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2일 토요일

간뇌도지ㅣ肝腦塗地

간뇌도지ㅣ肝腦塗地

간뇌도지ㅣ肝腦塗地

○ 전란중의 참혹한 죽음을 맞이하다

○ 肝(간 간) 腦(뇌 뇌) 塗(칠할 도) 地(땅 지)

전란중의 참혹한 죽음을 맞이하다, 간과 뇌가 흙과 범벅이 되다란 뜻으로 전란(戰亂)중의 참혹한 죽음을 형용한 말

사기(史記) 유경열전(劉敬列傳)에는 한(漢)나라 고조(高祖)와 유경의 대화가 실려 있다. 유경은 고조에게 폐하 께서는 촉 땅과 한을 석권하고, 항우와 싸워 요충지를 차지하도록 까지 대전(大戰) 70회, 소전(小戰) 40회를 치렀습니다. 이로 인해 백성들의 간과 골이 땅바닥을 피 칠하게 되었고, 아버지와 자식이 들판에서 해골을 드러내게 된 것이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使天下之民, 肝腦塗地, 父子暴骨中野, 不可勝數).라고 하였다.

유경은 덕치(德治)가 이루어졌던 주나라의 경우와는 달리 한나라 고조는 많은 전쟁을 치르며 땅을 차지하였기 때문에 앞으로 발생할 반발세력의 저항이나 외부의 침략을 예상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고조에게 옛 진 나라의 요충지인 함양(咸陽)을 도읍으로 정하도록 충고하였던 것이다.肝腦塗地(간과 뇌가 흙과 범벅이 되다)란 전란(戰亂)중의 참혹한 죽음을 형용한 말이다.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 속에서 인간들이 겪어야 하는 죽음의 모습은 바로 이러한 것이리라.

노생상담ㅣ老生常譚

노생상담ㅣ老生常譚

노생상담ㅣ老生常譚

○ 늙은 서생이 하는 이야기

○ 老(늙을 로) 生(날 생) 常(항상 상) 譚(이야기할 담)

늙은 서생이 하는 이야기, 새롭고 독특한 의견을 제시하지 않고 언제나 똑같은 상투적인 이야기를 할 때 사용함

조조가 통치하는 위(魏)나라에 관로(管輅)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보통 평범한 아이들과는 달리 천문학에 남다른 관심과 지식을 보였다. 친구들과 놀 때도 일월성신(日月星辰)을 그리는 데 열중하였다. 그는 자라서 사람들의 운명을 점치는 데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였다.

어느 날 당시 이부상서(吏部尙書)로 있던 하안(何晏)이 관로에게 점을 치러 왔다. "내가 장차 삼공이 될 수 있는지 좀 봐주시오. 요즘 파란 파리 열 마리가 내 코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꿈을 꾸었는데 그 꿈도 좀 해몽해 주구려.""단도직입적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옛날 주(周)의 성왕(成王)을 보필하던 주공(周公)은 직무 때문에 밤을 세우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그로 인해 성왕이 나라를 일으킬 수 있었고 다른 제후들도 그를 추앙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늘의 도리를 따르고 지켰기 때문이지, 점을 치거나 액막이를 해서가 아닙니다. 당신은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덕행이 부족하여 위세를 부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좋은 것이 아닙니다. 상서를 보면 코는 하늘 가운데 있습니다. 그런데 파란파리가 얼굴에 달라붙는 것은 위험한 징조입니다. 당신이 이로는 문왕(文王)을 쫓고 아래로는 공자를 생각하면 청파리도 쫓을 수 있습니다."그러자 옆에서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등양(鄧暘)이 비웃으며 말했다.

"그런 마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얘기요. 나는 노생(老生)의 말을 너무 많이 들어 신물이 났소. 뭐 특별한 게 있소?" 관로는 아무 말도 못했다. 날만 새면 어제의 지식은 낡은 것이 되어 버리는 오늘날, 새롭고 독창적인 것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老生常譚\만 하면 더 이상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퇴보하기 쉽다.

노이무공ㅣ勞而無功

노이무공ㅣ勞而無功

노이무공ㅣ勞而無功

○ 애는 썼으나 애를 쓴 보람이 없음

○ 勞(일할 노) 而(말이을 이) 無(없을 무) 功(공 공)

공자(孔子)가 노(魯)나라에서 서쪽에 있는 위(衛)나라로 떠나기에 앞서 수제자 안연(顔淵)이 사금(師金)이란 벼슬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물었다.

"우리 선생님의 이번 여행길은 어떻겠습니까?" 사금은 이랬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당신 선생은 아마 이번에 욕을 보실 겁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다그쳐 묻는 안연에게 사금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 선생은 전에도 여러 나라에서 곤욕을 치렀지요. 송(宋)나라에서는 나무 그늘 밑에서 강론을 하다가 베어진 나무에 깔릴 뻔했고 위나라에서는 쫓겨나기도 했으며, 진(陳)나라와 채(蔡)나라 사이의 들에서는 이레 동안이나 끼니를 굶어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사금은 잠깐 뜸을 들였다가 본론으로 들어갔다. "물길을 가기 위해서는 배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적당하고, 육지를 가기 위해서는 수레를 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물길을 가야 할 배를 육지에서 밀고 가려고 한다면 한평생이 걸려도 얼마 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옛날과 이제의 차이는 물과 육지의 차이와 다름이 없고 주(周)나라와 노나라의 차이는 배와 수레의 차이가 아닙니까.

이제 주나라의 옛날 道를 오늘의 노나라에서 행하려고 하는 것은 마치 배를 육지에서 미는 것과 같아서 \애는 쓰나 공은 없고(勞而無功)\ 또 그 몸에도 반드시 화가 미칠 것입니다. 당신 선생은 아직도 저 무한한 변전(變轉), 곧 끝없이 변동하는 道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안타깝지만 당신 선생은 곤란을 당할 것입니다."

육대함이ㅣ六代含飴

육대함이ㅣ六代含飴

육대함이ㅣ六代含飴

○ 육대의 가족이 함께 엿을 먹다,

○ 六(여섯 육) 代(대신할 대) 含(머금을 함) 飴(엿 이)

육대의 가족이 함께 엿을 먹다, 대가족이 한 집안서 사이좋게 살다.

六代(육대)의 가족들이 함께 엿을 먹는다(含飴)는 이 말은 孔子(공자)의 집안을 가리켰다. 6대의 가족이 한 집안에서 사이좋게 살아간다니 1세대 30년을 당시 공자의 어머니가 결혼했다는 19세로 치더라도 114세의 할아버지 아래 손자가 태어난 것이 된다. 공자의 고향 山東(산동)성의 曲阜(곡부)에는 淸(청)나라 乾隆帝(건륭제)가 보낸 ‘六代含飴(육대함이)’의 편액이 남아 있다고 한다.

중국 최강의 국력을 자랑했던 건륭제가 공자 집안에서 육대가 함께 사는 것에 감동하여 한족인 대학사의 딸을 입양시켜 공주로 삼은 뒤 혼사를 맺기도 했다.

당구풍월ㅣ堂狗風月

당구풍월ㅣ堂狗風月

당구풍월ㅣ堂狗風月

○ 서당개 삼 년에 풍월한다

○ 堂(집 당) 狗(개 구) 風(바람 풍) 月(달 월)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뜻으로 지식이나 경험이 없던 분야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져서 웬만한 능력을 갖추게 된다는 말이다.

당구삼년음풍월(堂狗三年吟風月), 당구풍월(堂狗風月)이라고도 한다. 풍월(風月)은 얻어 들은 짧은 지식을 뜻한다. 아무리 무지한 사람도 박학다식한 사람이 많은 환경에 있으면 유식하게 된다는 말로, 어떤 분야에 전혀 경험이나 지식이 없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익숙해지고 잘 알게 된다는 뜻이다. 그만큼 어떤 환경에 있느냐에 따라 그에서 받는 영향이 중요하다는 말로, 근주자적(近朱者赤)·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는 성어와도 같은 뜻이다.

안여순화ㅣ顔如舜華

안여순화ㅣ顔如舜華

안여순화ㅣ顔如舜華

○ 얼굴이 무궁화와 같다, 매우 아름다운 여인

○ 顔(낯 안) 如(같을 여) 舜(순임금 순) 華(빛날 화)

無窮花(무궁화)가 우리나라의 국화가 된 것은 정부에서 결의했거나 법령으로 공포한 것이 아니고 옛날부터 자연발생적으로 된 것이라 한다. 한반도에서 많이 자랐다는 것은 한민족의 역사를 다룬 桓檀古記(환단고기)에 桓花(환화)로 나와 알 수 있고, 중국 문헌에는 山海經(산해경)에 薰花草(훈화초)라 하여 군자의 나라에 많다고 했다. 이외에도 무궁화를 나타내는 말은 많다. 槿花(근화) 木槿(목근) 藩籬草(번리초) 朝開暮落花(조개모락화) 花奴玉蒸(화노옥증) 등이다.

순임금의 이름인 舜(순)에도 무궁화란 뜻이 있어 舜英(순영) 舜花(순화)로 부르고, 본 글자를 써서 蕣花(순화)도 같은 의미다. 여기에 얼굴이 무궁화 꽃처럼 아름답다며 미인을 가리키는 비유로도 사용됐다. 나라를 기울게 한다는 미색 傾國之色(경국지색)의 여인은 주로 입술이나 눈동자, 하얀 이 등에 비교했어도 꽃으로는 연꽃과 무궁화 외에는 많지 않다. 미인에 무궁화를 비유한 것이 다른 어느 것보다 역사가 오랜 것은 중국 최고의 시집으로 약 3000년 전부터 전해지는 시를 모은 ‘詩經(시경)’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15개국의 민요 國風(국풍) 중에서 鄭風(정풍)에 실려 있다.

‘여자와 함께 수레를 타니 아름다운 얼굴이 무궁화 꽃 같네(有女同車 顔如舜華/ 유녀동거 안여순화), 날듯이 수레를 몰고 갈 때 허리엔 온갖 구슬을 찼네(將翺將翔 佩玉瓊琚/ 장고장상 패옥경거), 맹씨 댁 어여쁜 맏딸은 참으로 아름답고 우아하구나(彼美孟姜 洵美且都/ 피미맹강 순미차도).’ 글자가 몇 자만 다르게 이어지는 뒤편에는 顔如舜英(안여순영)으로 나온다. 혼인하는 신랑이 자기의 신부가 꽃처럼 아름답다고 노래했다.

아름다움은 얼굴보다 마음에 있다 하고 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이라며 미인도 곧 싫증난다고 말한다. 그렇더라도 우선 보이는 얼굴을 가꾸기 위해 여자뿐 아니라 남자들도 성형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예도 보자. 천하의 추녀 孟光(맹광)은 남편 梁鴻(양홍)과의 금실이 좋아 梁孟(양맹)이라 불렸고, 박색에다 얼굴도 검고 두꺼웠던 鐘離春(종리춘)은 齊王(제왕)의 왕후가 됐다. 얼굴보다 앞선 지혜를 높이 샀기 때문이다.

담하용이ㅣ談何容易

담하용이ㅣ談何容易

담하용이ㅣ談何容易

○ 말하는 것이야 어찌 어렵겠느냐는 말

○ 談(말할 담) 何(어찌 하) 容(쉬울 용) 易(쉬울 이)

말하는 것이야 어찌 어렵겠느냐는 말로, 좋은 말이건 나쁜 말이건 쉽사리 말을 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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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漢書) 동방삭편(東邦朔篇)에 나오는 말이다. 전한(前漢) 때의 문인 동방삭은 산둥성山東省 염차(厭次) 출신으로, 막힘이 없는 유창한 변설과 유머에 능해 무제(武帝)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측근으로서 무제의 뜻을 받기만 한 것이 아니라 황실의 사치를 간하는 근엄함도 갖추었다. 무제가 장안 근처에 황실 전용의 사냥터 상림원(上林苑)을 만들려 할 때 그는 국고를 비게 하고 백성의 삶의 터전을 빼앗는 것이라며 반대했지만 무제는 이를 듣지 않았다. 또 그가 부국강병책을 건의했지만 그것도 채택되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객난(客難), 비유선생지론(非有先生之論) 등을 써서 무제를 간하였다. 담하용이란 말은 비유선생지론에 나오는 말이다. 이 작품은 비유선생과 오왕이라는 허구의 인물이 담화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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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선생은 오왕을 섬긴 지 3년이 지나도록 자기 의견을 조금도 말하지 않았다. 오왕이 어이가 없어서 계속 의견을 말할 것을 요청했지만 선생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오왕이 나중에는 안달이 나서 무슨 말이든지 해보라고 하자, 비유선생은, "좋습니다. 입을 여는 것은 간단한 일입니다." 하고는, 역사 이래 임금을 간하다가 죽은 충신 이름을 행적과 함께 풀어낸 후 "입을 열기가 어찌 그리 쉬운 일이겠습니까(談何容易)?" 하였다.

그러고는 다시 아부하고 아첨하여 등용된 인물, 임금이 포악했기 때문에 세상을 피해 산 인물의 행적을 들어 충신을 멀리하고 소인배를 등용한 어리석음을 말하였다. "입을 열기가 어찌 그리 쉬운 일이겠습니까?" 선생은 또 현인이 밝은 군주를 만나 서로 도와 가며 나라를 일으키고, 융성하게 한 사례도 들어 군주로서의 올바른 마음가짐을 말하였다. 이 말을 들은 오왕은 감동하여 이후부터 선생의 간언을 받아들이고 정치를 개혁하여 마침내 오나라를 융성하게 하였다.

담하용이란 이와 같이 입으로야 어떤 말이라도 할 수 있다는 뜻으로, 스스로 말을 삼가고 행동을 근신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슬행마시ㅣ膝行馬矢

슬행마시ㅣ膝行馬矢

슬행마시ㅣ膝行馬矢

○ 무릎걸음으로 말똥 위를 기다. 누구에게나 아첨하다.

○ 膝(무릎 슬) 行(다닐 행) 馬(말 마) 矢(화살 시)

여기저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왔다 갔다 하면서 살살 듣기 좋은 소리로 비위 잘 맞추는 사람은 ‘오래 해 먹은 面主人(면주인)’이라는 속담으로 남았다. 비슷한 성어는 많은데 이중에 몇 개만 보면 奴顔婢膝(노안비슬), 五方猪尾(오방저미), 搖民乞憐(요민걸련), 長立待令(장립대령) 등이다. 仰人鼻息(앙인비식)이나 嘗糞之徒(상분지도)는 아첨의 최고봉이다.

변까지 핥는 냄새나는 嘗糞(상분)보다는 나을지 몰라도 말똥(膝行) 위에서 무릎으로 긴다(膝行)는 이 성어도 못지않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지조와 체면을 내던지고 여기저기 누구에게나 아첨하는 것을 가리켰다.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徐居正(서거정, 1420~1488)은 여러 중요저작 외에 설화문학의 중요한 자료가 되는 ‘太平閑話滑稽傳(태평한화골계전)’도 남겼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 각계서 떠돌던 해학적인 기문과 일화를 엮은 책이다. 여기에 나오는 이야기를 옮겨보자.

한 內侍別監(내시별감)이 날이 더워 냇가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는데 그 사이 타고 왔던 말이 남의 콩밭에 들어가 마구 뜯어 먹었다. 화가 난 밭주인이 그의 종을 잡아서 매질을 했다. 이를 본 내시가 황급히 물에서 나와 물에 젖은 머리카락 위에 紗帽(사모)를 쓰고 벌거벗은 몸 위에 冠帶(관대)를 찬 채 양반에게 무례하다고 호통 쳤다. 꼴에 양반 행세한다고 아니꼽게 여긴 밭주인이 흘겨보면서 비웃었다. ‘나도 정승댁 종 출신인데 다른 내시들이 우리 대감을 뵈러 올 때에는 말똥 위에서 무릎으로 기다시피 쩔쩔 매었소’ 행색을 보니 그들과 다름이 없다는 소리에 별감은 무안만 샀다.

군자삼락ㅣ君子三樂

군자삼락ㅣ君子三樂

군자삼락ㅣ君子三樂

○ 군자(君子)의 세 가지 즐거움

○ 君(임금 군) 子(아들 자) 三(석 삼) 樂(즐길 락)

군자(君子)의 세 가지 즐거움이라는 뜻으로, 첫째는 부모(父母)가 다 살아 계시고 형제(兄弟)가 무고(無故)한 것,둘째는 하늘과 사람에게 부끄러워할 것이 없는 것,셋째는 천하(天下)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敎育)하는 것

부모구존 형제무고 일락야(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앙불괴어천 부부작어인 이락야(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 득천하영재 이교육지 삼락야(得天下英才 而敎育之 三樂也)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있어 먼 곳에서 찾아오면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군자가 아니겠는가?”

이것이 공자가 말한 ‘군자삼락(君子三樂)1)’, 즉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이다. 배움의 즐거움과 멀리서 벗이 찾아오는 즐거움 그리고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의연한 태도를 지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구절을 오늘날의 눈으로 해석하면 다소 오해가 생기므로 그 당시 사람들 관점으로 봐야 올바른 해석이 나온다.

여기에서 배움은 흔한 ‘학문’이 아니다. 예법(禮) · 음악(樂) · 활쏘기(射) · 전차몰기(御) · 글 읽기(書) · 수학(數) 이 여섯 가지가 배우는 내용이다. 이를 ‘육예’라고 하는데 모두 무사 계급이 훈련하는 과목이다. 벗도 그저 같이 어울려 노는 친구가 아니다. 뜻을 같이한 동지이다.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사람일지라도 공자의 사상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 소문을 듣고 찾아오면 기뻐했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음은 자기 삶에 대한 고백이다. 공자는 천하를 떠돌았지만 아무도 그를 알아주지 않았고 오히려 목숨 위협만 여러 번 받았다. 그럼에도 올바른 도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누군가 자기를 알아주지 않을 때 화내지 않는 사람은 흔치 않다. 대부분 섭섭해하거나 분통을 터뜨리기 마련이다. 분명한 사실은 남이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자기 할 일에 열중하는 사람일수록 남들이 더욱 우러러본다는 것이다.

당시 공자는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으나 지금은 동양 문화권에서 가장 우러러보는 성인이다. 남이 알아주든 말든 자기 생각이나 뜻을 조금도 굽히지 않은 결과이다. 공자가 살아온 삶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살아야 할지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내조지공ㅣ內助之功

내조지공ㅣ內助之功

내조지공ㅣ內助之功

○ 아내가 가정에서 남편을 돕는 공

○ 內(안 내) 助(도울 조) 之(어조사 지) 力(힘 력)

아내가 가정에서 남편이 바깥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요즘은 남편이 밖에서 충분한 활동을 하고 성공할 수 있도록 아내가 집밖에서 뒷받침해 준다는 뜻으로 쓰인다.

曹操(조조)가 魏(위)나라 武帝(무제)가 되자 후계 문제로 한동안 고민했다. 맏아들인 曹丕(조비)로 할 것인가, 아니면 그 아우인 똑똑하고 문장이 뛰어난 曹植(조식)으로 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였다. 결국 조비가 황태자로 정해졌는데 조비가 황태자가 된 데에는 뒤에 황후가 된 郭(곽)씨의 도움이 컸다. 조식이 형인 조비보다 똑똑한데다 조조가 조식을 偏愛(편애)했기 때문에 곽씨가 여러 가지 방책을 썼다는 것이다.

조조가 무제로 등극했을 때 東宮(동궁)으로 들어온 곽씨는 君(군)의 長官(장관)인 郭永(곽영)의 딸이었다. 곽씨는 남달리 영특해서 곽영이 "내 딸은 여자중의 왕이다"고 말해 일찍부터 여왕으로 불렸다고 한다.文帝(문제)가 조비가 甄后(견후)를 폐하고 곽씨를 황후로 삼으려고 하자 中郞(중랑)인 棧潛(잔잠)이 상소를 올려 말렸다. "옛날의 제왕이 세상을 잘 다스린 것은 재상과 같이 정사를 공식적으로 보좌한 사람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안에서 아내의 도움(內助之功)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잔잠은 이어 곽씨를 황후로 세우는 것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누르는 것이어서 질서를 어지럽히게 되어 나라가 어려워지는 원인이 될 것이라고 간했지만 문제는 듣지 않았다. 황후가 된 곽씨는 뒤에 明帝(명제)가 된 曹叡(조예)를 낳은 견후를 모함하여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