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균과 칠천량해전 2편
■ 원균과 칠천량해전 2편
임진왜란 중 명나라와의 화의가 결렬되자, 일본은 1597년 1월 다시 조선을 침범했다. 일본은 지난번 조선 침범이 실패한 것은 바다를 제패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여 조선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수군을 이겨야 한다는 각오 아래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태였다. 당시 조선에서는 이순신(李舜臣)이 무고로 하옥되고 대신 원균이 전라좌수사 겸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어 있었다.
1597년 3월 9일, 거제도 기문포(器問浦)에 왜선 3척이 정박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원균은 군사들을 이끌고 나갔다. 이때만 해도 휴전상태가 유지중이어서 경상우병사 김응서와 일본군 사이에 거제의 일부 섬 지역에서 나무를 베는 사람은 공격하지 말기로 협의가 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원균이 공격했던 자들은 바로 그 나무를 베러 온 병력들이었던 것이다. 이 일본군들이 놀라서 숨으니, 원균은 항왜(降倭:투항 일본인)를 보내 술과 먹을 것을 주고 안심시킨 뒤 돌려보낸 후, 그 뒤를 따라가 공격을 했다. 일본군들이 살려줘서 고맙다고 고개를 조아리며 돌아가는 것을 뒤에서 기습한 것이다.
아무리 전공(戰功)이 탐이 나더라도 너무 비겁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 때 오히려 일본군에게 반격을 받아 임진왜란 최초로 해상에서 판옥선 1척을 탈취 당하고 말았다. 판옥선 안에 실린 화포와 화약, 기타 무기까지 모두 빼앗길 판이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우리 수군은 탈취 당한 판옥선을 집중 공격해서 태워 버렸다. 우리 손으로 귀중한 판옥선 한 척을 없애버린 것이다. 적선 3척을 빼앗고 적 47명을 참수했지만, 우리는 판옥선 1척을 잃고, 그 판옥선의 지휘관 고성현감 조응도를 포함해서 판옥선 내의 병력 1백 이상을 잃었다. 일본군보다 아군의 피해가 더 크다는 소리다. 이 기문포해전은 과연 승전(勝戰)인가? 패전(敗戰)인가? 원균은 이 해전에 대해 왜구의 목을 쳐 몰아냈다고 장계를 써 올렸으니 선조는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삼도수군통제사에 원균을 임명한 선조가 자신의 안목에 흡족해 있을 때, 곧바로 다른 내용의 후속 보고가 잇따라 올라오면서 이 일의 진상이 밝혀졌다. 경상도 관찰사의 장계에 고성현감 조응도가 3월 8일 판옥선에 병력 140명으로 출천했다가 패전하고 전사하였으니, 새 현감을 보내달라는 내용이다. 그리고 연이어 도원수 권율 장군의 상세 보고가 올라오고 당연히 일본 측은 휴전(休戰) 기간임을 내세워 항의했고, 조선 조정은 당황했다. 결국 원균에게 줄 포상은 없던 일이 되었다.
- 3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