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9일 화요일

신언불미信言不美 - 믿음이 있는 말은 아름답지 않다.

신언불미信言不美 - 믿음이 있는 말은 아름답지 않다.

신언불미(信言不美) - 믿음이 있는 말은 아름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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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신(亻/7) 말씀 언(言/0) 아닐 불(一/3) 아름다울 미(羊/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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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변 좋은 사람이 막힘없이 술술 말을 잘하는 것을 보면 靑山流水(청산유수) 같다고 한다. 쩡쩡 울리게 말이 와 닿으면 폭포수가 떨어지듯 하다며 口若懸河(구약현하)라고 칭찬한다. 이렇게 말을 잘 하다가도 행동이 그에 따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되면 단번에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 ‘말은 앵무새’라며 깎아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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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잘 하기도 어렵지만 꾸미지 않고 행동을 같이 하지 않는다면 능변이 어눌한 사람보다 못하다. 孔子(공자)가 말했듯이 말투를 교묘히 꾸며서 듣기 좋게 하는 巧言(교언)과 얼굴색을 보기 좋게 꾸미는 令色(영색)의 사람 중에는 어진 이가 없다. 차라리 말은 어눌해도 실천에 앞장서면 訥言敏行(눌언민행)이라고 높이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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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家(도가)의 시조 老子(노자)도 비슷한 말을 남겼다. 겉보기에 번지르르한 말보다 투박하더라도 진실이 담겨 있다면 꾸밀 필요가 없다며 믿음직한 말(信言)은 아름답지가 않다(不美)고 말한다. 노자가 남긴 無爲(무위)의 처세서인 ‘道德經(도덕경)’은 상하편 모두 81편으로 되어 있는데 제일 마지막 장인 顯質章(현질장)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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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어가 나오는 부분과 이어지는 말도 함께 보자. ‘믿음성 있는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믿음성이 적다(信言不美 美言不信/ 신언불미 미언불신). 선한 사람은 따져 변명하지 않고, 잘 주워대는 사람은 선한 사람이 아니다(善者不辯 辯者不善/ 선자불변 변자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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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5000여 자에 이르는 책을 마무리하면서 아름다운 말로 된 내용은 아니나 믿어도 좋다고 술회한 것이라 해석한다. 또 선한 사람은 자신의 주장을 꾸며 변론하지 않는다고 했다. 따르는 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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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아는 사람은 많이 알지 못하고, 많이 아는 사람은 참으로 알지 못한다(知者不博 博者不知/ 지자불박 박자부지).’ 이 부분도 노자가 자신의 책이 광범한 지식을 동원한 것이 없이 오직 도만 이야기했을 뿐이라 깊이 아는 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 된다고 강조했다. 겉핥기로 박식을 뽐내기보다 한 분야라도 깊이 있는 지식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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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말을 낳아 ‘군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고 했다. 진실은 수식어가 필요 없으니 간단명료하고 미사여구를 동원할 필요가 없다. 말로써 말이 많은 곳이 정치의 세계다. 온갖 부정도 일갈하여 바로 잡을 수 있고 또 말을 잘 하여 허물을 가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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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로 이뤄지는 세계라 해도 국민들께 약속할 때는 화려한 언변으로 지지를 받아놓고 실천할 때는 나몰라하는 공약이 많다. 아름답게 꾸민 말이 일시적으로 먹혀들더라도 생명이 길지 않다. 투박한 말이라도 진실을 담은 말을 국민들은 원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