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일 토요일

우리 행복을 이야기하자.

우리 행복을 이야기하자.

우리 행복을 이야기하자.

친구야.

너의 맑은 눈을

바라보는 것은 행복이었다.

우리들의 우정이란 호수엔

언제나 우리들만의

사랑의 배를 띄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삶이란 여행을 살아가면서

언제나 걱정투성이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마음이 강하지 못한 것 같아

언제나 불만이었다.

그러나 인생이란 무엇이냐.

그렇게 익숙해 보이는 사람들도 떠나가고

그렇게 멋있게 보이는 사람들도 또 떠나가고

우리마저 떠날 시간이 오고 있다.

친구야.

우리 행복을 이야기하자.

우리의 맑은 눈에 다시

우정이라는 사랑의 배를 띄우자.

짧은 삶에 긴 여운을 남기기 위하여

진한 감동으로

우리들의 삶을 이야기하자.

-용해원-

한 호주 여성이 학교 졸업 후 은행에서 일하다가 평생 할 일이 아니다 싶어 그만 두고 꿈을

한 호주 여성이 학교 졸업 후 은행에서 일하다가 평생 할 일이 아니다 싶어 그만 두고 꿈을 찾기 위해 영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한 호주 여성이 학교 졸업 후 은행에서 일하다가 평생 할 일이 아니다 싶어 그만 두고 꿈을 찾기 위해 영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거기서 있는 동안 생활비를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이 노인 병간호. 호주에 돌아와서도 틈틈히 작곡공부를 하며 노인들을 돌보는 일을 했다. 그런데 이 아가씨 붙임성이 워낙 좋았는지 워낙 사람을 편하게 했는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안 노인들은 이 아가씨에게 평생 사는 동안 후회되는 일들을 묻기도 전에 다들 줄줄이 얘기했다.

이 아가씨는 들은 얘기들을 정리하다가 똑같은 얘기들이 반복된다는 걸 깨달아 가장 많이 들은 다섯 가지 후회와 그에 얽힌 에피소드를 책으로 엮어냈다. 그리고는 바로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 책에 대한 기사다.

죽기 전에 가장 많이 하는 후회 TOP 5

1. 난 내 자신에게 정직하지 못했고

- 따라서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사는 대신 내 주위 사람들이 원하는 (그들에게 보이기 위한) 삶을 살았다.

2. 그렇게 열심히 일 할 필요가 없었다.

- 대신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더 많이 보냈어야 했다. 어느 날 돌아보니 애들은 이미 다 커 버렸고 배우자와의 관계조차 서먹해졌다.

3. 내 감정을 주위에 솔직하게 표현하며 살지 못했다.

- 내 속을 터놓을 용기가 없어서 순간순간의 감정을 꾹꾹 누르며 살다 병이 되기까지 했다.

4. 친구들과 연락하며 살았어야 했다.

- 다들 죽기 전 얘기하더라고 한다. "친구 OO를 한번 봤으면.."

5. 행복은 결국 내 선택이였었다.

-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는데 겁이 나서 변화를 선택하지 못했고, 튀면 안된다고 생각해 남들과 똑같은 일상을 반복했다.

"

돈을 더 벌었어야 했는데.., 궁궐같은 집에서 한번 살았었으면.., 고급차 한번 못 타 봤네.., 애들을 더 엄하게 키웠어야 했는데.. 라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

-Bronnie ware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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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인생

삶과 인생

삶과 인생

욕심 없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삶은 그리 무겁지 않습니다.

가벼운 생각으로 살아가면

인생은 그리 고달프지 않습니다.

감사하는 자세로 살아가면

삶은 그리 힘들지 않습니다.

즐거운 시간으로 살아가면

인생은 그리 괴롭지 않습니다.

만족하는 기분으로 살아가면

삶은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순리대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면

인생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살아가는 데 그리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인생 사는 거 어렵지 않습니다.

어렵게 생각할수록

더 힘든 것이 또한 인생입니다.

정답은 언제나 즐겁게 사는 것입니다.

좋은 일만 있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늙지 않는 세 가지 방법 중에서-

먼저 베푸세요

먼저 베푸세요

먼저 베푸세요

사랑의 씨앗을 마음 밭에 뿌리십시오,

사랑이라는 이름의 아름답고

귀한 열매를 거둘 것이며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감사의 말을 입술에 담으십시오.

감사의 말을 두 귀로

똑똑히 듣게 될 것입니다

만족의 표정을 얼굴에 나타내십시오.

풍요로운 세상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이해의 눈빛을 띄우십시오.

신뢰의 손길이 따뜻하게

전해져 올 것입니다.

용서의 손을 내미십시오.

존경과 명예의 관이 어느 날

머리 위에 씌워질 것입니다.

정직을 두 어깨에 메고 다니십시오.

짐은 언제나 가볍고 마음은

언제나 자유로울 것입니다.

수고가 손끝에 머물게 하십시오.

삶을 사랑하면서 인생 길을

자랑스럽게 걷게 될 것입니다.

우정을 가슴에 품으십시오.

동행의 손길이 언제나

맘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좋은 소식을 두 발로 전하십시오.

찾아간 그곳에서 좋은 소식을

전해 받게 될 것입니다.

좋은 생각을 하십시오.

좋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가슴에 남는 좋은 느낌 하나’ 중-

우리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입니다

삶이 힘들거나 외로울 때

가슴으로 전해오는 인정어린 말보다

값지고 귀한 것은 없습니다.

눈물이 나고 슬플 때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며

말없이 꼭 잡아주는 손길보다

상실된 삶에 힘을 주는 것은 없습니다.

비록 우리가 돌멩이처럼 흩어져

각자의 삶을 걷고 있어도

우리는 모두가

바람처럼 왔다가 지는 꽃잎과 같이

외로운 길 떠나는 나그네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불러

서로에게 사랑을 전할 때

진정 세상을 살아가는 의미도

세상과 이별할 줄 아는 지혜도 알게됩니다.

우리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입니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끼리

서로의 마음을 열어

서로에게 행복을 전하는

행복의 천사가 되어야 겠습니다.

삶이 다하는 그날까지...

-삶의 의미를 찾아서 중에서-

마음 주머니

마음 주머니

마음 주머니

그리움을

담아 둘 수 있는

마음 주머니가 있으면 좋겠다

마음 덩어리를

담아 둘 수 있는

마음 주머니 하나 있었음 좋겠다

끝없는

원망으로 하여 끓어 오르는 불씨를

가두어 둘 수 있는

마음 주머니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보고 싶고 또 보고 싶은 님의 얼굴도

들어도 또 듣고 싶은 님의 목소리도

담아 둘 수 있었음 좋겠다

먼 훗 날

마음 주머니 조용히 꺼내어

헤쳐 풀어 보며

냉가슴 봄 눈 녹듯 스스로 녹아 내릴 때

그 때는 말 할 수 있으리

모두가 사랑이었다고

참으로

열심히 사랑하며 살았노라고

참으로

사랑을 담아 둘 수 있는

마음 주머니가 있었음 좋겠다

-윤성 / 좋은 글 여기 다 있네 중에서-

하옥ㅣ瑕玉

하옥ㅣ瑕玉

하옥ㅣ瑕玉

○ 티가 있는 구슬, 완벽한 가운데 있는 한 가지 흠

○ 瑕(허물 하) 玉(구슬 옥)

흠이 없으면 완전(完全)한 것인데, 아깝게도 흠이 있어 결점(缺點)이 된다는 뜻으로,옥에도 티가 있다는 말.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결점은 있다고 ‘옥에도 티가 있다’란 속담이 남았다. 옥은 쪼지 않으면 그릇을 만들 수 없다는 玉不琢 不成器(옥불탁 불성기)란 명언도 있다.

이 말이 처음 사용된 곳은 ‘淮南子(회남자)’란 책에서다. 漢高祖(한고조) 劉邦(유방)의 손자인 문학애호가 淮南王(회남왕) 劉安(유안)이 빈객들과 함께 다양한 주제로 저술한 책이다. 그런데 여기서의 옥에 티는 반드시 나쁜 의미만이 아니다. 說林訓(설림훈) 편에 실려 있는 내용을 보자. ‘쥐구멍을 함부로 뜯어고치려 한다면 마을의 문을 모두 부수게 되고, 작은 여드름을 짜다가 잘못 뾰루지가 나거나 등창이 된다. 그것은 흠이 있는 진주와 티가 있는 구슬을 그대로 놓아두면 온전할 것을 없앤다고 하다가 이지러뜨리는 것과 같다(治鼠穴而壞里閭 潰小皰而發痤疽 若珠之有纇 玉之有瑕 置之則全 去之則虧/ 치서혈이괴리려 궤소포이발좌저 약주지유뢰 옥지유하 치지즉전 거지즉휴)’ 潰는 무너질 궤, 皰는 여드름 포, 痤는 부스럼 좌, 疽는 종기 저, 纇는 실마디, 흠 뢰. 그냥 두어도 가치를 지니는 옥에 티를 지우려 하다가 모두를 잃게 된다는 뜻으로 썼다.

매림지갈ㅣ梅林止渴

매림지갈ㅣ梅林止渴

매림지갈ㅣ梅林止渴

○ 매화나무 숲에서 갈증을 그쳤다

○ 梅(매화 매) 林(수풀 림) 止(그칠 지) 渴(목마를 갈)

매실은 시기 때문에 이야기만 나와도 침이 돌아 해갈(解渴)이 된다는 뜻으로, ①매실의 맛이 아주 심 ②공상(空想)으로 마음의 위안을 얻음

진나라를 세운 사마염 이 오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병사들을 출동시켰을 때의 일이다. 사마염은 길을 잘못 들어 이리저리 헤매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시간이 많이 흘러 마실 물이 바닥났고, 주위를 둘러보아도 물이 있는 곳을 찾을 수 없었다.

병사들은 갈증이 심하여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다. 사마염은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해 나갈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문득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힘을 내시오. 조금만 참으시오. 조금만 가면 매화나무 숲이 나올 것이오. 그곳에 도착하면 매실이 가지가 휠 정도로 주렁주렁 열려 있소. 그 시큼한 매실은 우리들의 갈증을 없애 줄 것이오."

매실이란 말을 들은 병사들은 갑자기 입안에 침이 고여 기운이 났다. 그리하여 다시 진격하여 오나라를 멸망시켜 천하를 통일하게 되었다.

또한 나관중의<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에도 이런 이야기가 있다.

유비가 허창에 있던 조조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조조는 유비를 승상부로 오도록 하고는 손을 잡으며 이렇게 말 했다. "나는 조금 전 후원의 매실이 파랗게 익은 것을 보고 작년 장수 를 정벌하기 위해 행군했을 때 물이 떨어져 병사들이 고통을 겪던 일 이 생각났소. 나는 그때 한 가지 묘안이 떠올라 말채찍으로 앞을 가리 키며 병사들에게 이렇게 말했소. \저 앞에는 광활한 매실 나무 숲이 있는데, 그 매실은 아주 시고도 달아 우리들이 목을 축이기 에 충분할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병사들은 매실의 신맛을 생각하고는 입 안에 침이 돌아 갈증을 느끼지 않게 되었소. 그리고 오래지 않아 물 있는 곳을 찾았소. 오늘 정원의 매실을 보니 그때의 일이 떠올라 그대와 함께 담소하며 술을 마시고 싶어 불렀소."

조조는 유비의 인몰됨을 익히 알고 있었다. 이런 말을 통해 유비의 속마음을 떠보려고 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렇듯 매림지갈이란 성어는 실현할 수 없는 소망을 환상 혹은 가상으로나마 대신해 보는 것을 비유한다.

독서상우ㅣ讀書尙友

독서상우ㅣ讀書尙友

독서상우ㅣ讀書尙友

○ 책을 읽음으로써 위로 옛 성현들과 벗한다

○ 讀(읽을 독) 書(글 서) 尙(높일 상) 友(벗 우)

책을 읽으면 옛 사람들과도 벗이 될 수 있다는 뜻으로, 책을 읽어 옛날의 현인(賢人)들과 벗할 수 있다는 말이다. 《맹자(孟子)》 〈만장하편(萬章下篇)〉에 나오는 다음 이야기에서 유래한 성어(成語)이다.

맹자는 제자 만장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마을에서 가장 선한 선비라야 그만큼 선한 선비를 벗할 수 있으며, 나라에서 가장 선한 선비라야 그정도로 선한 선비를 벗할 수 있고, 천하에서 가장 선한 선비라야 그만한 선한 선비를 벗할 수 있다. 천하에서 제일 선한 선비를 벗하는데 만족하지 못해 위로 옛 사람을 논하기도 하니, 옛 사람의 시나 글을 읽으면서도 옛 사람을 알지 못하는가. 이로써 옛 사람이 살았던 세상을 논의하는데, 이것이 곧 위로 옛 사람을 벗하는 일이다."

맹자는 그 시대의 가장 훌륭한 선비와 사귀는 데 만족하지 말고 책을 통해 옛 성현들과 벗하라고 강조하였다. 책 속에서 옛 현인의 사상을 깨닫고 살아 있는 벗처럼 성현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과전이하ㅣ瓜田李下

과전이하ㅣ瓜田李下

과전이하ㅣ瓜田李下

○ 의심받을 짓은 처음부터 하지 말라

○ 瓜(오이 과) 田(밭 전) 李(오얏 리) 下(아래 하)

오이밭과 오얏(자두)나무 밑이라는 뜻으로,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와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을 준말로 오이 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자두)나무 밑에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뜻. 즉, 남의 의심(疑心)을 받기 쉬운 일은 하지 말라는 말

당(唐)나라 목종(穆宗)이 어느 날 당대의 명필(名筆)인 유공권(柳公權)에게 「요즘 조정(朝廷)에서 시행(施行)하고 있는 여러 가지 조치에 관하여 불평(不平)하고 비난(非難)하는 일은 없는지요?」하고 물었다. 이에 유공권은 「폐하(陛下)께서 곽민(郭敏)이란 자를 빈령의 수령으로 보낸 일이 있은 다음부터 비난(非難)이 자자하옵니다.」 하고 생각한 바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이에 제왕(帝王)은 「그것은 왜 그런가? 곽민(郭敏)으로 말하면 상부(商父)의 조카이며 태황태후의 작은아버지로 항상 정직하고 속임이 없기에 작은 벼슬자리를 준 것이거늘 그게 무슨 그리 비난(非難)거리가 된단 말이요?」 하고 다시 물었다. 유공권이 「그동안 곽민(郭敏)이 세운 공으로 치자면 그런 정도의 벼슬자리는 과분(過分)하다고 할 수 없사옵니다. 하지만 곽민(郭敏)은 자기의 두 딸을 궁안에 들여 보냈기 때문에 그런 벼슬을 얻은 것이라고들 쑥덕거린다고 하옵니다.」 하고 대답(對答)했다.

이 말을 들은 목종은 「곽민(郭敏)의 딸을 입궁 시킨 것은 태황태후를 그저 예로 뵙도록 한 것이지 궁녀(宮女)로 삼으려 한 것이 아니다.」 하고 사실대로 말했다. 이에 유공권은 정중히 「과전이하(瓜田李下)의 혐의를 어떻게 벗을 수가 있겠사옵니까?」 하고 아뢰었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