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구지업箕裘之業 - 선대에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가업
기구지업(箕裘之業) - 선대에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가업
키 기(竹/8) 갖옷 구(衣/7) 갈 지(丿/3) 업 업(木/9)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정한 기간 종사하는 일이 직업이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라는 말이 오랫동안 전해 왔다. 자신의 적성이나 능력에 맞고, 또 사회에 기여를 할 수 있으면 귀하고 천함이 없이 보람을 찾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덴마크 최고의 레스토랑에서 14년간 접시를 닦았던 사람을 공동 소유자로 영입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좋은 보기다. 일본에는 몇 대째 내려오는 음식점이 수두룩하다고 하고, 세계 명품을 제작하는 서구의 집안도 장인정신의 자부심으로 무장돼 있다. 할아버지 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가업을 더욱 발전시키는 것은 전통을 잇는다는 의미에서도 바람직하다.
성어에 나오는 가업을 계승한다고 해서 떵떵거리는 재벌이 아니다. 이들의 선대는 요즘엔 보기에도 힘든 직업을 가졌다. 곡식 등에 섞여있는 쭉정이나 티끌을 골라내는 키(箕)를 만드는 직업과 짐승의 털가죽을 안에 댄 갖옷(裘)을 만드는 기술자다. 중국 유가의 五經(오경) 중에 포함되는 ‘禮記(예기)’에 실려 있다. 예기는 예의 이론과 실제를 논하는 내용으로 曲禮(곡례), 檀弓(단궁) 등 49편이 전하고, 大學(대학)과 中庸(중용)도 처음 이곳에 포함됐다.
學記(학기) 편에 나오는 내용을 보자. ‘솜씨 좋은 대장장이의 아들은 가죽옷 만드는 일을 배우고, 활을 만드는 사람의 아들은 키 만드는 일을 배운다(良冶之子必學爲裘 良弓之子必學爲箕/ 양야지자필학위구 양궁지자필학위기).’ 실제 대장장이의 아들이나 활을 만드는 사람의 아들이 바로 그 아버지의 일을 배운 것은 아니다.
대장장이는 쇠를 녹여 그릇을 만드니 그것으로 그 아들은 짐승의 털가죽을 깁는 것을 배우고, 뿔을 휘어 활을 만드는 아버지에게 아들은 버들가지를 휘어 키 만드는 일을 배운다. 비슷한 일이어서 어려서부터 보고 배워 따라 하기가 쉽다는 말이다. 처음에는 배우기 쉬운 일부터 하다 보면 나중에는 훌륭한 대장장이나 활장이가 되어 가업을 잇게 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선 士農工商(사농공상)의 구별이 뚜렷했고 그것이 이어져 ’사(師士事)‘자가 붙는 직업을 갖기 위해 경쟁해 왔다. 오늘날에는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일은커녕 당장 취업하려 해도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허둥댄다.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취업 걱정이 줄겠지만 조상대대로 이어오던 가업을 계승하려는 젊은이가 늘어난다면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도 있을 터이다. / 글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