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5일 화요일

정신어사呈身御史 - 몸을 드러내 어사가 되다, 청탁으로 벼슬하다.

정신어사呈身御史 - 몸을 드러내 어사가 되다, 청탁으로 벼슬하다.

정신어사(呈身御史) - 몸을 드러내 어사가 되다, 청탁으로 벼슬하다.

드릴 정(口/4) 몸 신(身/0) 거느릴 어(彳/8) 사기 사(口/2)

어떤 자리에 사람을 충원해야 할 때는 특수한 기능을 요구하지 않는 한 모두에 공평한 기회를 줘야 한다. 공직자를 선발할 때는 더욱 엄정하게 공채를 시행해야 함은 물론이다. 조상이 높은 관직에 있었거나 국가에 공훈을 세웠을 때 그 자손에게 특별히 벼슬을 내리는 蔭敍(음서, 蔭은 가릴 음)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조에까지 시행됐다. 관직을 세습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엄격한 科擧(과거)의 한계를 보완한 다양성에서 평가하기도 한다. 어쨌든 공정한 실력에서가 아닌 등용이기에 떳떳할 수는 없는 제도일 수밖에 없다. 鷄犬昇天(계견승천)에서는 집안에서 실력자가 나오면 가까운 식구는 물론 개나 소나 줄을 잡아 출세한다는 것을 비꼬았다.

얼굴을 고관에게 드러내어(呈身) 높은 관직 어사가 된다(御史)는 이 말도 사사로운 관계를 이용하여 벼슬길에 나서는 것을 의미했다. 얼굴을 드러내는 呈面御史(정면어사)라고도 한다. 중국 唐(당)나라의 정사 ‘舊唐書(구당서)’에서 유래했다. 처음 당서를 보충한 新唐書(신당서)가 나와 달리 구당서로 불리지만 사료적 가치는 더 높다고 한다.

당나라 14대 文宗(문종)때 과거에 급제한 韋澳(위오, 澳는 깊을 오)란 사람은 천성이 곧고 욕심이 없어 10년이 지나도록 벼슬을 하지 못했다. 보다 못한 형 韋溫(위온)이 친분이 두터운 御史中丞(어사중승)이란 벼슬의 高元裕(고원유)에게 동생을 임용시켜 달라고 청탁했다. 그러고선 위오를 불러 29곳의 자리를 주무르는 형의 친구를 만나보라고 했다. 고원유가 단정한 선비이니 형의 말을 가볍게 듣지 말라는 당부에 위오는 답했다. ‘그렇기는 하지만 높은 사람에게 잘 보여 어사가 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然恐無呈身御史/ 연공무정신어사).’ 그러고선 끝내 고원유를 찾지 않았다. 위오열전에 나온다.

李舜臣(이순신) 장군도 柳成龍(유성룡)이 장군감이라며 吏曹判書(이조판서)로 있던 栗谷(율곡) 선생을 찾아보라고 권했지만 같은 문중이라도 인사권을 가진 자리에 있으니 만나지 않겠다며 끝내 찾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