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0일 일요일

안행피영雁行避影 - 기러기처럼 날고 그림자를 피하다.

안행피영雁行避影 - 기러기처럼 날고 그림자를 피하다.

안행피영(雁行避影) - 기러기처럼 날고 그림자를 피하다.

기러기 안(隹/4) 다닐 행(行/0) 피할 피(辶/13) 그림자 영(彡/12)

사람은 태어나 부모 다음으로 스승의 가르침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스승의 은혜가 임금이나 부친과 같다는 君師父一體(군사부일체)란 말이 생겼다. ‘자식을 보기엔 아비만 한 눈이 없고 제자를 보기엔 스승만 한 눈이 없다’고 한 말은 자식에 대해서는 부모가 가장 잘 알고 가르침에 대해서는 스승이 가장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지금은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 주 업무가 되어 퇴색했지만 스승이 어려워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이 말의 원전이랄 수 있는 성어가 기러기처럼 앞서지 않고 스승의 그림자를 피한다는 雁行避影이다. 이동할 때 경험이 많은 기러기가 선두로 나서 V자 모양으로 높이 날아가는 것은 서열과 질서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다른 얘기지만 줄을 지어 함께 날아다니므로 다정한 형제 같다고 하여 남의 형제를 높여서 안항(雁行, 이 경우 行은 항렬 항)이라고 한다.

‘莊子(장자)’의 外篇(외편) 天道(천도)에 있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서 나왔다. 周(주)나라 때 士成綺(사성기)라는 사람이 老子(노자)를 찾아와 말했다. ‘당신이 성인이라는 말을 듣고 먼 길을 사양하지 않고 달려와 백일 동안 지켜봤는데 성인이 아닙니다.

나물을 쥐구멍에 버렸다고 누이동생을 내쫓으니 인이 아니고 날것이나 익힌 것이나 음식을 쌓아두니 말이요?’ 노자는 아무 대답이 없다가 다음 날 다시 찾아 온 사성기에게 말했다. ‘남이 그랬을 뿐 나는 성인이 아니오. 그대가 소라고 했으면 소, 말이라 불렀다면 말이라 했을 것이오. 그 이름을 받지 않으려 한다면 화를 두 번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오.’ 이 말을 듣고 부끄러워 사성기는 기러기처럼 옆으로 걷고 노자의 그림자를 밟을까 두려워하며 피했다.

세상에 스승은 많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내 스승 될 만한 사람이 있다고 했으니(三人行 必有我師/ 삼인행 필유아사). 스승은 많으나 존경할 만한 스승은 적다고 한다. 경쟁에 찌든 학생들만 양산하니. 百年大計(백년대계)라는 교육을 담당하는 주체가 스승이다. 그림자를 피하는 정도는 아니라도 스승을 존경하는 사회가 돼야 희망이 있다. / 글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