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8일 목요일

세종대왕의 탄생 2편

■ 세종대왕의 탄생 2편

■ 세종대왕의 탄생 2편

세종대왕은 1397년(태조 6)에 태종과 원경왕후 사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이름은 도(祹), 자는 원정(元正)이다. 형제로는 위로 14년간 세자의 자리에 있다가 폐위된 양녕대군과 나중에 불가에 귀의한 효령대군이 있으며, 아래로 성령대군이 있었다. 세종은 1418년(태종 18) 6월에 양녕대군을 대신해 세자에 책봉되었으며, 두 달 뒤 태종의 선위(禪位)로 스무 살을 갓 넘어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상왕(上王)으로서 태종이 병권을 장악한 채 두 눈 크게 뜨고 살아있었다. 태종은 심지어 세종이 왕으로 있는 기간에 세종의 장인이자 영의정이었던 심온을 태종에 불충했다하여 죽이고 만다. 태종은 자기가 죽고 나서 외척세력이 성장하는 것을 우려해 미리 손을 봐 준 것이다. 그렇다고 꼭 죽일 필요까지 있었는지........

어쨌든 태종의 잔인하기까지 한 노력으로 태종이 죽고 난 뒤 세종은 거리낌 없이 자기 소신대로 정치를 펼쳐 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세종대에는 우리 민족역사에 있어서 가장 훌륭한 유교정치와 찬란한 문화가 꽃을 피우던 시대였다. 세종은 어린 시절부터 책 읽기를 너무 좋아해서 부왕인 태종이 건강을 염려해 책 읽기를 금할 정도였다고 한다. 남달리 학문에 조예가 깊었던 세종은 자신의 넓고 깊은 학식을 국가 경영에 직접 도입해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다. 세종 시대에 조선은 부국강병을 이루어 안팎으로 안정된 정국 속에서 한글 창제, 예치주의의 실천, 천문학 및 농업의 발달 등 가장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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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현전을 통하여 많은 새로운 인재가 배양되었고, 유교정치의 기반이 되는 의례(儀禮)와 제도가 정비되었으며, 다양하고 방대한 편찬사업이 이루어졌다. 우리나라 최초로 우리나라 상황에 맞게 편찬한 농업 서적인 정초의 농사직설, 우리의 풍토에 맞게 집성한 의서 향약집성방, 조선 최대 과학자 장영실에 의한 측우기, 해시계의 발명, 그리고 천문학 등 과학기술의 발전, 박연에 의한 음악 정리, 법제의 정리, 공법(貢法)의 제정, 대마도정벌, 4군6진으로 국토의 확장 등 수많은 사업을 통하여 민족국가의 기틀을 확고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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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들 중 뒤에 ‘대왕’을 붙여서 부르는 왕들은 여럿이 있다. (영조대왕, 정조대왕)

그러나 이 분들 중에서도 대왕이 고유명사화 된 분은 세종대왕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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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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