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3일 토요일

탐생외사貪生畏死 - 목숨을 아끼고 죽음을 두려워하다. 

탐생외사貪生畏死 - 목숨을 아끼고 죽음을 두려워하다. 

탐생외사(貪生畏死) - 목숨을 아끼고 죽음을 두려워하다.\xa0

탐낼 탐(貝/4) 날 생(生/0) 두려워할 외(田/4) 죽을 사(歹/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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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다. 生者必滅(생자필멸)이다. 그래서 사람은 태어나자 죽음이 시작된다고 했고, 영리한 자나 바보를 가리지 않으며 부자와 가난뱅이를 차별하지 않고 죽음에 있어서는 평등하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공평하게 살다 가지 않으니 죽음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지만 죽음을 앞에 두고 그것을 대하는 태도는 천양지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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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용납 못할 죄를 저지르고도 구차한 목숨을 빌거나 불의를 못 참고 바로 잡으려다 죽음을 당하는 義死(의사)도 있다. 어떻게 사느냐보다 어떤 죽음을 맞느냐에 따라 泰山鴻毛(태산홍모)의차이가 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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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목숨을 아끼고(貪生) 죽음을 두려워한다(畏死)는 이 성어는 누구나 해당되는 이야기라도 특히 비루하게 살려주기를 빌 때 사용한다. 貪生怕死(탐생파사, 怕는 두려워할 파)라 해도 같다. 역사가 班固(반고)가 쓴 ‘漢書(한서)’ 文三王傳(문삼왕전)의 劉立(유립)의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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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립은 선조가 前漢(전한)의 5대 文帝(문제)의 차남으로 梁王(양왕)이 된 劉武(유무)라 떵떵거리는 집안이었다. 유무는 친형 景帝(경제)때인 서기전 154년 제후국이 영토삭감에 반발하여 일어난 吳楚七國(오초칠국)의 난 진압에 공이 큰 반면 후일 양왕으로 오른 유립은 망나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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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립이 양왕이 된 때는 한말 12대 成帝(성제) 때였는데 왕실의 뒷배만 믿고 황음무도한데다 백성들을 못살게 굴고 관원들도 멋대로 구타하기 예사였다. 보다 못한 양나라 고관들이 탄원하여 왕명이 내렸는데 처벌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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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대 哀帝(애제)가 즉위한 뒤 유립이 더 기고만장해지자 고관을 보내 조사에 나섰다. 병을 핑계했던 유립은 심상찮은 분위기에 두려움을 느끼고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일찍 부모를 잃고 좋지 못한 습관에 물들어 나쁜 짓을 용서하라며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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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붙어있기를 탐하며 죽기를 두려워했기 때문에 거짓으로 병을 가장했습니다(貪生畏死 即詐僵僕陽病/ 탐생외사 즉사강복양병).’ 僵은 넘어질 강. 구차하게 목숨을 빈 덕에 유립도 사면됐으나 新(신)나라가 들어선 후 폐서인되고 자살로 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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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유명한 선시 구절을 보자. ‘나는 것은 뜬구름 한 조각이 일어나는 듯하고(生也一片浮雲起/ 생야일편부운기), 죽음은 그 구름이 사라지는 것(死也一片浮雲滅/ 사야일편부운멸).’ 구름이 실체가 없듯 삶과 죽음도 같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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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죄를 짓고도 구차하게 목숨을 비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옳은 일을 위해서는 죽음 보기를 마치 편안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여긴다는 視死如歸(시사여귀)도 있다. 어떤 사람 이름이 오래 남을까. 그렇다고 막막할 때 목숨을 버리는 것은 물론 안 될 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