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에 여자로 산다는 것 2편
■ 조선시대에 여자로 산다는 것 2편
조선시대의 결혼이란, 위로는 조상을 받들고 아래로는 후사를 잇기 위한 거창한 명분하에 이루어진다. 결혼을 하면 여자가 남자 집에 가서 사는 것이므로 특히 여성에게 요구되는 것이 많다. 시댁의 가부장적 질서에 적응해야 함은 물론, 대를 잇는 것이 여자로서 첫 번째 사명이다. 그래서 조선시대에 결혼하는 딸에게 시집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 생활교육과 함께 성교육이 이루어진다.
생활교육은 주로 말과 행동 및 여러 법도에 대한 교육이다.
걸음을 걸을 때는 발가락 끝에서 뒤꿈치까지의 길이보다 보폭이 커서는 안 되고, 어른 앞에서는 뒷걸음으로 물러 나와야 한다. 제례나 상례 때 곡은 어떻게 시작하고 그치는가,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눈물이 나오는가 등을 이불을 둘러쓰고 앉아 실습시켰다.
성교육은 아들을 낳기 위한 것이다. 남편의 양기를 해치는 음식은 삼가 해야 하고, 아들을 낳을 확률이 높은 날을 계산하는 법을 배웠다.
그렇다고 조선시대의 여성이 남자보다 낮은 존재로서 단지 아들을 낳는 도구에 불과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아내는 남편보다 낮은 존재이기는 하나 부부간에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부부 각자의 세계가 인정되고 여성에게도 일정한 지위가 주어졌다. 양반층 여성들은 ‘부인봉작제도’라 하여 남편 벼슬에 따라 일정한 사회적 지위가 주어지고, 아들의 공에 따라 받기도 한다.
여성은 가정을 운영하는 중심이었다. 가정 일은 남편이 간섭하지 않고 가정 내에서 부인의 지위는 절대적이어서, 가정 경영과 제사준비 및 자녀교육 등은 모두 아내에 의해 이루어진다. 남편과 시아버지가 죽은 뒤에는 집안 최고 어른으로서 집 안 일을 주도적으로 처리했다.
여성에게도 재산권이 있었다. 조선전기에는 제사를 지낼 큰아들을 제외한 나머지 아들과 딸이 재산을 골고루 나누어 가졌고, 결혼한 딸도 똑같은 권리를 가진다. 이처럼 여성에게 재산상의 권리를 인정해 주는 것은 재혼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 후기로 갈수록 유교윤리가 보다 확산되고 확고해 짐에 따라, 여성들의 지위는 점점 더 낮아지게 되었다. 여성의 재산상속에 대한 권리가 낮아지고 제사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맏아들의 권리가 커진 것이다. 차남 이하의 아들들은 이전보다 훨씬 적은 양을 상속받게 되고, 남존여비 사상으로 딸들은 아들보다 더 적게 받게 되었다. 특히 시집간 딸은 ‘출가외인’ 이라는 이유로 상속에서 배제되었다. 정절(貞節)에 대한 의무가 강조되면서 남편을 따라 죽든지 해야 겨우 ‘열녀’ 라는 소리를 듣는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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