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2일 토요일

간담상조ㅣ肝膽相照

간담상조ㅣ肝膽相照

간담상조ㅣ肝膽相照

○ 서로 간과 쓸개를 꺼내 보인다

○ 肝:(간 간) 膽(쓸개 담) 相(서로 상) 照(비칠 조)

서로 간과 쓸개를 꺼내 보인다는 뜻. 곧 ① 상호간에 진심을 터놓고 격의 없이 사귐. ② 마음이 잘 맞는 절친한 사이.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 당대(唐代)의 두 명문(名文) 대가에 한유韓愈: 자는 퇴지(退之), 768∼824와 유종원柳宗元 : 자는 자후(子厚), 773~819)이 있었다. 이들은 함께 고문 부흥(古文復興) 운동을 제창한 문우로서 세인으로부터 한유(韓柳)라 불릴 정도로 절친한 사이였다.당나라 11대 황제인 헌종(憲宗:805-820) 때 유주 자사(柳州刺史)로 좌천되었던 유종원이 죽자 한유는 그 묘지명(墓地銘)을 썼다.

자신의 불우한 처지는 제쳐놓고 오히려 연로한 어머니를 두고 변경인 파주 자사(播州刺史)로 좌천, 부임하는 친구 유몽득(劉夢得)을 크게 동정했던 유종원의 진정한 우정을 찬양하고, 이어 경박한 사귐을 증오하며 이렇게 쓰고 있다."..... 사람이란 곤경에 처했을 때라야 비로소 절의(節義)가 나타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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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평온하게 살아갈 때는 서로 그리워하고 기뻐하며 때로는 놀이나 술자리를 마련하여 부르곤 한다. 또 흰소리를 치기도 하고 지나친 우스갯소리도 하지만 서로 양보하고 손을 맞잡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서로 간과 쓸개를 꺼내 보이며(肝膽相照) 해를 가리켜 눈물짓고 살든 죽든 서로 배신 하지 말자고 맹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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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제법 그럴듯하지만 일단 털 끌만큼이라도 이해 관계가 생기는 날에는 눈을 부릅뜨고 언제 봤냐는 듯 안면을 바꾼다. 더욱이 함정에 빠져도 손을 뻗쳐 구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이 빠뜨리고 위에서 돌까지 던지는 인간이 이 세상 곳곳에 널려 있는 것이다."

맹모삼천ㅣ孟母三遷

맹모삼천ㅣ孟母三遷

맹모삼천ㅣ孟母三遷

○ 교육에는 주위 환경이 중요하다는 가르침

○ 孟(맏 맹) 母(어머니 모) 三(석 삼) 遷(옮길 천)

맹자(孟子)의 어머니가 맹자(孟子)를 제대로 교육(敎育)하기 위(爲)하여 집을 세 번이나 옮겼다는 뜻으로,교육(敎育)에는 주위(周圍) 환경(環境)이 중요(重要)하다는 가르침

동양 사상의 정점을 차지하는 공자의 수제자요, 왕도정치(王道政治)와 성선설(性善說)의 주창자로 이름 높은 맹자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아들 교육에 지극한 정성을 쏟았다. 아버지가 죽고 나서 맹자가 어머니를 따라 처음으로 이사한 곳은 공동묘지 근처였다. 그러자, 맹자는 묘지 구덩이를 파고 곡을 하며 장례를 치르는 흉내만 내며 놀았다.

‘여기는 결코 내 아들을 키울 곳이 못 되는구나.’

맹자의 어머니는 이렇게 생각하고 당장 이사를 서둘렀다. 그리하여 이사를 간 곳은 시장 근처였다. 그런데, 맹자가 이번에는 물건을 쌓아 놓고 손님을 꾀어 들여 흥정을 하며 물건을 팔고 사는 장사꾼의 흉내만 내는 것이었다.

‘여기도 안 되겠다.’

이렇게 판단한 맹자 어머니가 아들을 데리고 다시 이사를 간 곳은 서당 옆이었다. 그러자, 맹자가 이번에는 글 읽는 시늉을 하거나 제기(祭器)를 늘어놓고 제사를 지내는 흉내를 내며 놀았다.

‘옳지! 이곳이야말로 내 아들을 키울 수 있는 곳이구나.’

맹자의 어머니는 그제서야 기뻐하며 마음을 놓았다. 서당은 글뿐 아니라 유교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예절도 가르치므로 아들을 선비로 키울 수 있는 조건이 된다고 생각했다.

막고야산ㅣ莫姑野山

막고야산ㅣ莫姑野山

막고야산ㅣ莫姑野山

○ 신선들이 사는 곳

○ 莫말 막 姑시어머니 고 野들 야 山뫼 산

일설로는 "莫"이 "邈"과 같은 자로서 \멀다\는 뜻이 있다고 하여, \먼 고야산\이라고도 한다. 고야산은 늙지도 죽지도 않는 신선들이 사는 선경으로 전해오고 있다. 또 \막고야산\이라고 하여 북해 속에 신선이 사는 산을 뜻하기도 한다.

도를 터득한 현인 견오가 연숙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접여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네만, 글쎄 그게 너무 터무니없고 앞으로 나아갈 줄만 알았지 돌아올 줄을 모르더군. 나는 그 이야기가 은하수처럼 한없이 계속되는 것 같아 그만 오싹해졌네. 너무도 차이가 있어 상식에 어긋나네."

연숙이 물었다. "그 이야기란 어떤 건가?" 견오가 대답했다. "막고야산에 신인이 살고 있지. 그 피부는 얼음이나 눈처럼 희고, 몸매는 처녀같이 부드러우며 곡식은 먹지 않고 바람과 이슬을 마시며 구름을 타고 용을 몰아 천지 밖에서 노닌다네. 그가 정신을 한데로 집둥하면 그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병들지 않고 곡식도 잘 익는다는 거야. 이야기가 하도 허황돼서 믿어지지가 않네."

연숙이 말했다. "그렇군. 장님에게는 색깔의 아름다움이 안 보이고 귀머거리에겐 음악의 황홀한 가락이 안 들리지만, 장님이나 귀머거리는 육체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닐세. 지식에도 장님과 귀머거리가 있네. 그게 바로 지금의 자네를 말하네. 신인의 덕은 만물을 섞어 하나로 만들려는 거지. 세상 사람들은 그를 위해 애써 수고하여 하겠나.

이러한 신인은 외계의 사물에 의해 피해를 입는 일이 없고 홍수가 나서 하늘에 닿을 지경이 돼도 빠지는 일이 없으며, 큰 가뭄으로 금속과 암석이 녹아 흘러 대지나 산자락이 타도 뜨거운 줄 모르네. 신인은 그 몸의 먼지나 때, 쭉정이와 겨로도 세상 사람들이 성인이라는 요나 순을 만들 수가 없는데 무엇 때문에 천하 따위를 위해 수고하려 하겠는가."

마고소양ㅣ麻姑搔痒

마고소양ㅣ麻姑搔痒

마고소양ㅣ麻姑搔痒

○ 손톱 긴 선녀가 가려운 데를 긁어 준다

○ 麻(삼 마) 姑(고모 고) 搔(긁을 소) 痒(긁을 양)

마고라는 손톱 긴 선녀가 가려운 데를 긁어 준다는 뜻으로,일이 뜻대로 됨을 비유(比喩ㆍ譬喩)해 이르는 말

신선전(神仙傳)》 마고(麻姑)편에 나오는 고사에서 비롯되었다. 한(漢)나라 환제(桓帝) 때 마고라는 선녀가 무리들과 함께 수도 장안(長安)에 들어와 채경(蔡經)이라는 관리의 집에 머물게 되었다. 마고의 손톱은 사람의 손톱과는 달리 길고 뾰족한 것이 마치 새의 발톱처럼 생겼다. 마고를 영접한 채경은 마고의 손톱을 보는 순간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였다. ‘만일 등이 가려울 때 저 손톱으로 긁는다면 얼마나 시원하겠는가.’ 그러나 채경의 이런 불경한 생각은 바로 선녀들에게 읽히고 말았다. 방평(方平)이라는 선녀가 마음속으로 중얼거린 채경의 생각을 읽은 것이다. 방평은 곧 사람들을 불러 그를 끌어다 채찍질하고는 이렇게 꾸짖었다. “마고는 선녀이다. 너는 어찌하여 불경스럽게도 마고의 손톱으로 등을 긁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느냐.”

이와 같이 마고소양이란 힘이나 능력을 가진 사람의 도움으로 자기의 원하는 바를 뜻대로 이룸을 가리킨다. 오늘날에는 뜻이 확대되어 자기 일이 뜻대로 이루어짐을 비유하는 말로도 쓰인다. 마고파양(麻姑爬痒)과 같은 말이다.

과전이하ㅣ瓜田李下

과전이하ㅣ瓜田李下

과전이하ㅣ瓜田李下

○ 의심받을 짓은 처음부터 하지 말라

○ 瓜(오이 과) 田(밭 전) 李(오얏 리) 下(아래 하)

오이밭과 오얏(자두)나무 밑이라는 뜻으로,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와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을 준말로 오이 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자두)나무 밑에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뜻. 즉, 남의 의심(疑心)을 받기 쉬운 일은 하지 말라는 말

당(唐)나라 목종(穆宗)이 어느 날 당대의 명필(名筆)인 유공권(柳公權)에게 「요즘 조정(朝廷)에서 시행(施行)하고 있는 여러 가지 조치에 관하여 불평(不平)하고 비난(非難)하는 일은 없는지요?」하고 물었다. 이에 유공권은 「폐하(陛下)께서 곽민(郭敏)이란 자를 빈령의 수령으로 보낸 일이 있은 다음부터 비난(非難)이 자자하옵니다.」 하고 생각한 바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이에 제왕(帝王)은 「그것은 왜 그런가? 곽민(郭敏)으로 말하면 상부(商父)의 조카이며 태황태후의 작은아버지로 항상 정직하고 속임이 없기에 작은 벼슬자리를 준 것이거늘 그게 무슨 그리 비난(非難)거리가 된단 말이요?」 하고 다시 물었다. 유공권이 「그동안 곽민(郭敏)이 세운 공으로 치자면 그런 정도의 벼슬자리는 과분(過分)하다고 할 수 없사옵니다. 하지만 곽민(郭敏)은 자기의 두 딸을 궁안에 들여 보냈기 때문에 그런 벼슬을 얻은 것이라고들 쑥덕거린다고 하옵니다.」 하고 대답(對答)했다.

이 말을 들은 목종은 「곽민(郭敏)의 딸을 입궁 시킨 것은 태황태후를 그저 예로 뵙도록 한 것이지 궁녀(宮女)로 삼으려 한 것이 아니다.」 하고 사실대로 말했다. 이에 유공권은 정중히 「과전이하(瓜田李下)의 혐의를 어떻게 벗을 수가 있겠사옵니까?」 하고 아뢰었다고 함

수구초심ㅣ首丘初心

수구초심ㅣ首丘初心

수구초심ㅣ首丘初心

○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

○ 首(머리 수) 丘(언덕 구) 初(처음 초) 心(마음 심)

여우는 죽을 때 구릉을 향(向)해 머리를 두고 초심으로 돌아간다라는 뜻으로, ①근본(根本)을 잊지 않음 ②또는 죽어서라도 고향(故鄕) 땅에 묻히고 싶어하는 마음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을 도와서 은(殷)나라를 멸하고 주(周)나라를 일으킨 여상(呂尙) 태공망(太公望)은 제(齊)나라에 있는 영구(營丘)에 봉해졌는데, 계속해서 다섯 대(代)에 이르기까지 주(周)의 호경(鎬京)에 반장(反葬)했다. 군자께서 이르시기를 음악은 그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바를 즐기며 예(禮)란 그 근본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옛사람의 말에 이르되, 여우가 죽을 때에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바르게 향하는 것은 인(仁)이라고 하였다.

득어망전ㅣ得魚忘筌

득어망전ㅣ得魚忘筌

득어망전ㅣ得魚忘筌

○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을 잊어버린다

○ 得(얻을 득) 魚(고기 어) 忘(잊을 망) 筌(가리(고기 잡는 기구) 전)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을 잊어버린다. 목적을 이루면 그 때까지 수단으로 삼았던 사물은 무용지물이 됨을 이르는 말.

"

장자(莊子) 외물편(外物篇)에 나오는 말이다. 통발은 물고기를 잡는 도구인데,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은 잊어버리고 만다. 올가미는 토끼를 잡는 도구인데, 토끼를 잡고 나면 올가미는 잊어버리고 만다. 이처럼 말이란 마음속에 가진 뜻을 상대편에게 전달하는 수단이므로 뜻을 얻으면 말은 잊어버리고 만다. 뜻을 얻고 말을 잊어버린 사람과 말하고 싶구나(筌者所以在魚 得魚而忘筌 蹄者所以在兎 得兎而忘蹄 言者所以在意 得意而忘言 吾安得夫忘言之人 而與之言哉).

",

위의 글에서 망전(忘筌)이나 망제(忘蹄), 망언(忘言)은 모두 시비(是非), 선악(善惡)을 초월한 절대 경지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득어망전이란, 진리에 도달하면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사용한 모든 수단을 버린다는 의미이다. 불경의 하나인 《사유경(蛇喩經)》에 보면 다음과 같은 비유가 나온다.

"비구들이여, 나는 너희들에게 집착을 버리도록 하기 위해 뗏목의 비유를 들겠다. 어떤 나그네가 긴 여행 끝에 바닷가에 이르렀다. 그는 생각하기를 바다 저쪽은 평화로운 땅이니 그리 가야겠다 하고 뗏목을 만들어 무사히 바다를 건넜다. 바다를 무사히 건넌 이 나그네는 그 뗏목을 어떻게 하겠느냐? 그것이 아니었으면 바다를 건너지 못했을 것이므로 은혜를 생각해 메고 가야겠느냐? 아니면, \이 뗏목 때문에 나는 바다를 무사히 건넜다. 다른 사람들도 이것을 이용하도록 여기에 두고 나는 내 갈길을 가자\ 하겠느냐. 이 나그네는 뗏목을 두고 가도 그의 할 일을 다한 것이 된다. 너희들도 이 나그네가 뗏목을 잊은 것처럼 궁극에는 교법마저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장자》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절대 경지에 들어서면 수단은 물론이거니와 절대 경지에 들어섰다는 것마저 잊으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득어망전이란, 자기의 뜻한 바를 이룬 후에는 그 수단이나 과정에 대하여는 애착을 갖지 말라는 것인데, 오늘날에는 토사구팽(兎死狗烹)처럼 배은망덕한다는 뜻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오동나무 Paulownia , 梧桐─

오동나무 Paulownia , 梧桐─

오동나무 (Paulownia , 梧桐─ )

이 름 : 오동나무

학 명 : Paulownia coreana

과 명 : 현삼과

원 산 : 한국의 평남 ·경기 이남, 울릉도

분 포 : 촌락 근처

크 기 : 높이 15m

개 화 : 5∼6월

꽃 말 : 고상

촌락 근처에 심는다. 높이 15m에 달한다. 잎은 마주나고 달걀 모양의 원형이지만 오각형에 가깝고 끝이 뾰족하며 밑은 심장저이고 길이 15∼23cm, 나비 12∼29cm로 표면에 털이 거의 없다. 뒷면에 갈색 성모(星毛:여러 갈래로 갈라진 별 모양의 털)가 있으며 가장자리에 톱니가 없다. 그러나 어린잎에는 톱니가 있고 잎자루는 길이 9∼21cm로 잔털이 있다.

꽃은 5∼6월에 피고 가지 끝의 원추꽃차례에 달리며 꽃받침은 5개로 갈라진다. 갈래조각은 달걀 모양으로 길며 끝이 뾰족하고 서기도 하고 퍼지기도 하며 양 면에 잔털이 있다. 화관은 길이 6cm로 자주색이지만 후부(喉部)는 노란색이고 내외부에 성모(星毛)와 선모(腺毛)가 있다.

4개의 수술 중 2개는 길고 털이 없으며 씨방은 달걀 모양으로 털이 있다. 열매는 삭과(蒴果)로 달걀 모양이고 끝이 뾰족하며 털이 없고 길이 3cm로 10월에 익는다. 목재는 장롱 ·상자 ·악기 등을 만든다.

한국 특산종으로 평안남도 ·경기도 이남에 분포한다. 오동나무는 식물학적으로 울릉도가 원산인 참오동나무(P. tomentosa Steud)이며 꽃잎에 자주색 줄이 길이 방향으로 있는 것이 줄이 없는 오동나무와의 차이점이다.

-사진 : 임규동의 꽃사진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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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사일생ㅣ萬死一生

만사일생ㅣ萬死一生

만사일생ㅣ萬死一生

○ 만 번의 죽을 고비에서 살아난다

○ 萬(일만 만) 死(죽을 사) 一(한 일) 生(살 생)

만번의 죽을 고비에서 살아난다는 말로,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겨우 죽음을 모면한다.

태평한 정치의 모범으로 일컬어지는 당 태종의 정치貞觀之治를 기록해 놓은 《정관정요(貞觀政要)》에 보이는 말이다. 수(隋)나라는 건국 초부터 대토목 공사를 일으켜 나라가 피폐했는데, 양제(煬帝) 때에 이르러서는 도가 심하여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문제(文帝)의 먼 인척으로 총애를 받던 이연(李淵)은 관중의 치안을 맡고 있다가 내란 진압의 특명을 받고 아들 이세민(李世民)과 함께 출정하였다. 이연은 본래 호탕하여 천하의 호걸들과 친분을 맺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양제의 의심을 사서 황제의 감시를 받게 되었다.

그러자 이세민은 차제에 독립할 것을 아버지에게 권하였다. 7세기 초 내란이 격화되어 양제가 있는 강도(江都)가 고립되자, 이연은 태원(太原)을 거점으로 독립하고, 돌궐의 도움을 받아 장안을 점거한 후 이듬해 양제가 살해되자 스스로 제위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이세민의 활약이 뛰어나, 아버지로부터 ‘천하는 모두 네가 이룩하여 놓은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세민이 아버지를 도와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그와 생사를 같이한 많은 인재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장량(張亮)이나 이정(李靖), 이적(李勣)과 같은 명장, 왕규(王珪)·위징(魏徵)·방현령(房玄齡)·두여회(杜如晦) 같이 현명한 재상들이 이세민을 도와, 후일 정관의 치를 이룩할 수 있었다.

이세민은 현무문에서 형제 세력을 물리치고 태종으로 즉위하였으나 그 후 관료제로써 지방에 할거하던 군웅을 복속시키고, 학문을 장려하여 민심을 가라앉혔다. 그는 또 능연각(凌煙閣)을 설치하여, 개국 때부터의 공신 20명의 초상화를 그려 걸어 놓게 했으며, 사람들에게 항상 이렇게 말하였다 한다. “옛날에 방현령은 나를 따라 나라를 평정하느라고 고생했는데, 만번의 죽을 고비에서 살아나오기도 했다(萬死一生).” 흔히 사용하는 구사일생(九死一生)과 같은 의미이다.

망진막급ㅣ望塵莫及

망진막급ㅣ望塵莫及

망진막급ㅣ望塵莫及

○ 먼지를 바라보고 미치지 못한다

○ 望(바랄 망) 塵(티끌 진) 莫(말 막) 及(미칠 급)

먼지를 바라보고 미치지 못한다는 말로, 원하는 바를 손에 넣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

당나라 때 이연수(李延壽)가 편찬한 남북조시대 남조인 남송(南宋)·제(齊)·양(梁)·진(陳) 등 4조(朝)의 역사를 다룬 《남사(南史)》에 보이는 내용이다.

남송의 복양(濮陽)에 오경지(吳慶之)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학문이 깊고 인격이 고매하여 주위 사람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고 있었다. 왕의공(王義恭)은 양주(揚州) 태수로 부임하면서 그의 명성을 듣자 그에게 자기의 일을 도와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때 오경지는 태수가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 주는 것이 기뻐 서슴없이 그 요청을 수락하였다. 그런데 후일 왕의공이 업무상의 과실로 인해 중앙 정부로부터 탄핵을 받고 처형되자, 오경지는 큰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에게는 다른 사람을 보좌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한 오경지는 관직을 떠나 초야에 묻히려 하였다. 그러던 차에, 이번에는 오흥(吳興) 태수로 임명된 왕곤(王棍)이라는 사람이 부임하면서 오경지를 불러 공조(工曺)의 자리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하였다. 왕곤을 만난 오경지는 “저는 나라의 일에 대하여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지난번 왕의공 태수가 저를 지나치게 평가하여 나름대로 바쁘게 뛰어다녔지만 해 놓은 일이 없습니다. 이런 제게 관직을 다시 맡아달라고 하는 것은 물고기를 나무 위에서 기르고 새를 물 속에서 기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고는 인사도 없이 황망히 그 자리를 떠났다. 왕곤이 급히 일어나 뒤를 따랐지만, 길에는 흙먼지만 보일 뿐 오경지는 간 곳이 없었다.

망진막급은 이와 같이 사람을 쫓아가다 미치지 못한 것을 가리켰는데, 오늘날에는 간절히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을 경우를 비유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