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3일 월요일

세월처럼 무서운 건 없다

세월처럼 무서운 건 없다

세월처럼 무서운 건 없다

결혼을 결심하고 나에게 주례를 부탁하는 젊은 남녀에게 “앞으로 50년 동안 꾸준하게 사랑할 수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물론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예” 입니다.

그러나 50년이라는 긴 세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변함없이 사랑하며 건강하게 사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중국 송대의 대학자 주희가 어느 해의 가을을 맞아 이렇게 읊었습니다. ‘젊은이 늙기 쉽고 학문 대성하기 어려우니 일분일초도 가볍게 여기지 말라. 연못가의 봄풀은 아직도 꿈속인데 계단 앞 오동나무 잎에는 가을바람 분다’

세월은 계곡을 흐르는 물 같고 시위를 떠난 화살같이 빨리 달려갑니다. 세월 앞에 힘 센 사람이 누구입니까?

70년 전에 해방을 맞았습니다. 그 때 나이가 열여덟이었습니다. 60년 전에 청운의 꿈을 안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50년 전에는 연세대학교의 교무 처장이었습니다. 50년 전에는 어머님, 아버님이 다 살아계셨고 나의 누님도 건강하였습니다.

50년 전에는 친구 이근섭과 저녁 먹고 나서는 함께 꼭 산책하였고, 제자 최영순은 건강하고 공부 잘 하는 대학생이었는데, 나만 두고 다들 떠났습니다.

“낙엽을 밟으며” 돌아오지 않는 그들을 나는 이 가을에 그리워합니다.

산다는 것이 몹시 서글프게 느껴집니다. 찰스 램(Charles Lamb)과 함께 이렇게 읊조립니다.

“All, all are gone, old familiar faces”

"

모두 모두 갔다 옛날의 그리운 얼굴들

",

오늘은 여기 살아있지만 내일은 이곳을 떠날 겁니다. 그래서 나는 내 가까이 있는 소수의 사람들을 오늘 최선을 다해 사랑하리라 마음먹고 있습니다.

세월이 이렇게 빠르다는 것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정말 무서운 건 세월입니다.

-김동길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