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9일 토요일

◇ 남해 시골학교의 특별한 기적 “학교는 집, 학생은 가족”

◇ 남해 시골학교의 특별한 기적 “학교는 집, 학생은 가족”

◇ 남해 시골학교의 특별한 기적 “학교는 집, 학생은 가족”

학생과 교사가 24시간 학교에서 함께 먹고, 자고, 공부하는 학교가 있다. 서로를 “부모와 자식 같은 사이”라고 한다. 폐교 위기에서 공교육 모범학교로 변신한 경남 남해군의 남해해성고등학교다.

지난달 27일 남해해성고등학교 1학년 95명은 문화유산 답사에 나섰다. 남해해성고는 학생 80%를 전국 각지에서 모집한다. 전원 기숙사에서 지내기 때문에 정작 남해를 둘러볼 기회가 많지 않다. 이날의 목적지는 남해바래길 13코스(7.2㎞)였다. 노량해전 후 이순신 장군의 유해가 처음 육지에 닿은 관음포 이충무공유적에서부터 충무공의 가묘가 있는 충렬사를 잇는다. 학생들은 문화해설사의 역사 해설을 들으며 유적지를 둘러봤다. 서울 출신의 박지연 학생은 “학교 인근 역사 현장을 실제로 다녀보니 더 쉽게 알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남해해성고는 10여년 전만 해도 폐교를 걱정하던 시골 학교였다. 여느 시골 학교와 마찬가지로 점차 학생이 빠져나가면서 100여명으로 주저앉았다. 반전은 2004년 농어촌 자율학교로 지정되면서 시작됐다. 학생 전국선발권과 교육과정 편성권을 갖게 된 것이다.

결정적인 계기는 2006년 이중명 아난티그룹 회장의 학교 재단 이사장 취임이었다. 아난티그룹은 남해해성고 골프장을 운영하면서 지역과 인연을 맺었다. 하영제 당시 남해군수가 “폐교 위기의 남해해성고를 도와달라”며 이 회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남해해성고는 골프장에서 5분 거리다. 이 회장은 “학생이 없는 지역은 미래도 없다”며 학교를 인수하기로 했다.

이 회장은 취임하자마자 지원 사격에 나섰다. 우선 우수 학생 유치에 힘을 실었다. ‘SKY 진학 시 장학금 지원’도 초기에 내걸었다. ‘학교가 제2의 집이 되어주자’며 기숙사도 지었다. 시골 학교 부임을 꺼리는 교사까지도 불러 모으기 위한 조치였다. 학생은 물론 교감과 교사 9명도 기숙사에서 머물며 학생들과 동고동락했다. 서울 휘문고에서 34년간 몸담은 신종찬 교장도 이 회장의 스카우트로 남해해성고에 오게 됐다.

교사와 학생이 부모와 자식처럼 돌봐주는 ‘해성멘토링’은 남해해성고의 독특한 제도다. 교사 1명이 학년당 3명씩 총 9명의 학생과 연결된다. 1학년이 막내, 2학년은 둘째, 3학년은 장남·장녀, 교사가 부모가 된다. 이렇게 3년을 어울려 지낸다. 학습 지도에서부터 봉사 활동, 고민 상담, 생일 파티, 학부모 초청 체육대회도 함께한다. 올해 졸업한 누나에 이어 남해해성고에 입학한 김건희 학생은 “코로나로 등교가 늦어져 학교가 매우 어색했는데, 멘토 선배들과 선생님 덕택에 학교 생활이 즐겁다”고 말했다.

정규 교육과정 절반 이상이 토론·발표 수업이다. 이를 위해 학교 곳곳에 북카페와 소회의실을 만들었다. 교장실까지 방과 후 학생 회의 공간으로 내준다. 이렇게 10년 정도 지나면서 남해해성고 재학생은 275명까지 늘었다. 입시 명문이라는 소문도 도움이 됐다.

졸업생 100명 중 60~70%가 서울·경기 대학으로 진학한다. 지난해엔 졸업생 10%가 이른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에 합격했다. 이병희 교무부장은 “학생 수 대비 진학률은 전국에서도 손꼽힌다”고 말했다. 신 교장은 “남해해성고는 공교육 모범으로 인정받고 있다”며 “학생들이 꿈을 이룰 수 있는 곳이 되도록 더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