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6일 화요일

이방원 1편

■ 이방원 1편

■ 이방원 1편

이성계는 고려의 권문세가인 강씨 일족 출신인 강씨와 정략결혼을 하였는데, 이 강씨가 후에 세자로 책봉된 방석의 어머니 신덕왕후이다. 강씨는 이성계보다 20살가량 연하였고, 개경의 명문가 귀족 출신의 딸이었다. 그러나 당시 이성계는 첫 부인 한씨(韓氏)와의 사이에 이미 장성한 6명의 아들을 두고 있었다. 그 중 다섯째가 이방원이다.

이방원은 1367년(공민왕 16)에 함경도 함흥에서 태어났다. 방원은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하여 이성계의 사랑을 받았다. 자라면서 유학 공부에도 심취해 문무를 겸비하였으며, 17세가 되던 1383년(우왕 9)에 문과에 급제했다. 이성계 가문에서 최초로 이방원이 형들을 제치고 고려의 과거시험에 합격한 것이었다. 이성계는 이방원의 과거 급제에 뛸 듯이 기뻐했다. 한미한 가문의 변방 촌놈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고려의 중앙귀족으로 신분상승 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겼다. 이때까지도 이성계는 고려의 귀족이 되는 것이 희망이었지, 고려를 뒤엎고 조선을 건국하리라는 것은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러나 이방원은 달랐다. 이방원은 아버지를 따라 다니면서 스스로 익힌 무인 기질과 이성계가 생각하지도 못한 더 큰 야망을 가슴 속에 키우고 있었다.

한편, 고려를 뒤엎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역성혁명의 꿈을 키우던 정도전은 자기의 생각을 뒷받침해 줄 무력 즉 군대가 필요했다. 당시 상황으로서는 최영이 적격이기는 했지만, 최영은 권문세가 출신의 기득권세력이었고, 고려에 대한 충정이 맹목적이었으므로 정도전의 제안에 동조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정도전이 찾아낸 사람이 바로 이성계였다. 조선건국과정을 살펴보면 이성계는 정도전의 말을 철저히 따른다. 그리고 조선건국 이후에도 정도전이 하자는 대로 거의 다 한다.

그러나 이 관계를 산산이 부셔버린 사람이 이방원이었다. 이방원은 정도전을 아저씨라 부르며 스승으로 모시고 자랐다. 이방원의 야망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1392년(공양왕 4)에 정적인 정몽주를 제거하면서 부터이다. 이성계가 함흥을 떠나 고려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할 때와 같은 나이 스물 다섯 살 때이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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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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