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5일 월요일

경보불사 노난미이慶父不死 魯難未已 - 경보가 죽지 않으면 노나라난리는 끝나지 않는다.

경보불사 노난미이慶父不死 魯難未已 - 경보가 죽지 않으면 노나라난리는 끝나지 않는다.

경보불사 노난미이(慶父不死 魯難未已) - 경보가 죽지 않으면 노나라난리는 끝나지 않는다.

경사 경(心/11) 아비 부/사내 보(父/0) 아닐 불(一/3) 죽을 사(歹/2)

성 로(皿/11) 어려울 난(隹/11) 아닐 미(木/1) 이미 이(己/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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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 父(부)는 어르신, 늙은이를 뜻할 때의 독음인데 ‘보’로 읽힐 때엔 뜻이 좋다. 남자의 미칭 甫(보)와 통하고 나이 많은 남자에 대한 경칭이기도 하다. 몇 가지 예를 들면 隱者(은자)의 대명사 巢父(소보), 八駿馬(팔준마)의 수레를 잘 끌었던 造父(조보), 屈原(굴원)의 漁父詞(어보사) 등이다. 이런 좋은 이름에 더욱 경사스럽다는 慶父(경보)란 사람은 이들에 먹칠하는 대명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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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時代(춘추시대) 魯(노)나라의 세력을 떨친 공자로 왕위를 노려 두 번이나 내란을 일으키고, 왕을 두 사람이나 살해하여 혼란 속에 빠뜨린 장본인이다. 늘 내분을 일으키는 자를 가리켜 후세 사람들은 경보라 부르게 됐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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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나라의 학자 左丘明(좌구명)이 쓴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에 경보의 행보가 자세하게 실려 있다. 노나라 莊公(장공)에게는 아우 季友(계우)와 배다른 경보, 叔牙(숙아) 등 4형제가 있었다. 32년을 재임한 장공이 병세가 악화돼 누가 왕위를 계승하면 좋을지 숙아에게 물었더니 친형 경보를, 계우에게 물었더니 왕의 아들 般(반)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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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이 죽자 계우가 뒷받침한 반이 왕위에 올랐지만 경보가 두 달 만에 살해하고, 장공의 어린 손자 開(개)를 앉혔다. 정통 계승자 반을 밀었던 계우는 경보에 맞설 힘이 부족함을 알고 이웃 나라로 피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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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보가 세운 손자는 閔公(민공)으로 이웃 강국 齊(제)나라 桓公(환공)의 외손자였다. 환공이 민공을 보호하기 위해 대부 仲孫秋(중손추)를 파견하여 정세를 살펴보게 했다. 중손추는 경보가 여전히 야심만만함을 알고 돌아와 보고했다. ‘경보를 제거하지 않는 한 노나라의 난리는 진정될 수 없습니다(不去慶父 魯難未已/ 불거경보 노난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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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대로 경보는 2년 뒤 야욕을 드러내 왕을 죽이고 스스로 임금이 되었다. 망명한 계우를 따르던 노나라 백성들은 경보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집단적으로 반발했다. 민심에 놀라 제나라로 피신한 경보는 노나라로 돌아온 계우가 압박하자 자살하고 말았다. 과연 경보가 없어지자 난이 평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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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뜻을 무시하고 왕위만 노리던 경보는 천하에 몹쓸 내분을 달고 다니는 자였지만 핍박받던 배다른 동생 계우는 달랐다. 새 왕에 건의하여 경보의 아들에게 제사를 잇게 했고, 이 가문이 노나라 三桓(삼환)의 하나인 孟孫(맹손)씨가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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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다툼에는 경보와 같은 야심찬 실권자가 기회를 보아 난을 일으키고 그에 따라 항상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오늘날에는 피만 튀지 않을 뿐 민주화가 됐다고 해도 불의와 모략은 어딘가에 숨어 있다. 승리를 거둔 뒤 계우와 같이 상대를 거둔다면, 아니 법대로 절차만 지킨다면 목숨 건 다툼은 사라질 것이 분명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