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양촉번羝羊觸藩 - 숫양이 울타리를 들이받다, 함부로 달려들다 쩔쩔매다.
저양촉번(羝羊觸藩) - 숫양이 울타리를 들이받다, 함부로 달려들다 쩔쩔매다.
숫양 저(羊/5) 양 양(羊/0) 닿을 촉(角/13) 울타리 번(艹/15)
달리는 호랑이의 등에 엉겁결에 올라타게 됐다고 하자. 뛰어 내려도 돌밭에 깨지거나 언덕에 구르고, 끝까지 가도 호랑이밥이 될 처지다. 정신만 똑똑히 차리면 산다고 전하지만 그 전에 얼이 빠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이리 갈까 저리 갈까 판단을 못하다 右往左往(우왕좌왕), 나중에는 옴짝달싹 못하는 進退維谷(진퇴유곡)에 갇히게 되는 것이 騎虎難下(기호난하)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강대국 齊(제)와 楚(초) 사이에 끼여 눈치만 보는 滕(등, 滕은 물솟을 등)나라의 처지를 말한 事齊事楚(사제사초)와 같다.
이처럼 자기의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경우와는 달리 자만심으로 밀고 나가다 낭패를 볼 경우는 더 고약하다. 왔던 길을 잘 찾고 평소 온순한 성격의 숫양(羝羊)이라도 힘이 뻗치면 마구 내달려 울타리에 뿔이 걸린다(觸藩). 무모하고 저돌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 마침내 덫에 걸려 도리어 일을 더 망치게 되는 경우를 비유하는 성어로 ‘易經(역경)’에서 유래했다. 만물을 陰陽(음양)으로 나눠 六十四卦(육십사괘)로 설명하는 이 경전의 大壯卦(대장괘)의 설명을 종합해 보자. 大(대)는 陽(양)을 의미하며 壯(장)은 왕성하다는 뜻이란다.
우선 34괘인 이 대장괘는 우레를 상징하는 진괘(震卦,☳)와 하늘 건괘(乾卦,≡)가 거듭된 괘로 나타낸다. 하늘 위에서 우레가 치는 형국으로 양의 세력이 막강함을 나타낸다고 했다. 강한 양의 세력은 교만에 빠지기 쉽고, 성급하여 일을 그르칠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소인과 군자의 태도가 달라진다.
‘소인은 강성하면 세력을 함부로 휘두르고, 군자는 태연히 자신을 바로잡는다(小人用壯 君子用罔 貞厲/ 소인용장 군자용망 정려).’ 그래서 ‘숫양이 무작정 돌진하다가 울타리를 받아 뿔이 걸려 괴로운(羝羊觸藩 羸其角/ 저양촉번 리기각)’ 일이 생기게 된다. 羸는 괴로워할 리, 그리 되면 ‘물러나지도 나아가지도 못한다(不能退 不能遂/ 불능퇴 불능수)’.
사람이 자기의 능력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신감에 넘쳐 달려들었다가 일을 망치는 경우가 잦다. 국가의 정책도 인기만 믿고 부작용을 점검 않은 채 밀어 붙이다가 進退兩難(진퇴양난)에 빠지면 국민 모두의 불행이다. ‘菜根譚(채근담)’에서도 깨우친다.
세상사 한 걸음 물러서 생각하지 않는다면 ‘부나비가 촛불로 날아들고, 숫양이 울타리를 들이받는(飛蛾投燭 羝羊觸藩/ 비아투촉 저양촉번)’ 것과 같아 편안할 수 없다고 했다. 蛾는 누에나방 아. 매사에 먼저 깊이 생각하고 나설 일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