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조반정 3편
■ 인조반정 3편
소북파의 유영경은 자신의 목숨이 달린 일인 만큼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그는 교서를 받아다가 그것을 발표하지 않고 자신의 집에 몰래 숨겨두는가 하면, 궁녀와 내시들을 매수하거나 협박하여 아예 없던 일로 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행보는 소북파 내에서도 비난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편, 유영경이 벌인 일이 널리 소문이 나자, 의병장 출신인 대북파의 정인홍은 유영경을 공격하는 상소를 올렸다. 하지만 선조는 유영경에게 영창대군의 안전을 부탁했던 만큼 그를 내 칠 생각이 전혀 없었고, 오히려 크게 분노하여 정인홍은 물론이고 대북파의 수장인 이이첨까지 귀양을 보내버렸다.
얼마 뒤, 죽음을 직감한 선조는 유영경 등 여러 대신들을 불러 놓고 영창대군을 부탁한 뒤, 1608년 2월 1일 눈을 감았다. 선조의 뒤를 이어 광해군이 조선의 15대 임금으로 즉위하게 되는데, 곧 조선 조정에서는 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광해군을 지지했던 대북세력들은 그동안 벼르고 있었던 소북파의 유영경을 향해 거센 공격을 퍼부었다. 그리고 광해군 또한 그를 용서할 생각이 전혀 없었는지 유영경을 유배 보냈고, 훗날 유영경은 유배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생을 마감하였다.
유영경을 처리한 광해군은 곧바로 해결해야할 문제가 하나 더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의 친형인 임해군이었다. 임해군은 평소 온갖 나쁜 행동은 다 하고 다닌 터라 그에 대한 원성이 자자했다. 특히 그는 술만 마시면 동생인 광해군이 자신의 자리를 빼앗았다면서 이리저리 불평불만을 퍼트리고 다녔다.
광해군의 입장에서는 배다른 형제도 아니고 자신의 친형이 이런 짓거리를 하고 다니니 정말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선조가 사망하던 날, 임해군이 군사를 동원하여 반란을 일으킬 계획까지 궁리했다는 것이다. 이에 광해군은 즉시 임해군을 연금시킨 뒤, 공정하게 조사할 것을 명령했다. 하지만 임해군은 몰래 담을 넘어 도망치려다가 발각되어 연행되고 말았다. 그래도 광해군은 이러한 망나니 형을 처벌하기 보다는 관용을 베풀어 그를 한양 밖으로 추방해 교동도로 유배를 보내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특히 임해군이 유배지로 떠날 때 의원까지 딸려 보내는 등 자신의 친형이라고 나름 신경까지 써주었다.
광해군의 즉위로 조정의 권력은 대북세력에게 집중되었고, 이에 서인들은 영창대군에게 접근하게 시작했다. 공작 정치로는 조선사를 통틀어 손에 꼽을 정도의 인물이었던 대북파의 수장 이이첨은 당시 광해군의 왕권에 가장 위협이 될 만한 요소인 선조의 장남 임해군과 선조의 적장자 영창대군을 제거하기 위해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 1609년 4월 29일, 유배 생활 중이던 임해군이 시체로 발견되게 되었다. 이때 공식적인 사인(死因)은 병사(病死)였으나 임해군이 정확히 어떻게 죽었는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 4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