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문계살屠門戒殺 - 도살장에서 살생하지 말란다, 행해지지 않을 일을 훈계하다.
도문계살(屠門戒殺) - 도살장에서 살생하지 말란다, 행해지지 않을 일을 훈계하다.
죽일 도(尸/9) 문 문(門/0) 경계할 계(戈/3) 죽일 살(殳/7)
자신의 주제나 능력을 알지도 못하면서 허세를 부리거나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는 사람이 주변에 흔하다. 속담이나 성어가 많은 것도 분수 모르는 사람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공자 앞에서 문자 쓴다’, ‘지붕의 호박도 못 따면서 하늘의 天桃(천도) 따겠단다’ 등의 속담이 잘 말해준다. 기술의 달인 魯班(노반)의 문 앞에서 도끼를 자랑한다는 班門弄斧(반문농부), 조그만 사마귀가 앞발을 들고 수레에 막아서는 螳螂拒轍(당랑거철) 등의 성어는 모두 자기 역량을 모르고 위세를 부리는 夜郞自大(야랑자대)와 같다.
반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오래 기다려도 가능하지 않은 일도 있다. ‘바람벽에 돌 붙나 보지’란 말은 되지도 않을 일이거나 오래 견뎌 나가지 못할 일은 아예 하지도 말라는 뜻이다. ‘그 사람 인간되기는 백년하청’이라 말하면 사람 구실을 못할 사람이니 상종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짐승을 잡아 고기를 파는 거리(屠門)에서 살생을 하지 말라고 점잖게 훈계(戒殺)하면 생업을 포기하라는 소리이니 먹혀들 리가 없다.
부처를 논하는 屠門談佛(도문담불)도 어울리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우리 속담을 한역한 ‘旬五志(순오지)’에는 ‘개백정보고 살생하지 말란다’고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비어를 등장시켰지만 더 앞서 조선 전기 문신 徐居正(서거정)의 ‘太平閑話滑稽傳(태평한화골계전)’에 재미있는 이야기로 등장한다.
내용을 간단히 보자. 서울서 경주로 내려간 젊은이가 관아의 한 요염한 창기에게 홀딱 반했다. 상경할 때 서럽게 우는 창기에게 보따리를 털어 주었으나 재물을 원하지 않는다며 앞니 빼어주기를 원했다. 할 수 없이 이를 빼어주고 온 젊은이는 이 창기가 다른 남자를 사귄다는 소식을 들었다. 화가 치민 젊은이는 하인을 시켜 앞니를 찾아오도록 시켰다. 하인이 찾아가니 창기가 비웃으며 말했다. ‘어리석은 어린놈이 백정에게 살생하지 말라고 타이르고, 창녀보고 예절을 갖추라고 하는 격이니 바보 아니면 망령든 놈이로다(癡孩子 屠門戒殺 娼家責禮 非愚則妄/ 치해자 도문계살 창가책례 비우즉망).’ 그러면서 자루를 던져 주니 그 속에는 치아가 가득했다.
자기만 사랑한다고 살살대던 창기가 스쳐간 남자에게서 하나씩 얻은 것이 한 자루였다. 기생에게 예가 없다고 꾸짖어봐야 효과 없다는 娼家責禮(창가책례)도 여기서 나왔다. 한 사람이 ‘앞니가 확 트이고 까까머리 되는 것은 장수의 조짐(齒豁頭童是壽徵/ 치활두동시수징)’이라 놀려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나라의 앞일을 항상 걱정하는 우리국회는 다른 정파의 의원들과 일치하는 의견이 거의 없다. 급박한 일이라 합의를 하고서도 돌아서면 자기 당의 이익만 따진다. 이런 국회에서 화합을 바라는 것은 어디에 훈계를 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