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 금요일

한명회의 시대 2편

■ 한명회의 시대 2편

■ 한명회의 시대 2편

한명회는 슬하에 1남 4녀를 두었는데, 첫째 딸을 당시 한명회와 더불어 세조의 최고 측근이던 신숙주의 장남에게 시집을 보냈다. 최고의 정난공신들이 사돈으로 똘똘 뭉친 것이다.

이어서 3녀를 세조의 둘째 아들 해양대군에게 시집보냈다. 그리고 해양대군은 형인 의경세자가 세자가 된 지 2년 만에 죽자, 의경세자의 아들을 제치고 세자가 되었다. 이는 해양대군의 장인이 한명회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음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한편, 남편인 의경세자의 죽음으로 중전이 되어 보지도 못한 채 대궐에서 밀려 난 의경세자의 부인(나중에 인수대비)은 세자가 된 시동생인 해양대군의 건강이 좋지 않은 것을 간파하고, 시동생인 해양대군(예종)이 죽게 되면 그 후임으로 자기 아들을 왕으로 세울 생각으로 세조에게 빌다시피 하여 한명회의 4녀를 자신의 둘째 아들 잘산군의 부인으로 맞아들였고, 결국 소원대로 자을산군은 예종에 이어 왕위(성종)에 오르게 된다.

정리해 보면, 한명회는 1녀를 신숙주에게, 3녀를 세조의 둘째 아들 해양대군에게, 4녀를 세조의 첫째 아들의 둘째 아들에게 시집을 보냈다. 3녀는 남편인 해양대군이 왕(예종)이 됨으로써 왕비가 되었고, 4녀는 남편인 자을산군이 예종의 뒤를 이어 왕(성종)이 됨으로써 또 역시 왕비가 되었다. 대를 이어 왕의 장인이 된 한명회의 탄탄한 권력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칠삭둥이 한명회의 영광은 전무후무한 것이었고, 죽을 때까지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계유정난 이후 곧 동생이 죽고 왕가에 시집간 딸들도 17세와 18세에 모두 죽었으며, 본인도 손자 연산군에 의해 부관참시를 당하게 되니, 인과응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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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한명회는 말년에 한강 가에 정자를 멋들어지게 지어 놓고 유유자적하였는데, 그 정자의 이름이 압구정(鴨鷗亭)이었고, 오늘날의 ‘압구정동’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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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는 말년에 이유를 알 수 없는 피부병에 몹시 시달리다가 둘째 아들인 해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준 후, 해양대군(예종)이 즉위한 다음 날 거짓말처럼 세상을 뜨니 재위 13년 3개월, 향년 52세였다. 세조는 세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지만,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상당한 치적을 쌓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식들이 모두 20세 전후에 죽었고 한명회의 딸인 며느리들도 17세, 18세에 모두 요절하였으니, 이는 세조와 한명회의 업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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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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