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30일 토요일

걸화걸항乞和乞降 - 강화하기를 빌고 항복하기를 빌다.

걸화걸항乞和乞降 - 강화하기를 빌고 항복하기를 빌다.

걸화걸항(乞和乞降) - 강화하기를 빌고 항복하기를 빌다.

빌 걸(乙/2) 화할 화(口/5) 빌 걸(乙/2) 내릴 강, 항복할 항(阝/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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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국이 강력한 군대를 이끌고 국경을 침범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다고 하자. 지도자는 막을 힘도 없으면서 玉碎(옥쇄)를 각오하고 대적해야 할까,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무릎을 꿇는 것이 옳을까. 1636년 丙子胡亂(병자호란) 때의 결과가 좋은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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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캐에 항복할 수 없다며 죽어도 싸워야 한다는 斥和派(척화파)와 싸움을 멈추고 적과 협상하여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主和派(주화파)가 팽팽했다. 明(명)에 대한 신의를 지키기 위해 淸(청)의 요구를 거절했다가 나라는 유린되고 백성들은 죽어나가 결국 仁祖(인조)는 三田渡(삼전도)의 굴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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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쪽이 옳다고 각자 의견이 갈릴 수 있는데 조선 후기의 실학자 李瀷(이익, 瀷은 강이름 익)이 대표적인 저술 ‘星湖僿說(성호사설, 僿은 잘게부술 사)’에 이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다. 人事門(인사문) 편에 강화하기를 빌고(乞和) 항복하기를 빈다(乞降)는 제목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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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친을 구걸하고 항복을 구걸한다는 뜻의 나약함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실은 倭亂(왜란)과 胡亂(호란)을 겪어 백성들만 魚肉(어육)이 된 것에 대한 냉엄한 반성이었다. 시작하면서 예를 먼저 든다. 唐(당)나라 시인 曹松(조송)의 명구와 孟子(맹자) 離婁(이루) 상편에 나오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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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수가 공을 이루자면 만 사람의 뼈가 마른다(一將功成萬骨枯/ 일장공성만골고)’고 한 것과 ‘땅과 성을 뺏기 위해 사람을 죽여 성에 가득하면 이는 큰 죄다(争地争城 殺人盈城 是爲大罪/ 쟁지쟁성 살인영성 시위대죄)’라 한 것은 모두 위정자의 뜻을 이루는데 어떤 희생이 따르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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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집에 있는 귀중한 보물을 도적이 빼앗으려 할 때 맞서 싸우면 자식이 죽고, 내주면 안전할 때 순순히 내주는 것이 생명을 지키는 일이라 했다. 힘도 없으면서 맞서 싸우다 생명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 되니 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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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정도는 목숨과 관계없으니 달라는 대로 주는 것이 옳은가. 처음부터 감히 도적이 달려들지 못하도록 힘을 기르는 것이 제일이고 그렇지 못해 뺏겼다면 수모는 갚아야 한다. 당장 세력이 부족하여 절체절명이 됐을 때 화친을 빌어서 될 수 있다면 화친하고, 항복을 빌어서 될 수 있다면 항복하여 후일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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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자신의 능력을 닦지도 않고 상대를 얕잡아 보며 대비를 하지 않을 때 죽어나는 것은 따르는 부하들이라는 점이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반도는 항상 눈을 부릅떠야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