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9일 토요일

◇ 티라노사우루스와 은행나무 그리고 고생대

◇ 티라노사우루스와 은행나무 그리고 고생대

◇ 티라노사우루스와 은행나무 그리고 고생대

흔해서 귀한지 모르는 게 있다. 발에 치이는 은행나무가 대표적이다. 은행나무는 화석식물의 대표 격이다. 대략 3억년 전에 등장했다. 티라노사우루스로 상징되는 공룡이 지구상에 등장하기 이전인 고생대 무렵이다. 지구과학 교과서에 빠지지 않는 삼엽충이 은행나무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생물이다. 삼엽충은 사라졌지만, 은행나무는 살아남았다.

그만큼 외로운 식물이 바로 은행나무다. 지구상에 생존한 유일한 종이다. 그의 형제자매는 모두 멸종했다. 생물분류체계에 따르면 은행나무는 식물계→은행나무문→은행나무강→은행나무목→은행나무과→은행나무속→은행나무종으로 분류된다. 유일한 종이다 보니 멸종위기종에도 올라있다.

세계적으로 은행나무가 자생하는 지역은 한국·중국·일본 정도다. 한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특유의 노란색 낙엽 때문이다. 독특한 색감은 사람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고 가로수로 간택돼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특별시는 1971년 4월 3일 서울을 상징하는 나무로 은행나무를 지정했다. 화석식물이다 보니 웬만한 병충해를 가볍게 이겨내는 것도 장점이다. 여느 식물과 마찬가지로 은행나무도 자신을 아낌없이 나눈다. 국내에선 고급 가구의 소재로 쓰인다. 나뭇결과 나이테 무늬가 촘촘해서다. 최근에는 은행나무 추출물로 치매 치료제를 개발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딱 하나 불만이 있다면 꾸리꾸리한 악취를 내는 종자일 거다. 들여다보면 여기에도 사연이 있다. 악취는 종자의 육질층에서 배출되는데 포식자에게 먹히지 않고 살아남기 위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은행나무가 스스로 악취를 선택했다는 학설도 있다. 자손 번식을 위해선 공룡의 먹이가 돼야 했는데 이를 위해 악취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설명을 듣다 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인다. 가로수와 호프집 안줏거리는 은행나무도 미처 예상치 못한 시나리오였던 것이다. 최근에는 악취도 사라지고 있는데 지자체가 암나무를 수나무로 교체하고 있어서다.

길을 걷다 은행의 악취가 풍겨오면 공룡을 떠올려 보자. 코끝이 한결 가벼워진다. 나아가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른다. 은행잎이 떨어지는 이 무렵은 무언가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하기 좋은 계절이다. 사람이든 나무든 뭐든 좋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