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국공주를 닮은? 반야般若 1편
■ 노국공주를 닮은(?) 반야(般若) 1편
고려 공민왕은 노국공주의 죽음을 너무나 슬퍼한 나머지 다른 여인을 가까이 하려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후사가 없는 것에 대해서 조정이 다 매우 심려하고 있었다. 결국 공민왕 암살 이후, 태후 홍씨(洪氏)와 시중 경부흥(慶復興)은 종친(宗親) 중에서 후사를 고르자고 주장하고, 수문하시중 이인임(李仁任)은 선왕이 미리부터 마음에 두고 있던 강녕군 우(江寧君 禑)를 세우자고 주장했다. 강녕군 우는 아명(兒名)을 무니노(牟尼奴)라고 불렀는데 반야(般若)라는 여자의 소생이었다.
반야의 출신과 생몰(生沒)은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고, 신돈이 어느 저자거리에서 거지꼴로 돌아다니고 있는 여자아이를 데리고 와 반야(般若)라 이름 붙이고 기르기 시작했는데, 자라면서 점점 그 미모가 출중하여 신돈의 첩이 되었다고 한다.
어느 날, 공민왕이 신돈의 집에 놀러와 두 사람이 환담을 나누고 있을 때, 어여쁜 여종이 음식상을 들고 들어왔다. 그 여종이 바로 반야였다. 반야를 보자 공민왕의 마음은 이상하게 술렁거렸다. 용모가 뛰어나거나 매혹적이거나 그런 이유 때문만이 아니었다. 왕은 반야의 모습에서 꿈에도 잊지 못하고 늘 그리워하던 노국공주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었다. 왕의 마음이 동요하고 있는 것을 신돈은 이내 간파했다.
"전하, 마음에 드시오?" 은근히 묻자 공민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날 밤 공민왕은 반야를 품에 안게 되었고, 그 후부터 왕은 신돈의 집을 찾아갈 때마다 반야와 정을 나누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 반야가 임신한 것을 알고 왕은 매우 기뻐했다. 사랑하는 노국공주를 닮은 여인이 자신의 후사를 잉태했으므로 그 기쁨은 매우 컸으리라. 만삭이 되어 반야는 무사히 해산을 하였는데, 과연 옥동자였다. 왕은 아이에게 무니노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궁중으로 불러들여 정식 후사로 삼을 수 있는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신돈이 탄핵되어 죽게 되고 무니노를 안전하게 맡겨 둘 곳이 없어지자, 왕은 드디어 마음을 정하고 무니노의 존재를 궁중에 알렸다. 근원도 알 수 없는, 더군다나 항간에서 신돈의 첩이라고 알려져 있는 여자의 소생을 들일 수 없다는 태후를 끝까지 설득하여, 무니노의 이름을 우(禑)로 바꾸고 궁중으로 불러들였다. 강녕부원대군(江寧府院大君)에 봉하고 후사로 삼게 하였다. 그리고 반야의 소생이라고 하면 근본을 의심받고 격이 떨어질 것을 염려해서 죽은 궁인 한씨(韓氏)의 소생이라고 꾸몄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이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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