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선 달고나, 부산에선 쪽자, 마산에선 오리떼기..
◇ 서울선 달고나, 부산에선 쪽자, 마산에선 오리떼기..
얼마 전 김성윤 음식전문 기자가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큰아들 동주를 학교에서 데리고 집에 돌아온 아내가 마트에서 산 소다와 싸구려 국자를 들고 있었다. “학교 앞에서 오리떼기 장사가 있는데 동주가 해보고 싶다고 해서 사왔어.” 오리떼기라니! 평생 처음 들어본 말이었다. 아내는 경남 마산에서 나고 자랐다. 오리떼기가 뭐냐고 물었다. 아내의 설명을 들으니 ‘달고나’였다. 마산 옆 부산에서 태어난 권승준·남정미 기자에게 오리떼기를 아느냐고 물었다. 오리떼기는 모르겠고, 부산에선 ‘쪽자’라고 한단다. 왜 달고나가 오리떼기이고 쪽자란 말인가.
이 궁금증을 해결해 준 것이 <말모이, 다시 쓰는 우리말 사전>이다. 조선일보 창간 100주년을 맞아 사라져가는 우리말들을 모아 엮은 사전인데, 서울 남자와 마산 여자가 사는 우리 집에서 이 책이 요긴하게 쓰일 줄은 몰랐다. 오리떼기는 불 위에 국자를 올리고 거기에 설탕과 소다를 넣어 만든 과자란 뜻으로, 같은 경남이라도 진해에선 골떡, 부산에선 쪽자, 통영에선 뽑기라고 부른단다. 왜 오리떼기인고 하니, 뾰족한 도구로 침을 묻혀 가며 문양을 떼어내는 게 오리(五里)를 걸어갈 만큼이나 시간이 걸려서란다. 쪽자는 국자란 뜻이다. 전남, 경남에서 두루 쓰이는데 광양에선 쪽다리라고도 부른다. 사전에는 아내가 즐겨 쓰는 ‘천지삐까리’도 나왔다. 결혼해서 처음 들어본 이 해괴한 단어의 뜻은 ‘추수 때 볏가리가 사방으로 쌓인 모습처럼 무언가 매우 많은 상태를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요즘 이 사전은 동주 차지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홉 살 녀석이 이 사전을 뒤적거리며 키득키득 웃고 있다. 일반 국어사전도 좋아했는데 말모이 사전이 더 재미있단다. 그건 순전히 엄마가 쓰는 ‘이상한’ 말들이 대거 등장하기 때문일 것이다. 평소 두 아들 앞에서 아내의 억양과 사투리를 흉내 내며 골려먹던 나도 깊이 반성하며 함께 읽는 중이다….
김성윤 부자(父子)의 말모이 예찬에 사전을 편찬한 일원으로서 얼마나 뿌듯하던지요. 지난 2월 출간된 말모이 사전(시공사)이 곧 2쇄를 찍는다고 합니다. 글 쓰는 분들이 앞다퉈 구입한다고 하네요. 글쓰기의 기본은 다채롭게 구사할 수 있는 어휘! 감칠맛 나는 단어 하나로 빛나는 문장을 건져 올릴 수 있으니까요. 2쇄부터는 이어령 김훈 신달자 정경화 등 명사들의 ‘내가 사랑한 우리말’ 부록이 빠지니 초판(1쇄) 특별 한정판을 구하려면 서두르셔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말모이 만세!
-조선일보 아무튼 주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