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택망처徙宅忘妻 – 집을 옮기며 아내를 잊어버리다.
사택망처(徙宅忘妻) – 집을 옮기며 아내를 잊어버리다.
옮길 사(彳/8) 집 택(宀/3) 잊을 망(心/3) 아내 처(女/5)
지나간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하거나 잊어버리는 정도가 심할 때 健忘症(건망증)이라 한다. 크게 중요하지 않은 일을 잘 잊을 때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 또는 ‘정신을 꽁무니에 차고 다닌다’고 놀려 댄다. 이런 정도는 애교로 봐줄만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만약 집을 옮길 때(徙宅) 부인을 잊어버리고 간다(忘妻)면 간단하지 않은 일이다. 요즘이야 이사를 할 때 부인이 남편을 버리고 갈까봐 먼저 짐차에 올라탄다고 하니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이 성어는 매우 중요한 일을 놓쳐 버리는 일이나 그런 얼빠진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 됐다. 徙家忘妻(사가망처)라고 해도 같다.
이렇게 부인을 두고 갈 정도로 중요한 것을 빠뜨리는 사람보다도 孔子(공자)는 더 심한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 春秋時代(춘추시대) 말기 魯(노)나라의 哀公(애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과인은 건망증이 심한 사람이 집을 옮기면서 아내를 잊어버렸다고 들었는데(寡人聞忘之甚者 徙而忘其妻/ 과인문망지심자 사이망기처) 실제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 공자는 이런 사람이 실제 있지만 더 심한 사람도 있으니 자기 몸을 잊어버리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그런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하고 아리송해하자 옛날 夏(하)나라의 桀(걸)이나 商(상)나라의 紂(주)같은 폭군이 그들이라고 설명한다. 이들은 천자의 자리에서 사해를 가지는 부를 갖고 있으면서도 국사는 돌보지 않고 사치와 황음에 빠졌다고 했다. 또 권세에 아부하고 남을 비방하기 좋아하는 간사한 사람들만 곁에 두어 충성스럽고 정직한 신하들은 모두 추방시켰기 때문에 나라를 멸망으로 이끌었다며 말한다.
‘이것이 바로 자기의 몸을 잊은 더 심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此謂忘其身之甚矣/ 차위망기신지심의).’ 중국 삼국시대 魏(위)나라 王肅(왕숙)이 편찬했다고 하는 ‘孔子家語(공자가어)’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책은 공자의 언행 및 문인들과의 논의를 수록한 책인데 賢君(현군)편에 실려 있다.
일상에서 사소한 것을 잊어도 겉으로는 괜찮다고 하면서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치부한다. 하지만 더 큰 약속을 하고서도 잊거나 일부러 하지 않는 높은 사람들도 많으니 이들의 처사는 국민들이 잊지 말아야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