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5일 금요일

여류시인 이옥봉 4편

■ 여류시인 이옥봉 4편

■ 여류시인 이옥봉 4편

이옥봉은 서녀였지만 왕족으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생활을 했고,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 시를 짓기도 한 멋진 여인이었다. 그러나 사랑이 깨지자 그녀의 삶도 같이 침몰해버렸다. 이는 섬세한 시인의 영혼이 감당할 수 없는 시련에 부딪쳐 일어난 비극일 것이다. 옥봉은 중국 명나라에까지 시명이 알려진 여류시인으로서, 그녀의 시는 맑고 씩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중국과 조선에서 펴낸 《시선집(詩選集)》에는 허난설헌의 시와 나란히 실려 있다.

삼척 ‘죽서루’는 조선 시대의 누각이다. 문화재 지정 보물 제213호이며 건립 시기는 1403년으로 정면 7칸, 측면 2칸의 겹처마가 팔작지붕 건물이며 삼척시의 서쪽에 흐르는 오십천을 내려다보는 절벽 위에 세워져 있다. 17개의 원형 기둥 위에 세워진 죽서루는 자연 암반 위에 자연 친화적으로 지어져 있었다. 삼척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오십천의 하천 경관 중에서 가장 절경을 이루는 장소로 알려진 곳이며, 이옥봉과 인연이 있는 곳이다. 낭군인 조원이 삼척부사(1583년-1586년)로 부임할 때 부실(副室:첩)로 따라와 ‘죽서루’란 시를 남긴다.

『江涵鷗夢濶(강함구몽활) 강에 잠긴 갈매기 꿈은 넓고도 넓고

天入雁愁長(천입안수장) 하늘을 나는 기러기의 시름은 길기도 길어라』

이 시를 읽고 조선 중기 문신이며, 영의정을 지낸 신흠(1566-1628)은 그의 시비평집인 《청창연담》에서 “고금의 시인 중에 누구도 이에 비견될 시구를 지은 적이 없다.”라고 극찬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천고의 절창(絶唱)이라 거침없이 표현했다.

이옥봉은 그다지 많은 작풍을 남기지는 못했으나 현존하는 이옥봉의 시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바로 ‘몽혼(夢魂)’이다. 《자술(自述)》이라는 제목으로도 불린다. 사랑하는 부군 조원을 생각하여 단장(斷腸)의 아픔으로 쓴 이 시는 유작(遺作) 32편 가운데 백미(白眉)라고 평가된다.

『近來安否問如何 요즈음 안부를 여쭈노니 어떠하신지요

月到紗窓妾恨多 달빛이 창가에 비치니 신첩의 슬픔이 많답니다.

若使夢魂行有跡 만일 꿈 속에서 넋의 발자취가 남는다면

門前石路半成沙 문전 돌길이 모래길로 바뀌었을 겁니다.』

임과 멀리 떨어져 지내는 자신에게 누군가 근래의 안부를 묻자 그는 한이 많아 결코 편하게 지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한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것인지, 아니면 임에 대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겹겹이 맺힌 한을 풀기 위해 꿈속에서 문 앞의 돌길이 모래가 되도록 수없이 임을 찾아갔다는 것이다. 헛된 행동을 반복하며 사랑을 갈구하는 안타까운 여심이 전해지는 작품이다.

- 5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