혀 경험이나 지식이 없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익숙해지고 잘 알게 된다는 뜻이다. 그만큼 어떤 환경에 있느냐에 따라 그에서 받는 영향이 중요하다는 말로, 근주자적(近朱者赤)·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는 성어와도 같은 뜻이다.

다기망양ㅣ多岐亡羊

다기망양ㅣ多岐亡羊

다기망양ㅣ多岐亡羊

○ 여러 갈래로 갈린 길에서 양을 잃는다

○ 多(많을 다) 岐(가닥나뉠 기) 亡(잃을 망) 羊(양 양)

여러 갈래로 갈린 길에서 양을 잃는다는 뜻으로, 학문의 길이 많아 진리를 찾기 어렵다는 것을 이르는 말.

열자(列子) 설부편(說符篇)에 보이는 이야기이다.

양자의 이웃집에서 양 한 마리가 도망을 했다. 양의 주인이 동네 사람들을 이끌고 양자에게 노복(奴僕) 청하여 양을 쫓아가려 하자, 양자가 물었다. "단 한 마리의 양을 잃었는데 어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뒤쫓아가는고." 이웃집 사람이 대답하였다. "도망간 쪽에는 갈림길이 많기 때문이오." 얼마 뒤에, 그들이 피곤한 몸으로 돌아와서 양을 잃었다고 하였다. 양자가 양을 잃은 까닭을 묻자, "갈림길을 가면 또 갈림길이 있어서, 양이 어디 갔는지 모르게 되어 버렸소(多岐亡羊)."

양자는 그 말을 듣고는 묵묵히 앉아 입을 떼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하루종일 웃는 얼굴 한번 보이지 않았다. 제자들이 기껏해야 양 한 마리를 잃은 일이요, 더구나 자기의 양도 아닌데, 그렇게 침울해 있는 것은 이상하다 생각하고, 까닭을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뒷날, 한 제자가 그 일에 대해서 묻자, 양자는 "단 한 마리의 양이라 할지라도, 갈림길에서 또 갈림길로 헤매어 들어가서 찾다가는 결국 양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하물며 학문의 길은 어떻겠느냐? 목표를 잃고 무수한 학설들에 빠져 헤맨다면 아무리 노력한들 그 또한 무의미한 것 아니겠느냐." 하였다.

장자(莊子) 변무편(騈拇篇)에도 양을 잃은 이야기가 있다. 남녀 종이 책을 읽고 주사위놀음을 하다가 양을 잃었다는 이야기로, 이 곳에서도 주위의 사물이나 현상에 휩쓸리다 보면 자기의 본분을 잊게 된다는 비유로 사용되고 있다. 망양지탄(亡羊之歎)이라고도 한다.

학문에는 지식의 집적과 이론의 분석이 필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부질없이 지엽말절을 꼬치꼬치 캐고 살피는 일에 빠져서 근본 목표를 잃어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란 것을 풍자한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