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4일 일요일

고려 충혜왕에 대한 진실 1편

■ 고려 충혜왕에 대한 진실 1편

■ 고려 충혜왕에 대한 진실 1편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왕과 궁궐의 일상뿐만 아니라 국가적 사건들을 소상히 기록으로 남긴 조선에 비해, 고려시대에는 고려왕조실록이 없다. 고려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고려사’는 고려를 멸망시킨 조선에 의해 그것도 정권차원에서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홍보용으로 쓰여진 역사서라 그 공정성과 객관성에서 의문이 가는 것은 사실이다. 그 기록 중 공민왕의 친형인 고려 28대 충혜왕(1315~1344)의 기록은 진위여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놀랍다.

아버지의 후궁들과 장인의 후처뿐만 아니라, 신하들과 내시들의 부인들도 수없이 강간하고, 욕정이 솟구치면 길가다가 백성들의 아녀자들을 욕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충혜왕의 아버지 충숙왕의 부인인 경화공주를 팔다리를 묶고 강간하거나, 충숙왕의 또 다른 부인인 수빈 권씨를 강간하여 자살하게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또 내전(內殿)에서 후궁들(100명이상)과 아주 더럽고 추잡한 유희를 수시로 열었다고 한다.

이 기록들의 진위여부는 어쩐지 모르겠지만 분명하게 남아는 있다. 기록에도 충혜왕은 즉위 초기에는 사업에 매우 밝아서 실크로드를 통해 온갖 상인들과 고려의 생산품을 거래해서 돈을 벌었고, 화폐제도와 행정조직도 개혁하고 염장도강이라는 소금을 관장하는 관청도 세우고, 심양등지에 살고 있는 고려인들의 귀환을 요구하는 새로운 정치를 실시했다고도 나온다.

원나라(몽고)는 고려를 부마국으로 만들었다. 고려로 시집온 원의 공주들은 원의 세력을 등에 업고 왕을 뛰어넘는 권력을 행사하거나, 자신의 아들이 왕위에 오르면 아들을 대신해 고려를 지배하기도 했다. 고려는 원의 지배를 받으면서 정치적 독립성을 거의 상실했다. 고려 국왕은 원나라의 명령에 따라 하루아침에 교체되기도 했다. 충렬왕과 충선왕, 충숙왕과 충혜왕은 모두 원 황제의 명령에 따라 폐위되었다가 다시 복위하기를 반복했다.

- 2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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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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