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31일 일요일

벌부당죄罰不當罪 - 형벌이 지은 죄에 비해 합당하지 않다.

벌부당죄罰不當罪 - 형벌이 지은 죄에 비해 합당하지 않다.

벌부당죄(罰不當罪) - 형벌이 지은 죄에 비해 합당하지 않다.

벌할 벌(网/9) 아닐 불, 부(一/3) 마땅 당(田/8) 허물 죄(网/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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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을 저지르거나 죄를 지었으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 죄인에게 벌을 주는 罰(벌)이란 글자를 분해하면 얼굴을 그물살 罒(망)처럼 찌푸리고 말로 꾸짖는 詈(리) 옆에 위엄을 보이는 칼 刀(도)가 있다. 그만큼 죄의 경중에 따라 공정하게 벌이 시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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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지은 데로 가고 덕은 닦은 데로 간다’는 말을 누구나 믿으면 좋으련만 같은 죄를 저지르면서 자신은 별 것 아니고 남의 행위는 용서 못할 중죄라 여긴다. 하지만 ‘죄는 막둥이가 짓고 벼락은 샌님이 맞는다’는 말대로 나쁜 짓을 하고 이익을 차지하는 사람과 벌을 받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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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벌(罰)이 지은 죄에 비해 합당하지 않다(不當罪)면 승복할 사람이 없이 불만만 쌓인다. 예의로써 사람의 성질을 교정해야 한다며 性惡說(성악설)을 주창한 荀况(순황)은 그의 사상을 모은 ‘荀子(순자)’에서 이에 관해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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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벌을 가하는 본래의 뜻은 ‘난폭한 것을 금하고 악을 미워하며, 앞날을 경계하자는 것(禁暴惡惡 且懲其未/ 금폭오악 차징기미)‘인데 살인 등 중죄를 저지른 범인을 가볍게 처벌한다면 나라는 혼란에 빠질 것이라 주장한다. 正論(정론)편에 모든 작위와 상벌 등은 모두 선악에 대한 보수이며 응분의 결과인데 그것이 합당하지 않으면 국가 혼란의 발단이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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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성어의 부분이 이어진다. ‘무릇 덕행이 작위에 맞지 않고, 능력이 관직에 맞지 않으며(夫德不稱位 能不稱官/ 부덕불칭위 능불칭관), 포상이 공적에 적당하지 않고, 형벌이 범죄에 합당하지 않으면(賞不當功 罰不當罪/ 상부당공 벌부당죄)’ 이보다 더 큰 불상사는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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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淸(청)에 대해 대표적 척화신이었던 金尙憲(김상헌, 1570~1652)은 이 말을 넣어 명언을 남겼다. ‘벌이 죄에 합당하지 않은 일치고 잘못 아닌 것이 없습니다(罰不當罪 何事非尤/ 벌부당죄 하사비우)’라며 임금께 바른 말을 올렸다가 귀양 간 언관을 변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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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의 가르침이 아니라도 일반 사람들은 지은 죄에 맞는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런데 죽을죄라도 저지르기 전에 무섭지 저지른 후에는 겁이 없어져 배짱인 사람은 대체로 배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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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사법 불평등의 대표적 성어가 된 無錢有罪(무전유죄)는 말할 것도 없고 거기서 파생된 有權無罪(유권무죄)도 부당의 대표적인 것으로 본다. 하지만 선량한 국민들은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는 錢可通神(전가통신)보다 天網恢恢 疎而不失(천망회회 소이불실, 恢는 넓을 회)란 말을 기대한다. ‘하늘의 그물은 성긴 듯 보이지만 그 무엇도 놓치는 일이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