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4일 월요일

계구우후鷄口牛後 - 닭의 부리와 소의 꼬리,

계구우후鷄口牛後 - 닭의 부리와 소의 꼬리,

계구우후(鷄口牛後) - 닭의 부리와 소의 꼬리,

닭 계(鳥/10) 입 구(口/0) 소 우(牛/0) 뒤 후(彳/6)

사람이 남의 밑에서 굽실거리며 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형편으로 남의 집에서 하인 살이 하는 사람도 조금만 형편이 풀리면 언젠가는 독립을 꿈꾼다. 크고 훌륭한 자의 뒤를 쫓아다니는 것보다 차라리 작고 보잘것없는 것이라도 남의 우두머리가 낫다는 것을 잘 나타내는 속담이 있다. ‘닭의 볏이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 마라’, ‘쇠꼬리보다 닭대가리가 낫다’ 등이다. 언뜻 비교가 안 되지만 닭의 주둥이(鷄口)와 소의 항문을 말하는 뒤(牛後)를 붙인 이 성어도 마찬가지다. ‘닭의 부리가 될지언정 소의 뒤는 되지 말라(寧爲鷄口 無爲牛後/ 영위계구 무위우후)’는 말의 뒷부분만 잘라 썼다.

중국 春秋戰國時代(춘추전국시대, 기원전 8세기~3세기)에 활약한 諸子百家(제자백가) 중에서 縱橫家(종횡가)가 있다. 책략을 써서 국제 외교상 큰 활약을 하는 유세객을 가리키는데 ‘말 잘하기는 소진장의’란 말이 있듯이 蘇秦(소진)과 張儀(장의)가 대표한다. 스승 鬼谷子(귀곡자) 밑에서 같이 수학했지만 나가는 길은 정반대였다. 점차 세력이 커지는 秦(진)나라에 나머지 여섯 나라 楚燕齊韓魏趙(초연제한위조)가 힘을 합쳐 대항해야 한다는 合縱策(합종책)을 주장한 사람이 소진이었다. 소진은 여섯 나라의 왕들을 세 치 혀로 설득시켜 이 모든 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한나라의 宣惠王(선혜왕)에 유세할 때 소진이 이 속담을 인용했다. 소국이라고 한나라가 진을 섬긴다면 야금야금 땅을 떼어주기를 요구해 나중에는 남아있지 못하게 되고, 이후에는 군사를 동원해 멸망시키고 말 것이라며 말한다. ‘속담에 닭부리가 되더라도 소꼬리는 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지금 만일 서쪽을 향해 신하로 진을 섬긴다면 소꼬리가 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鄙諺曰 寧爲鷄口 無爲牛後 今西面交臂而臣事秦 何異於牛後乎/ 비언왈 녕위계구 무위우후 금서면교비이신사진 하이어우후호).’ 선혜왕의 자존심을 긁어 합종에 합류하도록 했다. ‘史記(사기)’ 소진열전에 나온다.

우두머리가 돼야 한다고 분에 넘치는 욕심을 내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다. 차근차근 실력을 닦아 큰 자리에 들어서지 않고 처음부터 맹목적으로 큰판을 펼쳐선 될 일도 안 된다. 젊은이들의 취업이 아주 어렵다고 하면서 건실한 중소기업까지 외면하는 것은 작은 우두머리라도 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아닐까./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