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 금요일

파란만장 단종의 짧은 생生 6편

■ 파란만장 단종의 짧은 생生 6편

■ 파란만장 단종의 짧은 생(生) 6편

궁중의 금지옥엽으로 태어나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고 왕실 족보에서도 제외된 단종의 제사를 왕실에서 지내줄 리는 없었다. 대신 생육신을 포함한 여러 충신이나 단종의 살아남은 일부 혈육(단종의 조카인 정미수와 그 자손)이 제각각 사가(私家)에서 제사를 모시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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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이 죽은 영월 일대에서는 민간에서 단종이 죽고 태백산의 산신령이 되었다는 믿음이 퍼졌다. 실제로 아직까지도 이 일대의 무속인들은 태백산신 아기대왕을 섬기는 이들이 많은데, 이게 바로 단종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일대에선 ‘태백산신제’라는 이름으로 산신제를 지내는데, 특기할만한 점은 이 태백산신제에서는 소를 잡아서 그 고기를 올렸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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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잡아 그 고기를 쓰는 제사는 왕에게만 올리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민간에서 소를 잡는 제사는 태백산신제가 유일하다고 한다. 이 산신제의 대상이 단종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그 당시 민간에서 산신령에 대한 민간신앙으로 가장하여 단종에게 왕의 예로 제사를 올린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태백산신제는 상당히 규모가 크고, 지금도 이어져서 영월군에서 사육신제와 함께 매년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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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7년(1681년) 노산대군으로 승격 된 후 숙종 24년(1698년) 단종으로 복위 추존되었다. 무력으로 폐위된 왕이기 때문에 단종릉에는 다른 왕릉과는 달리 무인석(武人石)이 없다. 복권시킬 때의 명분은 단종이 강등되고 사사(賜死)된 것은 사육신의 역모에 얽혀 들어간 것이지 본인 탓이 아니며, 세조도 본래 단종을 죽일 생각이 없었으니, 단종을 복위시킨다고 세조에게 누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단종의 능호는 장릉(莊陵)으로 여러 조선 왕릉과는 달리 경기도가 아닌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에 위치한다. 신기하게도 장릉 주변의 소나무는 마치 절을 하듯 장릉 방향으로 굽어져 있다. 특히 능역 근처에 가면 단종의 능을 향해 유난히 기울어진 소나무가 한그루 남아 있는데, 이 소나무를 충절송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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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생전에 노산군으로 강등되었기 때문에 종묘 신위에서도 빠져있었고 왕실족보에서도 빠져있었지만, 숙종이 추증과 복위를 승인함에 따라 뒤늦게 공식적으로 종묘 신위에 포함되어 역대 선대왕의 신위와 나란히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반정으로 폐위된 연산군과 광해군은 종묘 신위에서 제외되어 신위가 모셔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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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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