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3일 수요일

◇ 중년 남자와 빵

◇ 중년 남자와 빵

◇ 중년 남자와 빵

밥이냐, 빵이냐? 이것이 문제로다. 중년 남자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겪게 되는 실존적 위기는 밥 문제이다. 혼자서 밥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김치도 장만하고 찌개도 끓일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하느냐가 큰 문제이다. 이 능력이 갖춰지지 않으면 자유로운 영혼은 없다. 종속과 눈치 보기를 감수해야 한다.

필자도 전남 장성 축령산 자락의 황토집인 휴휴산방에서 새소리 듣고 편백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드를 코로 맡으면서 사흘까지는 즐겁게 지낸다. 그러다가 사흘 넘어가면 아파트에서 준비해온 밥과 반찬이 떨어진다. 이때부터는 배가 고프면서 자유가 사라진다. 빵으로 때울 수밖에 없다. 장성 읍내 마트에 가면 60~70대 남자들이 무엇을 사가는지 유심히 관찰해 본다. 빵⋅막걸리⋅우유가 그것이다. 나이 든 홀아비의 3대 먹거리이다. 혼자 사는 나이 든 남자는 빵을 사갈 수밖에 없구나! 전기밥솥도 필요 없고 설거지도 필요 없고 반찬도 필요 없고 5~6일을 두고도 먹을 수 있는 게 빵이다. 어쩔 수 없이 빵을 공부해야겠다.

2019년 한국인 1인당 쌀 소비는 59㎏, 밀 소비는 33㎏이다. 쌀의 나라에서 밀 소비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육천년 빵의 역사’(하인리히 E. 야콥)를 읽어보니까 빵의 재료인 밀은 에티오피아에서 처음 나왔다. 기원전 4000년 밀을 가지고 발효를 시켜서 빵으로 만든 것은 이집트이다. 양귀비씨, 참깨, 장뇌를 첨가하여 빵을 만들었다. 이집트 노동자는 하루에 빵 3개 맥주 2병을 파라오로부터 배급받았다. 구걸하는 사람에게 빵을 주지 않는 것은 가장 추악한 범죄였다. 람세스 왕의 고분벽화를 보면 제빵소에서 밀가루를 반죽하고 화덕에 굽고 이를 머리에 이고 나르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로마 시대로 넘어가면 빵의 표준화가 이루어진다. 빈민 1인당 하루 2개씩 빵을 배급하였고, 제빵소 앞에는 실업자 30만명이 빵을 지급받으려고 모였다고 한다.

로마는 제국을 빵으로 통치하였다. 빵으로 세계를 정복한 셈이다. 고대 예루살렘에는 제빵사의 거리가 있었고, 예수가 태어난 베들레헴은 ‘빵의 집’이란 뜻이라고 한다. 중년 남자가 속이 편한 빵을 찾다 보니까 광주에 사는 이영환 이라는 빵 선생을 만나게 되었다. 빵 도사이다. 빵의 재료에서부터 어떻게 발효를 하는지, 어떤 오븐이 좋은지, 그리고 담백한 맛의 빵을 어떻게 만드는지를 수시로 물어본다. 풍수도참과 주역, 집안 족보를 연구하던 사람이 빵 문제로 들어가니까 다시 신입생이 되었다. 인생은 참 배울 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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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조용헌 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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