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레의 여왕 박세은
◇ 발레의 여왕 박세은
발레 ‘백조의 호수’ 무용수들의 무대 뒤 삶을 다룬 영화 ‘블랙스완’은 아름답고도 소름 돋는 작품이다. 백조가 되어 춤추는 발레리나로 나오는 배우 내털리 포트먼은 아름다우면서도 근육질인 발레 무용수 몸을 표현하기 위해 마른 몸을 쥐어짜 9㎏을 감량했다. 영화 속 포트먼은 몸이 망가지는 고통과 싸우면서도 백조 깃털이 피부에서 솟는 착각을 느낄 정도로 춤과 혼연일체가 된다. 이 연기로 아카데미 주연상도 거머쥐었다.
1년간 발레 연기자로 살았던 포트먼은 “1주일만 더 아몬드를 먹으라고 했으면 미쳐버렸을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은 그 고단한 세계를 상처투성이 발가락 사진으로 보여준 적이 있다.
포트먼은 이 영화에서 프랑스인 발레리노 뱅자맹 밀피에로부터 발레를 배우다가 사랑에 빠져 그와 결혼했다. 밀피에는 이후 파리오페라발레단(POB) 예술감독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그곳에서 한국인 발레리나 박세은과 한솥밥을 먹었다. POB는 러시아의 마린스키와 볼쇼이, 영국로열발레단,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와 함께 세계 5대 발레단으로 꼽힌다.
세계 주요 발레단 수석 자리를 언제부턴가 한국 젊은 무용수들이 꿰차고 있다. 서희와 김기민이 각각 ABT와 마린스키 수석 무용수다. 보스턴발레단의 채지영, 네덜란드국립발레단의 최영규, 워싱턴발레단의 이은원 등 내로라하는 발레단 수석과 주역을 한국 발레리노와 발레리나가 맡았다. 이들은 20대 후반~30대 초반으로,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수석을 지낸 강수진을 보며 자란 ‘강수진 키즈’들이자 K발레의 황금세대로 불린다.
황금세대의 대표주자였던 박세은이 엊그제 POB 수석무용수인 에투알(‘별’이란 뜻)이 됐다. 2011년 준단원으로 들어가 10년간 자신과 싸워가며 도약을 거듭한 끝에 정상에 올랐다. 에투알은 POB 무용수 150여 명 중 남녀 합해 16명에 불과하다. 한국인은 물론이고 아시아인 중에서도 처음 있는 쾌거다. 발레리노 못지않은 파워로 도약하는 그녀의 명품 점프는 눈물과 땀의 결정체다. 2018년 무용계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도 받았다.
강수진이 어린 시절 발레 유학을 떠난 것과 달리 박세은·김기민 등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우리 시스템으로 육성된 토종이다. 2010년 세계 4대 발레 콩쿠르인 바르나발레콩쿠르에 출전한 박세은 김기민 등 한국인 4명이 남녀 금메달 4개를 싹쓸이했을 때부터 세계가 한국 발레의 웅비를 예견하고 주목했다. K팝에 이어 발레까지 최정상에 오른 우리 젊은이들의 활약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조선일보 만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