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4일 목요일

정철과 강아의 사랑 1편

■ 정철과 강아의 사랑 1편

■ 정철과 강아의 사랑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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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두보에 버금가는 조선조 당대 시인이며 대문학가인 송강 정철은 관기 강아와 신분과 나이를 초월한 사랑을 나눴다. 강아는 원래 이름이 진옥이고 기명(妓名)은 자미(紫微)였지만, 정철의 호인 송강(松江)의 ‘강(江)’ 자(字)를 따 강아(江娥)라고 불렸다. 강아는 시조문학에 있어 송강첩(松江妾)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당시 시조 문헌 중에 누구의 첩이라고 기록된 것은 오직 강아 뿐이다. 대개는 기녀가 속한 지명을 따라 남원명기, 평안기생 등 기명을 적었으나, 강아는 기녀였음에도 불구하고 송강첩으로 기록돼 있다. 이러한 기록은 물론 송강의 명성과 지위 때문에 얻어진 것이리라 생각되는데, 이를 보아도 송강 정철과 강아의 사연이 당시 사람들 기억 속에 남다른 의미로 남아 있었음이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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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와 송강의 만남은 송강 정철이 전라도 관찰사로 가면서 인연을 맺게 된다. 정철은 당시 불과 십여 세 남짓의 어린 소녀, 강아에게 머리를 얹어 주고 하룻밤을 같이 할 수도 있었으나, 청렴결백했던 정철은 어린 강아에게 손끝 하나 대지 않았고, 다만 명예로운 첫 서방의 이름을 빌려주었다. 정철의 인간다움에 반한 강아는 어린 마음에도 그가 큰 사람으로 느껴졌다. 정철 또한 어리지만 영리한 강아를 마음으로 사랑하며 한가할 때면 옆에 앉혀 놓고 틈틈이 자신이 지은 사미인곡을 외어 주고, 가사(歌辭:조선 초 시조와 산문의 중간형태)를 가르쳐주고 서로가 정신적인 교감을 나누었다. 즉 정철과 강아는 육체적인 애로스 사랑보다 정신적인 플라토닉 사랑을 한 셈이다. 그러나 정철이 도승지(都承旨)로 승진하여 한양으로 발령이 나서 떠나게 되었다. 열 달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그 동안 정철을 깊이 사랑하게 된 강아는 떠나는 정철을 붙잡을 수도 쫓아갈 수도 없는 자신의 신분과 처지에 낙담한 채로 체념의 눈물을 흘릴 뿐이었고, 그런 강아의 마음을 잘 아는 정철은 작별의 시를 지어 주면서 그녀의 마음을 위로하였다.

봄빛 가득한 동산에 백일홍 곱게 피어

그 예쁜 얼굴은 옥비녀보다 곱구나.

망루에 올라서서, 장안을 바라보지 말아라.

거리에 가득한 사람들이 모두 너의 고움을 사랑하네.

이 시 속에는 강아에 대한 따뜻한 배려와 남겨져 상처 입은 여인에게 당부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다. 좋은 낭군을 만나 시집가서 잘 살고, 자기는 생각하지 말라는 배려가 녹아있다. 철부지 어린 나이에 머리를 얹은 이후에 단 한 순간도 정철을 잊지 못했던 강아는 관기노릇을 하며 다시 정철을 만나겠다는 열망으로 십년 고절(孤節:홀로 지키는 절개)의 세월을 버텨냈다. 기생의 처지로서 다른 남자들의 유혹을 거부하며 수절한다는 것은 그렇게 녹록한 일은 아니었다. 어느 날 정철이 북녘땅 끝 강계로 귀양을 갔다는 소식을 들은 강아는 이제서야 그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과 혼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는 정철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서둘러 행랑을 꾸려 길을 나섰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