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궁사영杯弓蛇影 – 술잔에 비친 활을 뱀으로 알다.
배궁사영(杯弓蛇影) – 술잔에 비친 활을 뱀으로 알다.
잔 배(木/4) 활 궁(弓/0) 긴뱀 사(虫/5) 그림자 영(彡/12)
남을 무턱대고 믿는 일도 안 될 일이지만 의심부터 앞세우는 것도 못할 일이다. ‘지나친 의심은 과오를 낳는다’거나 ‘지혜 없는 자 의심 끊일 날이 없다’고 불경에서 가르쳤지만 중생들은 따르지 못한다. ‘만일 하늘이 무너지면 어디로 피해야 좋을 것인가?’ 하고 침식을 잊으며 걱정했다는 옛날 중국 杞(기)나라 사람의 걱정은 옛날만의 어리석음이 아니다. 의심의 결정판이 속담에 있다. 물건을 잃게 되면 누구나 다 의심스럽게 여겨진다며 ‘도둑맞으면 어미 품도 들춰 본다’고 까지 했다.
술잔 속에 비친 활 그림자를 뱀으로 잘못 알았다는 이 성어는 쓸데없이 의심을 품고 지나치게 걱정한다는 이야기에서 나왔다. 魏(위)나라에 뒤이어 건국된 南北朝(남북조) 시대의 晉(진)나라 때 樂廣(악광)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독학을 했지만 영리하고 신중해서 주위의 신망을 받았다. 뒷날 벼슬길에 천거되어 河南(하남)의 태수로 있을 때 일이다. 그의 친한 친구가 찾아 와 술상을 차리고 대접했다. 하지만 그는 무슨 근심이라도 있는 듯 말수도 적고 술도 얼마 마시지 않고 돌아갔다. 자주 오던 친구는 그 뒤로 웬일인지 발을 딱 끊고 찾지 않았다. 이상하다고 여긴 악광이 찾아가 보니 자기에게 찾아온 이후 병이 들어 앓아 누웠다고 했다.
온갖 약을 써도 차도가 없다는 친구에게 원인을 물어보니 전번 술 마신 잔에서 뱀이 보였다고 했다. 언뜻 생각이 미친 악광은 다시 친구를 초청하여 그 자리에서 술을 마시며 잔을 보게 했다. 다시 뱀이 어른거리자 뒷벽에 있는 활을 벗겨 낸 뒤에 보라고 하니 없어졌다고 했다. 술잔에 비친 활 그림자를 뱀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물론 친구는 의심이 사라지고 병도 깨끗이 나았다. ‘晉書(진서)’ 악광전에 실린 이야기다.
杯中蛇影(배중사영) 또는 蛇影杯弓(사영배궁)이라 해도 같은 말인데 사람은 달리 비슷한 이야기가 後漢(후한) 應劭(응소, 劭는 아름다울 소)라는 사람이 엮은 風俗通義(풍속통의)에도 전한다. 列子(열자)가 말한 의심하면 이치에 어긋나는 망령된 생각이 난다는 疑心暗鬼(의심암귀)라는 말과도 통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