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후장상 영유종호王侯將相 寧有種乎 - 왕과 제후, 장수와 재상의 씨가 따로 있겠는가?
왕후장상 영유종호(王侯將相 寧有種乎) - 왕과 제후, 장수와 재상의 씨가 따로 있겠는가?
임금 왕(玉/0) 제후 후(亻/7) 장수 장(寸/8) 서로 상(目/4)\xa0편안 녕(宀/11) 있을 유(月/2) 씨 종(禾/9) 어조사 호(丿/4)
‘씨도둑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아비와 자식은 용모나 성질이 비슷하여 속일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선조가 떵떵거리는 집안이라도 대대로 후손들이 높은 자리에 오를 수는 없다. 능력까지 물려받을 수는 없어 ‘씨가 따로 있나’라는 속담을 낳았다. 똑 같은 말로 왕과 제후, 장수와 재상(王侯將相)의 씨가 어찌 따로 있겠는가(寧有種乎)라는 명구가 있다. 능력은 뛰어나고 포부도 큰데 주위의 여건이 따라주지 못해 뜻을 펴지 못하면서 울분을 토하는 표현이다. 王侯將相 何有種(왕후장상 하유종)으로 쓰기도 한다.
이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이 품팔이꾼으로 지내던 陳勝(진승)과 빈농 출신의 吳廣(오광)이었으니 더욱 와 닿는 표현이다.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 秦(진)나라도 始皇帝(시황제)가 죽고 胡亥(호해)가 즉위한 뒤로는 간신 趙高(조고)가 권력을 좌우해 백성들이 도탄에 빠졌다.
빈민들을 국경으로 징집할 때 통솔하던 진승과 오광은 도중 大澤鄕(대택향)이란 곳에 이르렀을 때 큰 비를 만나 길이 끊기고 도저히 나아갈 수가 없었다. 정해진 기한 내에 가지 못하면 목이 달아나고 도망치더라도 잡힐 것이 뻔했다. 900여 명을 이끌던 두 사람은 죽는 게 마찬가지라면 차라리 난을 일으켜 나라를 세우다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하고 무리들을 소집했다.
진승이 앞으로 나서 나라의 명을 어기게 되어 꼼짝없이 모두 죽게 됐는데 앉아서 당할 수 없다며 일장 연설을 했다. ‘목숨을 건다면 이름을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 왕과 제후, 장수와 재상의 씨가 따로 있다더냐(死即擧大名耳 王侯将相寧有種乎/ 사즉거대명이 왕후장상영유종호)!’ 이렇게 해서 반란의 기치를 높이 들자 주위에서 크게 호응했고 지나는 지역마다 연전연승했다.
이들은 국호를 張楚(장초)로 명명하고 세력을 떨치다 진나라 장수 章邯(장한)의 조직적인 반격에 몰락하고 말았다. 반란군 우두머리 진승이 제국을 망하게 한 원인을 제공했다고 司馬遷(사마천)은 ‘史記(사기)’에서 陳涉(진섭)세가에 기록했다. 涉(섭)은 진승의 자, 世家(세가)는 제후나 왕의 기록이다.
진승은 잘 알려진 또 다른 명언을 남겼다. 바로 ‘참새나 제비가 어찌 고니의 뜻을 알리요(燕雀安知 鴻鵠之志)’란 말이다. 평범한 사람이 영웅의 큰 뜻을 알 수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진승도 세력을 잡았을 때 가까운 사람을 내쳐 마부에게 죽음을 당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오늘날 더 답답해할 사람들이 온갖 자격증을 갖춘 젊은이들일 것이다. 개천에서 용이 날 가능성은 갈수록 줄어들고 빈부의 차는 더 커진다. 재력가와 권력층이 자신들만의 더 탄탄한 성을 구축한다면 큰 뜻을 펴 볼 도리가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