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종교, 이슬람
◇사막의 종교, 이슬람
자연환경이 혹독할수록 종교 신앙심은 강해지는 것 같다. 사막이 그렇다. 이란의 사막에 가본 적이 있다. 바람 소리 외에는 동물 소리도 없고 자동차 소리도 없고 스피커 소리도 없었다. 정적 그 자체였다. 모래 외에는 보이는 것도 없고 얼씬거리는 것도 없는 완벽한 고독이었다.
죽음의 공간이었다. 그 대신 밤하늘의 별은 총총하게 보였다. 도 닦기에는 아주 좋은 조건이었다. 아무리 에고(ego)가 강한 인간이라도 ‘위대하신 알라여!’ 하고 엎어질 수밖에 없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사회적 인정 욕구에 목마른 인간은 사막에 들어가서 몇 달 생활하면 홀가분해질 것이다.
이슬람이 아직도 그 종교 신앙심을 원리적 형태로 유지하고 있는 배경에는 사막이 있었다. 세속화 물결 앞에서 다른 종교들이 함몰되고 있지만 이슬람은 아직도 종교적 순수성이 남아 있다고 보인다.
그러나 그 순수성이 보편적 상식과 충돌하고 있으니 문제이다. 여성 인권이 대표적이다. 망사를 통해서 눈만 보이도록 디자인한 부르카는 여성을 학대하는 이슬람 복장이다. 왜 이렇게 여성의 신체 모습을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도록 완벽히 차단하는 극단 패션이 나왔을까. 왜 이렇게 여자를 죄수같이 다루는가? 이슬람 율법을 깊이 모르니까 알 수 없다.
상식 선에서 추론한다면 사막과 관련이 있지 않나 싶다. 사막에서 농사는 불가능하다. 농사는 여자들 노동력도 상당히 기여하기 때문에 발언권이 생기게 마련이다. 사막은 장사로 먹고살았다. 남자들은 낙타에다 교역품을 싣고 몇 달씩 사막을 건너 다니는 카라반이 주업이었다.
중동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중계무역으로 먹고살던 문명권이었다. 낙타 몰고 사막으로 나가는 남자 처지에서는 여자들을 장시간 집에다 놓아 두는 셈이다. 낙타 몰고 사막 건너는 공수부대 같은 일에 어떻게 여자들을 데리고 다니겠는가.
몇 달씩 나가 있는 남자들은 집에 남아있는 여자들이 걱정될 수밖에 없다. 걱정 가운데는 여자들의 성적인 문란을 우려하는 의심도 있었다고 보인다. 특히 여성 신체 노출은 사막에서 시달린 남성의 성욕을 자극한다고 우려했던 것이다.
성적 충동은 대상(隊商)들의 역할마다 공정한 몫을 배당해야 하는 사막 문명권에 엄청난 혼돈을 야기한다. 대상들의 조직이 붕괴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환경이 바뀌었다. 낙타에 짐 싣고 다니는 시대가 아니니까 부르카 패션도 바뀔 것이다.
-조선일보 조용헌 살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