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왜降倭:투항왜병 4편
■ 항왜(降倭:투항왜병) 4편
그렇다면 선조의 말처럼 ‘제 몸 돌보지 않고 싸운 항왜들’ 가운데 첫손으로 꼽히는 인물은 실록(선조실록)에도 등장하는 바로 여여문(呂汝文)일 것이다. 사실 여여문이 어떤 경로로 항복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1595년(선조 28년) 6월19일 《선조실록》을 보면 매우 의미심장한 기사가 보인다.
『과인이 항왜(降倭:항복한 왜인) 여여문을 각별히 후대하라고 전날에 전교하였는데 실행하는지 모르겠다. 요사이 듣건대, 이 자가 병이 났다가 차도가 있다고 하는데 이는 보통 왜인이 아니다. 대우를 후하게 하지 않아선 안 된다.』
훈련도감은 선조의 특명에 따라 “여여문은 집중치료를 통해 회복됐지만 주상의 하교대로 특별히 더 후대하겠다”고 보고했다. 그저 왜적 가운데 항복한 자일뿐인데, 선조임금이 나서서 “후대하라”는 특명을 내린 것도 모자라 “그 자의 병에 차도가 있는지 알아보라”고까지 했을까. 훈련도감은 왜 고분고분 선조의 명을 받들어 여여문의 건강상태까지 다시 체크했을까. 여여문이 조선에 매우 중요한 임무를 담당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무슨 역할이었을까.
《선조실록》에 여여문의 임무가 구체적으로 나온다. 즉 훈련도감이 이른바 아동대(兒童隊)를 선발하여 검술을 익히게 하고 사수를 양성하게 하는데, 그 책임자를 여여문에게 맡겼다.
『(여여문이 훈련시킨) 아동대 인원들을 어제 모아놓고 시험을 치렀는데, 50여명 중 합격자가 19명이나 되었습니다. 이들에게 음식을 상급으로 주었습니다. 여여문에게 아동대를 전적으로 맡겨….』 《선조실록》
이뿐이 아니었다. 조선은 여여문으로부터 일본군의 진법과 전술을 전수받았다. 이것은 조선군과 명나라군이 일본군과 맞서 싸울 때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 여여문이 일러준 왜군의 전법은 매우 상세했다.
『왜군은 깃대를 진 군사는 양쪽으로 에워싸고 나아가 좌우의 복병과 함께 적의 후미를 포위합니다. 싸우면서 흩어질 때 많은 복병을 좌우에 배치하고, 조총과 창검으로 각각 하나의 부대를 삼아 숲속에 흩어져 매복하기를 마치 새와 짐승이 은복하듯 합니다.』 《선조실록》1596년 2월17일
- 5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