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두노미藏頭露尾 - 머리만 숨기고 꼬리는 드러나다, 얕은 수로 속이려는 행위
장두노미(藏頭露尾) - 머리만 숨기고 꼬리는 드러나다, 얕은 수로 속이려는 행위
감출 장(艹/14) 머리 두(頁/7) 이슬 로(雨/13) 꼬리 미(尸/4)
잘못을 저질렀을 때 몸체는 감춘다고 감추었는데 꼬리는 드러난 채 발각된다면 심히 어리석다. 속담에서는 얕은 수로 남을 속이려 하는 어리석은 짓을 ‘눈 가리고 아웅’한다고 한다. 진실을 감추고 어설픈 짓거리로 은폐하려다 만천하에 드러나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경계하는 교훈은 많다.
신통력을 가진 원숭이 孫悟空(손오공)이 筋斗雲(근두운)을 타고 도주하려 종일 날아도 ‘부처님 손바닥’ 안이었다든가, 불리한 상황을 임기응변으로 감추려다 드러나는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 등이다. 남들이 알까 감추면서 들통이 날까 전전긍긍하는 모습도 함께 연상된다.
산란기를 맞은 꿩이 숲속에서 스스로 울어 사냥꾼에 위치를 알려주게 되는 春雉自鳴(춘치자명)의 어리석음은 타조에게도 있다. 덩치가 큰 駝鳥(타조)가 위험에 처하게 되면 눈을 감고 머리를 수풀이나 모래 속으로 처박는데(藏頭) 당연히 꼬리는 드러난다(露尾). 실제 타조의 이런 행위는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땅으로 전해져오는 소리를 듣고 주변 상황을 살피며 정보 수집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
이 말이 진실을 숨기려 하지만 거짓의 실마리는 장본인만 모르고 세상이 다 안다는 의미로 이해되는 것은 서양이나 동양이나 같다. 타조는 억울할 듯도 한데 당면한 현실의 문제 또는 위험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정책을 Ostrich Policy(타조정책)이라 한단다.
꼬리가 드러난다는 성어가 처음 사용된 곳은 중국 元(원)나라의 散曲(산곡) 작가 張可久(장가구)의 작품이다. 산곡은 원에서 시작하여 명나라 때에 유행한 가곡이다. ‘點絳唇 翻歸去來辭(점강진 번귀거래사)’라는 작품에서 부분을 인용해보자.
‘일찌감치 관직에서 물러나 앉아, 홍진 같은 세속의 시비를 멀리 하고, 머리만 감추고 꼬리를 드러내는 일을 덜어보려네(早休官棄職 遠紅塵是非 省藏頭露尾/ 조휴관기직 원홍진시비 생장두노미).’
본의에 어긋나는 벼슬자리에서 벗어나 홀가분하게 지내고 싶다는 바람이다. 약간 후기의 희곡 작가 王曄(왕엽)의 桃花女(도화녀)나 淸(청)나라 曹雪芹(조설근)의 紅樓夢(홍루몽)에도 쓰임이 있다.
머리만 감추는 꿩 藏頭雉(장두치)와 같이 어리석은 행동은 露尾藏頭(노두장미), 藏頭隱尾(장두은미), 藏形匿影(장형닉영) 등으로 같은 뜻의 성어가 여러 가지다. 이 말이 교수신문에 의해 한 해를 상징하는 사자성어로 선정되어 널리 알려진 것이 오래됐지만(2010년) 꼬집는 묘미는 가시지 않는다.
잘못된 정책이나 지도층의 비리를 감추려 아무리 애를 써도 꼬리는 드러나 있다. 불의와 부정으로 이루어진 일은 세월이 지나도 반드시 응징되는 것은 事必歸正(사필귀정)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